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창자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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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스포일러 없음


 작년에 읽은 소설 중 단연 최고였던 <명탐정의 제물>의 30년 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기에 제목이 그리 끌리지 않음에도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작가 특유의 엽기적이고 피가 낭자하면서 창의적인 소재와 전개가 압권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와 마찬가지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작품과 더불어 <명탐정의 창자> 속 잔인한 묘사 역시 이유 있는 잔인함이 아닌 그저 잔인함을 위한 잔인함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작품들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피가 낭자했다. 소설이니까 감당하는 것이지 영화였다면 중도 포기하고도 남았을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최고라 생각하는 <명탐정의 제물>과 데뷔작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의 경우 잔인한 묘사는 모두 필요한 묘사였다. 불쾌하지만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고, 범인의 가학성을 강조해 독자로 하여금 분개함을 유발하는 시도가 잘 먹혔다. 잔인하단 이유로 추리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 잔인하지 않은 추리소설도 많지만 그 얘기를 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테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 그런 의도의 잔인한 묘사라면 단순히 취향과 맞지 않다고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고 본다.


 반면 <명탐정의 창자>는 다소 거북했고 불가사의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설정도 흥미로웠고 초반에 예상치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도 좋았지만 작품의 중후반부를 이루는 디테일과 마지막 연출이 너무 싱거웠다. 잔인한 장면에 끝없이 노출돼 스케일이 커지든 뭘 하든 그저 식상하게 읽힐 뿐이었고 결말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게 최선이었나 싶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에 얽힌 언어유희도 마찬가지다. 유머라기엔 재미없고 작품 전체를 꿰뚫는다기엔 기발하지 않다.

 내가 기대했던 <명탐정의 제물>과의 연관성도 미흡해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이 먼저 나왔고 <명탐정의 제물>이 프리퀄 느낌의 후속작이기에 연관성이 두드러지긴 힘들었을 것이다. 작가도 애당초 시리즈물을 기획한 게 아닌 모양이고. 그래도 작가는 '명탐정' 시리즈 3편을 출간할 예정이라는데... 솔직히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다.


 이 작품을 읽고 탄력을 받은 김에 작가의 최신작인 <엘리펀트 헤드>도 연달아 읽었다. 바로 다음 포스팅으로 그 작품에 대해 얘기할 텐데, 일단 이렇게만 얘기하겠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명탐정의 제물>에 이어 작가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으며 '명탐정'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명탐정의 창자>의 아쉬운 완성도 때문에 걱정이지만 그래도 시라이 도모유키는 아직은 믿을 만한 작가다.



P.S 우라노 큐, 아쉽다. <명탐정의 제물>에서의 약속이 기대됐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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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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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6



 약 10년 전에 읽은 <아내와 결혼했다>를 다시 포스팅으로 남기려니 감회가 새롭다. 이전보다 나는 축구에 대한 상식이 늘었고 주인공 덕훈과 비슷한 나이대가 됐으며 관계에 치인 경험이 없잖다 보니 덕훈의 아내 인아에 대한 반감이 곱절은 늘었다. 전에 읽었을 땐 그런 사람도 있지 라며 전형적으로 소설 속 캐릭터를 대하듯 감상을 남겼다면 이번엔 PTSD를 유발하는 그녀의 이기적인 모습에 제대로 질렸다. 덕훈도 전에 없이 불쌍했다. 일처다부제를 기어코 실현하려는 인아의 논리에 심적으론 납득하지 못함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조금씩 순응하게 되는 모습은 강한 연민을 자아냈다. 이 소설이 이렇게 슬픈 작품임을 잊고 있었다니.

 그렇기에 덕훈이 언급하는 여러 축구 썰도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어쩔 땐 끼어맞추는 것도 있었는데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유익했으며 인아를 향한 애증이 더없이 잘 드러나 소설 본문보다 훨씬 탄력적으로 읽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설의 집필 시기가 독일 월드컵 전이라 아직 메시와 호날두가 신예 선수 정도로 언급되는 등 어쩔 수 없이 최신화가 덜 됐다는 것 정도다. 요즘 버전으로 다시 쓰여진다면 엘 클라시코도 유로컵에 대한 썰도 보다 풍성하게 나왔을 텐데 하는 소소한 아쉬움이 남았다.


 지단이라는 멋진 선수에 반해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 된 덕훈과 FC바르셀로나라는 팀의 역사와 정신에 끌렸다는 인아의 첫 만남은 천생연분인 듯하면서도 두 캐릭터의 가치관이 정반대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축구를 축구이기에 좋아하는 덕훈과 축구의 외적인 요소까지 좋아하는 인아, 어느 쪽도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나 작품의 화자가 덕훈인 만큼 아무래도 덕훈의 사고방식에 좀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인아가 비단 축구뿐 아니라 결혼 제도를 비롯해 온갖 가치관에 자신만의 철학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지만 그 논리와 철학 속엔 남편 덕훈에 대한 배려가 없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조금 답답하더라도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앞세우는 덕훈의 사고방식이 훨씬 근원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새삼 논리란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인아와 덕훈의 설전을 통해 느꼈다.

 나는 인아의 일처다부제 논리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자기 뜻대로 살아감에 있어 상처 받는 이가 없다면 얼마든지 남 눈치 볼 것 없이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상처 받는 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인아에겐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칼자루를 남편에게 쥐여 줌으로써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니 참으로 역겨웠다. 물론 알면서도 당하는 덕훈도 문제다. 결국 이혼 서류를 무효로 만들고 재경이라는 두 번째 남편의 존재를 까발리지 않음으로써 인아의 버릇만 나빠지게 하는 데 한몫했는데... 말이 쉽지, 이미 인아에게 사로잡힐 대로 사로잡힌 덕훈에게 잘못을 탓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인 것 같다. 잘못을 탓해야 한다면 남편에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인아뿐이다.


 일처다부제에 대한 아주 흥미롭고 유쾌하게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이지만, 인아의 자기중심적이고 영악한 면모 때문에 오히려 단호하게 질문을 제껴버리게 되는 맹점이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충분한 대화와 논의와 배려를 해봤는데도,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이혼을 하든가 했어야지 대뜸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고 청첩장을 덕훈에게 보내고... 이쯤 되면 사람 놀리는 것인지, 이럴 거면 두 집 살림을 차리는 의미가 있나 싶을 만큼 덕훈을 홀대하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는 첫 번째 남편에 걸맞는 대우를 하는 듯하지만 참 이래저래 골때리는 여자다.

 만약 제대로 질문을 제기하려고 했다면 소설이 덕훈의 1인칭 시점이 아닌 인아나 재경의 시점도 부분적으로 넣었어야 했다고 본다. 이래서야 덕훈에게 유리한 관점이 형성돼 천편일률적인 감상을 낳는 역효과가 발생하진 않을까? 오늘날에 읽어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재여서 시점의 다각화처럼 균형 있는 연출이 부분적으로 더해졌더라면 보다 흥미로운 작품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의 처지에 과몰입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미 훌륭한 소설이지만 다시 읽으니 이런 구조적 아쉬움에 눈길이 갔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로 작품 활동이 뜸했던 박찬욱 작가의 신작이 아주 최근에 출간됐다. 제목이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인데... 제법 의미심장한 제목이라 기대된다. 내심 고대했던 작가의 신작인 지라 늦어도 1년 안에 구입해 읽을 예정이다. 과연 <아내가 결혼했다>를 뛰어넘을 만한 작품일까? 그러길 바란다.

축구는 잠시나마 새로운 갈등 구조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기존의 갈등을 잊게 만들 따름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색을 거세해도 축구는 여전히 재미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짜 축구다. - 38p

잡힌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잡힌 물고기임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신뢰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식어 빠진 사랑을 에둘러 표현할 때 신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조금 이상한 얘기지만 아내가 믿을 수 없는 여자일수록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 110~111p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 해서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 342p

축구공이란 바로 행복이다.
자본가들이 선수들을 축구 노동자로 만들어 축구라는 상품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더라도, 정치가들이 축구 열기를 이용해서 표를 훔쳐 가고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축구공 속에 깃든 행복만은 그들이 독점할 수도, 팔아먹을 수도, 훔쳐 갈 수도 없다. - 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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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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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아마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 중 접근성이나 세련됨이란 측면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대비되는 서늘하고 섬뜩한 묘사가 은근히 압박감이 넘쳐서, 며느리의 부당한 처지를 깨닫는 사린의 심정을 독자들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성 독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편이나 자식들, 시어머니들도 느끼는 바가 상당하리라 본다. 시아버지들은 글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만약 우리나라에서 펼쳐졌고 그때 꼭 하나의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를 희생양으로 내놓을 것이다. 성함이나 나와의 관계도 모르겠는 조상을 위해, 없을 것이 확실한 사후 세계를 향해 모처럼 쉬는 명절에 음식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당하거니와 그걸 여자들을 비롯한 아랫사람이 도맡아야 하는 것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의도 자체는 괜찮은데 그 행사를 이뤄나가는 기성 세대의 방식이 지나치게 무지성적이고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설계됐다는 것이 문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되짚기도 까마득할 만큼 뿌리 깊은 문제인 터라 없던 두통도 생길 지경이다.


 물론 작중에선 명절만 주요한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린이 해외로 장기간 출장을 간다니까 남편 두고 출장 가는 새색시가 어딨냐며 자기 아들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하는 시어머니나 그런 시어머니한테 '회사 생활 한 번도 못해본 티 내지 말라' 며 꼽주는 시아버지나 결국엔 아내가 출장을 간 동안에만 잠시 친가에서 출퇴근하며 밥을 먹겠다는 철없는 남편 등;;;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암을 유발한다.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무색할 정도로 현실적인 작풍이 실로 압권이었다.

 주인공 사린이도 시가 사람들 못지않게 답답했다. 허나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며느리는 서열상 최하층에 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사린이 마치 입에 재갈이 물린 것처럼 구는 모습이 씁쓸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사린도 나중에 혼자 있을 때나 남편 구영한테 자신의 답답한 처지에 대해 한탄을 쏟는데, 나는 치졸한 변명이나 해대는 구영과 달리 사린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란 걸 먼저 강조하며 그녀를 달랬을 것이다. 며느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가부장적 분위기가 문제라고 말이다.


 어제 메가박스에 영화를 보러 갔더니 벽 한편에 '관객들한테 답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끝나지만 관객들한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시작된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난 <며느라기>도 독자들한테 질문을 던지는 측면에서 무척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내세운 작품들이 대체로 명확하고 사이다에 치중한 결말을 내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열린 결말로 연출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며느라기'는 사린의 상사에 의해 새로이 정의된다. 단순히 며느리+아기의 뜻이 아닌 착한 며느리로 지내고 싶어하는 시기를 뜻할 수도 있으며, 1년 안에 그 시기를 벗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그 시기에 못 벗어나는 사람도 있더라는 사린의 직장 상사가 한 말은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위의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면서 관점에 따라선 소름 끼쳤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며느리가 되고 어떻게 결혼 생활을 영위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각자도생이라 이건가.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연대해서 대항하기엔 이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는 너무 만연하고 미묘해 쉽지 않단 것을 작가가 통찰한 듯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감탄이 다 나온다.

 가령 자신에게 대리 효도를 부탁하는 듯한 구영의 태도는 문제투성이지만 사람 자체는 마냥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덮어놓고 이혼하잔 얘기를 못 꺼내는 사린처럼 - 작품의 후속작이라 부를 수 있는 <노땡큐>에서 둘은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고 구영은 여전히 답답하다;; - 실제로 현실에선 심리적 장벽이 많고 또 두껍다. 이런 장벽 때문에 우리 사회의 며느리에 대한 부당한 인식이 구조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무척 적어 보인다. 누구나 사린의 동서 혜린처럼 똑부러지면 좋겠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추석을 보내다가 생각이 난 김에 오랜만에 펼쳐든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 5년 전보다 세상이 딱히 바뀐 게 없어 보여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 집도 명절 때마다 난리가 나서... 명절이면 가정이 화목해지긴커녕 화만 발생하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이유를 깨달아야 할 텐데, 그 '누군가'에 속한 몇몇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못 깨달을 수도, 아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할 듯해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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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 dele 1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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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디리>는 의뢰인의 사후에 데이터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을 다룬 작품이다. 의뢰인의 실제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비롯한 현장 업무 전반은 유타로가, 유타로의 보고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데이터를 삭제하는 업무는 사장인 케이시가 담당하고 있다. 케이시는 데이터를 지우고자 했던 의뢰인의 유지를 받들어, 설령 법의 테두리에 걸쳐진 사안이라 할 지라도 망설임 없이 데이터를 지우려 하는 반면 휠체어 신세인 케이시 대신에 현장 업무를 맡고 있는 유타로는 고인인 의뢰인이 남긴 데이터의 진의가 궁금해 데이터의 내용을 확인은 해보자는 것으로 둘은 시종 의견 차이를 보인다.

 의뢰인 입장에서야 당연히 케이시의 완고한 모습에 손을 들어주고 싶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종 자체에 의구심과 반감을 갖고 있다. 당장 업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타로부터가 그렇잖은가. 그는 데이터의 내용을 확인했기에 오히려 의뢰인의 유지를 더욱 받들었다고 주장한다. 의뢰인의 유족들도 어떤 경로로든 디지털 장의사의 존재를 알고 찾아와 데이터를 지우지 말라며 시비를 걸거나 무엇이 고인을 위한 행동인지 이해해달라며 애걸복걸한다. 물론 케이시는 우직하게 거절하고, 유타로와 논쟁을 벌일 때도 굳이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단정한다.


 유타로와 케이시의 주장은 각자 일리가 있어서 독자마다 달리 판단할 일일 테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안마다 다르므로 케이시의 태도는 답답하고 유치하기 그지없었다고 못을 박아두겠다. 그와 동시에 유타로가 엄청나게 오지랖이 넓어서 케이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답답했다. 뭐, 덕분에 밋밋하고 반복적일 수 있는 이야기가 윤택해졌지만 말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신선함과 준수한 완성도, 그리고 여운을 잘 연출한 수록작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와 '스토커 블루스', '인형의 꿈'이 기억나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너무 싱겁게 갈무리하는 느낌이라 안 좋은 의미로 기억에 남았다. 앞선 세 작품은 혼다 다카요시의 감성이 디지털 장의사란 설정과 맞물려 대단한 시너지를 일으켰는데, 특히 '인형의 꿈'은 억지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교함이 돋보이는 반전과 감동이 있어 사뭇 감탄스러웠다. 무엇보다 오직 디지털 장의사란 설정을 통해서만 끌어낼 수 있는 감동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을 듯하다.


 반대로 마지막 에피소드인 '그림자 추적'은 유타로의 전임자인 나쓰메처럼 그간 언급만 됐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유타로의 과거를 풀어내는 대망의 에피소드였는데... 들인 분량에 비해 거둔 성과는 미미했다. 아니, 사실 떡밥 회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케이시의 정체에 얽힌 반전이 도리어 케이시의 캐릭터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 그리고 이 에피소드에서 유타로의 분노가 다소 맥없이 해소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보면 기승전결이며 완성도엔 문제가 없고 솔직히 수록작들 중 가장 몰입도가 있었지만, 금방 언급된 두 요소 때문에 뒷맛이 나빴다.

 이는 아마 마지막 에피소드의 내용이 미리 구상되지 않고 작품이 시작됐다가 후에 급조된 설정이 반영돼 벌어진 사달인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의뢰인의 유지 운운하는 케이시의 태도가 지나치게 내로남불인 꼴이 되는데, 유타로 못지않게 나 역시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라 작가가 반전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란 삐딱한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의 캐릭터성 붕괴는 잘만 연출하면 호불호를 떠나 작품의 좋은 요소로 안착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엔 해당 사항 없는 얘기다. 의뢰인의 유지는 개뿔, 정말이지 자기기만이 따로 없잖은가.


 간혹 몇몇 수록작에서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 한 것, 어딘지 모르게 중2병스러웠던 인물들의 말투까지 눈에 밟히는 요소가 자잘하게 있었지만 상술했던 케이시의 캐릭터성 붕괴 하나로 쌓였던 불만이 일제히 터져버렸다. 개개의 수록작은 나쁘지 않았는데 참... 어쨌든 마지막이 이렇게나 중요하단 걸 깨닫게 해준 터라 좋든 싫든 반면교사로는 확실히 각인이 됐다.

 <디리>는 일본에선 드라마화까지 되는 등 제법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드라마가 잘 만들어졌나? 의뢰인의 유지를 받들어 데이터를 지우려는 케이시는 자주 '신뢰'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는데, 나에게 신뢰를 잃은 이 작품이 드라마로 각색된 버전이라고 해서 신뢰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지 않을 것 같은데 드라마를 볼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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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러브 메타포 8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메타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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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부모님은 이혼했고 편모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존은 제법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빠는 향락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함께 살고 있는 엄마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부모가 치명적인 결함은 없는데 자식으로서 기댈 만한 위인들이 아니다. 그나마 엄마는 아빠라는 나쁜 남자에 데여 아들에게도 마음의 벽을 느끼고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것에 갈팡질팡하며 호들갑을 있는 대로 떠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어쨌든 주인공의 나이대가 사춘기, 한마디로 중2병 걸리기 딱 좋은 즈음이라 이러한 자신의 성장 배경에 냉소를 넘어 환멸을 갖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읽는 입장에서 청승 떠는 것 같은 느낌도 없잖았지만 글을 쓰는 캐릭터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몰입을 유발하는 캐릭터였다.

 그런 냉소적인 성격의 존이 우연히 연상의 멋진 여자인 마리솔에게 반하게 되는데 하필 그 여자애가 레즈비언이란 것이 이 작품의 주요한 골자다. 어쩌다 보니 마리솔과 대화하게 되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대놓고 철벽을 치니 존은 자신 또한 성정체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상대의 의심을 무마해 친분을 유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존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시작으로 이름부터 세부적인 사항까지 거짓말을 하는 반면 마리솔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며 그 사실 때문에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진 것 등 솔직하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런 태도의 차이가 예정대로 둘의 관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존은 거짓말을 넘어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글을 편집해 발간하는 1인 잡지라는 설정도 흥미로우며 1인 잡지를 계기로 만나는 두 남녀가 태생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관계인 것도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존이 들이댈수록 존 못지않게 냉소적으로 굴면서도 순순히 응해주는 마리솔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성정체성이 칼로 나뉘듯 딱 정해지는 게 아님을 반영한 전개인 듯하다. 영화 <캐롤>에 나온 '여성이어서 좋아한 것이 아닌 좋아한 사람이 여성이었더라'는 대사처럼 마리솔 역시 처음엔 존에 대한 감정을 우정이라 느꼈지만 독자인 나는 우정과 사랑 그 중간 어디에 있는 감정으로 존을 대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존의 사랑은 그가 원하는 형태로 결실을 맺지 않아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꼭 결실을 맺어야지 사랑인가. 때론 좌절도 사랑이고 성장이며, 짧은 시간이나마 마리솔이란 좋은 인연을 가졌으니 무의미한 일이라곤 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태도만큼은 자신이 몸소 사랑에 빠짐으로써 버리게 됐잖은가. 다소 가혹한 형태의 성장이긴 하나 자신이 이를 통해 성장을 했고 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는 것으로도 박수를 칠 만한 일이다. 마리솔의 조언으로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도 개선되고 자신이 환멸을 갖던 주변 사람의 소중함도 깨달았으니 비록 연인 관계로 발전하진 못했으나 마리솔의 등장이 존의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연임은 부정할 수 없겠다.


 글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라 둘의 대화 내용도 깊이 있고 30년 가까이 전에 출간된 작품치고 성정체성에 대한 통찰도 예리해 여러모로 곱씹으며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성장 소설은 다시 읽으면 내용을 떠나서 문체가 유치하고 사건의 규모나 깊이가 얕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의 규모 자체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나 좌절하는 과정은 실로 보편적이고 진지한 주제인 터라 서른이 넘어 다시 읽어도 변함없이 몰입하고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존과 마리솔의 사유나 마리솔을 향한 존의 사랑이 워낙 진지해 십 년 뒤에 다시 읽어도 더 원숙한 맛이 느껴지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 진짜로 십 년 뒤에 찾아 읽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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