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잽 테르 하르 지음, 이미옥 옮김, 최수연 그림 / 궁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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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 아닌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사람에게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라고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상투적으로 들리는 나머지 기만이라 느끼거나 공허함을 느낄까? 시각은 가장 강렬한 감각이자 인간이 가장 의존하는 감각이기에 시각이 부재하는 삶은 꿈에서라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세상 모든 장애가 마찬가지지만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유독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읽고 쓰는 것처럼 보는 것과 직결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걷거나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에도 시각이 필요하다. 아주 기본적인 일조차 타인의 도움 없인 온전히 해내기 불가능한 상황이란 얘긴데, 어쩌면 장애가 무서운 이유는 장애 그 자체보다도 그런 무기력함과 절망스러움에 기인한 것이리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선 '보다' 라는 동사를 단순한 의미로만 쓰지 않는다. 외국에도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인가 싶었는데 '눈멀다'는 말에 있는 관용적인 의미, '어떤 일에 마음을 빼앗겨 이성을 잃다'는 의미가 이 작품에선 자주 사용된다. 시각을 잃은 주인공은 청각을 비롯해 여러 감각으로 사고 전엔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 보니 특히 다른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비장애인들과 다른 인상을 받곤 하는데, 이를테면 수려한 외모건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건 그게 아니더라도 외모를 깔끔하게 다듬지 않건 주인공에게 그닥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비장애인들은 시각이 주는 정보에 무의식적으로 얽매인다. 자리에 맞지 않게 깔끔한 차림이 아니면 개념이 없다고 여기고 뭘 하든 실수투성이거나 사람이 경거망동해도 외모가 괜찮으면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주인공에게 타인의 외모란 무의미하다. 시각장애의 장점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적어도 시각 정보의 제약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참 역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눈먼 사람이 오히려 눈멀지 않게 된 것이다. 작품에선 마치 서술트릭이 작렬하는 추리소설처럼 주인공이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에게 외모 때문에 그리 호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로 특유의 경박함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외모만으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는 식의 묘사가 자주 나온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소설은 필연적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구나 싶었다. 시각 정보 없이 문장만으로 이야길 전달하다보니 간혹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맹점을 찌르곤 하는 추리소설처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게 되는 주인공도 자신의 단편적인 인식의 사각을 찌르는 현실과 시시각각 마주한다. 물론 단편적이라는 말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한 말이지,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청각을 비롯해 온갖 감각을 총동원하는 주인공을 보노라면 다소 까다롭긴 해도 정말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라고 말하는 제목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앞으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뒤따를 현실적인 어려움, 장애인 학교를 향한 세간의 편견 사이에서 주인공네 가족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 편견과 무지를 극복하고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할 때 끝나는 느낌이라 아쉬웠지만 여러 사건과 존재감 넘치는 몇몇 인물의 격려로 인해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된 주인공이 장애인 학교에서건 앞으로 어느 환경에선 무사히 잘 살아가리란 희망 또한 느껴져 책을 기분 좋게 덮을 수 있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었음에도 점자를 개발한 루이 브라유처럼 주인공도 자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리란 희망 말이다. 

 슬프고 끔찍하지만 누군가에게 분명히 일어날지 모를 주인공의 시각장애 적응기와 절망 어린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은 제법 의미 있게 읽혔다. 소재를 떠나 이야기의 몰입력이 상당했는데, 단순히 시각장애에만 국한하지 않고 여타 장애나 정신적인 장애물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가슴 따뜻한 시선이 있어 이래저래 감동적으로 읽혔다. 작품의 내용이 꼭 내게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 가정하지 않고 읽어도 작품 전체에 녹아든 삶을 향한 긍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다 읽은 뒤엔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느끼며 살아갈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하고 상투적이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역겨운 불행 포르노가 아닌 장애인 창작물은 늘 더할 나위 없는 여운을 안겨준다. 이사카 코타로의 <서브머린>과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에서 시각장애인 캐릭터를 연달아 접해서 이 소설도 떠올라 다시 읽게 됐는데, 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감동적으로 읽혀 왠지 모르게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아마 이 작품은 두고 두고 읽게 될 것 같다. 나 같은 성인 독자도 그렇지만 특히 어린 독자들도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다. 전에 쓴 후기에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우린 어렸을 때 이런 좋은 이야길 많이 접해야 한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야겠지요. 이런 생각이 들자 베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다른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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