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장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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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이 책의 최고 반전은 제목에 들어가는 시인屍人의 뜻이다. 난 또 그 시인詩人인 줄 알았는데 설마 시체인 사람을 뜻할 줄은;;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도 그렇고 일본에도 없는 단어였다. 작가가 만든 단어였나 보다.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참 잘 지은 제목이고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실로 교묘하게 작품의 핵심 키워드를 숨기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흥미있는 제목이고.

 작가의 데뷔작인 동시에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best 1위에 선정되는 등 작년 일본 추리소설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에 빨리 번역 출간됐다. 너무 화려한 한편으로 혹시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산장에 놀러간 일행이 무슨 연유로 거기 갇히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쇄적으로 살인도 발생한다. 이 모든 미스터리를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작품의 개요인데 이렇게 내용을 숨기고 써놨으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있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의 홍보는 수상 경력으로 반 이상 해먹은 감이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책에 대한 사람들 평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좀비들의 습격으로 인해 형성된 클로즈드 서클이란 설정이 독특하고 연쇄 살인과 트릭 역시 좀비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해 역시 참신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초반에 대놓고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비꼬는 것이 패기가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막판에 나오는 범인의 동기가 진부하거나 트릭의 미묘한 불완전함이 깬다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비하면 퀄리티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독자들의 일치하는 의견이다.

 나 역시 위의 의견과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 그래도 몇 마디 거들자면, 일단 초반의 패기 있는 클리셰 비틀기를 뒤집는 전형적인 범인상, 동기 등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따로 있는데 그건 후에 얘기할 테고, 초반의 설정과 전개가 허를 찌르는 만큼 후반부가 고전적인 면을 보이는 게 나름 균형이 맞았다고 본다. 한결같이 독특한 것도 좋겠지만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았다. 트릭의 불완전함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도 밑에서 얘기할 어떤 문제와 일맥상통한데, 누가 뭐라 하더라도 좀비 설정을 특수하게 잘 살려서 - 좀비가 에워싼 산장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침착해 보이는 게 옥의 티라면 티겠지만 - 그럴싸하게 만든 건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런 설정은 정말 도전이고 작가는 충분히 잘 풀어냈으니까. 또 좀비 자체는 식상할 수 있어도 클로즈드 서클에 써먹기엔 꽤 신선한 소재였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의 큰 문제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다. 비단 범인에 국한된 게 아니다. 왓슨 역을 맡은 주인공이나 탐정도 그렇다. 탐정 캐릭터는 약간 노리고 만든 특징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치더라도 범인과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미흡한 건 아쉬웠다. 범인이 살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너무 드문드문 묘사됐고 결정적인 계기는 너무 쌩뚱맞아 복선으로 치기도 애매할 정도다. 이런 부분만 잘 썼더라도 트릭의 불완전함 같은 문제는 범인이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아쉽긴 아쉽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더욱 아쉬웠다. 주인공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예민한 구석이 있는데 그에 대한 암시나 설명이 적고 뜬금없어서 그의 행동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독자 입장에선 설득이 잘 되지 않았다. 1인칭 시점인 만큼 심리 묘사에 용이한 캐릭터였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덜 묘사됐다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패착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도 덜도 말고 가볍게 읽기엔 적당했다. 초반에 추리소설이라면 으레 이럴 것이란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 그리고 좀비로 에워싼 산장이란 설정에만 주목하면 절대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하물며 각종 수상 기록에 주목하고 읽으면 더 곤란하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다른 작품이 다 별로였나...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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