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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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4







 <마션>은 리들리 스콧 연출, 맷 데이먼 주연의 동명 영화로 유명한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극장에서 두 번 봤을 정도로 괜찮게 봤던 작품이라 원작 소설을 이제 와서 읽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두 번이나 봤기에 시간을 좀 두고 읽으려고 한 것인지 덕분에 내용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비교적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 영화 못지않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처음엔 특유의 유쾌함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고 하드 SF 특유의 이공계 지식에 대한 서술이 이해하기 쉽지 않아 완독을 포기할 뻔했는데 화성에서 표류 중인 와트니의 시점에서 벗어나 지구로 초점을 맞추자 이야기가 비로소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라고 하는 책의 캐치 프라이즈에 비해 화성이 그렇게 흥미진진한 장소로 그려졌다는 느낌은 덜했지만 상술했던 특유의 유쾌함 덕에 원만히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영화도 꽤 유쾌하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은 더하네.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를 보고 비교할 때마다 느끼지만 소설이나 영화나 장단점이 뚜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체로 원작 소설이 압도적으로 완성도가 높아 소설의 손을 들어주긴 하지만 <마션>의 경우엔 영화도 만만치 않아... 솔직히 말하면 영화가 좀 더 괜찮았다. 아마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느낌이 달라질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설명 위주에다가 어딘가 난잡했던 와트니의 일지 전문이 영화에선 선택과 집중을 거쳐 밀도 있게 연출된 게 아무래도 몰입도를 더 높이지 않았나 싶다.

 이야기의 주요 배경은 와트니가 표류 중인 화성과 지구의 나사 본부인데 개인적으로 소설에선 나사 본부에서 와트니 한 명을 구하려고 각 분야의 전문가/ 천재들이 모여 구조 계획을 세우는 게 훨씬 재밌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책임 회피니 뭐니 해서 쓸데없이 시간만 날리거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인물이 설치고 다녔을 텐데 - 예를 들자면 영화 <터널> - 이 작품에선 소설이나 영화나 그런 장면이나 인물이 없어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이에 대해선 작가가 구조된 직후의 와트니의 독백으로 자신의 의견을 대변하는데, 사람들은 타인을 돕고자 하는 선한 본성이 있기에 와트니가 구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면 작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와트니를 화성에서 구조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시피 행동에 옮기는 점일 것이다. 수많은 과학적 실증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독보적으로 현실적인 것에 비해 - 어찌나 현실적인지 와트니의 생존기는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다. 작가가 그만큼 연구를 한 것일 테고, 또 그만큼 화성에서의 생존 및 탈출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 이 부분은 조금은 낙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처럼 작가의 의견과 나의 감상의 차이는 전적으로 문화권이 달라서 벌어진 생각의 차이에 불과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순수하게 과학도들은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중에서 중국 항천국이 나사를 도와줄 때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라며 힘을 보태주는 장면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하드 SF라는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그럴싸한 소설을 쓴 작가의 성향에 미치도록 부합하는 전개가 바로 이 작품의 전개가 아닌가 하고. 어떤 암중모략이나 이해타산적인 구석 없이 과학적 성취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끼리 힘을 모은다, 이보다 더 뿌듯하고 값진 전개는 있을 수 없다고 작가가 몸소 써내려 간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봤다.


 앞서 말했듯 동명의 영화를 조만간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의 장면이 너무 어른거려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어른거리는 영화의 장면들이 아니었다면 초반부의 지루하고도 높은 진입 장벽을 넘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가 정말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여담인데, 내가 영화 관계자라도 이 작품은 영화화해야겠다고 진지하게 구상했을 것이라고 작품을 보는 내내 고갤 주억거렸다. 그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잘 짜여진 작품이니까. 단지 영화화가 원작 못지않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는 게 놀라울 뿐. 아, 이렇게까지 말하니 조만간 진짜로 한 번 더 봐야겠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510412962

 이건 영화 <마션>에 대한 포스팅.



인상 깊은 구절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헌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 597~5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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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만의 군사화와 성폭력 - 여성사에서 본 이와쿠니 미군사기지
후지메 유키 지음, 양동숙 옮김 / 논형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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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일본에서 미군과 관련해서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은 단연 오키나와라고 생각했는데, 오키나와보다 덜 유명할 뿐 일본 본토에도 미군 기지가 몇 있고 그에 따른 사건 사고도 다른 기지촌 못지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책에선 히로시마만灣이 전후에 어떻게 군사화를 거쳤고 그 과정 속에서 여성사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얼마나 많은 성폭력이 발생했는가를 아주 깊고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제목엔 히로시마가 들어가지만 저자가 실질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지역은 히로시마 근처에 있는 이와쿠니라는 곳으로 나 개인에게 있어 2년 전에 히로시마에 갔을 때 그 존재를 알았던 곳이다. 관광적인 측면에선 일본 3대 다리라는 긴타이교와 이와쿠니 성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 미군 기지가 있고 그렇게나 많은 사고가 발생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떤 장소를 관광적인 측면 이외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겠다고 반성하게 됐다.

 책은 매우 진지한 학술 보고서라 무수한 각주와 숫자가 등장해 내용의 실함과 무관하게 흡수하기 벅찬 건 사실이었지만 이는 곧 저자의 진지함을 반증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1부만 좀 버거웠지 2부부턴 얘기가 달랐다. 저자가 말하길 2부는 아예 따로 기술해야 할 만큼 이래저래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데 굳이 여성사적인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그냥 사건 자체에 짙게 깔린 인격 모독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히로시마 시에서 한 여성을 집단 강간한 이와쿠니 기지의 미군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건 우리나라의 사례와 비슷해서 아주 놀랄 것도 없었지만 디테일하게 파고드니 이건 뭐 기함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일본이 역사적,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미국에 거역하지 못하는 나라라지만 이건 좀... 특히 재판장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당시 상황을 증명해보라고, '소리'를 재현하라고 시켰다니...... 이건 단순히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미군 편을 들었다는 식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릇 비극이란 한쪽에서만이 아닌 여러 방면에서의 압도적인 실수 혹은 악행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1차는 미군이, 2차는 재판장이 가한 폭력은 그 여성에게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을 것이 자명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최근에 호사카 유지 교수가 출연한 <대화의 희열>을 봤을 때도 느낀 건데 군대가 있는 곳은 항상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조직 규모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 당장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베트남 전쟁 때 우리나라 사람이 저지른 만행도 같은 선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경향엔 아마도 군대가 인권 감수성과 가장 무관한 조직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을 떠올리며 얘기하자면 군대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닌 군인을 만드는 곳이라 군인들이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중요한 건 이런 군대의 경향이 바뀌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쨌든 군대 역시 군인 이전에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니 달라지리라고 기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 후지메 유키 같은 여성들도 입대를 많이 하고 최근엔 핸드폰 사용이 보편화되는 것처럼 군대도 많이 변화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너무 낙관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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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 - 문화와 역사가 함께하는 스웨덴 열두 도시 이야기
나승위 글.사진 / 파피에(딱정벌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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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북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히 노르웨이 여행을 다녀온 후부턴 그 관심이 더 지극해진 것 같다. 그렇게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하물며 아이슬란드와 관련이 있는 책을 종종 찾아읽는데 이번처럼 스웨덴만을 살펴보는 책은 처음 읽어본 것 같다. 내가 아는 스웨덴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배경이라는 것,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나라, '북유럽의 패자'라는 것 외엔 없다. 어쩌면 그 '북유럽의 패자'라는 수식어가 좀 부담스러워 그간 스웨덴과 관련된 책은 잘 찾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스웨덴은 성공적인 복지 국가라는 이면에 자국을 위해 굉장히 이기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나라다. 다이너마이트나 구리 등 압도적인 산업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정작 세계대전 때 중립을 표방하면서 사실상 나치의 만행을 방관하거나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안 그런 나라가 어디 있겠냐만 오늘날의 선망 어린 이미지가 무색하게 스웨덴도 죄 많은 국가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고한 나라란 없지만 말이다.

 '북유럽의 패자'라는 수식어는 내겐 좀 다른 식으로 와 닿는데,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스웨덴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월등한 유명세를 누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 않나 싶다. 나처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밀레니엄' 시리즈를 시작으로 수많은 노르딕 누아르 작가의 고향으로 눈에 익은 나라이며 우리 부모님 세대는 '말괄량이 삐삐'의 나라로 유명할 것이다. 이외에도 찾아보면 스웨덴이 배출한 문화 컨텐츠 캐릭터가 많은데 그중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등장하는 닐스도 한 명일 것이다. 스웨덴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셀마 라겔뢰프의 <닐스의 모험>의 주인공인 닐스의 발자취를 따라 걷자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짧게나마, 수박 겉 핥기로라도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실제 배경으로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히는 작의가 그렇게 와 닿을 수 없었다. 저자 나승위 씨는 스웨덴을 이해하기 위해 <닐스의 모험>을 읽은 것이니 나완 순서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스웨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책의 내용은 제법 알찼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공헌한 것처럼 스웨덴을 알아가는 과정이 뜻대로 척척 이뤄지지 않았지만 스웨덴 입장에서 이방인인 작가기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쓴 책이지 않은가 싶다. 때론 온정적으로, 필요할 땐 비판적으로. 잠깐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아닌 그 나라에서 살고 있기에 쓸 수 있는 깊은 내용들이었다.

 스웨덴의 이모저모를 시간 순이 아닌 공간을 배경으로 살펴보는 게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덴마크와의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 스웨덴 각지의 고성에 얽힌 미스터리한 이야기들, 바사 왕을 비롯한 스웨덴 역대 왕들의 행적이나 구리, 철강 사업에 관한 스웨덴 전체의 이익과 손해 등 다루는 이야기가 꽤 많았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에다가 약 백 년 전에 세상에 등장한 <닐스의 모험>의 주인공인 닐스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는데 그 시간 사이에 많이도 변화한 스웨덴의 모습은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라 시사하는 바가 컸다. 복지 국가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스웨덴이 역사의 길목마다 저질렀던 실책이나 그 실책을 만회한 여러 행적들은 배울 점이 많았다. 다른 나라를 공부한다는 것은 조국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그 말을 의식하고 나면 이 생소한 나라가 그저 생소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한테 노르웨이가 그랬듯 작가한테는 스웨덴이 그런 나라였는지 스웨덴에 대한 진한 애정이 전해졌던 게 독자 입장에서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 책을 읽으니 나 또한 스웨덴에도 가고 싶어졌다. 참, 이 세상엔 가보고 싶은 나라가 많기도 하네.


 아쉬운 건 내용의 주가 되는 작품인 <닐스의 모험>을 읽지 않아 책의 전개가 단편적이었던 면이 없지않았단 것인데 이는 작가의 잘못이 아닌 미리 책을 접하지 않은 내 탓이 크다. 물론 그 책을 읽지 않아도 작가는 친절하기에 내용 이해에 지장은 없다. 단지 모종의 반가움, 잔재미가 덜했던 게 아쉬웠다는 얘기다.

 두 번째로 아쉬운 건 책의 분량이다. 스웨덴 남부에서 중부까지 다루고 있는데 하는 김에 북부까지 다루는 게 어땠을까 싶었다. 그렇게 되면 분량이 제법 길어지겠지만 저자의 글솜씨라면 다 읽을 용의가 있다. 어쩌면 <닐스의 모험>의 내용이 북부를 배경으로 펼쳐지지 않아서 이 책도 더 전개될 수 없었던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저자의 다른 저서를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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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터 그리고 48시간 낮은산 키큰나무 17
유은실 지음 / 낮은산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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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옛날에 읽은 조디 피코의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서 의학 지식이 풍부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 나이대의 주인공은 언니의 병 때문에 자신의 줄기세포, 골수 등을 제공해왔기에 자연스럽게 의학 지식이 풍부해지게 됐다. 참 조숙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을 찾아가는 병이 특히 그렇다. 병은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를 일상과 철저히 분리시킬 수 있다. 이는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이 책의 저자 유은실 씨는 실제로 그레이브스병을 앓았는데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자신과 동일한 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녀를 보고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저자는 주변에서 그 병으로 인해 작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신이 작가로 만들기 위해 병을 준 거라는 등의 말을 들었다는데 설령 그렇다 해도 아프지 않은 게 제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후기에서 밝혔다. 분명 병은 자신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끔 해주기에 인생에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는지 모른다. 하지만 병이 주는 고통이 그런 식으로 무턱대고 좀 지양해야 할 듯하다. 저자가 밝힌 말들은 병에 걸리거나 장애가 없는 나도 충분히 공감이 됐다. 한편으로 어쩌면 나도 병에 걸린 사람을 보고 뭔가 단정적으로 '좋은 일이 있으라고 병이 생긴 거겠지'하고 말을 건네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만약 그랬다면 실례도 그런 실례가 없었겠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그레이브스 병보단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고 난 뒤의 48시간에 있다. 한마디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피폭을 당해햐 하는 이 선택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적잖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밀어넣는다. 성인인 내가 들어도 방사성 요오드니 뭐니 하는 이름 자체부터 거부감이 드는데 안 그래도 가정사가 평탄하지 않아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사춘기 청소년에겐 충격 그 자체일 것이라 예상됐다. 지금껏 그레이브스 병을 보고 '그레이브스 씨'니 뭐니 부르면서 애써 밝게 지내왔는데 난데없이 피폭을 당해야 한다니, 애증의 관계라고 부르기도 힘든 이 병을 떨치기 위해 주인공은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결심한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48시간 동안 타인과 2미터 거릴 유지하며 지내야 한다는 말에 주인공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지내기로 한다. 엄마나 지금 자신과 따로 사는 아빠나 할머니의 도움 없이.

 간혹 주인공이 좀 이타적인 구석이 돋보일 때가 있어서 몰입이 잘 안 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가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해준 덕분에 큰 어색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주인공은 마다하지만 기어코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나 가족의 존재는 참 뭉클했고 방사성 치료를 받고 꼭 가출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48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여정도 신선해 읽히기는 빠르게 읽혔다. 소설 전체의 분량이 짧은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또 주인공 심리가 한두 마디로 설명될 만큼 단순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작가가 오래 구상한 통찰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짧은 분량은 좀 아쉽다. 48시간이란 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 48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에 적절한 살을 붙인 작가이기에 더 길게 썼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혹 주인공과 친구들의 관계는 더 깊이, 혹은 그 이전부터 단서를 붙였더라면 주인공과 가족들의 관계처럼 인상적이었으리라 본다. 방금 말했듯 가족 이야기는 꽤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매사 자기 탓을 하고 방사성 치료라는 엄청난 중대사를 겪는 중에도 병적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모습이 불안정한 가정사가 영향 때문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주인공의 잘못은 없지만 엄마 아빠의 서늘한 관계는 아이를 괜히 주늑들게 만든다. 나도 충분히 경험해본 일이기에 십분 이해가 됐다.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는 요소가 병이라면 그 성격을 형성한 요소는 엄마 아빠의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소년 소설은 특히나 성장에 주목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 작품도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두 가지 성장을 이뤄서 바람직한 청소년 소설이라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방사성 치료를 받아 앞으로 주인공의 몸이 좀 괜찮아질 것이란 여운을 남기고, 두 번째로는 주인공이 보다 이타적인 삶에서 자신을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이다. 사람에겐 다 저마다의 성장 양상이 있는 것이다. 꼭 병이 있었기에 성장을 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안에서 주인공이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자신만의 성장을 한 것 같아 참 보기 좋았다. 식상하지 않고 진지하게, 괜찮은 청소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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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블랙 캣(Black Cat) 11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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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일전에 인드리다손 작가의 <저체온증>을 읽었을 때 제목과 작풍의 온도차에 감명을 받은 바 있다. 작품의 배경인 아이슬란드며 인명이나 지명 등 생경하다 못해 차가운 듯했지만 실상 그렇게 따뜻한 소설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작가가 추리소설을 쓰는 방식은 굳이 북유럽을 넘어 세계의 여느 추리소설가들과도 판이했는데 이번에 읽은 <무덤의 침묵>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주변에서 모국인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추리소설이 써지겠냐고, 그 나라에선 범죄 발생률이 매우 낮지 않느냐고 질문을 받는 모양이던데 이에 작가는 작품으로써 우문현답을 해보인다. 범죄만으로 추리소설은 귀결되지 않는다, 라고.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다.

 저번에 읽은 <저체온증>에 비해 이 작품에선 레이캬비크라는 배경이 좀 더 선명히 그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슬란드의 수도지만 인구 밀도가 현저히 낮은 그 도시에서 약 반 세기 전에 벌어졌을지 모를 살인의 전모를 밝히고자 하는 이 소설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다분히 아이슬란드라는 배경의 특성에 기인해 그만큼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너무나 생소한 나라인 아이슬란드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걸음을 내딛었는지, 그리고 청정에다 조용하고 범죄율이 현저히 낮다는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 이면 속에서 누가 피눈물을 흘렸는지 그려낸다.


 거두절미하면 작품의 흡입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전개 특성상 눈길을 잡아끄는 맛이 부족하고 에를렌뒤르의 개인사의 비중이 많은 분량에 걸쳐 할애되기 때문에 은근히 집중이 잘 안 된다. 이야기의 본편이나 에를렌뒤르의 개인사나 너무 암울하기 짝이 없어 쉽사리 페이지가 뒤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도 크게 작용했을 터다. 전개도 느린 편이고 사건의 전모도 여러 시점으로 전개되느라 이미 다 밝혀져서 결말 자체도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가정폭력이란 소재 자체는 수위나 깊이가 무색하게 식상한 감이 있어 솔직히 말해 아이슬란드 배경이란 특이사항이 없었으면, 무엇보다 <저체온증>에서 받았던 좋은 기억이 없었다면 끝까지 읽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저체온증>도 그랬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로썬 확실히 이질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식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고집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주인공은 사건의 해결까지 이 이야기를 쫓아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그렇게 논리적으로 어필하진 못하는데 그럼에도 계속 읽게 된다. 아이슬란드가 먼 나라긴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랑 크게 다를 것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 보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고 기본적으로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게 참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아이슬란드가 외따로 떨어진 섬이라지만 그곳에서의 드라마는 어째 낯설지가 않았다.


 요 네스뵈의 소설에 대해 얘기하면서 어떤 문학 작품이 작가의 고향이나 작중 등장하는 배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게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우리나라한테 있어 참 생소한 나라라 그런지 저런 요소가 엄청난 강점으로 다가온다고 얘기했었는데 인드리다손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서서히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드러난 사회 문제의 일각이, 우리가 차마 몰랐던 아이슬란드 역사 속 영국군의 존재감 등이 아주 다른 나라 일처럼 들리지 않는 것 이전에 아이슬란드가 어떤 나라인지 알게 되는 효과가 지극했기 때문이다. 때론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게 어떤 나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기에 아주 용이하단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넘어가기엔 작중에서의 가정폭력 묘사의 수위가 꽤 센데, 그 수위가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수준에서의 수위라 더욱 잔혹하게 다가온다. 그 밖에도 에를렌뒤르의 개인사도 처절하기 그지없는 등 분위기 하나는 정말 제대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분위기가 결말에 다다랐을 때 어떤 식으로든 가라앉거나 해소되기에 추리소설의 사건다운 사건을 그리지 않음에도 묘한 쾌감이 남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게 보면 작가의 말마따나 추리소설은 범죄에 국한되지 않는 소설이 맞는 것 같다. 범죄에 비견되는 갈등과 사건이, 해묵은 감정이 사라진다면 그 역시 추리소설다운 사건 해결이지 않은가.


 <무덤의 침묵>이나 <저체온증>이나 아직 내 수준에 비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작품이란 느낌은 들지만 그럼에도 계속 접해보고 싶은 작가다. 다음엔 <저주 받은 피>를 읽어볼까 하는데 이 제목도 심상찮아 보이지만 작가가 어떤 작풍을 구사하는지 알기에 괜한 선입견은 갖지 않으려고 한다.

가정폭력 사실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영혼을 살해하는 범죄를 일컫는 편리한 말이죠. 그게 진정 어떤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쓰는 순진한 말 말예요. 평생 동안 영원한 두려움에 떨며 사는 인생이 어떤지 아세요? - 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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