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 일기 -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위근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9.0







 기사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간만에 정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후기에서 밝힌 말이 한 줌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라면, 저자가 자신의 모든 주장에 독자들이 동의하길 기대하지도, 그리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경청하는 것, 어떤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불편함이라도 일단 경청하고 토론으로 발전하는 자세가 우리 사회에 필요함을 후기에서 역설했기에 역시 이 책을 최대한 우러러봐야 할 것 같다. 인정할 수 없는 불편은 인정할 수 없는 불편대로, 공감이 가는 불편은 또 공감이 가는 불편대로, 정말로 저자의 말이 진심이라면 모든 불편은 분명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실제 저자의 됨됨이는 사람마다 평가가 제각각인 것 같지만 그래도 그가 꽤 괜찮은 글을 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뷰티풀 군바리>에 대해 저자가 느낀 불편이나 유독 여초 사이트에 너그러운 글의 성향은 섣불리 동의하기 어려웠다. <뷰티풀 군바리>가 해당 설정을 완벽히 소화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과 전개가 안일한 경향이 있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작중의 여성 군대가 단순히 성별만 바꿔 묘사한 게 고민이 부족하다거나 '군대 가서 고생하는 여자' 란 남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만화라고 한 건 너무 지나친 해석이란 느낌이다. 여초 사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패미니스트란 사실에 우월함을 느끼는 듯한 저자의 논조는 거슬리는 동시에 -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열등한 것이라고 나 또한 생각하지만, 그 두 개념을 이해한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이 우월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캡틴 마블을 연기한 브리 라슨만 하더라도... - 진정 메갈리아의 방식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걸까 의심돼 저자의 사고가 반드시 중립적이진 않겠구나 싶어 방어적인 자세로 독서에 임하게 됐다.


 최대한 방어적인 자세로 독서에 임했지만 그럼에도 괜찮게 읽히는 기사가 꽤나 많았다. 타일러와 허지웅의 토론 스타일의 장점을 살펴본 것에선 통찰력이 느껴졌고 '뇌섹남'이란 단어가 주는 모순과 얕음, 평양냉면에서 비롯된 갑질과 맨스플레인, 진중권이 범하는 실수나 아이유의 <제제>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애교와 먹방 등 여러모로 양립하기 어려운 잣대를 걸그룹에게 들이대는 대중의 작태와 미처 모르고 넘어갈 뻔했던 옹달샘의 망언과 방송국의 미화, 그리고 <미운우리새끼>의 가부장적인 모습 등... 나 또한 느꼈고, 그렇지만 귀찮거나 확신이 들지 않아서 쉬쉬했던 이슈들을 저자는 정말 다양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를 섭렵하고 글을 써낼 수 있어야 기자인 건가, 원래 기자란 이런 것인데 우리 주변에 기레기가 너무 많아 미처 몰랐던 걸까 싶을 정도로 정독하게 만드는, 그리고 상당 부분 고갤 끄덕이게 된 글들이었다.

 14년부터 16년까지 대략 3년 동안 쓴 글을 모은 책이고 해당 기사마다 저자가 현재 덧붙이는 코멘트까지 접해볼 수 있었는데 이 짧은 기간만 해도 우리나라에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다며 여러모로 반갑게 읽어나갔고 저자의 생각은 물론이고 저자가 인용하는 여러 의견도 잠깐이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특히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 언동을 무능한 것이라 딱 잘라 말해 속이 시원해질 정도였는데 위에서 말했듯 이 저자를 완벽히 신용할 순 없어도 자기만의 분명한 신념과 괜찮은 문장력을 구사하고 있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어떤 말이든 경청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라도 내 말을 경청하게끔 말이나 글이든 표현력을 연마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싶었다. 그것도 너무나 지나치면 문제이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한편으로. 특히 그릇된 사상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멋들어진 표현력을 가지면 정말 재앙이 따로 없으니까. 그래서 경청이 중요한 거겠지.

 

 

인상 깊은 구절

 

하여 '소위' 어른들이 멀리서 보면 푸른 그들을 보며 느껴야 할 감정은 기특함보다는 미안함이어야 한다. - 47p


인문학은 결코 옛날 옛적 그리스 현인으로부터 비밀리에 전승되는 진리의 법칙 같은 게 아니다. 당신에게 인문학을 그렇게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도망쳐라. - 74p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야 배움을 얻는 건 슬픈 일이지만,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화나는 일이다. - 107p 어떤 직업이든 위험으로부터, 위협으로부터, 모욕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 - 184p


보상이 아닌 자기만족으로 지탱하는 도덕성이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 219p


이제 앞으로 젠더 감수성에 문제를 보이는 언론에 대해서는 '나쁘다', '구시대적이다'라는 술어 대신 '무능하다'라는 술어를 붙이는 게 맞다. - 229p


중요한 건 얼마나 순수한 의도냐가 아니라 순수하지 못한 세계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느냐다. - 249p


요컨대, 중2병이란 차가운 세상 앞에서 아직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그럼에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걸 배우는 첫 단계다. - 279p


다만 현실을 투명하고 충실하게 묘사하는 작가는 자신의 인식과는 별개로 우연처럼 필연적으로 동시대의 모순과 부조리까지 비춰내며, 이것은 독자에게 비판적인 전망을 남긴다. -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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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1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 문학수첩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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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4 







 '해리 포터' 시리즈 중 소설은 '불사조 기사단'이, 영화는 '아즈카반의 죄수'가 가장 재밌었던 걸로 기억난다. 알폰소 쿠아론의 개성 넘치고 섬세했던 연출과 각색은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지 않는데 정작 스핀오프 시리즈인 '신비한 동물사전'의 최신작은... 간만에 '해리 포터'를 읽었더니 이렇게나 잘 쓰는 작가가 아무리 영화 대본이 소설과 다르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망쳤을까 싶었다. 물론 영화는 한 사람의 실수로 망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금 같은 질문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길어지기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3편'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었다. 유일하게 볼드모트가 등장하지 않아 분위기가 이질적이고 패트로누스 마법이나 시리우스 블랙 같은 중요한 설정과 캐릭터가 등장해 다시 읽어도 재밌었던... 아니, 다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했던 작품이었다. 1편 '마법사의 돌'에서 해그리드에게서 언급된 시리우스의 오토바이 에피소드라든가, 마찬가지로 1편부터 등장했던 론의 애완 쥐 스캐버스에 대한 떡밥, 그리고 해리의 아버지 제임스와 스네이브 사이의 악연과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까지... 하나같이 교묘하고 치밀하고 적절한 복선이고 반전이라서 이래저래 장편 시리즈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가득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전개였는데, 어린 시절 이 이야길 처음 접했던 무렵엔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다시 보니 독자로 하여금 다음을 기약하고 후속작을 궁금하게 만들기에 아주 적절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쯤 되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다 잡은 패티그루를 하필 무심하게 떠있는 보름달 때문에 놓쳐버리고 기적적으로 누명을 벗을 줄 알았던 시리우스는 최적의 기회를 놓쳐 해리는 다시 방학 때 아동학대범들의 소굴로 돌아가야 했고 ... 그래도 대부가 생겨 해리의 곁이 든든해진 게 위안이 됐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퀴디치 에피소드는 - 퀴디치의 룰의 맹점이 걸리긴 하지만 - 역시 긴장감 넘쳐서 재밌었고 개인적으로 헤르미온느의 시계에서 비롯된 타임 패러독스는 너무 초월적이라 뜬금없었지만 나이를 먹어 언젠가 어른이 될 해리가 미래를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계기가 된 것 같아서 큰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 4편부터 4권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기대된다. ‘해리 포터시리즈는 아무리 길어도 질리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더 길지 않은 게 아쉬운 시리즈니까. 내용을 아는 데도 이렇게 기대될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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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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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소설 원작 영화는 무조건 찾아보면서 이상하게 영화 원작 소설은 잘 안 찾아본다. 편견일 수 있지만 대체로 그런 소설은 영화를 곧이곧대로 옮기려는 경향이 크고 작중의 료타처럼 좀 안 풀린 작가나 영화 원작 소설을 쓴다는 생각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소설로까지 읽을 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를 참 재밌게 봤는데, 학교 졸업이 머지않은 지금의 나에게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15년 동안 변변찮은 글 한 줄 못 쓴 소설가 료타가 도박 때문에 등을 진 가족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탐정일로 추잡하게 돈을 벌어가면서도 또 정신 못 차리고 순간의 도박이 주는 희열에 몸을 담그고... 한마디로 답이 없는 남자의 총체적 난국 스토리다. 문제는 주인공의 현재 처지는 본인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인데 당사자로서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부질없는 자존심만 세우기 바빠 참으로 찌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런 료타의 모습이 굉장히 현실적일 뿐더러 마냥 남 얘기 같지 않게 여겨지는 건 어째서일까?


 영화로도 재밌었지만 소설로도 나쁘지 않았다. 책을 펼치기 전의 우려대로 캐릭터 묘사나 장면 묘사, 연출 등이 영화와 거의 똑같아서 김샐 뻔했지만 몇몇 캐릭터의 좀 더 심층적인 심리 묘사, 그리고 주인공 료타의 찌질함, '답 없음'이 한층 두드러져 점점 읽는 맛이 났다. 아베 히로시는 정말 좋은 연기자지만 그 우월한 비주얼과 피지컬 때문에 료타의 찌질함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소설 덕에 알게 됐다. 영화의 료타한테 동정심이 갔다면 소설의 료타는 나도 잔소리하고 싶게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장면들의 순서나 연출, 심지어 인물들의 대사도 거의 일치한 덕분에 영화 내용이 정말 선명하게 떠올랐다. 때문에 소설보다 영화를 본 게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영화를 볼 때 미처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소설에서 상상으로 덧붙인 장면이 있는 등 소설 쪽이 역시 디테일이 강해서 '나중의 재미'로써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료타의 어머니가 언급한 나비에 대한 묘사나 아파트의 정경에 관한 묘사, 인물들의 대사 한 줄에 담긴 심리적 고민과 갈등 등 디테일한 부분이 담겨져 있어 원작 영화를 무척 재밌게 본 나로서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이런 추가된 부분들은 장황하지도 않고 원작의 내용과 딱 들어맞았는데 감독의 개입이 있었을 테지만 소설가의 공도 클 것이기에 내심 '영화 원작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잘 안 풀린 사람'이라고 생각한 내 스스로가 못내 부끄러워졌다.


 소설과 소설 원작의 영화가 있으면 소설 먼저 읽는 게 맞다고 여겼는데 이번에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엔 원작이 영화였던 것인데 과연 장르를 떠나 원작을 먼저 접하는 게 맞는가 보다. 소설의 디테일한 부분을 나중에 접했기에 더 재밌었던 것이리라. 

 이처럼 결과적으로 내용은 비슷했지만 장르의 차이 때문인지 꽤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이미 두 번을 본 영화임에도 다시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번엔 소설에서 언급된 디테일까지 떠올리며 봐야지.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779445962

 이건 원작 영화에 대한 포스팅.

말해 두는데, 그렇게 쉽게 네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간 큰 착각이야! - 115p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는 거다. -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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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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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0






 흔히 내용이 어떻든 간에 분량이 짧으면 쉽고 빠르게 읽힐 것이라 방심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니 분량과 가독성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용은 100페이지가 채 안 되고 역자들의 후기가 아니었으면 너무나 단출하게 여겨질 분량이었을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 '단출함'이야말로 이 책이 500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용건을 확실하게, 날카롭게 가식따윈 없이 전달하는 <자발적 복종>은 가히 통찰력의 교과서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얇은 분량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뜻밖에 잘 읽히지가 않아 당혹스러웠다. 대략 30페이지에 걸쳐 기술된 역자의 서두가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혀 적응이 안 됐고 본문은 그보다 더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과 비문학을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읽지 못한 나의 독서 습관의 폐해가 간접적으로 드러난 사례일 수 있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식의 대단한 선민의식이 없어서야 유지될 수 없는 문체이기에 솔직히 거부감이 좀 들었다. <자발적 복종>이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쓴 책이니 대략 책의 컨셉과 맞는 문체라서 이런 거부감은 걸러야 하긴 했지만 은근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본문의 내용도 약간 고리타분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16세기에 집필된 것도 모자라 저자가 예시로 드는 사례는 죄다 아테네니 페르시아니 로마니 하는 고대의 전투와 시민, 독재자들이라서 상대적으로 더 옛스럽게 읽혔다. 집필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상당히 옛날 일을 예시로 든 셈인데 그때는 어느 정도 교양으로써, 독자들이 익히 알 만한 화제를 들고 온 것인 모양이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 독자에게는 거의 모든 예시에 각주가 필수일 만큼 생소해서 이런 부분은 영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요소를 차치한다면... 약간의 집중력이 요구되나 결국 어느 시간대, 어느 장소에서건 유효하고 반복되는 사안에 대해 얘기해서 그만큼 우리 주변 상황에 대입시키며 곱씹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될 때가 2015년으로 아직 촛불 집회 전이라 출간 자체부터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건 역시 이 책의 통찰력이 꽤나 깊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왜 소수의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지, 자유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얼마나 가볍고 그를 쟁취하기 소홀히 하는지, 노예 근성을 심으려고 독재자가 어찌나 노력하고 이런 악순환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 먹혀드는지... 이미 아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걸려드는 이 얘기 속에 자유로울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당초 <자발적 복종>이 집필되고 또 이렇게 오래 읽힐 수조차 없었겠지. 500년 전의 프랑스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고 아쉽게도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다시 사 와야 할 만큼 소중하며, 그것을 잃었을 때 모든 존엄한 삶을 참혹한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죽음을 자청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즉, 자유)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후회하겠는가? - 48p




우리는 욕망의 대상에서 오직 자유라는 재산만을 가장 소홀하게 다룬다. 사람들은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 취득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50p




단 한 사람도 따끔한 말 한마디, 대담한 용기와 사려 깊은 조언을 하는 자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다. - 126~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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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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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추리소설의 매력은 누가 뭐라 해도 반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추리소설이 늘 반전의 부담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어쩔 때는 너무 뻔하고 어쩔 때는 너무 작위적이고 또 어쩔 때는 너무 예상 밖이라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 '반전은 중요하지만 반전을 위한 반전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반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작중의 여러 요소를 어떻게 조합시켜 연출하느냐가 반전의 깊이보다 관건일 수 있다.

 이 작품은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유명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작품으로 <용의자 X~>와 똑같이 장편소설이다. 처음에 사건의 규모만 봤을 땐 단편일 것 같았는데 알리바이, 원거리 살인과 더불어 의외의 전개 - 삽질인 줄 알았지만 사건의 핵심이었더라는 식 - 가 기막힌 동기와 트릭하고 어우러진 등 꽤나 두툼하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용의자 X의 헌신> 바로 뒤에 나온 장편소설이라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게 불가피한 일이었고, 아쉽게도 전작보다 약간 임팩트가 약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자체적인 완성도가 뛰어나 작가의 작품 중 순위권에 올리기에 손색이 없지 않나 싶었다.


 처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이과생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기가 십분 발현된 그야말로 'How done it?'의 모범 같은 작풍이 인상적이었는데 <용의자 X~> 이후로는 작풍에 변화가 가미됐다. 이러한 변화는 독특하면서도 아쉽기도 한데 물리학자가 논리를 적용시키기 까다로운 사람의 감정과 마주한다는 게 아이러니해서 재밌는 한편으로 시리즈 고유의 색깔이 옅어졌단 우려가 들기 때문이었다.

 작가도 이를 의식했는지 작중에서 '허수해' 개념이나 공룡 화석에 대한 일화 등 개성적인 요소가 들어갔는데 생각만큼 잘 와 닿지 않았다. 특히 허수해 운운하는 건 겉멋 혹은 의미 부여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옛날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물리학자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개성은 후속작인 <한 여름의 방정식>에 가서야 되찾았던 것 같다. 그 작품을 읽으니까 명백히 비교되네. 지금 보니까 이 작품은 <용의자 X~>의 드라마와 시리즈의 과학적 색깔의 중간을 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성녀의 구제>에서 트릭 못지않게 재밌었던 건 구사나기의 호감이란 변수였다. 아마 시리즈에서 구사나기가 가장 존재감이 있던 에피소드일 텐데 여담이지만 드라마처럼 가볍게 다뤄지지 않아서 좋았다. 드라마는 몇몇 캐릭터 변경에 의해 내용도 차이가 있었는데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이런 부분은 좀 아쉬웠다. 용의자를 향한 구사나기의 애정은 약간 케케묵은 감은 있어도 진실하고 또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도 하니 역시 원작에서의 묘사가 더 마음에 든다.


 역자 후기에서 작품이 세 방향의 수사 방식이 다뤄져서 흥미롭단 말이 있었는데 나 역시 공감한다. 드라마와는 또 다른 소설만의 개성으로 감각 수사의 날카로움과 무모함을 보여준 우츠미, 다소 이성을 잃고 삽질을 하는 듯했으나 정석적인 수사의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증명한 구사나기,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논리적이고 기발한 추리를 해낸 유가와. 이들로 대표되는 세 개의 요소가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범인의 동기가 비정상적이지만 공감도 가고 무엇보다 트릭으로써 대단히 잘 구체화된 것 같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도 너무 훌륭하고. 늘 말하지만 제목 짓는 것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따라올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의 반전의 토대가 될 범인의 심리는 작중에서 그리 오랜 시간에 걸쳐 묘사되진 않지만, 트릭의 정체가 뜬금없지 않은 데에는 상술했던 구사나기의 호감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보답받지 못할 감정을 품고 있고 결국 제 손으로 자신의 감정을 좌절시켰으며 그를 위해 본인이 오랫동안 노력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요소가 범죄의 양상과 너무 닮아있어 안타깝고도 소름이 돋았다.

 이성과 논리와 과학이 개입하기에 인간의 감정은 사회적 입장과 고집과 실수라는 변수가 있으므로 쉽지 않다. 이를 <성녀의 구제>는 '완전범죄는 힘들다'는 교훈을 내거는 추리소설의 통속적인 서사 안에서 잘 녹여냈는데 어떻게 보면 그렇기에 가장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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