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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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사실 과학 기술은 우리가 인식하는 그 이상으로 발전됐지만 바로 그 인간의 인식 때문에 아직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다분히 음모론적이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저 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어느 정도로 발전됐느냐가 아닌 바로 인간의 인식이었던 것 같다.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걸 다뤄야 할 인간이 거부감을 느끼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기술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지금 당장엔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결과는 미래가 알려주겠지.

 여성의 xx 염색체로만 임신이 가능한 기술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로선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로만 들리는데 아무튼 작품은 그 기술이 이론적으론 가능하다고 하고 이젠 검증만이 남은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줄스는 이 소식을 듣고 레즈비언 파트너인 로지 슬하에 자신들의 피로 이어진 자녀를 가지고자 한다. 아니, '자녀'란 표현은 맞지 않다. 당연하게도 xx 염색체를 가진 두 사람의 염색체만 결합해봤자 같은 xx 염색체인 아기가 태어날 수밖에 없으니 태어날 아기는 무조건 여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이 기술로 태어날 아기는 무조건 여자다. 바로 이 부분이 작중 사건의 주요 쟁점을 낳는다.


 참 흥미롭고 민감한 설정이 아닐 수 없는데, 무조건 여자만 태어난다는 결과는 그 자체로 강한 불안감을 야기시키긴 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임신 기술이 막 도입하는 즈음을 다루고 있어 작중 모든 갈등 양상이 어디까지나 앞날을 우려하는 의미에서 피어난다. 이 기술 때문에 앞으로 남자가 줄어들고 결국 여자만 이 세상에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기술은 없애야 한다 란 식으로. 따라서 이 기술이 낳을 새로운 형태의 미래나 문제점은 실질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독자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고자 이 작품을 쓴 것 같다.

 개인적으로 특정 미래가 도래하기 전에 오갈 예단과 추측만 잔뜩 앞선 느낌이라 읽기 전에 기대했던 SF적 재미는 다소 떨어진 작품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을 감상하기보다 작가의 상상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그렇게 불쾌하지 않지만 정작 내 기대완 다른 전개, 기술이 도입되기까지의 과도기나 그에 따른 언론 플레이를 너무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지루하게 읽혔다. 작가의 전공을 십분 살린 전개겠으나 적어도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이 점은 좀 아쉽다. 난 아직도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 전개에 내성이 부족한가 보다. 여담이지만 같은 영국산 SF라 해서 <칠드런 오브 맨> 같은 완성도를 기대했는데 그 작품관 전혀 느낌이 달라서 더욱 지루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주제의식도 좋을 뿐더러 기본적으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는 블록버스터였으니까...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하긴 힘들겠다.


 글쎄, 작품 자체에 대해 심화해서 얘기하면 더 살펴볼 지점이 있을 듯하다. 주인공 줄스가 딱히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서 반쯤 충동적으로 새로운 임신 기술 검증을 자원한 점이나 그럼에도 임신의 주체는 자기 파트너에게 맡기는 등 은근히 이기적인 면모도 그렇고 이후에 벌어질 여러 역경들, 그리고 고난 끝에 태어난 아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가장 얘기하고 싶은 건 '난자 대 난자', 일명 난난 시술에 대해서다. 이 시술에 자원한 모든 레즈비언 커플들은 결국엔 세상의 모든 남성을 절멸시킬 것이란 오명까지 쓰며 위협을 당한다. 무척 사실적인 묘사라 읽으면서 쓴웃음이 다 지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르긴 몰라도 내가 봤을 땐 난난 시술 때문에 남성이 절멸될 일은 없으리란 것이다.

 일단 이 시술을 이용할 사람은 레즈비언 커플들, 즉 성소수자들일 텐데 성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또 아무리 노력해도 남성의 수가 줄어들 리는 만무하다. 뭐,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꼭 출산을 하리란 법도 없고 출산을 하더라도 50:50의 확률로 남자가 태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xy 염색체를 가진 태아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 리가 없다. 여성의 수가 늘어난다면 늘어나겠지만 그게 꼭 남성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과 이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설령 남자가 태어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절멸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우리가 절대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이것도 최소 천 번은 양보한 가정인데 어쨌든 우리 세대에서 걱정하기엔 지나치게 먼 미래가 아닌가 싶어 작중 난난 시술에 반대하는 무리를 한껏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흡입력 있진 않았지만 언론 플레이 특유의 긴장감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또 생명 공학이랄지 새로운 과학 기술이 대중에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추천할 만한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주요 설정 자체가 시의적절한데 역시나 페미니즘적으로도 살펴볼 요소가 많아서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특출난 재미를 자랑하는 SF, 스릴러로썬 어떻느냐 하면 좀 애매하지만 이건 좀 개인차가 있을 듯하다.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건 이런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일독을 추천하고 싶다는 것이다. 뭐가 됐든 미래에 대해 상상해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래야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황하기보단 좀 더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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