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뉴욕 미술관 -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 떠나는 예술 여행
최상운 지음 / 나무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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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뉴욕은 도시의 규모나 인지도에 걸맞는 이름 있는 미술관이 참 많다. 모마, 메트로폴리탄, 휘트니, 구겐하임, 노이에... 이 미술관들이 안겨주는 로망은 정말 대단해서 아예 뉴욕 여행의 테마를 미술관으로 잡고 떠나려는 사람이 있을 정돈데 이 책은 그런 미술관들의 이모저모를 길라잡이로서 잘 안내해준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분량은 짧지만 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들의 핵심을 잘 짚어줘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간에 '이 미술관에 가보고 싶게끔' 만드는 데엔 나름 쏠쏠한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에 내가 블로그에 올릴 여행 포스팅에서 다룰 내용들이지만, 미국 미술관이라고 하면 미국 작가의 그림보단 타국의 명화가 더 많이 걸려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작년에 갔던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이 자국의 명화를 중심으로 전시했던 걸 떠올리면 무척 대조적인 풍경이다. 물론 화가들이 자신의 국적보다 그림을 팔아 얻는 수익을 우선하는 건 당연한데 미국 미술관의 무수한 명화들을 보노라면 돈의 위대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노르웨이가 대단한 거고... 세상에, 피카소와 고흐의 그림이 이렇게 많으면 정작 스페인과 네덜란드 미술관엔 뭐 걸릴 만한 게 있는 걸까?


 기대했던 바가 살짝 어긋났기 때문일까, 직접 경험했던 노르웨이 미술관이나 최근에 읽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을 생각하면 이 책의 내용은 그리 '미국적'이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다. 금방 언급한 책에선 저자가 북유럽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온전히 그 나라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느라 자연스럽게 북유럽 국가들의 모습이나 시대상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선 뉴욕 미술관에 있는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의 작품을 돌아보느라 정작 미국이나 뉴욕에 대해선 알게 된 사실이 은근히 적다. 그나마 미국 근, 현대 작가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휘트니 미술관에선 호퍼나 오키프의 작품이 있으니까 제법 미국적인 얘길 접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좀... 부족했던 게 아쉽다.

  2주 동안 미국 동부를 여행하면서 미술관 10곳을 가면서 느낀 점 전부를 이 책 한 권을 포스팅하면서 녹여낼 순 없을 듯하다. 아무튼 짧고 핵심적인 길라잡이로선 괜찮았지만 미국이나 뉴욕을 이해하기엔 기대했던 것과 양상이 달라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다. 다른 뉴욕 미술관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472033414

 이건 위에서 언급했던 책에 대한 포스팅. 다시 말하지만 난 이런 책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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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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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추리소설의 제목이 <이유>라니, 대체로 소설의 제목이 단순하면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경우가 달랐다. 포스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제목의 단순함은 곧 작품의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화려함 없이 단순하게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는 이 작품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데 이는 단순히 분량의 탓은 아니리라 본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내 입장에선 이 작품은 차라리 분량이 짧은 편에 속하는데, 700페이지는 거뜬히 넘어가 분권이 된 여러 작품에 비해서도 <이유>는 유독 가독성이 떨어졌다. 사건의 양상은 물론이고 철저하게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 눈길을 잡아끌지 못했고 등장인물은 너무 많아서 집중이 흐트러지기 십상이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들였을 노력이나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능력,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를 결말까지 써내려간 필력은 인정하지만 때론 그런 장점만으론 수긍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유>의 경우가 딱 그에 해당하고 심지어 르포르타주 형식부터가 기획 단계서부터 이어진 악수惡手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9년 전 고등학생 때로, 그때는 상상 이상으로 방대한 세계관과 디테일이 감탄스러워 꽤나 좋은 인상이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작품이 전체적으로 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이야기하는 바는 매우 간단한데 이는 작품의 제목이 주는 단순명쾌함에 주목하면 더욱 자명해진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의 작품답게 <이유>는 말 그대로 작중의 모든 사단이 벌어진 이유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의 원점이겠고 다르게 보면 새삼스럽고 유난스런 주제의식이라 볼 수 있겠는데 이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자의 필력이 작품의 평범함을 어떻게 상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위에서 말했듯 아무래도 난 이 작품이 정말로 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일단 확실히 해두고 싶은 부분은 이 작품은 결코 미시적인 성격의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무를 보느냐, 숲을 보느냐 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미야베 미유키가 숲에 있는 모든 나무를 힘 닿는 대로 보는 작가라고 생각할 테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너무 많은 나무를 살펴보느라 각각의 나무의 모습은 기억에 잘 남지 않고 오히려 숲의 윤곽만 기억에 남는 아이러니함, 혹은 역효과를 낳고 있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각각의 캐릭터에 디테일한 설정을 부여하는 게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인데 <이유>에선 그런 면모가 쉬지 않고 인터뷰 형식으로 반복되고 설명될 뿐이다. 그렇기에 작품이 소설 같지 않은 나머지 사건의 윤곽이 흐릿하게 다가왔다.


 처음 읽었을 땐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의 일본인들의 일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자못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은데 9년이 지나 다시 읽기까지 비슷한 배경과 주제의식의 작품을 접해봤기 때문인지 이번엔 큼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전개도 이건 좀 안일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르포르타주 형식 일색이라 식상했고 가장 별로였던 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 직접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야시로 유지라는 캐릭터를 미스터리한 걸 넘어 너무 두루뭉술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600페이지가 넘게 본작에서 보였던 서술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하거니와 결국 사건이 폭발한 경위를 상상에 맡기거나 주변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추만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결말이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매우 점진적이긴도 사건의 내막에 다가갈수록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결말에서 갑자기 증발해버리니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과거에 좋게 기억에 남은 작품이라 다시 읽은 건데 이번 2회차 독서 때는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어렵사리 완독했다. 다 읽고 나니 다시금 미야베 미유키가 싫어졌는데 <모방범>을 다시 읽을 예정이었던 터라 그 작품도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시 읽으면 더 감탄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미야베 미유키는... 옛날에 읽었던 작품이든, 새로 접하는 작품이든 간에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판단해야겠다.

저런 곳에 살면 사람들이 못쓰게 돼요. 사람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거 같아요. - 4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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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글리시 찬가 - 언어괴물 신견식의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신견식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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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노르웨이에 가기 전에 본 노르웨이 관련 여행 프로그램 중에 이 책의 저자 신견식 씨가 출연한 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노르웨이의 풍경과 더불어 이 번역가가 보여준 엄청난 어학 능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회화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노르웨이어를 구사하고 어쩌다가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고, 그래서 이 책 표지에서의 '언어괴물 신견식'이란 수식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 본문을 봤을 땐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콩글리시란 기존에 있던 영어가 한국어나 한국 문화와 결합돼 탄생한 유사 영어로 실제로 영어가 국어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어 콩글리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게 통념이곤 했다. 나 역시 그 생각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저자인 신견식 씨는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달리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아울러 콩글리시 또한 존중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내용들은 우리가 실제로 영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온전히 영어인지 살펴보거나 실제 영어와 쓰임이나 형태가 다른 단어들의 변천 과정, 그 과정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여러 나라의 언어가 결합된 경우도 살펴본다. 이때, 막연히 콩글리시 얘기를 할 테니까 영어만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불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포르투갈어...... 온갖 언어가 다 언급돼 일일이 기억하고 옮겨적기 버거울 정도다.


 저자는 쉽게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전문적이라 책의 본문은 어느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어렵게 다가왔다. 저자가 살펴본 온갖 예시는 우리 일상 속에서 충분히 마주친 단어들이라 반갑고 신기하긴 했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지레 질렸던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글들의 담론이 비슷한 감이 있어 비교 언어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끝까지 흥미를 갖고 읽어가기에도 쉽지 않았다. 물론 저자의 한결같은 담론이 전문성에 기반했고 일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한 사려가 깊은 자세가 여실히 전해져 그 담론 자체를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저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 속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는 원래는 중국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자는 중국의 한자와는 매우 다른데 우리는 이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솔직히 부끄럽다느니 뭐니 할 정도로 신경 쓰는 사람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영어는 무조건 변형이나 아종에 대해선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영어가 영국이나 미국 내에서의 백인들이 구사하는 영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어야말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글로벌한 언어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그만큼 여러 언어권의 사람들이 쓴다는 얘기니 백인이 쓰는 영어만이 아니라 각각의 영어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정석대로 배우고 구사하는 게 맞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단순히 기존에 있는 언어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춰 변모를 거듭하는 현상에서 엿볼 수 있는 감탄스럽고도 재밌는 지점에 대해서 주목해주길 바라며 열심히 글을 썼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자는 콩글리시로 대표되는 여러 유사 영어, 변형된 언어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하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번역가가 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모든 번역가가 신견식 씨 같은 태도로 언어를 다룬다면 참 바랄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번역한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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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쿠라 일기」전 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3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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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요번에 작가의 고향이자 책의 제목에도 명시된 고쿠라를 여행가게 돼 이 책도 읽게 됐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 현대 추리소설가들의 귀감이자 정신적 스승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거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추리소설가로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는 것. 책의 표제작인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데 원래 나오키상 후보작이던 걸 한 심사위원이 아쿠타가와상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 낙선과 동시에 바로 그쪽 상의 후보에 올려 수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만큼 폐쇠적이진 않지만 일본 문단에서도 순수문학의 위상과 권위가 결코 낮지 않은 만큼 어떻게 추리소설이 최고의 순수문학상을 받았을까 싶어 늘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됐다.

 고쿠라에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까지 가니까 확실히 느낀 건데 이 작가를 단순히 추리소설가의 틀 안에서 바라보는 건 좀 지양해야 할 일일 듯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기본적으로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범죄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도 썼을 뿐이지, 단순히 추리소설 그 자체를 쓰는 작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기념관에서의 전시 내용과 - 기념관의 내용은 추후 여행기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이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추리소설은 한 손에 꼽을 정도고 가장 궁금했던 표제작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빌린 다른 형태의 소설이었다. 이 작가가 생전에 천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한 걸 생각하면 의외로 알려진 것보다 집필한 추리소설의 수가 적을 수 있겠다고 생각됐다. 혹은 그런 특성 덕에 추리소설의 외연이 넓어진 것일 수도 있겠고.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물론 저마다 양상이 다 다르지만 대체로 공통된 키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초기작이라 이런 키워드들이 유독 두드러진 것 같다. 바로 '가난', '콤플렉스'가 그렇다. 특히 인텔리나 고학력을 향한 경멸과 그로 인한 자격지심, 피해망상 같은 게 인상적이었는데 화려하지 않고 어떤 독자의 말마따나 구수하기도 하지만 진솔하고 알기 쉬워 단편집임에도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엔 몇 권으로 이뤄진 장편보다 여러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이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하는데 이 책은 각 작품들의 공통된 키워드 덕분인지 맥락이 비슷해서 비교적 연속으로 읽기에 피로감이 적은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속된 말로 작가가 소설들을 '공장에서 돌린 듯' 쓴 건 아니라 3편씩 읽고 멈추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작가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장에서 돌렸다라는 말은 빈말로라도 나오지 않는다.

 원래 신문 기자를 꿈꿨던 만큼 이 작가는 취재가 천직인지 각 작품의 소재나 배경에 대한 설명의 깊이가 하나같이 감탄스러웠다. 대부분의 작품이 작가의 삶의 일부와 맞닿은 듯했는데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소설화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취재와 작가적 상상력과 해석을 매 소설 속에 녹여낸 건 소설가 지망생인 나를 상당히 자극시켰다. 이 정도로 공부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가... 하면서. 이러한 공부와 병행한 집필 활동은 평생 가난과 고졸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발로된 결과라 볼 수 있겠는데 이 정도면 콤플렉스를 무척 모범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작가의 작품들 속 주인공에 비한다면 작가는 아주 건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를 닮은 손가락'


 가난에 이골이 났을 작가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 사람이 가난하면 여유가 부족해지고 성격이 좁아진다는 전개를 자기 이야기를 하듯 세밀하게 묘파해냈다. 근데 사실, 가난이란 소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익히 다뤄진 소재라 더는 새로울 것도 없고 솔직히 말해 지긋지긋할 정돈데 마쓰모토 세이초가 쓰니까 무게가 확실히 달랐다. 작품의 시대며 배경이며 지금 내 처지와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주인공의 심리가 낯설지 않았던 게 인상적이다.


 '어느 「고쿠라 일기」전'


 표제작. 주인공이 모리 오가이의 '고쿠라 일기'에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동기는 그리 와 닿지 않았지만 그 속엔 예술적인 숭고함이 깃들어 있어 확실히 아쿠타가와상에 어울리는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날 때부터 병을 안고 태어난 청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홀어머니와 살아가는 정경이 상당히 짠했고 끝내 그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죽는 결말도 서글프기 짝이 없다. 삶 자체가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이라고 감히 말하긴 힘들지만 확실히 주인공 고사쿠의 삶은 그런 측면에서 꽤나 비범하게 다가왔다.


 '국화 베개'


 여성 하이쿠 문인인 주인공이 당대에 이름을 떨치고 그 이름이 어떤 식으로 지게 됐는지 살펴보는 전기 형식을 띈 소설. 앞서 수록된 두 작품과 비슷하지만 문단에서의 고립을 자청했다고 볼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던 게 달랐다. 이후 수록작에서도 이렇게 주인공이 어떻게 살다가 비극적으로 죽었다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보이지만 의외로 크게 비슷한 경우는 없는 건 또 신기하다.


 '빨간 제비'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그렇게 달갑지 않을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에서의 일본군의 이야기인데 의외로 읽다보면 그렇게 거북하진 않다. 작가가 딱히 한국 독자를 배려해서 그랬다기 보단 그냥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고 주요 인물이 일본군일 뿐 역사나 정치와는 무관해서 그런 듯하다. 아무튼 위안부가 될 뻔했다는 낙인이 찍힌 여인들이 얼마나 기구해지고 전락해지는가 라는 주요 스토리 라인에 주목한다면 요즘에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쳐도 그 사소한 낙인 하나가 - 특히 여성한테 찍히는 낙인이 그렇다. - 이렇게 뒤틀린 감정을 만든다는 건 참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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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레스토랑 세컨즈
브라이언 리 오말리 지음 / 미메시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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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난 이 작품을 사서 읽었다. 책의 가격이 25,000원인데 내가 아무리 만화를 좋아해도 저 가격을 처음 듣고 난색부터 표했음을 먼저 고백한다. 사실 나는 만화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이뤄진 이상 어느 정도 분량이 갖춰진다면 소설보다 비싸야 한다는 지론을 늘 주변에 피력해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가격 운운하는 것이 좀 찔리지만 그래도 2만 원이 넘는 가격대는 아무래도 감상 자체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320페이지에 올 컬러, 게다가 하드커버라서 저 정도 가격이 책정된 거라 하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건 역시 작품의 완성도다. 책의 디자인, 종이의 질, 출판사나 작가의 이름값이 대체로 책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인 듯한데 그럼에도 결국 독자들이 최종적으로 만족도를 느끼는 부분은 당연히 책의 내용이다. 음악은 사실상 돈을 내지 않아도 유튜브에 검색하거나 아니면 길을 걷기만 해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것과 영화는 관람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티켓값을 받는다는 것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른바 가성비를 논할 때 책의 가격이란 것은 항상 소비자를 만족시키기에 불리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이북이 아닌 이상 책은 책장 한쪽에 자리를 차지해 관리가 필요하고 특히 요새는 가격도 꽤 올라가 도무지 가벼운 기분으로 팍팍 사지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건 기본적인 얘기고, 독자 본인이 책에 노력과 시간, 심지어 기분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나 만족도가 불확실한 게 책인데 가격대가 높을수록 한 사람의 독자로서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과연 이 책이 종이의 질을 능가하는 만족도를 나에게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항상 하는 편은 결코 아닌데 가격이 가격인 터라 이번에 유독 이 점이 신경 쓰였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이 작품을 왜 사서 읽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처음 접하는 작가고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스콧 필그림' 시리즈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다. 작품에 대한 리뷰는 현저히 적어서 완성도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순전히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를 통한 첫인상만으로 이 책을 구입해서 읽기에 이르렀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이는 내 기준에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과감한 도박인데 왜 이런 도박을 감행했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고작 25,000원을 지불하는 게 무슨 도박일까 싶겠지만 난 보기보다 책 구입에 깐깐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선택이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이런,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불가사의한 선택은 다행히 나에게 어떤 후회도 안겨주지 않았다. 살짝 위험한 생각일 수 있지만, 스케일이 작은 도박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작품의 그림체가 너무 좋았다. '모에' 요소를 남용하는 모든 일본의 만화가들이 속된 말로 머리 박고 반성해야 할 정도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체는 실로 매력적이었다. 서양의 그래픽 노블이라 명명되는 만화를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림체는 그중 단연 으뜸인 걸 넘어서 어딘가 익숙하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작가가 한국계의 피가 섞인 캐나다 출생의 만화가란다. 하지만 그림체란 건 핏줄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닌데... 그냥 작가의 그림체과 원래 개성적이고 그 스스로가 연구를 많이 한 것이라 생각해야겠다.

 컬러풀한 그림체 덕에 가격에 대한 불안감은 일찌감치 사라진 대신 작품의 차분하면서 깊이가 있는 작품의 이야기에 서서히 빠져들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작품의 주요 소재인 평행 세계와 관련한 SF 설정들과 스토리 텔링은 그렇게 참신하지 않았다. 과거를 바꾸는 방식이나 방식의 기원에 대한 설정만 다를 뿐, 주인공 케이티가 겪는 온갖 일들과 감정 소모는 아주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아... 나올 게 나왔네', '예상대로군' 이라며 한숨이 나오진 않았다. 참신함은 늘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리라.


 케이티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몰입됐다. 제법 잘 나가는 셰프인 케이티는 본인 소유의 레스토랑 준비로 바쁜데 그 레스토랑의 부지나 내부 시공을 비롯해 사소하지만 거슬리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자신만만했던 성격이 무색하게 케이티는 묘하게 신경질적이고 무기력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 남친의 등장과 그녀가 속한 레스토랑에서 가장 예쁜 직원인 헤이즐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화상을 입는 사건이 터지자 케이티는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눈에 보이자 어떤 고민이나 의심도 없이 그 방법에 손을 댄다. 설마 진짜로 과거가 바뀔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저 바라기만 할 뿐이지.

 이후에 전개될 일들은 뻔하다. 점점 과거를 바꾸는 맛에 길들여진 케이티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가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 샌들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 <클릭>이 생각난다. 자신의 의식이 부재한 과거가 만든 낯선 현실이 아무리 이상적이라도 정이 갈 리 없다. 그런데 이상적이지도 않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과거를 바꾸는 대가가 이처럼 느닷없이 예측불허로 바뀌는 현실이라면 과거는 바꾸지 않고 그냥 현재에 만족하는 게 낫다. ...라는 교훈을 작품은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로 잘 이끌어내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자기 인생을 돌아봄에 있어서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을까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꽤나 보편적으로 몰입 가능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보편적인 이야기에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 즉 깊이다. 이야기의 깊이는 이 작품에서 그림체만큼이나 내세울 수 있는 요소다. 사소하지만 공감 가능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주인공 케이티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버거워 할 독자는 몇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케이티의 선택이나 그에 따른 후회 등도 마찬가지로 몰입하기 용이할 것이다.

 바뀐 현실로 인해 막장으로 치닫는 전개가 황당할 수 있고 결말이 맺어지는 방식이 뻔히 보이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하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원래 예상 외의 결말은 내기 쉬운 게 아니고 또 반전이 있는 결말이 무조건 좋은 결말이 아니기에 이 작품의 다소 뻔한 결말이 곧 작품의 단점이라고 봐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림체와 몰입도, 그리고 뻔한 소재나 결말애도 불구하고 몰입이 되는 스토리다. 그런 면에서 종이의 질이나 올 컬러 등의 이유로 높게 책정된 작품의 가격은 가성비의 논란을 무난히 비껴갔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이든 음식이든 뭐든 간에 2만 원을 넘게 지불하면 가성비를 느끼기 쉽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기억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대표작인 '스콧 필그림' 시리즈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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