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3



스포일러 있음



'평범한 인간은 자신의 거짓을 스스로 견뎌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 30p'


 다 좋았는데 필요 이상으로 꼬인 듯한 사건의 내막과 사에키 나오코란 인물의 황당한 행적이 사족이었던 것이 거슬렸던 작품이다. 전자는 취향의 문제지만 후자는 편집자든 지인이든 작가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줬어야 하는 부분이지 않았나 싶다. 프로포즈를 받은 남자의 아이를 배고 있었으면서, 홀몸으로 프로포즈를 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낙태를 하는, 그것도 사촌 오빠인 고야에게 아이 친부인 척을 해달라며 같이 산부인과로 갔다는 진상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그냥 나오코가 사에키와 고야 양다리를 걸쳤더라는 식으로 갔어도 상관없을 듯한데 말이다. 하여간 납득이 안 가는, 그야말로 진상 진상이다.

 위에서 서사의 복잡함, 특히 필요 이상으로 꼬인 듯한 사건의 내막도 거슬린다고 얘기했었는데, 정확히 얘기하자면 연출 탓이라고 정정해야겠다. 모든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경쟁하듯 명대사를 질러주고 퇴장하길 반복하니 인물들의 몇몇 대화 장면만 기억에 남지 정작 사건의 큰 줄기가 무엇이었는지 놓치게 되는 불상사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숲이 아닌 나무에만 눈길이 가게 되는 연출이었는데, 하드보일드의 매력은 잘 어필했지만 정작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위태로운 지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요번에 재독하는 내내 든 생각이다.


 이 작품의 재독을 시작으로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내가 죽인 소녀>를 읽었고 오늘 <안녕, 긴 잠이여>도 펼쳐든 참이다. 탐정 사와자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시리즈는 몇 년 전 작가의 사망으로 결국 완결을 볼 수 없는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평생 고심하며 펜을 움직였을 작가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비록 위에서 쓴소릴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내겐 20대 중반에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명대사는 여전히 명대사고 캐릭터들은 지면임에도 살아 숨쉬는 듯해 빠져들어가며 읽었다. 시리즈 2부부턴 필력이 예전만 못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후속작이 나오면 찾아 읽을 용의가 있었는데... 참 아까운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났다. 특히 내가 아쉽다고 말한 부분을 거의 보완한 후속작 <내가 죽인 소녀>를 읽은 직후라 작가의 부고에 더더욱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경험이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배운 지는 7년이 되죠. - 27p

미술이란 말하자면 허구와 상상력의 세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진짜 예술은 자체에 그 거짓을 견뎌내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러지 못하죠. 평범한 인간은 자신의 거짓을 스스로 견뎌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 30p

요즘 젊은 세대는 결정타를 날리기 전에 잽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래서 마찰이 생기면 느닷없이 파국을 맞이한다. - 51p

본인 입으로 들으면 전혀 느낌이 오지 않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 가운데 최고는 자기가 효자라는 이야기지.- 72p

찍는 쪽이 나쁘다, 찍히는 쪽이 잘못이다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잡지를 사서 읽는 놈들이 제일 나쁘지. - 81~82p

뚱보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는 뚱보는 조심해야 한다. - 119p

당연한 걸 자랑하면 프로페셔널이라고 할 수가 없지. - 242p

나는 승부에 진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패배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나 패배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인간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433p

요즘은 다들 답에만 신경을 쓰지 질문 쪽은 생각을 하지 않아. 그만한 질문이 있어야 나올 대답인데 답만 끄집어내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건 뭔가 잘못된 거지. - 4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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