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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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참 난감한 소설을 읽었다. 내용 자체는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 도사린 주인공의 이면이 소름이 다 끼친다. 실제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다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저 창작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어느 쪽이든 자신을 인간이 아닌 편의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주인공은 이해불가하긴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를 내리겠지만 난 이 작품이 그럼에도 해피엔딩으로 끝맺었다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주인공의 시점에 입각해서 말이다. 주인공이 불편함을 느꼈듯 내 기준을 잣대로 이 작품의 결말을, 주인공의 자아성찰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군다나 작중의 시라하 같은 위인과 비교하면 주인공은 퍽 바람직하지 않은가. 물론 시라하라는 인물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다만.

 

 주인공이 무려 18년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이야기라기에 구직이 힘든 현대인의 자화상이나 아니면 편의점이라는 노동 현자의 고충을 그렸을 줄 알았더니 실상은 전혀 달랐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남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사이코패스 용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이코패스란 공감 능력 장애를 일컫는다. 사이코패스라고 영화에서처럼 무조건 연쇄살인범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 의 일면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는 가족을 위해 표면적으로나마 사회와 집단에게 녹아들고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대학에 들어갔을 즈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은 편의점 인간으로 태어나게된다.

 모든 행동이 철저히 매뉴얼화된 편의점의 근무 환경은 유독 타인과의 관계에서 삐걱거렸던 주인공에게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길로 주인공은 장장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데 그쯤 되자 주인공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일본이라 해도 30이 넘어서 알바로 생활하는 사람은 역시 일반적으로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 결혼 등 대부분의 일반적인 삶의 루트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을 감추지 않고 주인공은 그게 못내 불편하다. 주인공은 그저 편의점 알바생으로서 편의점을 방문하는 손님을 위해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데 점장이나 주변 알바생들은 영 그게 아닌 눈치다. 그런 와중 주인공은 이런 불편함을 타파할 방법을 발견하는데.

 

 섣불리 공감한다고 말하려니 주저되긴 하지만 확실히 공감 가는 구석도 많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누구라도 타인의 가치관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경우엔 그게 반평생에 걸친 편의점 알바 생활로 구현됐기에 거부감이 들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편의점이나 알바에게 품는 부정적 이미지를 제대로 이용한 작품이다.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일으킴과 동시에 혹시 자기가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코자 않았는지 돌이켜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지 않은가.

 상술했듯 주인공은 작중의 시라하와 비교하자면, - 시라하라는 인물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놈팽이 주제에 그런 자신이 낙오되는 이유를 전부 사회 시스템이나 다른 사람 탓으로 넘기는 한심함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결코 불건전하게 삶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은 편의점이라는 특수한 직업 환경에서 거의 척하면 척인 베테랑이며 비정규직이긴 해도 어쨌든 자기 힘으로 제대로 먹고 살고 있고 회사와 고객을 위해 헌신하는 열렬한 노동자이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구직을 시도하긴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아 편의점 알바에 전념하게 됐다는 주인공이 왜 편의점 본사에 지원해 점장이 될 생각은 안 했는지 궁금하다. 본인을 인간이 아닌 편의점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엔 일종의 꺼림칙한 광기가 느껴지지만 이 정도로 미쳤다면 업계 최고를 능히 노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자신이 편의점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편의점 인간임을 깨닫고 편의점에 뼈를 묻으려는 주인공은 우리 기준에서 보면 이상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 분야에 통달해 후에 업계 최고에 도달한다면 주위의 평가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치관을 주인공에게 들먹이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소설 본편에선 주인공이 편의점 업계 최고를 노린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전 있는 이야기가 상정되진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그건 또 모를 일이다.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그 속까지 잘 모른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시선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 보니 타인의 가치관이라는 게 진짜 불편하리만큼 덧없는 게 아닌가 싶다. 진심어린 이해를 배제한 채 남들이 자기보고 이상하다고 단정 짓는 걸 들을 때 정말 어이없지 않던가 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어필하는 매체가 바로 소설이라 한다면 이 소설은 짧고도 강렬한 최고의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순수 문학을 뽑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치곤 가독성 있는 문장도 한몫 거든다. 불편하고 불유쾌한 이야기는 유익하고 술술 읽히는 장점 또한 겸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가 생각하는 바가 잘 전달될 리 만무한데 다행히 진입 장벽이 상당히 낮아서 누구나 들어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된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감상은 다 다르겠지만 애당초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에서 시작된 작품이니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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