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를 걷는 여자
최상희 지음 / 푸른향기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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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내 버킷 리스트 중에 오헨로 순례길 완주가 있는데 아예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라서 과연 버킷 리스트라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절을 돌면서 자연스레 섬도 한 바퀴 도는 그 순례길은 원래 코보 대사라는 승려가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며 수행했던 발자취로 1,2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셀 수 없는 사람이 각자의 염원을 담고 오르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도 부친과의 이별로 울적했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것이었데 꼭 그 정도의 영적 목표가 없는 내가 쉽게 입에 담을 만한 목표이긴 한 걸까? 그저 재미로, 걷는 걸 좋아한다며 여행 삼아 도전하기엔 고행도 보통 고행이 아닌 듯해서.

 책은 작가가 최초로 결원 - 88개소 사찰을 전부 도는 것. - 을 하던 중에 겪은 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일기 형식으로 쓴 에세이와 부록, 질의응답, 그리고 숙박업소 소개로 이뤄져있다. 오헨로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이 전부 일어에 능통할 리도 없으니 아무래도 어디서 자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일 텐데 그 심정을 잘 아는지 작가가 매우 실용적인 정보를 수록해줬다. 각 숙소의 위치나 종류, 인상, 가격, 식사가 맛있었던 여부, 기타의 조건 등 비경험자 입장에서 혹할 만한 자료라서 작가의 세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2010년에 최초로 결원한 이후로 지금까지 6번을 더 했고 - 책의 출간일이 2년 전이니까 6번보다 많아졌을 것이다. 또 번외 결원까지 합하면... 모르긴 몰라도 장난 아니게 걸었다는 얘기다. - 순례길에 처음 오르는 사람을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외국인 최초로 하게 됐고 그 외에도 시코쿠의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과 순례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는 등 가히 8년 전의 결원으로 인생이 바뀐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어제 아는 형과 대화하면서 여행이 단순히 견문을 넓히는 것 이상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가 잠깐 오갔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말에 아주 부합하는 주인공이 바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 작가의 경우 상업적인 목적으로 순례길에 오르거나 책을 쓴 건 아니지만 순례길에 오르기 전, 아버지와의 이별 말고도 가게도 잘 안 되는 등 인생이 순탄히 풀리지 않은 걸 떠올리면 이 오헨로 순례길이 작가의 인생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이자, 신의 한 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름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반신반의했던 작가도 설마 본인의 인생이 이렇게 바뀌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글 서두에 내가 이 순례길에 오르는 걸 버킷 리스트라고 말해도 되는지 걱정했던 건 너무나도 앞서 간 걱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순례길에 오르는 게 무슨 대단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의지가 동반되는 고생스런 길일 뿐이다. 각자가 무엇을 바라든 그 기나긴 걸음 속에서 대답을 해주는 건 길이나 걸음이 아닌 발을 움직이는 나 자신일 것이다. 걷고 있다 보면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그대로일 지는 직접 걷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변화나 도전하는 차원에서, 마음 속 깊이 무언가를 염원하기 위해서, 때론 그 과정에서 대가 없는 친절을 경험하면서 - '오셋다이'를 가리키는데 시코쿠 사람들은 순례자들을 보면 음식값을 내주거나 집에서 재워주는 등의 대가 없는 친절을 베푼다고 한다. - 깨달음을 얻는 등 그 여정이 주는 효과는 쉽게 정의내리거나 넘겨짚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괜한 고민을 했던 스스로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만약 진지하게 순례길에 오르려고 한다면 동기 부여나 정보 탐색 등의 이유로 이 책을 자주 찾아볼 듯하다. 8년 전엔 관련 책이 없어서 당황한 기억이 있었기에 이제 예비 순례자를 위해 직접 이 책을 썼을 터인 이 저자가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인생이 변화할 수 있다니, 무척이나 부럽고 탐이 나기도 했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185854072

 이건 관련 책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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