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요양기 - 집순이가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허안나 지음 / 라마북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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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처음엔 4컷 만화고 내용도 가볍게 진행돼 나도 설렁설렁 읽었다. 남미까지 가놓고 유명 관광지로 발품을 팔기보다 에어비엔비에서 유유자적 쉬는 걸 택하는 저자의 여행 스타일에 강한 아쉬움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는데 책을 다 읽을 즈음엔 그런 유유자적한 여행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여행 스타일이 어떻든 거금을 들여 남미 여행을 떠난 저자의 행동력도 대단하고 여행 중엔 자신의 신체적 한계나 취향을 최대한 배려한 마음가짐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여행지에 맞추는 대신 여행지에 자신한테 맞추는 것, 이것도 은근히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저자의 여행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지난 나의 여행들도 떠올렸다. 돌이켜보니 그 도시에서 유명한 곳엔 무조건 찾아갔고 해야 할 것은 왠만하면 다 해봤으며 그를 실패했을 시 꽤나 아쉬워했던 것 같다. 여행 중에 다리가 아프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여독에 시달려도 그게 여행이니까 하고 넘겼다. 반면 남미에서 요양을 한 이 작가는 그때 그걸 했어야지 봤어야지 하고 후회도 않는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요양하는 여행을 아주 충실히 이행했으니까 아쉬움이 없는 것일 터다. 남미까지 가서 요양이라니, 남미 여행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지만 이런 목적으로 남미에 가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런데 이런 발상의 전환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물론 내가 남미에 간다면 이 작가보다 더 부지런히 돌아다닐 것 같다. 멀리 온 게 아까우니 하나라도 더 보려고 발품을 팔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처럼 요양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남미는 한 번 가면 여러 나라를 가야 하는 만큼 길게 여행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한 달은 족히 넘을 그 여행 기간동안 계속 부지런히 움직이면 여행이고 뭐고 탈이 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떠나게 될 텐데 그때 가면 체력이 더 떨어질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이 작가의 여행은 아주 현명한 여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도 작가처럼 현명한 여행을 하고 싶다. 

서두에 4컷 만화와 가벼운 내용을 약간 아쉬워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 이 점도 책 말미에서 인상이 달라진다.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도 점점 정감이 갔고, 가벼운 내용이라고 했지만 이 작가도 나름대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마추픽추도 보고 우유니 사막도 가고 리우에서 예수상에도 올라갔다. 워낙 오래 떠난 여행이다보니 작가는 며칠 뭉그적거리다가도 정말 핵심적인 여행지는 꼭 챙겼다. 그래, 이 정도면 밀도가 낮을지언정 충분히 알찬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적잖이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도 나중에 남미 여행할 때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떠나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남미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고 멀다고 해도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니 조금이라도 체력과 의지가 있을 때 결심하고 떠나는 게 좋을 듯하다. 만약 떠나게 된다면 노르웨이 여행 때만큼 감격하게 될 것 같군. 어쩌면 그 이상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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