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7.8







 참 기묘한 제목의 책이었다. 국내에 두 권의 책이 소개된 구라치 준의 신작 단편집인데 표제작을 비롯해 특이한 작품이 몇 있었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지만 모든 수록작의 완성도가 대체로 비슷해 흥이 식지 않았던 건 좋았다.



 'ABC 살인'


 미싱 링크의 허점, 즉 연쇄 살인에 편승하는 내용은 추리소설을 조금만 읽었더라면 식상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굳이 추리소설을 많이 안 읽어봤어도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뭐,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보면 그 식상함이 포인트인 작품이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나름대로 신선한 작품인데 이 정도 신선함으론 추리소설론 어림도 없다고. 이토록 냉정한 감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나같이 추리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낙담하게 만드는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사내 편애'


 SF적 상상력이 가미된 약간 공포스런 작품. 범죄 소설 뺨치는 상황이 소름 끼치게 연발한다. 변뎍을 부리는 AI라니, 그 존재의의에 대해선 솔직히 납득이 안 가지만 제법 신선하게 다가오는 측면도 있었다. 말 그대로 AI가 변덕을 부리니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결말 부분에서의 마지막 문장이 예상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과연 이런 미래가 도래할까 상상해봤는데 위에서 말했듯 변덕을 부리는 AI가 설득력이 떨어져서 어디까지나 재미로 읽고 말면 그만일 듯하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다. 살해된 피해자 앞에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형사, 피해자의 주변인을 만날 때마다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는 사람들, 피해자의 머리맡엔 케이크를, 입에는 파가 꽂아 놓은 범인의 행위... 전자는 피해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고 후자는 싫어하던 음식이다. 이 의미불명의 살인 현장은 후에 논리적으로 파헤쳐지는데 이때 밝혀지는 범인의 저의가 생각할수록 소름 끼친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은 그 자체로 개연성과 목적 의식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자극에 눈이 멀어 살인사건 수사의 중요성이나 죽음의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추리소설이 많은 것 같아 이처럼 진지한 추리소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밤을 보는 고양이'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작중의 묘사며 전개 양상, 주인공의 설정이나 사건의 전말 등이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작품. 인간의 오감을 초월한 동물의 감각, 그 동물의 감각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으로 접근해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작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 영화가 해당 사회 이슈를 더 효과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본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제목은 일본의 관용구로 주로 융통성 없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답답한 사람을 조소할 때 쓰는 표현이라는데 작중에선 다른 의미로 쓰였다. 정말로 홧김에 저주하는 목적으로 썼고 실제로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듯한 모양새로 발견됐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다들 느끼겠지만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작품의 배경이 1940년대의 일본이란 것이다. 패전의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며 가미카제 같은 작전을 대안으로 삼던 그 미친 시대를 배경으로 젊음을 유린당하는 인물들의 처지가 애처로웠다. 오히려 작품 전체에 걸쳐 설명되는 기술이나 사건의 전개와 해결따윈 관심도 없었다. 너무 허무하게 설명되고 끝날 뿐이라서... 마치 '사건을 해결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투라 읽는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참 황당한 마무리였고 예상치 못했던 작중 배경도 더한데 해당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읽을 만할 듯하다. 당시의 답이 없던 분위기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비판하는 목적에선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도 같다. 왜 굳이 두부 모서리 뭐시기인지 하는 관용구를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지난 번에 읽은 작가의 <지나가는 녹색 바람>에서도 등장했던 네코마루 선배가 탐정역으로 나오는데 이번에도 그의 매력이 뭔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벌써 두 번째 접하지만 어째 작가만 마음에 들어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아무튼 매력은 덜해도 추리력은 상당하고 또 작품 자체의 반전이나 작가 특유의 뜬금없는 주제의식은 재밌었는데 그에 비해 전개는 되게 지루해서 그게 좀 불만이다. 내가 너무 바라는 게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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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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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복지, 사회 제도, 경제 성장, 그리고 행복도 등 여러 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하는 북유럽의 이모저모를 이방인의 시선에서 살펴보는 책.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순으로 진행된다. 저자는 자신이 10년 가까이 살았다는 덴마크는 물론이고 그 사이에 짬짬이 들렀던 북유럽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사유를 해보인다. 저자에게 가장 친숙할 덴마크와 북유럽의 패자인 스웨덴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당 할애된 페이지가 100쪽이 넘지 않아 걱정이 좀 됐지만 예상 외로 수박 겉 핥기 이상의 성과를 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엔 저자만큼은 아니어도 나 역시 자체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에 관심을 가져왔던 덕분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선 지구본에서 북유럽이 어디 있는지 찾느라 한참 헤맬 수도 있으므로 이 책이 완벽하게 입문용으로 좋았다고는 볼 수 없다. 글쎄, 북유럽에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 이 책을 집어 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지만... 어쨌든 북유럽 나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선행 학습이 이뤄지지 않은 이상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쫓아가기 버겁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한 번이라도 북유럽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들, 여행책을 들여다봤든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접한 사람들, 실제로 여행으로 다녀오기까지 한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북유럽에 지대한 관심이 있을 뿐더러 북유럽 작가가 썼거나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과 영화들을 꽤 좋아하며며 심지어 북유럽 5개국 중 한 곳인 노르웨이까지 다녀왔으니 이 책이 적잖이 술술 읽혔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 후기를 두루 살펴보니까 취향을 꽤나 타는 모양이던데, 솔직히 납득은 안 되지만 - 이 책의 번역이 그렇게 이상한지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주로 외국 문학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걸까? 진짜 이상한 번역의 문학을 종종 접해서 그런지 비문학은 아무리 번역이 개판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지 않았나 싶다. - 나라마다 짧게 훑고 지나간다는 건 나 또한 느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철저하고 단호한 양성 평등 정책이나 높은 세율과 신뢰가 있는 연금 제도, 때론 북해의 유전 같은 행운이나 전반적으로 인구가 적어 모든 국민이 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등 북유럽 사회의 성공엔 여러 요인을 언급해볼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짧은 글로는 북유럽 전체를 살펴보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인정하지만 제법 효과적이고 폭넓은 취재로 북유럽 사회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던 이유에 사뭇 가까이 다가갔다. 모름지기 국민성이란 걸 한마디로 쉽게 정의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북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은 마냥 간과할 수많은 없는 것이기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덴마크랑 스웨덴, 핀란드를 다룬 책은 읽어봤어도 이 책처럼 노르웨이랑 아이슬란드까지 아우르는 책은 처음이라 마냥 신선했다.

 각 나라의 역사적 맥락이나 고충을 굳이 내 후기에까지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우 흥미로운 얘기지만 저자처럼 잘 쓸 자신도 없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하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과감히 생략하려고 한다. 북유럽은 다른 서방 국가와 다르게 비교적 같은 피부색, 머리칼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아왔기에 상대를 신뢰하기가 대체로 용이했고 - 서로 별다른 말 없이도 마음이 전달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 그러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 복지며 사회 제도가 안착이 가능했으리란 게 이 책에서 내내 거론되는 부분이다. 이는 이민자나 외부인이 아닌 순수히 그 나라 국민에게 해당이 되는데 그 때문에 최근 들어 노르웨이에서 테러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비극이 터지기도 하지만 이런 비극 역시 더 발달되고 차별이 없는 사회 제도로 극복할 수 있다고 앞다퉈 목소릴 높이는 북유럽 국가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북유럽이라고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폐해는 현시점에 와선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너무나 편안한 복지가 있어 사람들에게서 경쟁력과 같은 능동적인 감정을 결여시키는 건 분명 문제고 그 복지에 수반되는 높은 세금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평등을 추구하느라 엘리트들을 홀대하고 그들이 자국을 떠나는 걸 막을 방도가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이야기다. 일전에 읽은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졌음에도 너무나 완벽에 가까운 사회 제도 때문에 도리어 엘리트들이 해외로 떠나고 점점 해외에 비해 국가 경쟁력이 희미해진다면, 가령 아이슬란드처럼 경제적 위기에 처하거나 노르웨이처럼 언젠가 고갈이 날 것이 분명한 석유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니까.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결론에서 은근히 낙관적인 태도로 북유럽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이 더 나은 형태의 결과를 낼 것이라고 아부인 듯 아부 아닌 - 500쪽 내내 삐딱선 타면서 깐족거릴 땐 언제고... 특히 스웨덴에선 정말이지... - 단언을 해버린다. 북유럽에 콩깍지라도 씐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데, 나도 북유럽의 사회 제도가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북유럽이 그 정도의 복지나 그 정도의 평등을 추구할 수 있는 건 여러 북유럽만의 특수성이 있었음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되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상이라 여기는 영역을 북유럽이 제도화했는데 그 이면에 단점이 있다고 한들 그들이 추구하는 바까지 훼손되는 건 아니니 아직은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때라고 본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란 제목은 어딘지 비꼬는 투가 역력하지만 저자도 어느 정도 인정하듯 이 비꼬는 투엔 질투도 포함됐다.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를 넘은 질투나 트집이 아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생소한 지점에 매스를 들이대는 건 중요하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계속 말했듯 거의 완벽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계속 말하다 보니 참 기막힌 제목이 아닐 수 없네.

‘자신을 좋아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순수함은 끝난다.‘ 존 디디온, <자존심에 대하여> 중에서. -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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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십니다, 맥주 - 이왕이면 지적이고 우아하게 한잔합시다
이재호 지음 / 다온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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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난 맥주를 마시는 걸 정말로 좋아한다. 알코올이 약해서 맥주밖에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맥주 특유의 씁쓸함과 시원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맥주만큼 갈증을 달래는 술도 없고 맥주만큼 덜 취하고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술도 없다. 술에는 저마다 역할이 제각각인 것 같은데 그중 나는 맥주가 주는 느낌을 가장 선호한다. 물론 막걸리도 좋고 와인도 좋고 소주는... 가끔 좋다. 최근엔 칵테일도 먹게 됐지만 그래도 역시 맥주가 좋다. 해외로 여행가면 여행지 근처에 맥주 공장이 있는가 살펴볼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 내가 맥주에 대해 얘기하는 책을 이제서야 처음 읽은 건 어떻게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이 책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는 순전히 저자가 자기 친구에게 어떤 맥주를 추천하면 좋을지 생각하면 쓰게 됐다는데 그런 것치곤 너무나 전문적이었다. 저자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건 뭐 어느 뭐로 보나 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각 장마다 쓰게 된 목적이나 개요를 밝히는 게 친절했는데, 어느 한 문장이라도 허투루 읽고 싶지 않아서 정독해버렸다. 맥주의 역사는 진짜 흥미롭더라. 그 뒤 내용은 전문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좀 머리 아파졌지만... 아무래도 편의점에서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없는 맥주에 대해 얘기하니까 쫓아가기 버거웠던 측면이 있던 것 같다. 추천하는 맥주를 전부 마셔보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맥주 구입을 편의점에서 다 해버려서 우연히 그 맥주들을 발견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싶다. 하도 많은 맥주를 소개받아서...


 책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웠다. 사진이나 일러스트도 큼지막하고 알아보기 쉽게 수록됐고 특히 맥주의 종류를 설명함에 있어 용이하지 않았나 싶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니 맥주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던데 저자가 족집게처럼 잘 짚어줘서 그간 마셨던 맥주들의 맛을 몇 차례나 떠올릴 수 있었다.

 '못난 맥주는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맥주는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라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정말 그 말대로다. 수많은 맥주가 저마다의 이유로 시장에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크래프트'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수제'라는 말이 아닌, 만드는 이의 철학이 들어갔다는 의미로 이해하니 비로소 크래프트의 존재 의의가 와 닿더라. 펍이나 어디 식당엘 가면 수제 맥주는 꼭 주문하는데 앞으로도, 아무리 비싸더라도 꼭 주문해 마셔야겠다고 다짐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맥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겐 이보다 더 적합한 책은 없을 듯하다. 맥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읽어보면 재밌을 듯하다. 맥주의 다양한 종류에 잠깐 넋이 나갈 테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상이 자극되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맥주를 마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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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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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챈들러의 <빅슬립>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지금 읽어도 복잡한 플롯 때문에 읽는 내내 지루함과 싸웠다. 처음에 의뢰인이랑 만나고 의뢰인의 기괴한 가족들과 몇 차례 대면하고 사건의 이면에 다가설수록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것까진 볼 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개가 너무 반복적이서 흥미를 잃게 됐다. 이 점은 다시 읽어도 극복되질 않네. 가끔은 유명세가 무색하게 나와 안 맞는 고전도 있는 법이다.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탐정이 멋들어진 대사를 날리고 어떤 상황에서건 삐딱한 유머를 잃지 않고 뒷거리를 배회하고 두뇌만큼이나 주먹과 총도 사용해가며 사건을 해쳐나가는 하드보일드 특유의 스타일엔 딱히 거부감은 없다. 특히 <빅슬립>은 하드보일드의 원조격 작품으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작품이기에 - 시초는 대실 해밋이라지만 작풍에 걸맞는 캐릭터로까지 살펴보면 챈들러만큼 하드보일드의 스타일을 확립한 인물도 없다고 한다. - 후대의 겉멋든 작품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특정 작품을 의식한 게 아닌 온전히 본인의 작품 세계에 심취해서 탄생한 작품이라 해야겠다. 이런 게 당대, 그러니까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대단히 신선하게 다가왔을 듯하다. 나는 일본의 하라 료의 작품으로 하드보일드를 처음 접했는데 그 작가가 바로 일본의 챈들러라고 불리니 이렇게 원조를 읽는 게 얼마나 기대됐는지 모른다.


 특별히 1950년대 이전의 미국의 풍경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지만, 엘러리 퀸이 그린 맨해튼 섬에 비하면 챈들러의 캘리포니아의 뒷골목은 사뭇 다른 느낌을 안겨준 게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동부보단 좀 더 무법지대인 듯한 서부를 배경으로 조금만 처신을 잘못하고 수읽기에 실패하면 여지없이 폭력이 작렬하는 분위기가 눈으로 펼쳐질 듯 선명했다. 누군가는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라고 하는데 재밌는 표현이지만 제법 그럴싸하다. 아무튼 이런 식의 가감없는 작풍은 제목인 '빅슬립'이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해석이 난무하지만 결국 '영면'으로 해석되는데 - 누군가는 '꿀잠'이라 해석했다는데ㅋㅋㅋ - 듣기론 챈들러가 만든 표현이라고 한다. 참 장중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문학에서 챈들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감은 잘 안 오지만 이런 비범하다고도 볼 수 있는 면모가 평단으로 하여금 그를 고평가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읽었음에도 작중 서사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결국 이번에도 수박 겉만 핥는 후기가 되고 말았지만... 다른 사람의 후기를 접하면서 챈들러나 필립 말로와 연관되는 후대의 여러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받을 수 있어서 그런대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은근히 나와 하드보일드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일전에 읽은 로스 맥도널드의 <소름>은 꽤 괜찮게 읽어서 - 반면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는 별로였다. 주인공인 샘 스페이드가 너무 마초라서 재수 없... - 이 장르에도 조금은 용기를 갖고 도전해보려고 한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를 때도 대리인을 통해서 해야만 한다면, 갈 데까지 다 간 거지. - 16p




일단 죽으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 352~3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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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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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사실 과학 기술은 우리가 인식하는 그 이상으로 발전됐지만 바로 그 인간의 인식 때문에 아직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다분히 음모론적이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저 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어느 정도로 발전됐느냐가 아닌 바로 인간의 인식이었던 것 같다.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걸 다뤄야 할 인간이 거부감을 느끼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기술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지금 당장엔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결과는 미래가 알려주겠지.

 여성의 xx 염색체로만 임신이 가능한 기술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로선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로만 들리는데 아무튼 작품은 그 기술이 이론적으론 가능하다고 하고 이젠 검증만이 남은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줄스는 이 소식을 듣고 레즈비언 파트너인 로지 슬하에 자신들의 피로 이어진 자녀를 가지고자 한다. 아니, '자녀'란 표현은 맞지 않다. 당연하게도 xx 염색체를 가진 두 사람의 염색체만 결합해봤자 같은 xx 염색체인 아기가 태어날 수밖에 없으니 태어날 아기는 무조건 여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이 기술로 태어날 아기는 무조건 여자다. 바로 이 부분이 작중 사건의 주요 쟁점을 낳는다.


 참 흥미롭고 민감한 설정이 아닐 수 없는데, 무조건 여자만 태어난다는 결과는 그 자체로 강한 불안감을 야기시키긴 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임신 기술이 막 도입하는 즈음을 다루고 있어 작중 모든 갈등 양상이 어디까지나 앞날을 우려하는 의미에서 피어난다. 이 기술 때문에 앞으로 남자가 줄어들고 결국 여자만 이 세상에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기술은 없애야 한다 란 식으로. 따라서 이 기술이 낳을 새로운 형태의 미래나 문제점은 실질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독자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고자 이 작품을 쓴 것 같다.

 개인적으로 특정 미래가 도래하기 전에 오갈 예단과 추측만 잔뜩 앞선 느낌이라 읽기 전에 기대했던 SF적 재미는 다소 떨어진 작품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을 감상하기보다 작가의 상상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그렇게 불쾌하지 않지만 정작 내 기대완 다른 전개, 기술이 도입되기까지의 과도기나 그에 따른 언론 플레이를 너무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지루하게 읽혔다. 작가의 전공을 십분 살린 전개겠으나 적어도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이 점은 좀 아쉽다. 난 아직도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 전개에 내성이 부족한가 보다. 여담이지만 같은 영국산 SF라 해서 <칠드런 오브 맨> 같은 완성도를 기대했는데 그 작품관 전혀 느낌이 달라서 더욱 지루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주제의식도 좋을 뿐더러 기본적으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는 블록버스터였으니까...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하긴 힘들겠다.


 글쎄, 작품 자체에 대해 심화해서 얘기하면 더 살펴볼 지점이 있을 듯하다. 주인공 줄스가 딱히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서 반쯤 충동적으로 새로운 임신 기술 검증을 자원한 점이나 그럼에도 임신의 주체는 자기 파트너에게 맡기는 등 은근히 이기적인 면모도 그렇고 이후에 벌어질 여러 역경들, 그리고 고난 끝에 태어난 아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가장 얘기하고 싶은 건 '난자 대 난자', 일명 난난 시술에 대해서다. 이 시술에 자원한 모든 레즈비언 커플들은 결국엔 세상의 모든 남성을 절멸시킬 것이란 오명까지 쓰며 위협을 당한다. 무척 사실적인 묘사라 읽으면서 쓴웃음이 다 지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르긴 몰라도 내가 봤을 땐 난난 시술 때문에 남성이 절멸될 일은 없으리란 것이다.

 일단 이 시술을 이용할 사람은 레즈비언 커플들, 즉 성소수자들일 텐데 성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또 아무리 노력해도 남성의 수가 줄어들 리는 만무하다. 뭐,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꼭 출산을 하리란 법도 없고 출산을 하더라도 50:50의 확률로 남자가 태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xy 염색체를 가진 태아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 리가 없다. 여성의 수가 늘어난다면 늘어나겠지만 그게 꼭 남성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과 이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설령 남자가 태어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절멸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우리가 절대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이것도 최소 천 번은 양보한 가정인데 어쨌든 우리 세대에서 걱정하기엔 지나치게 먼 미래가 아닌가 싶어 작중 난난 시술에 반대하는 무리를 한껏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흡입력 있진 않았지만 언론 플레이 특유의 긴장감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또 생명 공학이랄지 새로운 과학 기술이 대중에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추천할 만한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주요 설정 자체가 시의적절한데 역시나 페미니즘적으로도 살펴볼 요소가 많아서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특출난 재미를 자랑하는 SF, 스릴러로썬 어떻느냐 하면 좀 애매하지만 이건 좀 개인차가 있을 듯하다.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건 이런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일독을 추천하고 싶다는 것이다. 뭐가 됐든 미래에 대해 상상해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래야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황하기보단 좀 더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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