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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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시 유스케의 이 '방범탐정 에노모토' 시리즈는 과작으로 유명한 작가의 보기드문 시리즈물로 첫 작품 <유리망치>부터 빠짐없이 읽고 있다. 오로지 밀실만을 컨셉으로 한 시리즈란 것이 특이하고 볼 때마다 선보이는 기가 막힌 트릭들, 그리고 두 캐릭터의 캐미가 재밌어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가 보장된 시리즈였었다.

 그렇게 밀실이란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리즈에 나는 늘 경의를 표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너무 멀리 갔다. 트릭이 너무 전문적이라서 지적 쾌감이 솟기에 다소 어려움이 따랐던 탓이다. 에노모토가 용케 범인을 맞추고 트릭을 밝혀내도 독자로선 따라갈 방도가 없으니 대단한 걸 넘어서 비현실적이란 느낌만 들었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전문성이야말로 취재하고 공부한 걸 모조리 작품에 쏟아붇는 기시 유스케다웠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명백히 과했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것도 좋고 치밀한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해서 추리하기 힘들다면 반전의 쾌감은 덜할 수 있으니까. 세상에,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트릭이 어렵다고 실망스럽기는 또 처음이네.



 '완만한 자살'


 이건 드라마로 봤던 에피소드다. 이번 수록작들 중 가장 무난하고 쉬웠는데 심리적인 맹점을 노린 트릭은 기발했지만 해결에 이르는 과정은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에노모토 혼자만 나와서 그랬나? 어쨌든 트릭의 규모를 생각하면 40페이지가 살짝 넘는 분량이 딱 적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거울나라의 살인'


 급격히 난이도가 올라가는 에피소드로 수록작 중에 가장 영상화가 궁금한 트릭을 선보인다. 솔직히 그림으로 봐도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아오토 준코의 귀엽기 이를 데 없는 서술이 나오지 않았으면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다. 결말은 너무 뻔해서 긴장감도 하나 없었고.



 '미스터리 클락'


 표제작이자 분량도 가장 긴 중편. 중심이 되는 트릭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계관의 살인>이 연상됐는데 기시 유스케는 좀 더 복잡하게 썼다. 굳이 이렇게까지... 대단하긴 한데 어느 순간부터 역시나 따라가기 벅찼다. 그래도 중반부까지 피해자의 배우자가 총을 들면서 범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다 쏴버리겠다고 해 용의자들끼리 추리하고 누구 한 명을 몰아붙이는 막장스런 전개는 재밌었는데 후반부부터 흥미가 급감해서 다소 아쉬웠다. 그 전개가 최선이었으려나?

 개인적으로 밀실보다 초반에 추리소설가들끼리 얘기하는 게 더 재밌었는데 가끔 작가의 셀프 디스적인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 되게 웃겼다. 가령 같은 반 학생을 거리낌 없이 몰살하는 내용은 싫다거나, 아니면 밀실 트릭은 어느새 글로 묘사하기 힘들어서 영상은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는 것 등이...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


 사람들이 이 마지막 작품이 가장 괜찮았다는데 난 괜찮고 안 괜찮고 자시고 가장 가독성이 떨어져서 좀 의아하게 들렸다. 다시 읽어봐야하나? 밀실 트릭의 역발상을 꼬집은 건 좋지만 전개 자체가 너무 흡입력이 떨어져서... 만약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작품을 가장 중점적으로 읽어야 할 듯하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뇌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요.

내가 지금 보는 건 있는 그대로, 날 속일 수 없다는 생각뿐이죠. -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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