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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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6







스포일러 있음



 '반전이 있다'라는 말이 그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경우가 있겠는데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반전의 경우의 수가 극히 한정적이라 뻔히 보였던 게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반전이 없으면 이 작품이 지금 우리 세대까지 읽힐 가치가 없기에 반전이 있다고 알린 서문이 어떻게 보면 참 교묘하지 않은가 싶었다. 만약 그 정도의 기대감도 심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완독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

 나치가 잠식하기 시작한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순수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뻔하디 뻔했다. 그나마 독일의 문화를 사랑했던 두 소년의 마음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이하게 다가오는 지점이겠는데 작품이 집필된 게 오래 전이라 흡입력은 없이 고루하게 읽혔다. 분량이 100페이지를 조금 넘어가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생각보다 읽는 시간이 더뎠다. 내가 독일 문화 전반에 무지해서 그런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작품에 있어서 개성이라 여길 부분이다 보니 이 점은 좀 아쉽다. 취향을 탈 것이란 생각과 더불어 분량이 짧다고 가볍게 접근할 만큼 진입 장벽이 낮진 않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다.


 두 주인공, 특히 화자의 친구인 콘라딘의 위악적인 면모는 이 작품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글쎄, 콘라딘이 위악자였는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듯하다. 결과적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돼 처형됐다지만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부터 암살을 결심했는지는 화자로선, 그리고 독자로선 알 길이 없으니까. 화자인 한스가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든 그 진심 어린 듯 히틀러를 지지했던 편지의 내용이 정말 사실 그대로의 감정이었는지 모르는 일이잖은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과 콘라딘의 최후를 설명하는 한 줄의 문장 외엔 없다. 물론 여기서 반전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면 처음부터 콘라딘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친구를 구했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실제로 '반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며 읽은 나는 그 가능성을 내내 떠올린 채 읽었기에 막상 막판의 반전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냥 역시나 싶었다. 반대로 콘라딘이 위악자가 아니었더라면 내겐 그게 더 반전이었을 것이다. 그래, 괜히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사실은 콘라딘이 처음부터 위악은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저 혼자 망상을 떠들고 있는 게 아니다. 오죽 반전이 놀랍지 않았으면 이러고 있겠는가? 여백의 미가 출중한 것이 이 작품의 여운이자 장점일 텐데 '반전이 있다'며 해석의 재미가 일부 제한된 것은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하는 게 나만의 과한 반응이려나?


 두 인물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로써나,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는 이야기로써나 간결한 분량을 제외하면 그렇게 회자될 만한 작품은 아닌 듯한데 홍보가 교묘해서 사람들한테 의외로 먹혔던 게 아닐까 싶다. 만약 이 책의 서두가 서두가 아니라 후기로 배치됐다면 이 작품의 인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내 경우엔 애당초 완독도 하지 못했을 테니 해당 서문의 내용 또한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체로 스포일러긴 하나 '반전이 있다'고 언급한 서두는 꽤 교묘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노린 것이라면 얄팍하지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어쨌든 완독은 하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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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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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5







 예전에, 특히 독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때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설레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독서 경험이 전무했던 때엔 무심코 집어든 책이 뭐든 간에 감탄했을 확률이 높고, 또 그 작품을 하나의 독서 기준에 포함시킨 채 지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단순히 책을 두 번 읽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굉장히 부끄러움을 수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둠 속의 기다림>은 겉보기엔 소름 돋는 설정의 소설일 것 같다. 시각장애인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살인용의자가 숨어 들어온다. 실제 시각장애인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는데 지금 보니 비할 수 없이 소름 돋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전무후무한 동거는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 오츠이치는 뜻밖에 매우 감성적인 답을 진지하게 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어둠 속의 기다림>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로써 내가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처음 읽을 당시인 8년 전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두 남녀 주인공의 심정에 퍽 공감이 가서 한껏 매료되기도 했다. 그때 적잖이 소름 돋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번에 다시 읽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 일단 가장 적응이 안 된 건 작품에 녹아있는 감성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문장도 꽤 좋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잔재주 부리지 않아 평범하게 느껴지는 정도다. 감성에 대해 자세히 말하자면 언뜻 깊은 고민이 녹아든 라이트 노벨의 작풍이 느껴졌다. 지금 스스로 라이트 노벨의 작풍을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유독 정상적인 관계 형성에 서툰 주인공이 둘이나 등장하다 보니 묘사된 심리들에서 미숙한 느낌을 없지않아 받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저런 말을 쓴 것 같다. 아무튼 두 주인공의 미숙한 심리가,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모습이 이 작품의 개성이자 강점이지만 중반부에서 이 둘의 소통과 교류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뤄져 내심 전형적으로 관계 형성에 서툰 사람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보는 듯한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대단히 관계 형성에 능숙한 사람인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말해 그건 절대 아니고;;; 다만 이 작품의 소름 끼치고 민감한 소재가,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를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 게 보는 이에 따라선 그리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단 우려가 들어 굳이 '판타지'란 단어를 써가며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두 번 읽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특히 중반부에서 둘이 조용히 스튜를 나눠 먹거나 후반부에서 같이 걷는 장면은 어지간한 로맨스 소설 뺨치게 아름답거니와 지금 봐도 멋진 장면이고 연출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미치루가 공감 능력이 남다른 걸 넘어 살인용의자 아키히로에게 일부 자애롭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니 이 역시 판타지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전근대적인 일본 특유의 무의적으로 존댓말하는 여자와 무의식적으로 반말하는 남자의 관계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였던 건 - 번역이 이상한 거야, 원래 이런 거야? - 아쉬웠다. 글쎄,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말없이도 서로 척하면 척 통하는 데가 있어 역시 로맨스 소설도 넓게 보면 판타지구나 싶기도 했다.


 추리소설로써의 <어둠 속의 기다림>은 내용에 비해 분량이 약간 긴 편이지만 돋보이는 설정을 준수하게 감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결말에서의 반전은 비교적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개인적으로 결말의 연출도 약하다고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꼼꼼한 복선과 더불어 초반에 언급한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란 전개는 몇 번을 생각해도 대담해서 만만히 볼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 입장에선 이런 걸 생각한 자신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막막했겠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이유는 전개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들이 잘 녹아든 점을 높이 사는 것에 있다. 처음엔 혼자 사는 시각장애인의 생활을 아웃사이더의 자발적인 고립이란 대목에 대입시킨 게 좀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회사 생활에서 겉돈 아키히로의 등장에 힘입어 주제의식이 심화돼 절묘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연결시키네? 하고. 이건 작중의 상황이나 감성의 어색함으론 덮을 수 없는 지점이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 추리소설이 소설로써 보다 인상적이게 되는 순간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개입될 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소통 방식엔 판타지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자의든 타의든 여러 요인으로 인해 관계 형성의 벽에 막히거나 좌절한 사람들이 매우 순수하기 짝이 없지만 재도전을 하는 과정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본작의 사건이나 전개가 꽤나 적합한 양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었다.


 다시 읽다보니 이 작품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몰입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마주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초반엔 내가 옛날엔 뭘 보고 소름이 돋았었냐며 얼굴이 화끈해질 뻔했는데 끝까지 읽으니 소름이 돋을 만했던 부분이 나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실망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래 두 번째 접한 책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해줬다. 책 두 번 읽는 게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는데 이번처럼 생산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p.s 이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일만 남은 것인가. 처음 읽었을 때 영화도 꼭 봐야지 했는데 어떻게 8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 본 건지...



https://cafe.naver.com/mysteryjapan/16571 

 이건 옛날에 처음 읽었을 때 쓴 포스팅. 지금 읽으니 되게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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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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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작년에 가장 눈길이 간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도로시 죽이기>였다. 보통 영화가 동시 개봉하는 경우는 봤어도 책이, 그것도 추리소설이 한일 동시 출간하는 경우는 도통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첫 번째 작품인 <앨리스 죽이기>도 읽지 않았기에 더욱 신기하게 들리는 일이었다. 그 시리즈가 동시 출간될 정도로 재밌었단 말인가?

 이후로 '죽이기' 시리즈를 차례로 접한 나는 시리즈 최신작이 동시 출간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대감이 한껏 고조된 채 이 작품 <도로시 죽이기>를 읽게 됐다. 그렇게 기대를 너무 고조시켰던 탓일까. 모티브가 되는 원작을 하드코어한 추리소설과 SF적 세계관에 완성도 있게 접목시킨 시리즈의 별난 개성은 이 작품에선 완벽히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최근 기시 유스케의 <미스터리 클락>을 읽으면서도 느낀 건데, 추리소설이 지적 유희를 추구하는 장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완벽하게 어려우면 독자 입장에서 벅차기 십상이란 것이었다. <미스터리 클락>이 순수하게 트릭의 어려움이었다면 <도로시 죽이기>는 세계관의 어려움 때문에 벅찼다. 아마 이 작품을 펼쳐드는 독자라면 적어도 <앨리스 죽이기>는 읽은 독자일 터다. 즉, 어느 정도 기존 설정은 숙지됐을 텐데 그렇다고 이 작품을 얕봐선 안 될 것이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세계관의 전모가 파악하기 힘들었던 적은 해당 시리즈에서 이 작품이 처음이다. 1편의 '이상한 나라'는 원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서 어려울 게 없었고 - 그래서 재밌었고 - 2편 <클라라 죽이기>에서의 '호프만 우주'는 생소해도 몰입하고 재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면 이번 '오즈의 나라'는 진입장벽이 꽤 높았다. '오즈의 마법사'가 15편이 나왔을 줄이야, 그리고 속편의 세계관을 <도로시 죽이기>가 다 아우른다니...

 이번에도 생소한 세계라서 작가가 얼마나 재창조를 잘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둘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으면 진심으로 책 두 권을 동시에 읽는 피곤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즈의 나라'의 모순과 딜레마는 <차일드44>의 소련 사회 연상될 정도인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빌과 지구의 이모리의 번갈아 진행되는 시점과 정신없는 추리까지 더해져 상당히 골치 아팠다. 이번 <도로시 죽이기>의 분량도 전편들과 분량이 같던데, 혹시 그 분량을 꼭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면 더 길게 써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금방 '오즈의 나라'가 <차일드44>에서의 배경인 소련이 연상된다고 했는데 지금 분량으로는 그 좋은 소재의 매력이 다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참 아쉬웠다. 분량을 늘리거나 아니면 다른 동화를 소재로 했더라면 보다 좋은 작품이 됐을 것 같다.  


 특이하게 첫 번째 작품 <앨리스 죽이기>를 읽을 때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외적인 측면에서의 잔인함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런 종류의 잔인함은 후속작 <클라라 죽이기>에서도 거의 그대로인데 내적인 잔인함, 천연덕스런 잔인함까지 배가돼 더욱 수위가 높아졌다. 이번 <도로시 죽이기>는 전작의 천연덕스런 잔인함이 더 강조된 느낌이었다. 어째 갈수록 외적 잔인함은 유지되면서 내적 잔인함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시리즈의 강점이랄 수 있는 인물들의 맛이 간 대화도 더 맛이 가서 머리 지끈거리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화를 소재로 했다지만 너무 잔인하게 재해석해 좋게 말하면 뭐 이런 짓궂은 작가가 다 있을까 싶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원작인 <오즈의 마법사>는 물론이고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데뷔작이라는 <장난감 수리공>을 읽고 나서 접해야 더 감흥이 일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선행 학습이 없으면 얘기할 거리가 없는 작품처럼 들릴 테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긴 했지만... 시리즈 전 작품 모두를 단기간에 접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연결되는 스토릴 감상할 수 있었기에 그리 나쁜 인상은 또 남진 않았다. 이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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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세계를 정복한 작은 게임
박스 브라운 지음, 김보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7.6







 단순함과 중독성, 그리고 획기적인 게임성으로는 단연 <테트리스>만한 게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주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들어 도대체 이런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해한 적도 있었다. 그 궁금증을 이 만화가 풀어줄 것 같아 읽어봤는데 기대한 것과는 양상이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유익했고 분명 만화라는 매체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일 테니 그렇게 실망스럽진 않았다.

 이 작품은 단순히 <테트리스>의 탄생 비하인드 그 이상의 것을 다룬다. 우리가 놀이나 장난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곤 하는 게임들이 실제론 철학적인 사유와 비즈니스적인 속내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작품임을 인식시켜준다는 점에선 일단 이 작품은 합격점 안에 들어섰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인들이 그린 벽화에서 우리 인간들이 옛날부터 유희 본능이 있다며 시작되는 도입부는 거창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윽고 닌텐도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흥미로워진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테트리스>가 어떻게 탄생했고 우리가 그 게임에 왜 열광하게 됐는가에 관한 이야기들, 두 번째는 우리가 아는 <테트리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고 지적 재산권 소동의 양상은 어떠했는가 살펴보는 이야기였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철저히 첫 번째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에게 두 번째 이야기를 더 많이, 그리고 지난하게 하고 있는 작품은 꽤나 버겁게 읽혔다. 글쎄, 이건 <테트리스>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라기 보단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가 라는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정독하면 어떻게든 이해되긴 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분명 만화의 특성을 살려 전달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그림은 깔끔하고 스토리는 특별히 모난 구석은 없다. 하지만 이 점은 실화라는 소재에 갇혀 사실 관계만을 정확히 다루려는 후반부일수록 더욱 사무적으로 읽혀 상대적으로 스토리를 감상한다는 쾌감은 덜한 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초반부에서의 벽화 얘기는 인상적인 해석이라 그런 작풍이 주를 이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더라면 분명 흥미로웠을 것이다.

 내가 무지한 건지 아니면 서구의 만화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은 건지... 아마 둘 다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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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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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시 유스케의 이 '방범탐정 에노모토' 시리즈는 과작으로 유명한 작가의 보기드문 시리즈물로 첫 작품 <유리망치>부터 빠짐없이 읽고 있다. 오로지 밀실만을 컨셉으로 한 시리즈란 것이 특이하고 볼 때마다 선보이는 기가 막힌 트릭들, 그리고 두 캐릭터의 캐미가 재밌어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가 보장된 시리즈였었다.

 그렇게 밀실이란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리즈에 나는 늘 경의를 표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너무 멀리 갔다. 트릭이 너무 전문적이라서 지적 쾌감이 솟기에 다소 어려움이 따랐던 탓이다. 에노모토가 용케 범인을 맞추고 트릭을 밝혀내도 독자로선 따라갈 방도가 없으니 대단한 걸 넘어서 비현실적이란 느낌만 들었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전문성이야말로 취재하고 공부한 걸 모조리 작품에 쏟아붇는 기시 유스케다웠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명백히 과했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것도 좋고 치밀한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해서 추리하기 힘들다면 반전의 쾌감은 덜할 수 있으니까. 세상에,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트릭이 어렵다고 실망스럽기는 또 처음이네.



 '완만한 자살'


 이건 드라마로 봤던 에피소드다. 이번 수록작들 중 가장 무난하고 쉬웠는데 심리적인 맹점을 노린 트릭은 기발했지만 해결에 이르는 과정은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에노모토 혼자만 나와서 그랬나? 어쨌든 트릭의 규모를 생각하면 40페이지가 살짝 넘는 분량이 딱 적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거울나라의 살인'


 급격히 난이도가 올라가는 에피소드로 수록작 중에 가장 영상화가 궁금한 트릭을 선보인다. 솔직히 그림으로 봐도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아오토 준코의 귀엽기 이를 데 없는 서술이 나오지 않았으면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다. 결말은 너무 뻔해서 긴장감도 하나 없었고.



 '미스터리 클락'


 표제작이자 분량도 가장 긴 중편. 중심이 되는 트릭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계관의 살인>이 연상됐는데 기시 유스케는 좀 더 복잡하게 썼다. 굳이 이렇게까지... 대단하긴 한데 어느 순간부터 역시나 따라가기 벅찼다. 그래도 중반부까지 피해자의 배우자가 총을 들면서 범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다 쏴버리겠다고 해 용의자들끼리 추리하고 누구 한 명을 몰아붙이는 막장스런 전개는 재밌었는데 후반부부터 흥미가 급감해서 다소 아쉬웠다. 그 전개가 최선이었으려나?

 개인적으로 밀실보다 초반에 추리소설가들끼리 얘기하는 게 더 재밌었는데 가끔 작가의 셀프 디스적인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 되게 웃겼다. 가령 같은 반 학생을 거리낌 없이 몰살하는 내용은 싫다거나, 아니면 밀실 트릭은 어느새 글로 묘사하기 힘들어서 영상은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는 것 등이...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


 사람들이 이 마지막 작품이 가장 괜찮았다는데 난 괜찮고 안 괜찮고 자시고 가장 가독성이 떨어져서 좀 의아하게 들렸다. 다시 읽어봐야하나? 밀실 트릭의 역발상을 꼬집은 건 좋지만 전개 자체가 너무 흡입력이 떨어져서... 만약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작품을 가장 중점적으로 읽어야 할 듯하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뇌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요.

내가 지금 보는 건 있는 그대로, 날 속일 수 없다는 생각뿐이죠. -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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