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라, 군청 - S큐브 계단섬 시리즈
코노 유타카 지음, 코시지마 하구 그림, 정호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3







 여기, 기묘한 섬이 있다. 섬의 주민들은 자신이 무슨 연유로 이 섬에 왔고 살게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섬을 나갈 필요를 못 느끼고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게 마음 편하다. 그 섬의 이름은 계단섬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동창생인 마나베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마나베 역시 자신이 어째서 이 섬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나베는 주인공의 예상대로 여러모로 불합리한 섬의 정체와 자신에게 닥친 미스터리한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을 파악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떨떠름한 반응과 포기를 종용하는 설득 아닌 설득 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정도 나이의 아이까지 섬에 오자 그녀는 더욱 전의를 불태운다. 자신이 믿는 바를 올곧게 관철해왔던 마나베로선 최적의 동기 부여가 아닐 수 없던 것이다. 반면 이상주의자인 마나베와 달리 주인공은 무척 비관적인 인물로 단지 동창생이란 이유로 마나베와 대동하지만 속으론 비웃음에 가깝게 관조하며 그녀의 매 행동에 어깃장을 놓는다.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상극을 달리는 둘은 서로를 존중하는 듯 배려 없이 섬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다양한 미스터리와 마주하게 된다...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시길.)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제목에서 암시되는 관념적인 문장이나 주제의식이 아니라, 계단섬에서 마주치는 연쇄 낙서 사건의 전말도 아닌 당연히 계단섬의 정체다. 이 섬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섬의 주민은 올 때 기억을 잃고 나갈 의지조차 갖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마나베가 이상하게 취급 당하고 실제로 왜 마나베만 유독 독자 기준에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란 말인가.

 누구나 한 번쯤 자기 단점을 완벽히 버리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볼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그 단점마저 나 자신의 근간이란 지점에서 출발한 작품인 듯하다. 섬의 주민은 원래 세상의 사람들이 분리해낸, 즉 없애고 싶은 자기 모습인데 예를 들면 지나치게 말수가 적고 학교를 두려워하고 승부에 지는 것을 마음 편해하고 비관적이고 이상적인 모습들이 있었다. 단점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듯 비관적인 주인공과 이상적인 마나베가 한 자리에 있는 건 무척 의미심장하게 읽혔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꽤나 충격을 받은 눈치였고 - 그는 이상주의자인 그녀가 부담스러운 한편으로 존중하는 면도 강했기에 -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섬의 정체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인지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에 비해 굉장히 인상적으로 마무리됐다. 본래 자신에게 버림받은 섬의 주민들이 계단섬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게 소름 돋았고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란 건 묘하게 씁쓸한 일이었다. 때문에 주인공이나 마나베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섬에서 살아가겠다는 것부터, 그들에게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더 있다는 것까지 묘하게 감동적이지 않았나 싶다. 생각보다 철학적이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줘 아무래도 후속작도 찾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행복을 찾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불행을 받아들일 권리도 가지고 있어. -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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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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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4







 원래도 존경하는 작가였지만 '작가의 말'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소설집 위주로 출판되는 우리나라 문단의 성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오히려 단편집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가 어떤 사건을 겪거나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작풍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를 살펴보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수록작들의 경향의 차이를 스스로 너무 친절하게 밝히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만큼 작가로서 강조하고픈 내용이기에 정성을 다해 적은 것일 테고 그러한 작가의 정성이 내게는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도 느껴져 적잖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김영하 작가를 두고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 일컫는데 여기서 '젋다'는 게 단순히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행보와 경향을 수식하는 걸 생각하면 '작가의 말'에서 보인 정성은 그 명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단면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시대와 호흡하며 발전을 다짐하는 작가야말로 진정 젊은 세대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오직 두 사람'


 표제작으로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쓸 수 있는 모국어에 대해 얘기하면서 시작되는 작품이다. 아버지와 유난히 막역한 관계인 딸을 화자로 내세운 서간문체 소설로 상당한 절제미가 돋보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쓰는 사람에 따라선 한없이 감정적이게 될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달랐다. 누가 봐도 아버지에게 얽매여 서서히 너절해지는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나름의 논리로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후에 결핍을 극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거듭나 제법 여운이 있었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세상에서 모국어를 쓰는 단 두 사람의 관계에 대입시킨 건 엉뚱하면서도 논리적으론 잘 와 닿지 않았는데 화자의 감정선을 이해가 아닌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서두이자 일화가 아닌가 싶었다. 타인의 결핍을 바라보는 정서를 함양시키기에 참 매력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이를 찾습니다'


 '작가의 말'에 가장 많이 언급된, 아마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일 것이다. 잔인하기론 <살인자의 기억법>보다 더했는데 최근에 본 영화 <친애하는 우리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에선 피가 이어지지 않은 자식을 둔 주인공이 소통을 시도하고, 이 작품 '아이를 찾습니다'에선 오래 전에 유괴당한 친아들을 찾았는데도 너무나 자기 아이 같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이는 찾았지만 자신의 부주의, 혹은 운명의 야속한 장난 때문에 유괴를 당한 비극에선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잔인함은 더욱 상기될 뿐이다. 아이는 자신을 유괴한 사람을 부모로 여기면서 그 누구보다 친부모를 어색해하고 주인공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이 나는데...

 작품에 녹아있는 엄청난 아이러니와 잔인함은 완벽하게 독창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반전 없이 흘러가는 전개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라 감탄했다. 반대로 섣불리 희망적인 게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짐작도 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작품의 내용이 그렇게 비관적이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누굴 원망해도 풀리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게 된 한 줄기 위로가 내려졌기 때문일까.



 '옥수수와 나'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알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활기차서 '역시 김영하구나' 란 말이 절로 나온 작품. 소설가 주인공이 상당히 철없으면서도 정서적 유쾌함이 겸비된 인물인데 덕분에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채 결말까지 내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이런 작풍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못내 아쉽다. 이렇게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는 우리나라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흔히 장르 소설에서 요구될 법한 김영하의 작풍은 좀 더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에도 역시 유효한데 이 작품 '옥수수와 나'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으니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은지와 박인수'


 이 작품도 김영하 특유의 유쾌함이 가미됐는데 이전에 학교에서 수업 자료로 접한 작품이라 반갑기도 했다.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된 '옥수수와 나'의 주인공이 쓴 것처럼 읽히기는 하는데 뭔 소린지 못 알아먹겠는 유형의 소설에 해당된다. 영악하게 이용당하고 필요 이상으로 억울해진 출판사 사장이 시한부 인생인 업계 동료를 만나고 이내 반전 없이 그와 이별하게 되는 내용이다. 생과 사의 대비가 명확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성장이란 것도 어딘가 깔끔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단지 이야기의 가독성과 아이러니에 웃을 뿐... 여하튼, 표제작과 '아이를 찾습니다' 같은 작품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 소설집의 다채로움에 눈이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특유의 가벼운 작풍이 아닌 다른 작풍에 도전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은 꽤나 성과를 거둔 듯하다. 그렇기에 '옥수수와 나'도 그렇고 '최은지와 박인수' 같은 작풍을 점점 보기 힘들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론 바뀐 작풍도 작가에게 충분히 어울리고 무엇보다 내실이 있어서 이전 작풍을 버리는 것이 아닌, 단순히 정체되지 않겠다는 뜻으로 다가와 언젠가 나올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 기대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작가긴 했지만 차기작을 바로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니 작가의 팬이 되지 않고는 베길 재간이 없었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 166p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 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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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소믈리에 - Novel Engine POP 하루치카 시리즈
하츠노 세이 지음, 송덕영 옮김, 탄지 요코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7.6






 전편을 무지 재밌게 읽었는데 그게 벌써 3년 전 얘기다. 그때는 시리즈 2권이 벌써 출간됐다는 게 그렇게 기뻤는데 생각보다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미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종영됐고 생각보다 흥행은 덜 됐다고 하는데... 어쨌든 1권을 읽을 때와는 여러모로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전편이 유독 잘 써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감성에 변화가 생긴 건지 이번 2권은 유난히 잘 안 읽혔다.

 2권의 페이지가 지지부진하게 넘어간 건 방금 언급한 전자와 후자의 요소가 모두 기인한 탓일 듯하다. 2권은 1권보다 변화가 좀 가미됐는데, 1권은 매 에피소드가 동료 부원을 모집하는 서사의 단편 추리극이었다면 2권은 고등학교 취주악부를 배경으로 한 일상물의 성격이 한층 더 부각됐다. 크게 일상물, 추리물의 특징이 병행하는 건 동일하지만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는데 개인적으로 2권의 변화는 약간 취향을 벗어난 감이 있었다. 1권을 읽고 바로 읽었다면 모를까, 오랜만에 읽었는데 생각보다 추리/미스터리의 비중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몰입에 지장이 있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3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간 여러 책을 읽었으니 감성에 변화가 생긴 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은 다분히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넘길 여지가 있겠으나 한편으론 2권의 자체적인 완성도가 1권에 미치지 못한 것도 강조해야겠다.

 '하루치카' 시리즈의 매력은 거의 유례가 없는 수준의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 단편 추리극 형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취주악부나 보문관이란 키워드가 묻히기도 했는데 그런 건 어찌 돼도 상관없을 정도로 추리극 자체가 워낙 밀도가 있어서 그다지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함이, 각 요소가 묘하게 따로 노는 시리즈의 특징이 2권에서도 반복되는데 심지어 추리극의 밀도가 심심해지기까지 하니 감흥이 식을 수밖에 없었다. 표제작인 '첫사랑 소믈리에'는 그래도 좀 놀라웠지만 그 전의 에피소드들은 1권이 재밌었다는 걸 잊을 정도로 평이했다.


 그래도 나는 시리즈 3권을 읽을 테고 최종적으로는 애니메이션도 보게 될 테지만, 1권을 읽을 때까지는 그 '고전부' 시리즈의 아성을 위협할 시리즈라고 점쳤었기에 2권의 갑작스런 감상의 변화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생각해보니 '고전부' 시리즈는 일상물이지만 엄연히 고전부라는 배경의 특수성과 분위기를 잘 살려냈기에 아무래도 그 시리즈와 비교를 했던 건 내가 너무 과했던 건 아닌지 조금 반성하기까지 했다. 이거 원, 3편은 조금 더 일찍 읽든가 해야지.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514509591

 이건 전편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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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1 달기지 살인사건 - 달기지 알파 1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1
스튜어트 깁스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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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추리소설과 SF소설을 선호하는 나에게 있어 더없이 눈길을 끄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달기지에서 살인사건이라니. 누군가는 '달기지에서까지 살인이야? 인간들 너무하네, 진짜.' 하고 탄식했는데 듣고보니 확실히 막장인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기어코 달기지에서도 살인을 저지른단 말인가. 작품은 꽤나 유쾌한 필치를 자랑하지만 실은 되게 무시무시한 상황이기도 했다.

 더욱 무시무시한 건 달기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기지의 대장이 이 사건을 단순 사고로 처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달기지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장소로 그려진다. 이는 곧 여론 문제로 달기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으로 범인에겐 대단히 유리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의 생전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주인공이 고군분투한다는 게 본작의 내용이다. 근데 유일한 목격자가 하필 미성년자라서 기지 사람들은 주인공의 주장을 귓등으로만 듣는데...


 중대한 발표를 앞둔 박사가 돌연 홀몸으로 우주복을 달기지를 나가 사망한 사건. 사고이거나 자살이거나 교묘한 살인사건일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사건을 파헤치려는 주인공에게는 모두가 비협조적이고 단서는 극히 적다.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까? 홍보와는 달리 삶의 질적인 부분에선 이래저래 불편하기 짝이 없는 기지의 환경 때문일까? 기지에 모인 박사와 여행객 사이의 트러블이 원인일까? 소설은 모든 것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의 수를 찬찬히 더듬어본다.

 아이가 주인공이고 청소년 대상으로 집필된 작품이긴 하지만 추리소설로써 꽤나 인정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무려 에드거상 최종후보(청소년소설 부문)에 오르기도 했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시리즈의 후속작까지 마저 읽고 평가하고 싶은 심정이다. 기대가 지나쳤는지 전개가 꽤 지루했고 설정의 스케일에 비해 사건의 양상은 단순했던 게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지막 반전과 결말은 인상적이었는데 그 지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뜬금없는 경향이 없지않아서 짜임새가 그렇게 끈끈하단 느낌은 못 받았다. 배경이 우주라서 나름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글쎄... 퍽 신선했다만.


 청소년 소설로써는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갈수록 예전만큼 청소년 소설을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게 됐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활극은 가슴 떨리는 구석이 있다. 아이들의 말이라고 어른들이 믿어주지 않는 상황은 읽는 입장에서 똑같이 억울하고 그 억울함을 발판 삼아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통쾌한 등 소설은 필치만큼이나 유쾌하게 결말을 냈다. 결말을 보니 역시 후속작이 있구나 싶었는데 - 실은 등장인물 소개할 때부터 2권의 존재를 말했다. 원래 원서도 그런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출판사가 설레발을 치는 건지... - 다음 권에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잠재력이 있는 설정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조만간 2권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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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의 우울
곤도 후미에 지음, 박재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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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1






 개를 비롯해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추리소설에서 개가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하면 약간 걱정이 된다. 그런 작품들은 으레 개에게 탐정 역할을 맡겨서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거나 혹은 너무 제한적이라서 생각보다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예 개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의 경우에는 너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또 너무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됐다는 생각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곤도 후미에의 <샤를로트의 우울>은 개가 등장하는 일상 추리소설이다. 전직 경찰견 출신의 샤를로트를 기르게 된 부부의 이야기인데 상당히 일상적이면서도 사소한 미스터리의 그늘을 잘 다룬 작품으로 특히 두 가지 의미에서 괜찮았고 또 힐링이 됐다. 우선 샤를로트가 경찰견 출신이라지만 이게 작품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샤를로트는 경찰견이었던 시절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서 샤를로트의 활약은 기껏해야 이상 행동을 보여 주인 부부에게, 나아가 독자에게 미스터리의 그늘을 감지하게 해주는 정도가 전부다.

 이런 사실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샤를로트의 활약은 작품 분위기나 주제의식과도 잘 맞았다. 개를 과도하게 인간의 입맛에 맞게 캐릭터성을 부여하지도 않고 대신에 인간이 개를 한 마리의 독립된 생명체로서 존중하는 듯한 작가의 태도와 말이다.


 이 소설은 엄밀히 말해 추리나 미스터리가 주를 이룬 소설이라 보기에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개가 탐정 역할을 맡거나 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개와 함께하는 반경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제한적인 측면이 아주 없지 않았다. 물론 그 자체가 비할 데 없이 매력적이긴 하나 조금이라도 스케일이 있는 사건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시시하게 느껴지는 내용일 것이다.

 그럼 이 소설에서 주를 이룬 요소는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개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근래 접한 창작물 중에 이 정도로 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었나 싶은데 한 사람의 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행복한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작품의 완성도며 추리소설 특유의 기발함은 제쳐두고 순전히 개에 대한 묘사 때문에 이 작품을 좋다고 말할 사람이 많으리라 본다. 개를 키워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작가의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샤를로트와 함께하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며 대사가 그렇게 감성 어리고 마음을 울릴 수가 없으니.


 단순히 개에 대한 묘사뿐만 아니라 추리소설로써도 나쁘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여느 추리소설에 비해 스케일이 작다는 거지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답게 나름 할 수 있는 선에서 준수한 미스터리를 그려냈다. 가령 작중에선 개에게 해코지하거나 자기 뜻대로 다루려고 하거나 혹은 자기 이익 때문에 개를 도구처럼 대하는 사람이 등장해서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도 컸다. 사실상 형사 사건이라면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개를 대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심리라든가, 미묘하게 굴절된 애정, 그리고 개에 대한 남모를 감정이 다뤄진 등 반려견과의 생활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추리소설의 가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작품이었다.

 개를 비롯해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대체로 그런 작품 기저에 흐르는 동물에 대한 감정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이 느껴지기만 한다면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도 일단 읽겠다고까지 생각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 <샤를로트의 우울>처럼 개에 대한 사랑이 주를 이룬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근래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공감이 가고 또 힐링이 됐으니까.

개가 있으면 우울해할 수가 없다. - 65p




영리한 개는 은근히 주인을 훈련시키지. - 73p




사람에게는 그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칭찬하는 습관이 없다. 나쁜 일을 했을 때만 꾸짖고, 얌전히 있을 때는 내버려두기 십상이다.

그러면 개는 얌전해지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나쁜 행동을 했을 때만 반응해주기에 장난이나 짖는 습관이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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