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6
이사카 코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9.5 





 <칠드런>은 초창기 이사카 코타로의 매력이 듬뿍 담긴 소설집으로, 작가는 장편소설이라 공인했지만 형식적으로는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연작에 해당한다. 총 다섯 개의 중단편이 수록됐으며 각각의 이야기엔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있어 일관된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한 입으로 두말하며 틀렸다고 인정하기보단 무조건 우기는 애어른 진나이의 20대 시절 이야기가 세 편, 그가 훗날 어엿한 시니어 가정환경 조사관으로서 츤데레한 방식으로 후배 무토에게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안겨주는 이야기 두 편이 시기를 넘나들며 번갈아 수록됐다. 이 두 편의 제목이 각각 '칠드런'과 '다시 칠드런'이다. 

 진나이의 20대 시절은 이사카 코타로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퍼즐식 구성과 복선, 반전,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으며 진나이 못지않게 나가세의 존재감도 상당했다. 뛰어난 감각, 추리력을 겸비한 맹인 나가세와 그런 나가세를 전혀 차별 없이 대우하는 진나이의 티끌 없는 태도가 대조돼 묘한 힐링을 안겨준다. 이 세 수록작은 비록 소설의 본편이라 볼 수 있을 '칠드런'과는 다소 이음매가 느슨하지만 - 그래서 장편보다는 연작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 진나이라는 캐릭터의 사상이나 골때리는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들이다. 기본적으로 진나이가 문제를 키우거나 제시하고 나가세가 특유의 감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서사다. 


 후속작 <서브머린>에서의 무거운 분위기에 비해 사뭇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되던 표제작 '칠드런'과 '다시 칠드런'은 아이의 비행은 못난 어른을 보고 자란 탓이라는 이 세계관만의 주제의식을 한껏 강조한다. 등장하는 청소년들이나 가정이 처한 문제는 무엇 하나 시원스레 해결되는 것이 없지만, 한편으론 가정 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라는 것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체포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게 명확히 해결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때문에 소년법이 바뀌거나 아예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곤 대체로 크건 작건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복합적이고 그렇기에 영원히 답을 알기 힘들기에 소년법이라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 소년법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소년법이 악용돼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엄벌주의의 단점은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에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일 텐데 그 점도 경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작품에서의 무토처럼 '일 때문에 많은 소년을 보지만 솔직히 무엇이 옳고 답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솔직한 태도가 무척이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수록작 '인'은 맹인인 나가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자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진나이의 과거가 밝혀지는 에피소드기도 하다. 나가세가 맹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서술트릭도 흥미로웠고 시선에 따라선 무거울 수 있는 진나이의 행동이 해프닝처럼 묘사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부모 자식 문제는 대개 무겁고 처절하게 다뤄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선 통쾌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뿌려놓은 씨앗이 있으니 아이들한테 존중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외치는 듯한 반항적인 태도가, 진나이가 우기는 것처럼 단호하게 주장하는 작가의 태도가 참 솔직해 반론은커녕 허물없이 지지하고 싶어진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할 때와 달리 지금은 나이를 좀 먹어서 진나이에게 반감이 좀 느껴졌지만, 때론 이렇게 형식과 체면에 얽매이지 않은 애어른이 여럿 방면에 해결사 노릇을 해주지 않는가 하고 감탄하면서도 질투했던 것도 같다. 물론 진나이는 천성적으로 애어른인 것 같으니 내가 괜히 어설프게 따라했다간 곤욕을 치르게 될 테지만, 그의 솔직하고 어딘지 해탈한 태도만큼은 배워 나쁠 것 없을 것이다. 반면교사가 아닌 엄연히 롤모델로서 말이다. 


 최근에 후속작 <서브머린>을 그렇게 재밌게 읽지 않아서 비교해볼 겸 이 작품도 연달아 읽어봤다. 오히려 이 작품은 전에 읽었을 때보다 감명 깊었는데... <서브머린>도 나중에 읽으면 인상이 다르려나?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을 읽으니 많은 팬들이 진나이의 이야기를 기다린 이유를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서브머린>을 다시 또 읽어볼 듯하다.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이번엔 10년 뒤에 읽지 말아야지. 

머리만 쓰면서 대단한 척하는 놈이 결국 가장 진부한 행동을 하는 거야. 겸손하면 그런대로 봐주겠지만, 젠체하는 놈은 최악이야. - 17p



이 아버지는 자신이 사장으로 성공한 만큼, 자신의 인생이 올바르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식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인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성공한 전술을 계속 사용하면, 축구건 야구건 상대팀이 그걸 읽어버릴 위험이 있는데도, 같은 전술을 얼마든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세상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 107p



어린이는 영어로 차일드야. 그런데 복수가 되면 차일즈가 아니라 칠드런이 된다 말이지. 그러니까, 아이는 다 다른 꼴을 하고 있는 거라고. - 127p



사람을 깔보는 놈은 결국 매춘이나 하고 바람이나 피우고, 그런 진부한 짓거리밖에 못하는 거야. - 243p



애당초 어른이 폼 나면 아이도 폼이 나게 돼 있어. - 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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