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 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8
프랑수아즈 카생 지음, 김희균 옮김 / 시공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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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6 



 유독 서양 화가 중엔 이렇게 살아있을 때 평가가 박한 비운의 천재들이 많은 것 같다. 흔히 고흐가 불운한 천재의 대명사로 꼽히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마네도 그 반열에 들 만하다.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당시에 팔릴 만한 그림이 무엇이고 그려낼 수 있는 안목과 실력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의 대표작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 그리고 <폴리 베르제르 바>다. 당시 기준에선 아주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화풍과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후대 화가들, 특히 인상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마네는 인상파가 아니었고 대신 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렸다. 사물과 현상을 보이는 대로가 아닌 내가 보고 이해한 대로 그려낸다는 철학은 후대의 피카소나 뭉크의 작품 세계관에서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마네도 벨라스케스 같은 스페인 거장들의 회화에 영향을 받았지만 이렇게 현대에 있는 그대로의 부조리를 조명하거나 권태로움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는 사실상 마네가 최초라고 한다. 


 마네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고 <풀밭~>의 경우엔 그림이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끔 그림을 높이 걸고 따로 경비원들이 그림 앞을 지켜야 했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말 다했다. 아무튼 악명을 떨친 셈이라 볼 수 있는데 마네 입장에선 여간 억울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니었던지 이를 매일 신문에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마치 총살을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에밀 졸라나 샤를 보들레르 같은 지식인은 화가가 아닌 사람들 중에 마네를 가장 지지한 인물들인데 그들이 없었다면 마네가 붓을 꺾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열렬히 지지해 당사자 입장에선 퍽 힘이 됐을 듯하다. 

 물론 대중들로부터 싸늘한 반응이 돌아오고 평론가나 동료에게만 인정 받는 기분도 마냥 좋을 것 같진 않다. 특히 마네처럼 성격이 약간 괴팍해도 반권위주의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면 자신의 환장할 만한 명성이 탐탁찮아 했을 것도 같다. 마네로선 대중이나 기득권의 인정도 받고 싶었고 그래서인지 그 당시 미술계에서 주류로 여겨지는 역사화나 종교화도 그렸다. 그러나... 내 눈엔 마네의 대표작들과 비교하면 평이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그리 유명하지도 않고. 그 나름대로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작품들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분야가 시대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걸 직시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래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어 다행이다 하고 쿨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자기애가 강하고 표현 욕구가 강한 예술가 중에선 말이다. 따로 옮겨 적은 '인상 깊은 구절'에서 결점이 곧 재능이자 잔인한 운명이었다는 말은 화가를 비롯해 모든 예술가 지망생에겐 희망적이면서 참담하게도 들리는 말이다. 그야말로 희망고문이 따로 없는데, 저 말에 혹해 부족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결국 타협점을 찾아 다른 길을 도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두 가지 길 모두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자의 경우 쪽에서 역사에 남는 사람이 배출될 확률이 높지만 확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의 지망생들에게 현실의 벽의 높이를 경시할 수도 있을 말을 주입하는 것도 재고해봐야겠지만...... 하여간 천재 이야기는 이래서 문제다. 천재 이야기를 읽고 자극을 받는 건 좋은데 무턱대고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하면 나중에 비참한 기분을 가득 안겨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참으로 명심해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마네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미묘하지만 뭉크나 고흐 못지않게 흥미로운 화가다. 좋은 작품도 많이 그렸고 특유의 작품세계가 무난한 이름에 비해 강렬히 대비돼 더 반전매력으로 다가온다. 예술가라면 특히 귀감이 될 만한 화가이고 예술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풀밭~>은 처음엔 혹평을 면치 못했더라~ 고 당시 시대상을 짐작해볼 만한 역사적 자료로도 의미가 커서 <마네>는 비전공자가 읽기에도 재밌을 책이다. 시공 디스커버리의 책들은 다른 스터디 때문에 격주로 꼭 한 권씩 읽고 있는데 이 책이 제일 괜찮았다. 분량이며 번역이며... 다른 디스커버리 도서도 진득하게 몇 권 더 골라서 읽어보려고 한다. 앞으로 읽게 될 책들이 <마네>만큼 흥미롭다면 좋을 텐데, 과연? 

좀더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이 못마땅해한 그 ‘결점‘이 바로 그가 지닌 재능의 핵심이며, 그의 잔인한 ‘운명‘이었음을. -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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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요양기 - 집순이가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허안나 지음 / 라마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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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처음엔 4컷 만화고 내용도 가볍게 진행돼 나도 설렁설렁 읽었다. 남미까지 가놓고 유명 관광지로 발품을 팔기보다 에어비엔비에서 유유자적 쉬는 걸 택하는 저자의 여행 스타일에 강한 아쉬움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는데 책을 다 읽을 즈음엔 그런 유유자적한 여행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여행 스타일이 어떻든 거금을 들여 남미 여행을 떠난 저자의 행동력도 대단하고 여행 중엔 자신의 신체적 한계나 취향을 최대한 배려한 마음가짐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여행지에 맞추는 대신 여행지에 자신한테 맞추는 것, 이것도 은근히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저자의 여행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지난 나의 여행들도 떠올렸다. 돌이켜보니 그 도시에서 유명한 곳엔 무조건 찾아갔고 해야 할 것은 왠만하면 다 해봤으며 그를 실패했을 시 꽤나 아쉬워했던 것 같다. 여행 중에 다리가 아프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여독에 시달려도 그게 여행이니까 하고 넘겼다. 반면 남미에서 요양을 한 이 작가는 그때 그걸 했어야지 봤어야지 하고 후회도 않는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요양하는 여행을 아주 충실히 이행했으니까 아쉬움이 없는 것일 터다. 남미까지 가서 요양이라니, 남미 여행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지만 이런 목적으로 남미에 가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런데 이런 발상의 전환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물론 내가 남미에 간다면 이 작가보다 더 부지런히 돌아다닐 것 같다. 멀리 온 게 아까우니 하나라도 더 보려고 발품을 팔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처럼 요양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남미는 한 번 가면 여러 나라를 가야 하는 만큼 길게 여행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한 달은 족히 넘을 그 여행 기간동안 계속 부지런히 움직이면 여행이고 뭐고 탈이 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떠나게 될 텐데 그때 가면 체력이 더 떨어질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이 작가의 여행은 아주 현명한 여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도 작가처럼 현명한 여행을 하고 싶다. 

서두에 4컷 만화와 가벼운 내용을 약간 아쉬워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 이 점도 책 말미에서 인상이 달라진다.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도 점점 정감이 갔고, 가벼운 내용이라고 했지만 이 작가도 나름대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마추픽추도 보고 우유니 사막도 가고 리우에서 예수상에도 올라갔다. 워낙 오래 떠난 여행이다보니 작가는 며칠 뭉그적거리다가도 정말 핵심적인 여행지는 꼭 챙겼다. 그래, 이 정도면 밀도가 낮을지언정 충분히 알찬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적잖이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도 나중에 남미 여행할 때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떠나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남미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고 멀다고 해도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니 조금이라도 체력과 의지가 있을 때 결심하고 떠나는 게 좋을 듯하다. 만약 떠나게 된다면 노르웨이 여행 때만큼 감격하게 될 것 같군. 어쩌면 그 이상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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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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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7.5 






 요코야마 히데오의 데뷔작으로 그 작가 특유의 수컷 냄새 진하고 오글거리는 문체가 거슬렸던 작품이다. 문체의 아쉬움을 떨쳐낼 만큼 소재가 압도적이지만,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상황 설정과 막판에 몰아치는 반전이 작위적이었던 것, 그리고 신파 때문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나름대로 인과응보에 해당하는 사건의 내막과 시험지 답안을 훔친다는 루팡 작전이란 초반 설정은 아주 흥미로웠지만 작가의 진성 팬이 아니라면 호감을 갖기가 힘들 것 같다. 주인공 일행들이 기본적으로 껄렁껄렁한 인물이고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들도 쓸데없이 너무 많고 결점이 많아서 버겁게 읽혔다. 

 10년 전에 읽었을 땐 꽤나 감명 깊게 읽었고 내 기억으론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밌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다른 인상을 받았다. 이런 현상은 최근 1~2년 사이에 심해졌는데 아무래도 내 심경에 변화가 있긴 있었나 보다. 아무튼 일부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청춘의 활력이 풍기면서도 어딘지 사회 도처에 넘치는 씁쓸한 분위기도 담아내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은 분명 인상적이었는데, 무리하게 사회파 추리소설 같은 느낌으로 결말을 맺으니 과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작가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뜬금없는 결말은 아닌데, 처음엔 분명 활극처럼 시작된 이 작품의 성격을 생각하면 마무리는 다소 따로 노는 경향이 강했다. 


 <64>에서 빛이 났던 농익은 작풍에 비하면 여러모로 어설프지만 한편으론 패기가 넘친 작품이라 이런 느낌을 높게 사는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무리수도 드문드문 보였지만 이만하면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갈무리했다고 본다. 노련함 대신 패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가의 진성 팬들에겐 소중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진성 팬이 아니었을 뿐... 예전엔 분명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이젠 그렇게 못하겠다. 나도 참 적잖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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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6
이사카 코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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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칠드런>은 초창기 이사카 코타로의 매력이 듬뿍 담긴 소설집으로, 작가는 장편소설이라 공인했지만 형식적으로는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연작에 해당한다. 총 다섯 개의 중단편이 수록됐으며 각각의 이야기엔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있어 일관된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한 입으로 두말하며 틀렸다고 인정하기보단 무조건 우기는 애어른 진나이의 20대 시절 이야기가 세 편, 그가 훗날 어엿한 시니어 가정환경 조사관으로서 츤데레한 방식으로 후배 무토에게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안겨주는 이야기 두 편이 시기를 넘나들며 번갈아 수록됐다. 이 두 편의 제목이 각각 '칠드런'과 '다시 칠드런'이다. 

 진나이의 20대 시절은 이사카 코타로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퍼즐식 구성과 복선, 반전,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으며 진나이 못지않게 나가세의 존재감도 상당했다. 뛰어난 감각, 추리력을 겸비한 맹인 나가세와 그런 나가세를 전혀 차별 없이 대우하는 진나이의 티끌 없는 태도가 대조돼 묘한 힐링을 안겨준다. 이 세 수록작은 비록 소설의 본편이라 볼 수 있을 '칠드런'과는 다소 이음매가 느슨하지만 - 그래서 장편보다는 연작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 진나이라는 캐릭터의 사상이나 골때리는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들이다. 기본적으로 진나이가 문제를 키우거나 제시하고 나가세가 특유의 감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서사다. 


 후속작 <서브머린>에서의 무거운 분위기에 비해 사뭇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되던 표제작 '칠드런'과 '다시 칠드런'은 아이의 비행은 못난 어른을 보고 자란 탓이라는 이 세계관만의 주제의식을 한껏 강조한다. 등장하는 청소년들이나 가정이 처한 문제는 무엇 하나 시원스레 해결되는 것이 없지만, 한편으론 가정 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라는 것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체포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게 명확히 해결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때문에 소년법이 바뀌거나 아예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곤 대체로 크건 작건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복합적이고 그렇기에 영원히 답을 알기 힘들기에 소년법이라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 소년법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소년법이 악용돼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엄벌주의의 단점은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에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일 텐데 그 점도 경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작품에서의 무토처럼 '일 때문에 많은 소년을 보지만 솔직히 무엇이 옳고 답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솔직한 태도가 무척이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수록작 '인'은 맹인인 나가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자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진나이의 과거가 밝혀지는 에피소드기도 하다. 나가세가 맹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서술트릭도 흥미로웠고 시선에 따라선 무거울 수 있는 진나이의 행동이 해프닝처럼 묘사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부모 자식 문제는 대개 무겁고 처절하게 다뤄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선 통쾌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뿌려놓은 씨앗이 있으니 아이들한테 존중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외치는 듯한 반항적인 태도가, 진나이가 우기는 것처럼 단호하게 주장하는 작가의 태도가 참 솔직해 반론은커녕 허물없이 지지하고 싶어진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할 때와 달리 지금은 나이를 좀 먹어서 진나이에게 반감이 좀 느껴졌지만, 때론 이렇게 형식과 체면에 얽매이지 않은 애어른이 여럿 방면에 해결사 노릇을 해주지 않는가 하고 감탄하면서도 질투했던 것도 같다. 물론 진나이는 천성적으로 애어른인 것 같으니 내가 괜히 어설프게 따라했다간 곤욕을 치르게 될 테지만, 그의 솔직하고 어딘지 해탈한 태도만큼은 배워 나쁠 것 없을 것이다. 반면교사가 아닌 엄연히 롤모델로서 말이다. 


 최근에 후속작 <서브머린>을 그렇게 재밌게 읽지 않아서 비교해볼 겸 이 작품도 연달아 읽어봤다. 오히려 이 작품은 전에 읽었을 때보다 감명 깊었는데... <서브머린>도 나중에 읽으면 인상이 다르려나?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을 읽으니 많은 팬들이 진나이의 이야기를 기다린 이유를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서브머린>을 다시 또 읽어볼 듯하다.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이번엔 10년 뒤에 읽지 말아야지. 

머리만 쓰면서 대단한 척하는 놈이 결국 가장 진부한 행동을 하는 거야. 겸손하면 그런대로 봐주겠지만, 젠체하는 놈은 최악이야. - 17p



이 아버지는 자신이 사장으로 성공한 만큼, 자신의 인생이 올바르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식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인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성공한 전술을 계속 사용하면, 축구건 야구건 상대팀이 그걸 읽어버릴 위험이 있는데도, 같은 전술을 얼마든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세상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 107p



어린이는 영어로 차일드야. 그런데 복수가 되면 차일즈가 아니라 칠드런이 된다 말이지. 그러니까, 아이는 다 다른 꼴을 하고 있는 거라고. - 127p



사람을 깔보는 놈은 결국 매춘이나 하고 바람이나 피우고, 그런 진부한 짓거리밖에 못하는 거야. - 243p



애당초 어른이 폼 나면 아이도 폼이 나게 돼 있어. - 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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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잽 테르 하르 지음, 이미옥 옮김, 최수연 그림 / 궁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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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 아닌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사람에게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라고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상투적으로 들리는 나머지 기만이라 느끼거나 공허함을 느낄까? 시각은 가장 강렬한 감각이자 인간이 가장 의존하는 감각이기에 시각이 부재하는 삶은 꿈에서라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세상 모든 장애가 마찬가지지만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유독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읽고 쓰는 것처럼 보는 것과 직결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걷거나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에도 시각이 필요하다. 아주 기본적인 일조차 타인의 도움 없인 온전히 해내기 불가능한 상황이란 얘긴데, 어쩌면 장애가 무서운 이유는 장애 그 자체보다도 그런 무기력함과 절망스러움에 기인한 것이리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선 '보다' 라는 동사를 단순한 의미로만 쓰지 않는다. 외국에도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인가 싶었는데 '눈멀다'는 말에 있는 관용적인 의미, '어떤 일에 마음을 빼앗겨 이성을 잃다'는 의미가 이 작품에선 자주 사용된다. 시각을 잃은 주인공은 청각을 비롯해 여러 감각으로 사고 전엔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 보니 특히 다른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비장애인들과 다른 인상을 받곤 하는데, 이를테면 수려한 외모건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건 그게 아니더라도 외모를 깔끔하게 다듬지 않건 주인공에게 그닥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비장애인들은 시각이 주는 정보에 무의식적으로 얽매인다. 자리에 맞지 않게 깔끔한 차림이 아니면 개념이 없다고 여기고 뭘 하든 실수투성이거나 사람이 경거망동해도 외모가 괜찮으면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주인공에게 타인의 외모란 무의미하다. 시각장애의 장점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적어도 시각 정보의 제약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참 역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눈먼 사람이 오히려 눈멀지 않게 된 것이다. 작품에선 마치 서술트릭이 작렬하는 추리소설처럼 주인공이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에게 외모 때문에 그리 호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로 특유의 경박함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외모만으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는 식의 묘사가 자주 나온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소설은 필연적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구나 싶었다. 시각 정보 없이 문장만으로 이야길 전달하다보니 간혹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맹점을 찌르곤 하는 추리소설처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게 되는 주인공도 자신의 단편적인 인식의 사각을 찌르는 현실과 시시각각 마주한다. 물론 단편적이라는 말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한 말이지,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청각을 비롯해 온갖 감각을 총동원하는 주인공을 보노라면 다소 까다롭긴 해도 정말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라고 말하는 제목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앞으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뒤따를 현실적인 어려움, 장애인 학교를 향한 세간의 편견 사이에서 주인공네 가족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 편견과 무지를 극복하고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할 때 끝나는 느낌이라 아쉬웠지만 여러 사건과 존재감 넘치는 몇몇 인물의 격려로 인해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된 주인공이 장애인 학교에서건 앞으로 어느 환경에선 무사히 잘 살아가리란 희망 또한 느껴져 책을 기분 좋게 덮을 수 있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었음에도 점자를 개발한 루이 브라유처럼 주인공도 자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리란 희망 말이다. 

 슬프고 끔찍하지만 누군가에게 분명히 일어날지 모를 주인공의 시각장애 적응기와 절망 어린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은 제법 의미 있게 읽혔다. 소재를 떠나 이야기의 몰입력이 상당했는데, 단순히 시각장애에만 국한하지 않고 여타 장애나 정신적인 장애물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가슴 따뜻한 시선이 있어 이래저래 감동적으로 읽혔다. 작품의 내용이 꼭 내게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 가정하지 않고 읽어도 작품 전체에 녹아든 삶을 향한 긍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다 읽은 뒤엔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느끼며 살아갈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하고 상투적이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역겨운 불행 포르노가 아닌 장애인 창작물은 늘 더할 나위 없는 여운을 안겨준다. 이사카 코타로의 <서브머린>과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에서 시각장애인 캐릭터를 연달아 접해서 이 소설도 떠올라 다시 읽게 됐는데, 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감동적으로 읽혀 왠지 모르게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아마 이 작품은 두고 두고 읽게 될 것 같다. 나 같은 성인 독자도 그렇지만 특히 어린 독자들도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다. 전에 쓴 후기에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우린 어렸을 때 이런 좋은 이야길 많이 접해야 한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야겠지요. 이런 생각이 들자 베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다른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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