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8.7







 흔히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두고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관용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곧 짐승이라는 이 등식엔 거부감이 든다. 짐승은 자연계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메커니즘의 논리 아래 본능적이나 합리적으로 살아간다. 거기엔 선도 악도 없고 생존의 문제만 있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으로선 잔학무도하게 비춰보일 수 있으나 실상 짐승의 의지는 사람의 시선 안에서만 잔학무도할 뿐이다.

 나는 그래서 '짐승 같다'는 말보단 '악마 같다'는 말로 바꿔 표현했으면 좋겠다. 악마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상 속 존재지만 그 상징하는 바가 워낙에 명확하지 않은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인륜을 저버린 인간에게 적어도 짐승보다 어울리지 않을까.


 이 작품은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인 범죄자와 공범들의 범죄 소굴을 '짐승의 성'이라 한다. 짐승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함부로 비교 대상에 옮기면 안 된다.

 혼다 테쓰야의 소설은 처음 접해봤다. '히메카와' 시리즈의 드라마는 봤는데 그 드라마가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면 이 작가가 수위에 있어서 거침없는 표현력을 자랑하겠구나 하고 짐작했었다. 더군다나 읽기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해 잔혹한 걸 싫어하거나 비위가 약하면 읽지 말라는 경고를 접하기도 해서 상당히 긴장하고 읽었다. 덕분인지 구토만은 면하지 않았나 싶다. 중간중간 속이 메스꺼웠던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 소설이 '기타큐슈 연쇄 감금 살인사건'이라는 충격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다 읽은 다음에 사건 자료도 좀 찾아봤다. 확실히 실화에 비해 소설이 수위가 낮긴 한데 작중의 메시지 때문에 소설 쪽이 더 임팩트가 있다. 실화는 충격 그 자체라면 소설은 충격과 공포다. 타인을 완전히 지배하는 인간의 심리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그에 동화되기까지 하는지 간접적이나마 체감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가해자의 진술을 듣는 형사들이 점점 사건의 잔혹성에 익숙해진다는 부분이 있는데 읽는 나 역시 공감했다. 이 익숙함이야말로 인간의 오감을 마비시키는 아주 무서운 것이 아닐까. 어째서 피해자들은 그토록 잔인한 범인에게 휘둘려졌는가. 사람들은 범인에 대한 의지 상실과 무력감을 들어 해석하는데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나는 이 익숙함이말로 사람을 악마로 탈바꿈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다름 아닌 읽는 나조차도 충격에 무뎌지는 걸 느낀 터라 작가의 이 해석은 심히 와닿았다.


 읽어나가는 데에 있어 너무 잔인한 묘사가 난무해 상당히 난이도가 높고 그렇기에 남한테 함부로 추천은 못하겠지만 결코 무가치한 내용은 아니었다. 추리소설로서 봤을 땐 결말도 너무 열려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결말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터라 아쉬운 감이 있는데 범죄 소설, 특히 르포적인 측면에서 보면 꽤 밀도가 높다. 다시 말하지만 자극적인 작풍임에도 작가가 파고들려고 했던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탐구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매우 참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이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정신이지 않은가 하며 감탄했다.

인간은 무서운 것이 아닐까.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건 당연히 무섭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무서운 일이다. 자기 안에도 범죄의 싹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언제 자신도 범죄자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자신과 범죄자는 뭐가 다른가. 범죄가가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과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가. - 20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 동물원 세미콜론 코믹스
다니구치 지로 글.그림,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6






 얼마 전 별세하신 일본 만화계의 거장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읽었다. 그의 작품이라곤 달랑 <선생님의 가방> 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작품이 너무 괜찮아서 앞으로 많이 찾아 읽으려 했건만... 거장의 신작은 더 이상 만나볼 수 없게 됐지만 평생의 작품들로 이 아쉬움을 달래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에 읽은 이 작품은 상당히 의의가 있는 작품이었다. 돗토리에서 태어나 양복 재단사의 아들로 살다 교토의 직물 도매상에 취직한 뒤 이윽고 도쿄로 상경해 만화가로 데뷔했다는 작가의 인생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실로 자전적인 이 작품은 내용은 소소하지만 작가의 정수라 불리는 섬세한 감정선과 푸근한 그림체가 어우러져 꽤나 빛을 발한다.


 난 만화를 스토리 위주로 감상하는 편이라 그림에 관해서는 좋다, 나쁘다 밖에 말할 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체가 가히 예술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언뜻 보면 심심하고 기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라 평균치의 작화라고 여길 수도 있다. 내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아직 읽어보진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마냥 드라마 중심의 작품만 있는 게 아닌 걸 보면 순전히 작풍에 따라 그림체를 변화시킬 줄 아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이는 차차 확인해야 할 부분이지만 작중에 등장한 짤막짤막한 만화 원고 속 그림이 어시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다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리라.

 어느 정도 손길을 거쳐 작품으로 재탄생됐는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이 작품은 '만화적이다'라는 관용구가 무색하리만큼 격조가 있었다. 다소 격조가 있는 만큼 어렵거나 할 법 한데 실상 읽을 때는 또 술술 읽힌다. 모든 단편이 이야기적 얼개에 딱 들어맞는 그런 극적인 쾌감은 덜한 편이다. 대신 주인공이 겪게 되는 감정의 편린, 이를테면 풋내기 같은 사랑, 열병, 방황, 시기, 불편함 등이 클리셰랄 것도 없이 제법 현실적으로 다가와 만족감이 컸다. 잔잔한 나머지 되려 신선한 느낌이라 하면 될까?


 솔직히 말하면 작품이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했지만 잔잔함만으로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니 다른 작품은 뭔들 재미가 없을까 싶었다. <선생님의 가방> 같이 소설 원작의 작품도 다수 있으니 앞으로 찾아 읽게 될 날들이 사뭇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5







 참 난감한 소설을 읽었다. 내용 자체는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 도사린 주인공의 이면이 소름이 다 끼친다. 실제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다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저 창작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어느 쪽이든 자신을 인간이 아닌 편의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주인공은 이해불가하긴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를 내리겠지만 난 이 작품이 그럼에도 해피엔딩으로 끝맺었다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주인공의 시점에 입각해서 말이다. 주인공이 불편함을 느꼈듯 내 기준을 잣대로 이 작품의 결말을, 주인공의 자아성찰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군다나 작중의 시라하 같은 위인과 비교하면 주인공은 퍽 바람직하지 않은가. 물론 시라하라는 인물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다만.

 

 주인공이 무려 18년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이야기라기에 구직이 힘든 현대인의 자화상이나 아니면 편의점이라는 노동 현자의 고충을 그렸을 줄 알았더니 실상은 전혀 달랐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남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사이코패스 용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이코패스란 공감 능력 장애를 일컫는다. 사이코패스라고 영화에서처럼 무조건 연쇄살인범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 의 일면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는 가족을 위해 표면적으로나마 사회와 집단에게 녹아들고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대학에 들어갔을 즈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은 편의점 인간으로 태어나게된다.

 모든 행동이 철저히 매뉴얼화된 편의점의 근무 환경은 유독 타인과의 관계에서 삐걱거렸던 주인공에게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길로 주인공은 장장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데 그쯤 되자 주인공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일본이라 해도 30이 넘어서 알바로 생활하는 사람은 역시 일반적으로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 결혼 등 대부분의 일반적인 삶의 루트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을 감추지 않고 주인공은 그게 못내 불편하다. 주인공은 그저 편의점 알바생으로서 편의점을 방문하는 손님을 위해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데 점장이나 주변 알바생들은 영 그게 아닌 눈치다. 그런 와중 주인공은 이런 불편함을 타파할 방법을 발견하는데.

 

 섣불리 공감한다고 말하려니 주저되긴 하지만 확실히 공감 가는 구석도 많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누구라도 타인의 가치관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경우엔 그게 반평생에 걸친 편의점 알바 생활로 구현됐기에 거부감이 들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편의점이나 알바에게 품는 부정적 이미지를 제대로 이용한 작품이다.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일으킴과 동시에 혹시 자기가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코자 않았는지 돌이켜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지 않은가.

 상술했듯 주인공은 작중의 시라하와 비교하자면, - 시라하라는 인물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놈팽이 주제에 그런 자신이 낙오되는 이유를 전부 사회 시스템이나 다른 사람 탓으로 넘기는 한심함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결코 불건전하게 삶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은 편의점이라는 특수한 직업 환경에서 거의 척하면 척인 베테랑이며 비정규직이긴 해도 어쨌든 자기 힘으로 제대로 먹고 살고 있고 회사와 고객을 위해 헌신하는 열렬한 노동자이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구직을 시도하긴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아 편의점 알바에 전념하게 됐다는 주인공이 왜 편의점 본사에 지원해 점장이 될 생각은 안 했는지 궁금하다. 본인을 인간이 아닌 편의점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엔 일종의 꺼림칙한 광기가 느껴지지만 이 정도로 미쳤다면 업계 최고를 능히 노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자신이 편의점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편의점 인간임을 깨닫고 편의점에 뼈를 묻으려는 주인공은 우리 기준에서 보면 이상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 분야에 통달해 후에 업계 최고에 도달한다면 주위의 평가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치관을 주인공에게 들먹이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소설 본편에선 주인공이 편의점 업계 최고를 노린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전 있는 이야기가 상정되진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그건 또 모를 일이다.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그 속까지 잘 모른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시선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 보니 타인의 가치관이라는 게 진짜 불편하리만큼 덧없는 게 아닌가 싶다. 진심어린 이해를 배제한 채 남들이 자기보고 이상하다고 단정 짓는 걸 들을 때 정말 어이없지 않던가 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어필하는 매체가 바로 소설이라 한다면 이 소설은 짧고도 강렬한 최고의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순수 문학을 뽑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치곤 가독성 있는 문장도 한몫 거든다. 불편하고 불유쾌한 이야기는 유익하고 술술 읽히는 장점 또한 겸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가 생각하는 바가 잘 전달될 리 만무한데 다행히 진입 장벽이 상당히 낮아서 누구나 들어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된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감상은 다 다르겠지만 애당초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에서 시작된 작품이니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권으로 읽는 괴도 뤼팽 추리 걸작선
모리스 르블랑 지음 / 해피북스(북키드)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8.7






 프랑스인들이 영국의 셜록 홈즈의 라이벌로 내세우는 캐릭터가 바로 괴도 뤼팽 - '루팡'은 전적으로 일본식 발음이다. lupin은 프랑스식으로 당연히 뤼팽으로 읽힌다. - 이다. 이것 때문에 100년 가까이 지나도 이 시리즈가 욕을 먹고 있는데... 이건 모리스 르블랑이 당대 최고의 탐정 캐릭터인 셜록 홈즈를 너무 의식해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도 설마 이렇게 파장이 클 줄은 몰랐겠지. 하필 셜록 홈즈를 등장시켜서 이 시리즈가 이래저래 평가절하되고 있는 걸 보면 참 안타깝다. 자업자득이란 말로 가볍게 넘기기엔 말이지.

 어떻게 보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뤼팽은 여러모로 홈즈와는 정반대 유형의 - 일단 항상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 캐릭터다. 우리나라에선 홍길동과 함께 의적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뤼팽은 100년 전 캐릭터라기엔 지나치게 시대를 초월한 면면을 보여준다. 마술사, 생물 화학자, 그리고 유도의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등 범죄자로서의 만반의 준비를 갖춘 뤼팽은 온갖 기상천외한 절도 행위로 대도시에 맞먹는 부를 축적한다. 변장의 달인이고 격투 실력도 수준급이며 철벽의 요새도 가볍게 뛰어넘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고 심지어 옥중에서도 자기 뜻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특히 뤼팽이란 캐릭터의 가장 재밌는 점은 사전에 자신이 물건을 훔칠 것을 물건의 주인에게 정중히 통보한다는 것이다. 정중함을 가장한 무례함이란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는데 이게 무려 100년 전의 유머라니 믿기지 않는다. 또 미술품에 관련해서 전문가적 식별을 지닌 그는 모조품이 아닌 진품을 - 물건을 훔치러 들어갔더니 전부 진품이 아니라서 편지를 놓고 간 게 백미. 진품이 없으니 그냥 가겠소. - 취하는 등 차원이 다른 범죄 행위를 선보이는데 이쯤 되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캐릭터성을 지닌 뤼팽은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른 취급을 받긴 한다. 나한테는 PS2 게임 <슬라이 쿠퍼> 때문에 더없이 친숙한데 그 게임에서의 슬라이가 보였던 것처럼 의적다운, 그러니까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싫어할 수 없는 면모가 느껴져 나는 마냥 싫어할 수 없었다. 작품의 재미는 둘째 치고.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본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아무래도 통상적인 추리소설이 아닌 모험 소설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뤼팽' 시리즈가 추리소설로 불리기엔 액션과 비밀 장치가 난무하고 공정한 추리가 힘들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신 범죄 소설 다운 활극이 있어 그 나름대로 즐길 수 있었다. 이 활극 부분이 내 개인적인 기대에 못 미치니 실망스럽긴 하지만 캐릭터가 워낙 마음에 들어 이래저래 넘어갈 수 있는, 나에게 있어 아주 희한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캐릭터다.

 이러한 뤼팽의 위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변치 않을 듯하다. 추리소설, 특히 고전에 속할수록 주인공인 탐정은 정의의 편을 자처하기 마련이다. 때론 낯간지러울 정도인데 뤼팽은 그렇지 않다. 그는 정의나 악을 자처하지도 구분 짓지도 않는다. 비록 범죄자지만 부자의 물건만 훔치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움직이다 실수도 범할 때도 있고 살인은 절대 피하고 - 이 부분이 배트맨에게 영향을 준 부분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 낭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걸 보면 정말 경탄스럽다. 어느 틀로도 구분 짓지 못할 이 자유분방함 때문에 도무지 미워하지 못하겠다. 이러니 계속 읽을 수밖에.



p.s '뤼팽' 시리즈는 성귀수 씨가 번역한 까치글방의 전집으로도 접하긴 했지만 저 '새희망'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이야말로 '뤼팽' 시리즈의 시작에 걸맞는 편집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단편들의 구성이 원작과는 판이한데 감옥에 갇힌 뤼팽이 손 하나 까딱 않고 대저택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서 시작해 그의 어린 시절, 아직 무명이었던 시절, 어떻게 감옥에 갇혔고 셜록 홈즈와 엉키고 감옥에서 어떻게 탈출하는지. 역순으로 진행되는 통에 더욱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원작도 갖추지 못한 구성미를 뽐내지 않았나 싶다. 다시 읽어도 재밌었다. 뤼팽의 다른 활극도 이 출판사에서 펴내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다.

나 자신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거울을 보아도 내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단 말이오.
무엇 때문에 같은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하냐구요? 왜 늘 같은 성격으로 살아가야 하느냐 이 말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만으로도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이 사람이 아르센 뤼팽이다, 라고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다만, 이런 놀라운 일은 아르센 뤼팽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겠지요. - 219~22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5






 내가 너무를 기대를 한 것인지... 가급적이면 나도 책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고 싶긴 한데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고 나서도 큰 감흥이 일거나 하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분량이 이렇게 길 필요가 있었는가 정도? 물론 그 특유의 추리 스타일 -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노리즈키 린타로 등 일본의 신본격 추리소설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 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대단했다. 도저히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사소한 구두에 초점을 둬서 추리의 실타래로 대치시키는 건 모든 추리소설가 지망생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요즘 괜찮다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난독증 탓인지 - 나만 그런 건가, 문체가 은근히 눈에 잘 안 들어온다. - 몰라도 크게 눈길을 끄는 부분이 적긴 했다. 엘러리 퀸의 연역적 추리 작품들이 그렇듯 논리에 치중하다 보니 의외의 범인, 결말과는 거리가 있어 그런가 싶지만... 설명이 되지 않으리 만큼 감흥이 일지 않았다. 엘러리 퀸이 아닌 드루리 레인이 등장하는, <X의 비극>을 읽어야겠다. <Y의 비극>과 비슷하다면 그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죽은 자의 구두를 기다리는 자는 맨발로 다니게 될 위험이 있다. - 17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