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특별판 9 Chapter 17, 18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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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리메이크작이나 영화가 아닌 순수하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결말까지 읽은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처음엔 그 적잖은 분량이 부담스러웠지만 1권을 다 읽고선 결말을 보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힘들겠다 싶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이런 작품이 있었다니. 이건 만화 그 이상의 작품이다.

 만화라는 장르를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통상적으로 만화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와는 이래저래 결이 달랐다. 다름이 아니라 <몬스터>가 연재 작품이란 것에 깜짝 놀랐는데 이유는 작품 내내 펼쳐진 어마어마한 빅픽처와 서두르지 않는 전개 때문이었다. 이건 흡사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내심 이 작품을 연재 당시가 아니라 이렇게 한꺼번에 읽어내려간 것이 다행이라 생각됐다. 철저히 플롯을 중시하는 터라 중심 인물과 시간대가 자유로이 바뀌는 이야기를 매주 기다리면서 읽어야 했다면 감질이 나서 혼났거나 아니면 지금 같은 감흥이 일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이처럼 소설이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전개 양식은 이 작품의, 나아가선 우라사와 나오키의 약점 아닌 약점이겠는데 나처럼 특별판으로 접하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은 점이었다. 아니, 그야말로 가장 환영할 만한 점이라 해야겠지.


 이 작가의 사전에는 엑스트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분량과 무관한 엄청난 비중과 인상을 남겨준다. 스쳐지나가거나 심지어 악역한테도 입체성을 부여해 다채로운 드라마를 선보이는데 약간 질질 끈다는 느낌도 들었으나 그 하나 하나의 묘사가 완성도랄지 아니면 소위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적절해 결코 불만스럽지 않았다. 주역급 인물들도 꽤 많아 주위가 흐트러질 법도 했는데 한 명 한 명이 개성이나 역할이 특출하다 보니 퇴장함과 동시에 재등장이 무척 기대됐다. 특히 룽게 경감! 등장할 때마다 풍겼던 그 아우라와 활약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엔 작품의 제목이자 중요한 소재인 '몬스터'가 약간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독이 사회주의의 리더를 만들고자 어린이들을 상대로 비인간적인 실험을 거듭하다 탄생하게 된 요한이란 존재를 상징하는 단어인데 흔히 감정이 없는 듯한 범죄자가 판을 치는 요즘 시점에서 말하자면 요한은 지능과 통찰력이 뛰어날 뿐 묘사되는 것처럼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작중에서의 괴물이니 악마니 하는 게 약간 유난을 떠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물론 독일이나 체코란 배경을 활용한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맞물려 상당히 무겁게 다가오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괴물이란 키워드는 맥거핀인 것만 같았다. 그보다 내가 더 궁금해했던 건 과연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선인인 텐마가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는답시고 요한을 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렇게 요한의 정체를 맥거핀으로 여겼지만 중반부부터 이름이나 유년기에 받는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품의 주제의식 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다. <몬스터>는 상상 그 이상으로 요한의 정체나 근원, 그리고 태생 등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감정이나 정체성을 부정당한 인간의 육신에 어떤 괴물이 들어서는지 정말 다각도로 바라보는데 곱씹어 보니 그 긴 분량 동안 주제의식이 흐트러지거나 흔들린 적이 없어 정말 작정하고 잘 그린 철학적인 만화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말에 이르면 오히려 텐마의 여정의 마무리야말로 맥거핀에 더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텐마가 요한을 쏠 수 있느냐 그 행위 자체보단 그 행위를 단념하게 될 외부적인, 혹은 내부적인 요소 등에 집중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싱겁게 마무리됐단 생각도 드는데 가장 커다란 논쟁인 사람의 목숨은 평등한가에 대한 답이 흐지부지된 게 아무래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선 답을 유보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째 텐마나 요한을 포함한 모든 인물이 정말 운이 나쁘게 시대의 그림자에 휘말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없이 인간적인 해석이자 결론이지만, 생명의 무게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극렬한 철학적인 논쟁을 기대했던 나로선 알게 모르게 갈증이 남기도 했다.


 기대한 지점과는 약간 다른 형태긴 했지만 결말과 그에 따른 연출까지 모든 것이 파격적이고 깊이 있는, 한마디로 괴물 같은 작품이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의 애니메이션도 무척 괴물 같은 작품이라 하니 기대된다. 특히 우리나라 더빙 버전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 유튜브에서 룽게 경감의 더빙을 살짝 접해보니 사람들의 추천의 이유가 능히 짐작이 갔다. 애니메이션으로도 꼭 봐야지.

인간은 감정을 없앨 수 없소. 감정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거요. 마치... 내 앞으로 보낸 누군가의 편지가 수십 년 후에나 도착한 것처럼... - 제18장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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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자크 상페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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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이 책을 문학이라 해야 할 것인지, 비문학으로 정의할 것인지 조금 헷갈린다. 가상의 주인공이 편지로써 친구에게 뉴욕에서의 일상을 적어 보내는 내용인데 주인공이 이름만 다르지 그냥 장 자끄 상뻬 본인인 것 같아서... 그래서 실화라고 생각하고 읽어나갔다. 이 정도면 실화라 생각해도 무방하겠지.

 <뉴욕 스케치>를 간단히 말하자면 장 자끄 상뻬가 그린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다. 프랑스인이 뉴욕에 가서 겪은 갖가지 일상 속 사건들, 소소한 문화 충격에 대해 그리고 있는데 방금 언급한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입장에서 비슷한 포맷이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문화 충격은 언제 어느 때 접해도 신선하고 재밌으니까.


 아무래도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독자는 크게 1. 프랑스인 2. 장 자끄 상뻬의 팬 3. 뉴욕에 가거나 살 예정인 사람 정도일 텐데 나는 2번과 3번에 해당된다. 3번에 대해 말하자면 5월에 갈 예정인 뉴욕 여행은 정말 얼떨결에 결정이 난 거라 지금 미리부터 뉴욕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이 책을 읽은 것이고, 2번의 경우엔 <꼬마 니꼴라>나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등을 통해 좋아하게 된 장 자끄 상뻬라 이래저래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시간이 좀 지난 탓도 있겠지만 너무 짤막하고, 더 나쁘게 말하면 수박 겉 핥기 수준이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할 정도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프랑스인의 시선이라 그런지 그리 와 닿지 않은 것도 있었고. 상뻬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책의 분량이 지금의 3분 1, 거의 4분의 1 정도로 줄어들 텐데 그림에 비해 텍스트가 상대적으로 빈약해서 정말 그림만 보고 책을 덮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솔직히 거의 그림책이나 다름없었지.


 그래도 일부 재밌고 소소한 장면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나는 게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일주일도 안 지났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뉴욕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요즘 자주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책을 읽을 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뭐, 뉴욕 맛보기 정도라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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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를 위하여 1
하가 글.그림 / 발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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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만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처럼 짧게 완결이 나는 작품을 선호한다. 만화는 길어지는 만큼 늘어져서 읽는 입장에서 감질맛이 나고 또 여간 뛰어난 작가가 아니고서야 꼭 한두 군데는 빈틈을 보이며 흐지부지 완결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반면 장기 연재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작가 스스로 생각한 분량 안에서 끝내는 작품은 길이를 막론하고 그만큼 깔끔하고 여운이 짙을 가능성이 높다. 소설도 단편을 쓰기가 의외로 쉽지 않은 것처럼 만화도 한두 권 안에 끝나게끔 분량을 잡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 쉽지 않은 걸 해내는 작품이 많진 않아도 꼭 있다.

 <시타를 위하여>가 단행본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반색한 독자 중 한 명임에도 이렇게 책장을 넘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가급적 시간을 두고 기억이 가물해질 때에 읽고 싶었던 것뿐인데 덕분에, 어쩌면 계획대로 새로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인상만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상대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러운 장면도 많았고 주인공과 시타 말고도 람록처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는 등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으론 단행본으로 옮기면서 사라지거나 혹은 기대했던 부분이 덜 충족된 건 약간 불만이었는데, 이를테면 매 화마다 '작가의 말'로써 인용되던 시구나 격언들이 통째로 생략된 게 그랬다. 연재 때 접한 글들이 각 화의 특징적인 감정선을 잘 요약하고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었기에, 또 그 글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것도 있었기에 - 박준의 시 '꾀병'이 기억난다. - 작가의 감각이나 수준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요소가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 단행본임에도 정말로 작품의 본편만 수록된 건 의외였는데 작가의 소감이라거나 후기,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이 전무해서 단행본을 수집했다는 것 이상의 만족도는 딱히 없었던 것도 걸렸다. 엽서가 부록됐다거나 이야기의 외전이 수록된 것도 좋지만 쿠마리 같이 흔치 않은 소재를 어떻게 작품에 녹이게 됐는지 같은 내용이 없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연재 당시에 작가가 후기로써 밝힌 내용이었을까 싶었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단행본에 실어주면 좀 어떤가 싶어서...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작품의 핵심 소재인 쿠마리는 지금 봐도 이색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이 세상 모든 문화와 종교는 존중을 받아야겠지만 그 안에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희생이 뒤따른다면 태도를 달리 해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아이를 여신으로서 떠받들다가 생채기가 나거나 혹은 생리라도 하면 더럽혀졌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내쫓는 건 전근대적인 것을 넘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지금은 이런 실정이 많이 나아져서 여자아이가 쿠마리에서 물러날 때를 대비해 일반적인 교육이나 세상 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실제로 이 작품에서처럼 쿠마리에서 쫓겨나 비명횡사하거나 매춘부로 전락한 여성들이 있었단 걸 생각하니 내가 다 거북해졌다.

 시간과 운명까지 거스르는 사랑 이야기라고 요약하면 의외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원래 로맨스는 서사의 특이함보다 감정 묘사의 진지함에 주목하는 장르다. 그런데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결코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에게 생소한 네팔의 문화를 적극 활용해 대단히 인상 깊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연재 만화치고 분량이 짧은 것마저 강렬하고 여운도 있어 욕심 부리지 않은 적절한 마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듣기론 웹툰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이라 원래 이 정도 분량이 전부였다곤 하지만 욕심을 부려 장기 연재까진 아니더라도 이보단 더 분량을 늘였을 법도 한데 작가가 신인임에도 장인 정신이 있지 않았냐며 감탄스러웠다.


 작가의 작품은 <시타를 위하여>말고도 네이버에서 연재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다른 곳에서 연재한 <킹스메이커>가 있는데 전자는 연재 당시에 봤고 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 그 작품이 BL이라서... 퀴어 영화는 봤어도 BL은 한 번도 읽지 않아서 고민이 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보게 될 것 같다. 데뷔작을 이렇게 잘 그렸는데 신작은 더 잘 그리지 않았겠어...?

심장이 뛰면, 피가 온 몸을 돌고, 몸 밖으로 새 버리면,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그저 아프고 슬픈 거예요. - 1권 1화




어떻게든 내일은 오고, 살고 싶어지는 이유는 새로 생겨요.

움츠러들고 있기에는 세상이 너무 기막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2권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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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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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읽고 나서, 어렸을 때 한 번 읽고 기억에서 잊혀진 <죄와 벌>과 비교적 최근에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이 떠올랐다. 죄를 범한 자는 설령 벌을 받지 않더라도 언제 들킬 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막대한 비밀을 가진 중압감과 충동을 안고 살아야하므로 죄를 범한 그 순간부터 죗값을 치룬다는 말이 있다. 우발적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는 불안한 비밀은 열두 살 소년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일 터다. 물론 그 소년보다 더 어린 피해자의 죽음에 비하면 그런 불안한 비밀 같은 건 어리광을 부리는 것과 다름없지만...

 굳이 추리소설로 명명하지 않아도 이와 비슷한 서사를 갖춘 작품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당장 내가 초장에 언급한 두 작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추리소설 중엔 '도서 추리'라고 해서 살인을 저지른 화자가 어떻게 발각당하는 것인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가는 심리 묘사에 주력하는 하위 장르가 있긴 한데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란 작품은 그 장르와도 살짝 다르다. 이야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추리소설보단 심리 소설에 더 가깝다. 주인공이 범죄를 저질렀을 뿐이지 이야기 자체에 추리소설의 문법을 기대하고 읽으면 예상보다 무겁고 느릿한 진행에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평이하게 읽힌 작품이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분량도 짧고 이야기의 윤곽도 단순한 편인데 대게 이런 소설은 대략의 스포일러를 당하고 봐도 상관 없을 만큼 묘사를 비롯한 과정이 좋다거나 혹은 생각보다 더 단순한 나머지 일절의 스포일러도 당하면 안 되는 두 가지 분류로 나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내겐 후자의 경우로 다가왔는데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1부라면 몰라도 2부까지 스포일러를 당했던 게 정말 치명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서술에 있어 가식이 없는 점이 특징인 프랑스 소설답게 열두 살 살인자 앙투안의 심리 묘사가 무겁고 음울하고 현실적인 게 인상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껏 자신의 죄의 흔적이 남은 고향 마을을 떠났으나 순간의 실수와 우연한 상황 때문에 다시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전개는 흥미진진했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함이 전무한 이야기라 이래저래 쾌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 작품을 종류를 불문하고 그저 쾌감을 얻으려고 읽는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한 것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이 소설이 컨셉이며 감정선을 잘 유지했다는 반증일 테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작중의 심리 묘사며 전개 양식이 딱 예상대로 흘러가니 만족도가 그리 크진 않았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진실 때문에 살짝 소름은 돋았지만 그마저도 짧은 분량에 어울리는 규모의 반전이라 완전히 놀랍지 않았다. 나름 여운을 주는 마무리란 건 인정하지만 죄책감을 묘사함에 있어 끝을 보여준 <푸른 불꽃> 같은 작품이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려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소름 돋는 작품이라고만 느껴졌다. <푸른 불꽃>을 프랑스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그 작품은 심리 묘사며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도 정말 탁월했는데... 어쩌면 추리소설이란 카테고리를, 이른바 장르 소설을 읽는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이번에 읽은 작품이 지금보다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답니다....... 나 자신도 그래요....... 그리고 어느 날, 그만두게 되죠. - 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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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 그들은 왜 행복할까
유승호 지음 / 가쎄(GASSE)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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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최근 노르웨이를 다녀오고 나니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더욱 커졌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노르웨이말고도 다른 북유럽 국가도 가봤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여행 에세이는 처음 읽어본 것 같은데 내가 블로그에 쓰는 여행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읽기 전에 뭘 그렇게 낯설어했을까 싶었다. 오히려 이런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는 거의 궁극적인 이유를 이 책의 저자가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에서 '이 책은 여행자용 에세이나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다른 여행책과는 이야기의 관점이 다를 뿐 엄연히 저자가 코펜하겐에 가서 느낀 바를 담았기에 여행 에세이라 이름 붙이지 않기도 애매하다. 이 책과 가장 비슷했던 책이라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들 수 있겠는데 그 책은 덴마크인 저자가 자기 나라에 대해 얘기했고 이 책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우리나라 저자가 코펜하겐에 가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얘기한다는 차이가 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을 <덴마크 사람들처럼>과 같이 읽으면 참 좋을 듯하다. 의외로 얘기하는 내용이나 태도가 비슷한데 재밌는 건 덴마크인 저자 쪽의 태도가 더 겸손한 걸로 - 자기 나라 얘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 기억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유승호 교수가 오만하기 짝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겸손이 국가와 국민의 미덕이라 불리기도 하는 덴마크인이 상대인 지라...


 사회학 박사인 유승호 교수가 본 코펜하겐의 모습은 범상치 않다. 과연 이 사람처럼 생각하며 코펜하겐을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 생각해봤다. 물론 저자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의 생각들에서 일종의 생각하는 노하우를 찾아본다고 하면 상관없겠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람들이 여행을 두고 왜 견문을 넓히는 경험이라고 하는지 몸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간 열차를 덴마크로 가는 동안 만난 덴마크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배낭여행을 온 우리나라 여대생 민서와의 짧고 우연한 동행 속에서 - 이런 부분들이 재밌었다. 픽션과 실화의 경계에 있는 것 같아 상황이 어색해도 적당이 웃고 넘길 수 있었다. - 저자가 자연스럽게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는 게 책의 주된 내용이다. 주로 코펜하겐을 얘기함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상황도 함께 비교 분석하는 패턴이었는데 덴마크를 덮어놓고 찬양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한 게 눈여겨볼 만했다. 특히 저자는 목수와 변호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덴마크인들의 모습에서 큰 문화 충격을 받은 듯한데 의사나 법조인 같은 직종이 우리나라에서 가진 위상을 보면 저자의 심정에 그리 공감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의사나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 중에 해당 직업 의식은 둘째 문제고 그저 성공이 우선인 사람이 적잖으니까. 그런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나온다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애당초 드라마나 영화가 뭘 기준으로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답은 자명해진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나라, 양성평등이 자연스럽게 자릴 잡은 나라, 조금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하려는 나라, 일부 천재나 부자에겐 제재가 심하지만 나머지 범인과 약자에겐 자비로운 나라...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덴마크는 우리와는 정말 다른 나라다. 그래서 덴마크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부러운 걸 넘어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고 심지어는 우리나라완 환경이 너무 달라 그 나라의 장점을 현지화시킬 수 없다는 사뭇 비관적인 감상이 나올 지경이다. 이와 같은 감상에 대해서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선 국적을 떠난 개인의 믿음, 그리고 거창하지 않게 단지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실천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삶의 태도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독자를 고무시킨 바 있다.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위와 같은 고무적인 마무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어쩌면 여행이 곧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인상을 주기에 이른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어쩌면 내가 최근에 노르웨이를 다녀오고 여행기도 썼기에 유독 공감이 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책이나 매체로만 접하다가 실제로 그 나라에 가면 그 이상의 감상이 남는 법인 걸 온몸으로, 우여곡절을 거쳐 깨달았으니까. 그렇다 보니 책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다면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을 분명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적용시킬 수 있으리라.


 이 책의 저자만큼 사회학적으로 면밀히 생각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나은 여행기를 쓸 수 있는 힌트는 얻은 것 같아 유익하기 그지없었다. 덴마크에 관한 이야기도 다른 어떤 여행책에서도 접하기 힘든 저자만의 해석이 깃들었던 점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덴마크에 간다면 이 책의 내용을 꼭 되짚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973089310 


 이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고 쓴 포스팅.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도전정신은 ‘불행한 실종‘이다. - 34p




못생기고, 키 작고, 뚱뚱하고, 촌티 나고, 돈 없는 사람을 역겨워하면 내 주변에 다가오지 않아 나는 깨끗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뿌려진 과도한 항생제는 면역성을 상실한 나의 정신을 노출할 뿐이다. - 93p




나에게 계속 나쁜 짓을 하는 친구는 당연히 싫다. 그러나 나의 나쁜 짓이든 좋은 짓이든 다 좋아하고 웃는 친구를 우린 좋아할 것 같지만 그건 잠시다. 그러다 나는 내 나쁜 짓을 고칠 기회조차 잃게 되고, 결국 난 주변으로부터 외톨이가 되고 만다. 내가 외톨이가 되면 나를 보고 좋아하던 친구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외톨이가 된 친구와는 계속 사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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