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특별판 9 Chapter 17, 18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9.9







 리메이크작이나 영화가 아닌 순수하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결말까지 읽은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처음엔 그 적잖은 분량이 부담스러웠지만 1권을 다 읽고선 결말을 보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힘들겠다 싶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이런 작품이 있었다니. 이건 만화 그 이상의 작품이다.

 만화라는 장르를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통상적으로 만화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와는 이래저래 결이 달랐다. 다름이 아니라 <몬스터>가 연재 작품이란 것에 깜짝 놀랐는데 이유는 작품 내내 펼쳐진 어마어마한 빅픽처와 서두르지 않는 전개 때문이었다. 이건 흡사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내심 이 작품을 연재 당시가 아니라 이렇게 한꺼번에 읽어내려간 것이 다행이라 생각됐다. 철저히 플롯을 중시하는 터라 중심 인물과 시간대가 자유로이 바뀌는 이야기를 매주 기다리면서 읽어야 했다면 감질이 나서 혼났거나 아니면 지금 같은 감흥이 일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이처럼 소설이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전개 양식은 이 작품의, 나아가선 우라사와 나오키의 약점 아닌 약점이겠는데 나처럼 특별판으로 접하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은 점이었다. 아니, 그야말로 가장 환영할 만한 점이라 해야겠지.


 이 작가의 사전에는 엑스트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분량과 무관한 엄청난 비중과 인상을 남겨준다. 스쳐지나가거나 심지어 악역한테도 입체성을 부여해 다채로운 드라마를 선보이는데 약간 질질 끈다는 느낌도 들었으나 그 하나 하나의 묘사가 완성도랄지 아니면 소위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적절해 결코 불만스럽지 않았다. 주역급 인물들도 꽤 많아 주위가 흐트러질 법도 했는데 한 명 한 명이 개성이나 역할이 특출하다 보니 퇴장함과 동시에 재등장이 무척 기대됐다. 특히 룽게 경감! 등장할 때마다 풍겼던 그 아우라와 활약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엔 작품의 제목이자 중요한 소재인 '몬스터'가 약간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독이 사회주의의 리더를 만들고자 어린이들을 상대로 비인간적인 실험을 거듭하다 탄생하게 된 요한이란 존재를 상징하는 단어인데 흔히 감정이 없는 듯한 범죄자가 판을 치는 요즘 시점에서 말하자면 요한은 지능과 통찰력이 뛰어날 뿐 묘사되는 것처럼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작중에서의 괴물이니 악마니 하는 게 약간 유난을 떠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물론 독일이나 체코란 배경을 활용한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맞물려 상당히 무겁게 다가오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괴물이란 키워드는 맥거핀인 것만 같았다. 그보다 내가 더 궁금해했던 건 과연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선인인 텐마가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는답시고 요한을 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렇게 요한의 정체를 맥거핀으로 여겼지만 중반부부터 이름이나 유년기에 받는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품의 주제의식 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다. <몬스터>는 상상 그 이상으로 요한의 정체나 근원, 그리고 태생 등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감정이나 정체성을 부정당한 인간의 육신에 어떤 괴물이 들어서는지 정말 다각도로 바라보는데 곱씹어 보니 그 긴 분량 동안 주제의식이 흐트러지거나 흔들린 적이 없어 정말 작정하고 잘 그린 철학적인 만화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말에 이르면 오히려 텐마의 여정의 마무리야말로 맥거핀에 더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텐마가 요한을 쏠 수 있느냐 그 행위 자체보단 그 행위를 단념하게 될 외부적인, 혹은 내부적인 요소 등에 집중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싱겁게 마무리됐단 생각도 드는데 가장 커다란 논쟁인 사람의 목숨은 평등한가에 대한 답이 흐지부지된 게 아무래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선 답을 유보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째 텐마나 요한을 포함한 모든 인물이 정말 운이 나쁘게 시대의 그림자에 휘말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없이 인간적인 해석이자 결론이지만, 생명의 무게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극렬한 철학적인 논쟁을 기대했던 나로선 알게 모르게 갈증이 남기도 했다.


 기대한 지점과는 약간 다른 형태긴 했지만 결말과 그에 따른 연출까지 모든 것이 파격적이고 깊이 있는, 한마디로 괴물 같은 작품이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의 애니메이션도 무척 괴물 같은 작품이라 하니 기대된다. 특히 우리나라 더빙 버전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 유튜브에서 룽게 경감의 더빙을 살짝 접해보니 사람들의 추천의 이유가 능히 짐작이 갔다. 애니메이션으로도 꼭 봐야지.

인간은 감정을 없앨 수 없소. 감정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거요. 마치... 내 앞으로 보낸 누군가의 편지가 수십 년 후에나 도착한 것처럼... - 제18장 chapter 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