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11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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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6.2







 시리즈도 10권이 넘어가니 질질 끄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결국 계속 보게 되는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 11권을 읽었다. 이번 권은 대놓고 쉬어가는 책으로 단편집이었다. 총 3편이 수록됐는데 두 편은 호로와 로렌스의 이야기이고 마지막 작품은 장장 4권에 걸쳐 등장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에이브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콜은 등장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야기의 균형에 크게 하자는 없었다. 마치 무한도전에서 전진이나 길이 빠졌어도 크게 위화감이 없었던 것 같았달까? 새삼 이런 점을 통해 이 시리즈가 이야기를 부풀리기만 하지 막상 실속은 크게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 시리즈다 보니 처음 느꼈던 몰입감은 곁을 떠난 지 오래인데 이렇게 계속 접하는 데엔 순전히 결말이 궁금한 것 외에는 달리 이유가 없다. 11권과 연달아 12권까지 읽었으니 완결까지 앞으로 5권 남았는데, 머지않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아직도 5권이나 남았냐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작정하고 1권부터 멈추지 않고 읽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지금 같은 무기력함이 불거질 일도 없었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만약 그랬더라도 이번 11권 같이 단편집은 쉬어가는 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리란 건 장담할 수 있다. 작가가 공인하는 것처럼 쉬어가는 책이니까, 또 소설 본편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


 그래도 에이브의 과거 이야기는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5권에서 로렌스 일행과 처음 마주칠 때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순진했던 그녀가 이른바 '각성'하게 되는 사건은 예상보다 강렬하지 않았지만 - 이것도 작가가 풀어내는 스토리 라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 프리퀄이란 기준으로 봤을 땐 나름 준수한 길이와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예 귀족의 지위가 몰락하는 시점부터 그렸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주 결정적인 아쉬움은 아니다.

 이제 12권이다. 듣기론 앞으로 단편집이 한 권 더 있을 예정이라는데 뭐가 됐든 빨리빨리, 결말까지 후딱 읽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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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커 토우마 3 - 거리로
가나리 요자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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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7






 <소년탐정 김전일>의 스토리 작가 중 한 명이자 개인적으로 숨은 명작이라 생각하는 <기믹>의 스토리 작가인 카나리 요자부로의 작품이다. 이 작가는 다룰 수 있는 소재에 한계가 없는 것인지 작품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뽑아내는데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늘 환영받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 작품만 해도 잠재력이 있는 소재였는데 달랑 3권으로 끝나다니...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아주 울컥했던 에피소드가 있어서 이른 결말이 아쉬웠다.

 주인공 오오카미 토우마는 아스미 숲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가이드지만 실은 '트래킹'이란 기술을 사용하여 경찰 조직에 몸담았던 남자다. 이 기술은 과거 수렵 민족이 며칠에 걸쳐 사냥을 할 때 동물을 추적하고자 발자국을 따라가는 기술이 현대에 이르러서 수사에 응용된 추적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감이 안 잡힐 텐데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얼핏 봐선 다 똑같아 보이는 발자국을 보고 발자국마다 그 사람의 신장, 무게, 성별, 질병의 유무나 심리 상태까지 오차 없이 밝혀낼 수 있어 아무래도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다.


 '김전일'의 스토릴 짰던 작가인 만큼 이 작품도 추리/미스터리의 전개를 보이긴 하나 사건의 성질이나 반전, 결말이 전부 소소하고 감동이 남는다는 점에서 '김전일'과는 작풍이 판이하다. 이 부분을 두고 신파라면서 질색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품은 작품 나름대로 충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주인공이 초월적인 트래킹 기술과 더불어 통찰력도 사기급이라 사실상 공정한 추리 만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소재의 참신함이나 의외성은 인정해줘야 한다. 비록 마지막 화를 제외하고 커다란 사건이나 극악무도한 악인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전체적으로 흡입력은 옅지만 잔잔하게 힐링하는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던 것에선 뜻밖의 위안을 얻기도 있었다.

 특히 주인공의 가치관이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작품이 일찍 결말이 나 미처 다뤄지지 않았지만 - 무슨 연유로 기술을 습득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됐는지 좀 더 얘기를... - 아무튼 사건의 전말에 대해 간혹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물은 없습니다.', 혹은 '하지만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라든지 '지금 저 어린 새들이 불쌍하다고 고양이를 쫓아내면 고양이는 굶어 죽을 것이다.' 라면서 아이를 말리는 장면을 보면 본인만의 이성과 신념을 갖춘 위인인 걸 엿볼 수 있다. 이런 요소도 없이 그저 올바르고 듣기 좋은 말만 했더라면 이 작품의 매력이 심히 반감됐을지 모른다. 이건 살짝 다른 얘기지만, 완벽해 보이는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 애매한 캐릭터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주인공이 삼림 가이드로서 등산객과 엮이는 에피소드도 좋지만 가끔 형사 사건과 연루돼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재밌었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독자들의 반응이 미지근했는지 이 만화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도 못한 채 결말이 나버렸다.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이 활약할 지면이, 무엇보다 중심 소재인 트래킹 기술을 더는 감상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쉽기 그지없다. 완벽하게 흡입력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톡톡한 매력도 있어 이와 같은 헤어짐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언제나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건 어른이고 어린이는 그런 어른을 보면서 어른 이상으로 잘 자라는 겁니다. - 2권 9화 ‘추적2‘




의외로 인간이 어리석고 이기적일 뿐, 쓸데없어 보이는 일이야말로 소중한 거 아닐까요... - 3권 19화 ‘쓸데없는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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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 세계 8대 문학상에 대한 지적인 수다
도코 고지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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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항상 기대에 미친다고 할 수 없지만 언제나 '무슨무슨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책을 고를 때 꽤 중요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니리라. 하지만 특별히 선호하는 문학상은 없다. 유서 깊은 문학상일수록 항상 그 상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예외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항상 무슨 문학상이건 간에 새로 수상작이 발표되면 관심이 가고 평소 이름을 많이 들었던 작가가 타기라도 하면 '드디어' 라며 내 일 못지않게 반가워하기도 한다.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즐거운 일인데 거기다 문학상은 좋은 얘깃거리이기까지 하니까 늘 수상 소식에 관심이 간다.


 이 책은 일본의 번역가, 소설가, 시인, 비교문학자, 문학 교수, 서평가, 자유기고가 등이 문학상에 대한 대담집으로 읽기 전부터 적잖이 흥미로울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과는 살짝 다르게 내가 거의 모르는 작가와 작품을 얘기하니 그렇게 흥미진진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작품이 화두에 올라 나름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책에서 다뤄지는 문학상 중에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만 조금 읽어봤고 나머지 노벨문학상, 부커상, 공쿠르상, 퓰리처상, 카프카상, 예루살렘상은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만큼 낯설었는데 그래도 이번에 몇몇 책을 전문가들한테 추천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설마 나오키상 얘기할 때 후나도 요이치의 <무지개 골짜기의 5월>에 대해 얘기할 줄이야.

 처음 노벨문학상에 대해 얘기할 때도 그렇고 '비정상회담'에서 소설가 김영하 씨가 얘기하기도 했지만 특정 문학상이 세계 모든 문학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사람들 취향은 천차만별이고 하물며 나라별 취향이나 소설을 볼 때의 주안점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소위 이름난 문학상들은 다 유럽 및 서구 기준에 맞는 작품이 수상하며 그 기준에 맞지 않았다고 해서 특정 작품을 무가치하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매년 수상 시기가 가까워지면 한국 문학은 언제 이런 상을 받느냐 하는 식의 기사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런 기사가 참 부질없게 느껴졌다. 문학상은 역시 훌륭하고 명예롭거니와 독서가들 사이에서 재밌는 얘깃거리긴 하나 책을 고르는 절대적인 척도까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상을 진작에 받아야 할 작가가 못 받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처럼 문학상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문학상의 권위를 너무 인정할수록 그에 비례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역시 문학상은 재미로 들여다볼 기준으로 여기는 게 제일 좋을 듯하다.

다만 드라마의 탐정은 범인이라든가 동기 등 해명하려는 것이 분명히 밝혀지지만, 소설은 지금 자신이 해명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불모지요. 하지만 왠지 불모가 아니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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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범람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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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후기를 쓸 때면 아무래도 내 취향을 우선하게 되는데 간혹 내 취향과는 무관하게 그 작품, 아니면 그 작가 자체만으로 존중하고 싶은 경우도 있는 법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은 아쉽게도 내 취향과는 맞지 않지만 한편으로 존중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짤막하고 건조한 작풍이 유독 나에겐 난독증을 유발할 만큼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확고하면서 묘한 끌림이 있어 작가의 작품을 제법 기대하며 읽어왔다.

 <어두운 범람>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부문) 수상작인 표제작을 포함한 5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면서 <의뢰인이 죽었다> 이후로 오랜만에 출간된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신작이다. 시리즈의 장편인 <나쁜 토끼>란 작품이 계속 출간 소식이 없어서 이 캐릭터를 평생 못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볼 수 있게 돼서 적잖이 반가웠다. 그 캐릭터는 일상 미스터리 작가가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성을 보유한 하드보일드 탐정이라 내심 그의 활약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대됐다.


 너무 기대했기 때문인 걸까? 최근 나는 이렇게 단편집을 접할 때마다 꼭 표제작만 재밌게 읽고마는 경우가 왕왕 있다. 표제작이거나 수상작이라고 했을 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더 정독하기 때문인 걸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으련만... 이 책의 5편의 수록작 중에 표제작 '어두운 범람'만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실린 '파리 남자'는 무난했고 다른 분들이 자주 거론하는 '광취'는 그저 그랬다. 나한텐 왜 그렇게 가독성이 떨어졌는지 모르겠네.

 읽으면서 작품들의 연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라 급하게 모인 작품들이었다고 작가 후기에 적혀있었다. 그렇다 해도... 같은 시리즈의 <네 탓이야>나 <의뢰인은 죽었다> 같은 걸 생각했던 터라 읽기 전에 품었던 기대가 무색하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범람'은 이름값을 했던 작품이었다. 도무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어 담당 변호사조차 극형을 면할 수 없으리라 장담하는 범죄자에게 한 여자가 팬레터를 보낸다. 이 형용불가한 편지에는 일말의 이해불가한 오싹함이 풍겨지는데 하무라 아키라는 변호사의 의뢰에 따라 편지의 주인인 여자를 찾아나선다. 그러다 편지의 이면에 숨겨진 생각지 못한 비밀이 밝혀지는데...

 와카타케 나나미는 단편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추리소설은 모름지기 단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좀 꺼려진다. 취향과 관점의 차이를 존중하는 한편으로 이 작가의 작품의 주안점은 분위기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있어서 '추리소설'에 집중하면 기대완 사뭇 다른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것이고 이 작가의 작품도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가 있기에 역시 읽어볼 만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 작가도 내공이 꽤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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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장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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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이 책의 최고 반전은 제목에 들어가는 시인屍人의 뜻이다. 난 또 그 시인詩人인 줄 알았는데 설마 시체인 사람을 뜻할 줄은;;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도 그렇고 일본에도 없는 단어였다. 작가가 만든 단어였나 보다.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참 잘 지은 제목이고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실로 교묘하게 작품의 핵심 키워드를 숨기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흥미있는 제목이고.

 작가의 데뷔작인 동시에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best 1위에 선정되는 등 작년 일본 추리소설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에 빨리 번역 출간됐다. 너무 화려한 한편으로 혹시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산장에 놀러간 일행이 무슨 연유로 거기 갇히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쇄적으로 살인도 발생한다. 이 모든 미스터리를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작품의 개요인데 이렇게 내용을 숨기고 써놨으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있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의 홍보는 수상 경력으로 반 이상 해먹은 감이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책에 대한 사람들 평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좀비들의 습격으로 인해 형성된 클로즈드 서클이란 설정이 독특하고 연쇄 살인과 트릭 역시 좀비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해 역시 참신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초반에 대놓고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비꼬는 것이 패기가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막판에 나오는 범인의 동기가 진부하거나 트릭의 미묘한 불완전함이 깬다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비하면 퀄리티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독자들의 일치하는 의견이다.

 나 역시 위의 의견과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 그래도 몇 마디 거들자면, 일단 초반의 패기 있는 클리셰 비틀기를 뒤집는 전형적인 범인상, 동기 등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따로 있는데 그건 후에 얘기할 테고, 초반의 설정과 전개가 허를 찌르는 만큼 후반부가 고전적인 면을 보이는 게 나름 균형이 맞았다고 본다. 한결같이 독특한 것도 좋겠지만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았다. 트릭의 불완전함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도 밑에서 얘기할 어떤 문제와 일맥상통한데, 누가 뭐라 하더라도 좀비 설정을 특수하게 잘 살려서 - 좀비가 에워싼 산장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침착해 보이는 게 옥의 티라면 티겠지만 - 그럴싸하게 만든 건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런 설정은 정말 도전이고 작가는 충분히 잘 풀어냈으니까. 또 좀비 자체는 식상할 수 있어도 클로즈드 서클에 써먹기엔 꽤 신선한 소재였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의 큰 문제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다. 비단 범인에 국한된 게 아니다. 왓슨 역을 맡은 주인공이나 탐정도 그렇다. 탐정 캐릭터는 약간 노리고 만든 특징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치더라도 범인과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미흡한 건 아쉬웠다. 범인이 살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너무 드문드문 묘사됐고 결정적인 계기는 너무 쌩뚱맞아 복선으로 치기도 애매할 정도다. 이런 부분만 잘 썼더라도 트릭의 불완전함 같은 문제는 범인이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아쉽긴 아쉽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더욱 아쉬웠다. 주인공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예민한 구석이 있는데 그에 대한 암시나 설명이 적고 뜬금없어서 그의 행동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독자 입장에선 설득이 잘 되지 않았다. 1인칭 시점인 만큼 심리 묘사에 용이한 캐릭터였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덜 묘사됐다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패착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도 덜도 말고 가볍게 읽기엔 적당했다. 초반에 추리소설이라면 으레 이럴 것이란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 그리고 좀비로 에워싼 산장이란 설정에만 주목하면 절대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하물며 각종 수상 기록에 주목하고 읽으면 더 곤란하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다른 작품이 다 별로였나...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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