클라라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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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전편이 대단히 완결성이 있으면서 후속작에 대한 여지를 주면서 끝났기 때문에 이번 후속작이 기대되는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클라라 죽이기>의 장점이라면 전편의 세계관이 보다 확장된 것이고 단점이라면 몇몇 작품을 예습하지 않으면 해당 설정을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앨리스 죽이기>가 원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지 않아도 즐길 수 있던 반면 <클라라 죽이기>는 전편은 물론이고 모티브가 된 E.T.A 호프만의 원작을 접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완전히 별세계 이야기로 들리기 십상이다. 내용 자체도 초월적이기 그지없어서 여러모로 진입 장벽이 높은 등 작가가 커다란 핸디캡을 안길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내 경우엔 전편은 읽었으나 원작인 호프만의 <호두까지 인형>이나 <모래 사나이>를 읽지 않아서 작중 세계가 완벽하게 와 닿지 않았다. 때문에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서 재해석을 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는데 <앨리스 죽이기>를 읽을 때 이상한 나라를 어떻게 재현했는가 보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호프만의 작품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작가가 이런 고구마 줄기 독서를 유도했다면 꽤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습이 안 되면 이해가 힘들다는 핸디캡을 갖고 있는 작품이긴 하나 원작을 읽은 뒤에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자체적인 완성도가 제법이라서 어떻게 보면 핸디캡을 뛰어넘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갑자기 이상한 나라가 아닌 다른 세계, 일명 호프만 세계에서 눈을 뜬 빌은 전과 다름없이 멍청하게 사방팔방 돌아다니다 그 세계의 주민과 만나면서 시리즈 세계관엔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이 제시된다. 빌과 우연히 만난 주민은 현실의 자신과 지구의 아바타라 사이의 연관 관계에 주목한 인물들이기에 그들은 지구에서 빌의 아바타라인 이모리와 재회를 기약한다. 그렇게 빌의 아바타라인 이모리와 만나게 된 글라라와 드로셀마이어는 그에게 사건 조사를 의뢰한다. 자신들 말고 다른 세계와 아바타라의 관계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 특성을 이용해 글라라를 살해하려는 것 같단 얘기였다.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완전 범죄를 도모하는 미지의 범인을 밝혀달라는, 사뭇 정석적으로 보인 이 의뢰는 꽤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길 전개시킨다. 한계가 있을 것 같은 설정 안에서 잘도 그만한 변주와 미스터리, 심지어 반전까지 도모하니 원;;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 빌 혼자인 터라 전편에 비하면 이상함이 많이 줄어든 작품이었다. 내게 꽤나 생소한 호프만 세계의 주민들도 보통내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말은 통하고 일정 수준의 논리가 있으니 전편에서 부족했던 추리소설적인 측면이나 쾌감이 많이 부각됐다. 그리고 지구와는 다른 호프만 우주만의 껄끄러운 가치관도 적잖은 존재감을 안겨줬다. 느닷없이 사람을 조립하고 분리하고, 실험하고... <앨리스 죽이기>가 무심한 잔혹함이, <클라라 죽이기>는 무심한 서늘함이 인상적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주민들은 이상했지만 그 이상함이 현실의 사이코패스완 결이 달랐는데 호프만 세계의 주민들은 현실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에 결함이 있는 인물들이 많아 그들의 천연덕스런 잔혹함이 무척 서늘하게 비춰졌다. 그래서 외적인 수위는 낮은 반면 내적인 수위는 오히려 전편보다 더했다.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지만 도마뱀 빌만 등장하고 소재만 공유하며 완전 별개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게 굉장히 모험적인 시도였는데 이번에도 개성적인 설정과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상한 나라와의 작별이 크게 아쉽지 않았다. 또한 작풍에도 일관성이 있어 같은 시리즈란 게 한눈에 보이는 것도 읽는 입장에서 재밌었다. 시리즈 3편도 필시 빌만 그대로고 세계는 또다시 바뀔 테니 그게 불안할 법도 한데 딱히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또 다음 편을 읽고 싶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다음 작품인 <도로시 죽이기>는 일본과 동시 출간된 걸로 알고 있는데 2편까지 읽는 지금에 와서 보니까 참 고맙고도 당연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들었을 땐 얼마나 재밌으면 동시 출간인가 싶었는데 이젠 납득이 된다. 단순히 시리즈를 넘어 이른바 '코바야시 월드'가 본격적으로 궁금해지는 작품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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