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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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강제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요즘엔 이렇게 책으로 타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경험도 경험 나름인데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실로 귀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나한테 아주 생소한 이란의 근대사를 접할 수 있었는데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이 만화는 이란에 대해 무지한 유럽권 독자를 겨냥해 탄생됐다고 한다. 이 작품은 <쥐>, <팔레스타인>과 함께 3대 르포 만화로 칭해지는데 저자가 이 작품을 그릴 때 <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직 그 작품을 못 읽었는데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런 걸 흔히 고구마 줄기 독서법이라고 하는데 이 책 덕에 <쥐>를 비롯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흔히 관심이 없는 문화권에 대해선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획일적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이란에 가졌던 인상이 딱 그랬다. 한중일이 그렇게 다르듯 중동, 서남 아시아 국가들도 상당히 방대하고 다종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졌을 텐데 지금까지 그저 '이슬람 문화권'으로만 뭉뚱그려 인식하고 그 내밀한 면모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저자가 겨냥했던 유럽권 독자들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뉴스를 보면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인종 차별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뉴스에 나오지 않을 뿐 우리도 버젓이 무의식적으로 인종 차별을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차별하는 마음엔 국경이 없다.


 테헤란의 중산층 가정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주인공은 혼란스런 이란의 역사 속에서도 여차저차 성장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은 절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기에 그녀의 미래는 결코 밝지만은 않다. 자기네 딸이 이래저래 퇴행적인 이란과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부모는 그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갈 것을 권한다. 주인공이 이란에서의 유년기를 보내는 게 전반부의 내용이고 빈으로 유학을 간 4년 뒤에 이란으로 귀국했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게 후반부의 내용이다. 전반부는 이란과 주인공네 가족에 대한 얘기가 중점적으로 다뤘고 후반부에선 외국에서 이란인으로서 살아가는 고충과 반대로 외국물 먹은 여성이 다시 이란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충을 다뤘다.

 이 작품의 장점은 일단 작가가 고향인 이란을 쉽고 깊이있게 묘사한 것이다. 외세에 시달리다 독재 정치에 신음했다가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가 제대로 꼬이는 이란의 상황과 그에 따른 주인공네 가족 주변의 환경을 그려내 자연스럽게 이란이 어떤 나라인지 알게 됐다. 생소한 나라였고 문화였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통해 '중동=이슬람'이 아니란 것만큼은 제대로 알았다. 주인공네 가족이 유복하고 화목하단 걸 감안하더라도 이란의 가정의 모습은 아시아나 서양의 문화권에 익숙한 내 눈에도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같구나 싶었다. 가족 사이는 끈끈하고 불의에 반감을 갖고 어떤 식으로든 피를 흘리며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모두 남일 같지 않았다.


 예전에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를 꼬집은 만화 <인티사르의 자동차>를 포스팅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이슬람의 독한 규율이나 특정 성별에 편파적인 잣대에 대해 한 말이었는데 <페르세폴리스>는 여기서 '동의하지 않은 한 명'인 주인공이 이란에서도 외국에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다. 이란에선 교육 수준이 높아 보수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대로 유럽에선 이란인이란 이유만으로 인종 차별을 당한다. 자국에 애정도 없고 비관적으로 바라봤던 주인공도 인종 차별에선 피가 솟을 수밖에 없다. 이란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란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치들이 멋대로 떠들어대기 때문에.

 작품은 주인공이 프랑스로 이민을 가면서 끝나는데 작가는 그 이후에도 녹록찮은 인종 차별을 경험했을 것이다. 맨탈이 강한 주인공은 그러한 차별을 의연히 넘겼겠지만 이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건 적잖이 짜증났을 터다. 그래서 이 만화를 그렸고 성과는 제법 거둔 듯하다. 유수의 만화상을 수상했고 작가가 제작과 감독으로 참여한 동명의 영화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에 질려 이란을 등진 작가의 작품이 이란을 드높인 셈이다. 이 작가가 아니었으면 이란에 대해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는 성과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명문은 이 작품에도 해당된다. 솔직히 말해 이 작품 덕에 이란에도 상류층이 있고 원래부터 이슬람교가 국교가 아니었으며 - 그 나라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그렇게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가 형성된 것도 아니라는 게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 그 전까진 국민들이 술도 마시고 해외 여행도 왕왕 다니는 등 우리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나라라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최근에 접한 소련 배경의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하면서 사회주의나 보수적인 종교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감시하고 유난을 떨고 생사람 잡고 정작 국민들은 코웃음 치고... 이 두 사회의 공통점을 통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세상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뿐인 이 작품이 범세계적인 메시지로 감상을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란이 이라크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홀로 빈으로 유학온 것에 대해 스스로 해외에서 하릴없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며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데 이게 주인공 기준에서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지, 아마 국적이 이란이 아니었다면 유학 생활 중에 방황은 좀 했을지언정 제법 건실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 읽는 나는 씁씁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튼 주인공의 번민은 이란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 히잡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면서 더 심화되는데 결국엔 특유의 맨탈과 가족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우울함을 극복한다.


 한 사람의 근간엔 가족이나 국가 등 수많은 도움과 시련이 들어섰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렇게 자라난 한 사람이 나중에 세상이 끼치는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속된 말로 '내가 욕해도 남은 안 된다'는 심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이 좋든 나쁘든 이란과 세계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면 확실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사사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읽기 전엔 어둡고 암울한 작품일 것만 같았는데, 흑백이긴 해도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가감 없이 뼈가 있는 내용을 그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에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 금방 읽었다. 아무래도 자전적 이야기라 그리기에 애로사항이 많이 따랐을 텐데 - 약간의 과장이나 연출이 있었을지 모르겠다만. - 이 정도의 흡입력과 완성도를 갖췄다는 게 실로 경이로웠다. 동명의 영화와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다. 부디 이 작품을 그린 재능이 이 작품으로 끝이 아니길 바란다.



 p.s 후반부에 주인공이 이란에서 다녔던 대학교에서 '진정한 종교인'이 등장하는데, 이런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박수도 합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주인공과 진정한 종교인이 있어야만 이란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란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곳이 다 마찬가지겠다.

살다보면 형편없는 인간을 많이 많나게 될 게다. 그들이 네게 상처를 주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렴. ‘내게 해코지하는 건 그들이 어리석어서‘라고.

그래야 그 못된 짓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단다. 세상에서 원한과 복수보다 나쁜 건 없거든... 늘 품위를 잃지 말고, 네 스스로에게 정직하도록 해라. - ‘지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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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팽 대 홈스의 대결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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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내용이 별로거나 취향이 아니더라도 캐릭터의 매력이 걸출하면 계속 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다시 읽은 '뤼팽' 시리즈가 딱 그렇게 읽혔다. 이번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은 제목대로 홈스와의 대결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나마 있던 장점도 빛을 발하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홈스와 상극인 뤼팽의 매력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솔직히 어렸을 때처럼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홈스에 의해 체포된 뤼팽이 '꼭 얼굴을 비춰야 할 약속이 있다'며 프랑스 경찰을 따돌린 뒤에 한다는 짓이 바로 영국으로 가려는 홈스를 배웅하는 거란 대목에선 제법 뿜었다만... 돌이켜보면 뤼팽이 정말 전무후무한 매력을 겸비한 캐릭터구나 싶은 장면이 많지만 그의 전지전능함을 강조하느라 이야기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캐릭터만으로 작품 전체가 만족스러울 순 없는 법이다.

 캐릭터란 대목에서 솔직히 가장 발끈할 사람들은 홈스의 팬인 일명 셜로키언일 것이다. 뤼팽에 비해 홈스가 상당히 못나게 묘사되는데 셜로키언이 아닌 내가 봐도 이건 좀 심하다고 - 참고로 난 원작 '셜록 홈스' 시리즈보다 드라마 <셜록>을 훨씬 좋아한다. - 생각했다. 무엇보다 '홈스' 시리즈 원작에 대한 고증도 잘 지켜지지 않아 아예 배경과 이름만 같은 별개의 인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작품이 집필된 1906년도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희박할 시기라 이런 기괴한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했지, 요즘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단 도용에, 심지어 원작 훼손까지 더해졌으니 모리스 르블랑은 시리즈 후속작을 쓸 시간도 없이 삽시간에 파산에 이르렀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보단 모험소설에 가까운 시리즈의 매력이 덜 드러난 스토리와 홈스라는 캐릭터의 무리한 등장이 무엇보다 아쉬운 점이었다. 수록된 두 편의 중편 모두 사건을 해결하고 뤼팽을 체포하려는 홈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뤼팽' 시리즈답지 않았고 무엇보다 모리스 르블랑이 이런 쪽으로 필력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뤼팽과 홈스가 대치하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돌입하자 인물들의 동선도 잘 전달도 안 되고 뤼팽의 트릭은 다소 황당무계한 구석이 있어서 확실히 추리소설 읽는 맛이 덜했다. 그런데 제아무리 고증이 별로였다지만 엄연히 명탐정인 홈스가 등장하는데 이렇게 추리소설 읽는 맛이 덜해서야...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머쓱하긴 또 처음이었다. 차라리 뤼팽의 시점에서 전개됐으면 훨씬 흥미진진했을 것 같은데.

 뤼팽과 홈스 둘 다 어느 정도 체면은 차리면서 일종의 무승부 상태로 끝을 맺는데 독자에 따라선 이 연출도 미흡하다고 여길 사람도 적잖을 듯하다. 이래저래 영향력이 강한 범죄소설의 캐릭터들이 이 정도로 격돌하는 작품도 없다보니 -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로의 명예를 살려주는 무승부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선 중국 무술 영화 '엽문' 시리즈만한 작품도 없다고 본다.  - 어떻게 보면 무승부 연출은 무척 중요한 건데 이 작품에선 명백히 홈스가 손해를 많이 입었다고 본다. 그런데 원작자인 코난 도일이 캐릭터 등장을 허용한 것이 아닌 르블랑이 무단으로 등장시킨 것이니 작가와 팬들이 항의를 한 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과 앞의 철자만 바꾼 '헐록 숌즈Herlock Sholmes'로 고쳐진 판본도 많은데 내가 읽은 이 책은 '셜록 홈스'라고 표기됐다. 역자인 성귀수 씨는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해 셜록 홈스로 쓰는 것을 고집했다는데 내가 봤을 땐 르블랑만 아니라 코난 도일의 의도도 존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뤼팽' 시리즈는 초반에 유독 홈스를 의식했는데 특히 내 기억으론 다음 작품 <기암성>에선 이 점이 엄청난 악재로 작용한다. 뤼팽이 어느 정도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국가 대항의 상징격인 존재로서 탄생했고 인기를 얻은 캐릭터기에 홈스의 등장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게 반복되면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까지 바래지기 마련이다. 이 작품이 실질적으로 '탐정 대 괴도의 대결' 이라는 추리소설의 한 테마를 최초로 구현한 원조격 작품인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논란거리만 눈에 밟혀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다르게 보면 정말 선구적인 작품인데... 참 아까운 완성도다.



 p.s 개인적으로 나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났던 건 홈스보단 왓슨이었다. 명색이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한 캐릭터인데 저렇게 망쳐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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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에서 일주일을 - 시속 20킬로미터의 창조도시
박현아 지음 / 가쎄(GASSE)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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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4







 가나자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간 가보고 싶은 일본 소도시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간 개성이 뚜렷한 일본에서도 '창조도시'라고 불리는 가나자와는 흔히는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등 제법 전통을 잘 보존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표면적인 모습 이면의 실체가 궁금해 직접 가나자와를 답사하게 된다. 작지만 강하다는 표현을 쓰기에 적합한 이 도시가 이런 평가를 듣는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던 걸까?

  고작 일주일간의 시간만으론 가나자와가 이룩한 가치를 살펴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실제로 저자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가나자와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섭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인상을 받았다. 공예 도시, 예술 도시라는 키워드에 대해선 역시 전공을 한 사람답게 전문적으로 사유할 줄 알고 또 틈을 주지 않고 이어나가는 인용들도 흥미로웠지만 책의 발간 시기가 2014년이라 그런지 내용들이 썩 신선하진 않았다. 뭐, <진격의 거인>을 언급한 건 괜찮았고 또 DDP가 막 건설될 즈음에 집필돼서 아직 그 디자인의 의의를 추측하는 부분에서의 통찰력은 인정할 만했지만. 하긴, 2014년에 나온 책을 그 당시에 읽었더라면 이런 불평은 생길 수조차 없었을 테니 작가로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읽어서 나도 한 번 가나자와에 다녀오기라도 할 걸 그랬다.


 내가 일본 여행을 10번을 넘게 다녀왔기 때문일까, 작가의 사유가 수준급이긴 해도 솔직히 가나자와는 아니더라도 일본 소도시를 몇 군데 돌아다녀본 나도 한번쯤 생각해본 것들이라 유달리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생각은 그래봤자 추측의 영역이고 저자는 그보다 몇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크나큰 차이가 있지만...

 가나자와가 고베, 나고야와 함께 창조도시로 선정됐다는데 다른 두 도시에 비해 가나자와는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아무래도 체급이 떨어지는 도시다. 이 책은 가나자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데 내 기준에선 가나자와가 일본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가졌다는 게 그다지 어필되지 않았다. 저자가 나고야와 고베까지 가본 다음에 이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몰라도 이 책을 쓸 당시엔 일본의 도시를 도쿄와 삿포로, 교토 같은 대도시였다니 가나자와 같은 소도시를 방문한 게 퍽 신선한 경험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저자가 가나자와에서 주목했던 전통이란 키워드가 굳이 아니더라도 나가사키라든지 하코다테나 마츠야마처럼 개성적으로 관광 요소를 어필하는 중소도시를 가봤던 내게 있어선 가나자와가 창조도시로 선정돼야 했던 이유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가나자와는 가보고 싶은 도시지만... 저자 역시 일주일간의 기간만으로 가나자와에 대해 말하기엔 역부족임을 자각하고 있고 독자인 나도 어느 정도는 저자의 상상을 근거로 뭉뚱그려 글을 채워나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예술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 저자의 통찰은 지금 봐도 나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DDP가 이 대목에서 인용됐는데 2020년 현재 DDP가 동대문을 넘어 한국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뛰어난 선견지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전통을 지키는 것에 주력하는 게 아니라 현대의 기술과 개성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것들과 호흡해나간다는 맥락은 시간이 더 흘러도 유용할 얘기리라. 내가 가나자와를 방문해 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 있는 21세기 미술관이 궁금하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옛것에 함몰돼 혁신을 두려워하는 도시는 장기적으로 큰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얘기한 거지만 언제 다시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외국을 배경으로 한 책에 더 눈길이 간다. 앞에서 식상하다느니 어떻다느니 실컷 얘기했지만, 요즘 '외국에선 배울 게 없고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극단적 인식이 호응을 얻는 게 내심 불안하던 중에 이렇게 외국에서 배움을 얻는 내용의 책은 참 반갑게 읽혔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세계가 단절됐지만, 세계는 연결된 유연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지리적 국경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심리적 국경까지 세우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읽은 건데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 참,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이런 세상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손쉽고 편리한 단절과 구분의 유혹을 뿌리치고 세계를 연결된 유연한 것으로 보는 일은 도전정신을 요한다. -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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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보영 외 지음 / 돌베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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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정작 SF 소설은 많이 읽지 않으면서 이렇게 SF를 소개하는 책은 많이 읽는 것 같다. 아직도 SF가 내게 낯설기 때문일까? 이 책에는 제목대로 SF계의 거장과 그들이 쓴 걸작을 소개했던 신문 사설들이 수록됐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부터 류츠신의 <삼체>까지 살펴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거나 혹은 시대에 영향을 끼친 SF 작품들을 다뤘는데 워낙에 저자들이 간결하면서 맛깔나게 소개해 기회가 닿는다면 언급된 책 전부를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막상 읽으면 내 취향 아닐 작품도 꽤 될 텐데. 어쩌면 SF 소개하는 책을 이래서 읽는 게 아닌가 싶었다.

 메리 셀리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이란 캐릭터가 2차 창작을 거치면서 그 존재 의의가 어떻게 오인됐는지에 대해서 얘기한 첫 번째 장부터 몰입도가 높았다. 종이 질감이라든지 첨부된 사진의 퀄리티라든지 저자들 일러스트 등 전반적으로 책의 만듦새가 좋고 SF 전문가인 저자들의 글솜씨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3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박상준 씨는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SF에 관한 강의를 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분의 SF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사랑해마지않는 SF의 매력을 어필하는 솜씨는 정말 보통이 아니다. 이 정도로 애정을 담아 설명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작품을 접한 건지, 또 얼마나 많이 사유를 했을지 생각하면 나도 이렇게 한 분야에 미칠 수 있을까 싶어 일종의 자괴감도 든다. 나도 이렇게 박학다식하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이나 소개된 작가들이나 다 좋아서 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겠지.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처음엔 SF 소설가만 소개하는가 했더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나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스탠 리 등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SF 소설가로 분류되지 않는 조지 오웰 같은 작가도 <1984> 같은 작품을 들며 SF적 맥락 안에서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SF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동떨어진 장르가 아님을 이해시켜준다.

 이름과 작품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오래 전 작품이라 손길이 안 가는 독자들의 심리를 저자들도 아는지 왜 이 작품이 걸작이고 그를 쓴 저자가 거장인지 일목요연하게 소개했다. 원체 'SF 입문용' 책을 많이 읽어서 이번에도 같은 표현을 쓰기 좀 그렇지만;; 이 책이야말로 SF에 입문할 때 이정표로 삼을 만한 책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슷한 책을 많이 읽었고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젠 진짜로 그 작품들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므로 인상 깊던 부분을 꼽자면 글이 꽤 길어질 것 같으니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기억나는 것만 간략히 적어보겠다.


 이질적인 존재를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긴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작가가 썼고 너무 시대를 앞섰기에 저평가당했다는 게 해석이 갔다. 후대에 와서도 프랑켄슈타인의 외형에만 주목해 괴물 이야기로만 소비했지, 그 캐릭터의 본질은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인데 저자인 메리 셀리가 여성이란 이유로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러모로 최초의 SF로 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개인적으로 로봇이 나오는 SF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에 소개된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도 흥미로웠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에 눈길이 더 많이 갔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리메이크한 <플루토>로 짧게나마 접한 <아톰>의 세계관이 그렇게 방대하고 심오한지는 알지 못했다. 아울러 일본이 그 작품에 받은 영향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나라가 로봇을 만들 때 외형을 귀엽게 만드는 이유는 인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봇이 인간에게 파괴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란 게 충격이었다. 로봇의 권리의 기준이 어디까지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인 듯한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은 반드시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거렛 애트우드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페미니즘 요소 짙게 녹아든 작품도 궁금했다. <시녀 이야기>는 대개의 걸작 SF 작품들이 그렇듯 지금도 시의성이 있는 작품이고 최근에 30년만에 후속작도 나왔다는데 작품을 쓸 때 '역사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쓰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 끌려 작품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거친 남자 스터일의 문체와 작풍을 구사하는데 저자가 실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 문단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체체파리의 비법>이란 소설의 내용을 보니까 대단한 블랙 유머와 극한의 설정으로 당대 현실의 부조리를 제대로 꼬집어서 읽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작가가 남자 이름으로 활동한 것부터가 참 씁쓸한 부분이 아닌가...


 이 작가를 소개하면서 김보영 작가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SF와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문학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문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세상이 문학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뿐만이 아닌 모든 SF 작품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SF는 황당무계하단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경시되곤 하는 장르다. 하지만 SF는 과학적으로 그럴싸한 황당무계함을 통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보더 덜 황당무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장르가 아니냐는 게 내가 이 책을 읽고서 품은 생각이다. 사고의 경계를 허물게 만든다는 점에서 SF만큼 의미있는 장르도 없는 것 같다.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책에서 저자들 소개한 작품을 진정으로 읽고 싶어졌다. 만약 그 책을 읽는다면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 저자들이 써놓은 감상과 내 감상을 비교해볼지 모르겠군. 그것도 재밌겠다.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려면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로봇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우선 우리가 "윤리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 81p




SF와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문학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문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세상이 문학의 영향을 받는다. - 2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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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자전거 여행 - 네덜란드,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에서 드로잉 여행 2
김혜원 지음 / 씨네21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9.6








 오늘 핀에어에서 환불 신청했던 비행기 요금이 드디어 통장으로 들어왔다. 항공사가 많이 적자에 시달린다기에 더 걸릴 거라 여겼지만 암튼 3월에 계획했던 여행 취소는 이렇게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물론 코로나가 유행하지 않아서 계획대로 갔더라면 그게 가장 좋았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앞으로 언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또 해외 여행을 갈 수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차이로 10만 원을 아끼고 말고에 울고 웃었던 나날은 사실상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여행에 대한 갈증과 불안이 끊이지 않는 중에 읽은 이 책은 잠시나마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켜줬다.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을 꿈꿨던 사람이나 해외 자전거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여행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전거도 못 타고 그림도 못 그려서 그런지 이 작가가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그림체로 자신의 지난 자전거 여행을 그려낸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옛날부터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 작가 정도면 가히 축복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그림으로 여행을 추억하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와 함께한 네덜란드, 벨기에 여행과 제주도 여행, 오키나와 여행까지 담아낸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여행 코스가 지극히 작가 취향을 따르지만 작풍이 워낙 유쾌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옛날에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읽었을 때도 느낀 건데 만화가인 작가답게 미술관이나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단조롭거나 난해할 수 있을 여행 코스를 작가의 꼼꼼한 그림체 덕에 독자인 나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개중엔 사진 촬영이 금지된 미술관도 있었는데 작가의 기억력이 상당한지 아무런 어색함 없이 화폭에 재현됐다.

 자신의 경험을 흥미롭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없었던 일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어찌 됐든 남의 이목을 끌며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재능은 예술가에게 있어 단연 필수불가결한 재능일 터다. 이번에 읽은 <드로잉 자전거 여행>에는 원체 내 취향과도 맞는 요소가 많아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긴 좀 힘들지만, 이 정도면 네덜란드나 자전거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게끔 만들 만한 책이리라 본다. 자전거의 매력이라든가 여행의 재미를 꽤 실감나고 소모적이지 않게 잘 전달했기 때문인데, 나도 약소하게나마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 다시 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이 여행 만화를 즐기는 한편으로 반성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행기를 너무 의무적으로, 억지로 짜내듯 쓴 건 아니었나 싶어서...


 상관없는 얘길 수 있지만 여행에 관한 얘길 잠깐 하고자 한다. 요새 안 그런 나라가 없지만, 코로나로 인해 유럽에 미친 파장은 정말 난리도 아니다. 낙관적인 애기일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코로나는 결국 극복이 될 듯한데, 반대로 유럽에서의 인종 차별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비관하게 된다. 나라끼리 고립되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상황이 더욱 심화되는 것 같은데, 오늘만 해도 베를린 지하철에서 우리나라 유학생 부부가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뉴스도 나오는 등 도저히 어떻게 봐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여행 만화를 읽는 건 현실 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최근 나는 유럽에 동경을 품었던 시절이 기억도 안 날 만큼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만화책으로라도 유럽 여행기를 통해 힐링을 하면서도 뉴스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분개해버린다. 최근엔 이 책에서 나오는 네덜란드가 스웨덴에 이어 집단면역을 선보이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 - 스웨덴은 넓기라도 하지 네덜란드는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체 뭔;; - 진정으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됐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선진적이거나 후진적인 나라는 실질적으로 한 곳도 없지 않나 싶었다. 지금 유럽이 방역에 관해 굉장히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쌓은 인문학적 토대 전부를 하루아침에 무가치하다고 깎아내리는 건 너무 극단적인 태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배울 점이 있고 - 이 만화로 말할 것 같으면 자전거에 관한 네덜란드의 인프라나 폐허가 된 도시를 어떻게 재건시키는가를 보면 감탄이 나온다. -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으니 무조건적인 동경과 비판을 어느 나라에건, 또 어느 누구에게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이지, 2달 전이었더라면 여행 만화를 보고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확실히 코로나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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