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터 그리고 48시간 낮은산 키큰나무 17
유은실 지음 / 낮은산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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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옛날에 읽은 조디 피코의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서 의학 지식이 풍부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 나이대의 주인공은 언니의 병 때문에 자신의 줄기세포, 골수 등을 제공해왔기에 자연스럽게 의학 지식이 풍부해지게 됐다. 참 조숙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을 찾아가는 병이 특히 그렇다. 병은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를 일상과 철저히 분리시킬 수 있다. 이는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이 책의 저자 유은실 씨는 실제로 그레이브스병을 앓았는데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자신과 동일한 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녀를 보고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저자는 주변에서 그 병으로 인해 작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신이 작가로 만들기 위해 병을 준 거라는 등의 말을 들었다는데 설령 그렇다 해도 아프지 않은 게 제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후기에서 밝혔다. 분명 병은 자신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끔 해주기에 인생에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는지 모른다. 하지만 병이 주는 고통이 그런 식으로 무턱대고 좀 지양해야 할 듯하다. 저자가 밝힌 말들은 병에 걸리거나 장애가 없는 나도 충분히 공감이 됐다. 한편으로 어쩌면 나도 병에 걸린 사람을 보고 뭔가 단정적으로 '좋은 일이 있으라고 병이 생긴 거겠지'하고 말을 건네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만약 그랬다면 실례도 그런 실례가 없었겠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그레이브스 병보단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고 난 뒤의 48시간에 있다. 한마디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피폭을 당해햐 하는 이 선택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적잖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밀어넣는다. 성인인 내가 들어도 방사성 요오드니 뭐니 하는 이름 자체부터 거부감이 드는데 안 그래도 가정사가 평탄하지 않아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사춘기 청소년에겐 충격 그 자체일 것이라 예상됐다. 지금껏 그레이브스 병을 보고 '그레이브스 씨'니 뭐니 부르면서 애써 밝게 지내왔는데 난데없이 피폭을 당해야 한다니, 애증의 관계라고 부르기도 힘든 이 병을 떨치기 위해 주인공은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결심한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48시간 동안 타인과 2미터 거릴 유지하며 지내야 한다는 말에 주인공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지내기로 한다. 엄마나 지금 자신과 따로 사는 아빠나 할머니의 도움 없이.

 간혹 주인공이 좀 이타적인 구석이 돋보일 때가 있어서 몰입이 잘 안 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가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해준 덕분에 큰 어색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주인공은 마다하지만 기어코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나 가족의 존재는 참 뭉클했고 방사성 치료를 받고 꼭 가출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48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여정도 신선해 읽히기는 빠르게 읽혔다. 소설 전체의 분량이 짧은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또 주인공 심리가 한두 마디로 설명될 만큼 단순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작가가 오래 구상한 통찰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짧은 분량은 좀 아쉽다. 48시간이란 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 48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에 적절한 살을 붙인 작가이기에 더 길게 썼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혹 주인공과 친구들의 관계는 더 깊이, 혹은 그 이전부터 단서를 붙였더라면 주인공과 가족들의 관계처럼 인상적이었으리라 본다. 방금 말했듯 가족 이야기는 꽤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매사 자기 탓을 하고 방사성 치료라는 엄청난 중대사를 겪는 중에도 병적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모습이 불안정한 가정사가 영향 때문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주인공의 잘못은 없지만 엄마 아빠의 서늘한 관계는 아이를 괜히 주늑들게 만든다. 나도 충분히 경험해본 일이기에 십분 이해가 됐다.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는 요소가 병이라면 그 성격을 형성한 요소는 엄마 아빠의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소년 소설은 특히나 성장에 주목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 작품도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두 가지 성장을 이뤄서 바람직한 청소년 소설이라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방사성 치료를 받아 앞으로 주인공의 몸이 좀 괜찮아질 것이란 여운을 남기고, 두 번째로는 주인공이 보다 이타적인 삶에서 자신을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이다. 사람에겐 다 저마다의 성장 양상이 있는 것이다. 꼭 병이 있었기에 성장을 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안에서 주인공이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자신만의 성장을 한 것 같아 참 보기 좋았다. 식상하지 않고 진지하게, 괜찮은 청소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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