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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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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오묘하고 성스러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니 큰까마귀, 영혼, 곰, 토템, 밥 샘 등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존재들로 머리 속이 가득하다.  작가가 기록한 이 알래스카에 대한 책은 그 자체가 신화가 되었다. 알래스카 인디언들이 추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으니 말이다.

  작가는 1996년 8월 8일 취재차 방문한 쿠릴 호수에서 불곰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 비극적인 사실을 인지하고 책을 보려니 사진으로 등장하는 그리즐리 곰, 북극곰, 흑곰 들을 보는게 비극으로 가는 카운트다운인 것 같아 우울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한다.  "그러나 신화의 차원에서 본다면 호시노 미치오는 너무나도 그다운, 영웅다운 최후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곰을 좋아하던 남자가 결국 곰의 세상으로 떠났으니 말이다."(258쪽) 라고. 작가 호시노 미치오는 그 자신도 신화가 되었다.

 

  세계 강대국의 박물관에는 식민지배를 했거나 침략했던 국가의 유물들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다.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의 반환을 주장하는 국가들의 목소리도 종종 들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프랑스 측에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요구했던 것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안에서 단순히 자국의 유물과 문화재는 자국이 소유하는 것이 옳다는 단순한 논리만을 적용했었는데, 알래스카의 하이다족의 이야기는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20세기가 되고 강국의 박물관이 전 세계의 역사적 미술품 수집에 앞다퉈 나서는 시대의 막이 올랐다. 퀸샬럿 섬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대다수의 토템 기둥이 강국에 의해 저들의 나라로 빠져나갔다. 살아남은 하이다족의 자손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성한 장소를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도록 방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인류사에 있어 중대한 가치를 지니는 토템 기둥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외부의 압력마저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39-40쪽)

 

하이다족의 말을 따르면 강대국에게 빼앗긴 유물들의 반환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강국으로부터 반화된 유물들을 자국의 박물관, 미술관 같은 곳에서 '보존'하겠다는 것도 적절한 것이 못된다. 그들에 의하면 '그것은 그것이 태어난 바로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곳이 아니라면 세상 모든 곳은 무의미한 장소에 불과하다. 그 대상이 마모되고 부서져 소멸된다고 해도 그곳은 영원히 신성한 장소로 남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러나 인간이 진정 알고 싶은 것을 알고 말았을 때, 과연 우리는 살아갈 힘을 손에 넣을까? 아니면 잃어버리게 될까? 알고픈 것을 알려는 마음이 인간을 지탱해 주지만, 알고자 하는 것을 결국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답한다. 이 대답은 작가의 절친한 친구 셀리아 헌터가 말했다는 'Life is what happen to you while you are making other plans(인생이란 무언가를 계획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과 맞닿아 있다. 나는 이 문장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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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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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들로 북적이는 병원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는데 거참, 태어나서 산다는게 고역이다 싶다. 나름 머리를 굴려가며 멋진 계획을 세워봤더니 이런 내가 못마땅한건지 싱그러운 봄날은 나에게 알레르기를 선물해주었다. 줄줄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막고, 간질간질한 눈두덩이를 부여잡으며 멍하게 앉아있는다.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는걸까,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을까, 힘든 일은 없는지, 사는게 즐거운가요?' 그들을 바라보며 떠올린 질문들은 곧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경제학자 우석훈은 <1인분 인생>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고민거리를 말하면 "나도 그런 고민이 있었지, 그건 말야..." 라고 답해줄 것 같은 인생 선배의 모습이다. 실제로 책의 챕터를 구분하는 큰 제목들-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지 못한다면,  의욕도 재미도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지겹다면 등등-은 그 글귀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생 선배로부터 명쾌한 해답을 들을 수 있을것만 같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열정적으로 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진짜 이런저런 일을 경험한 인생 선배의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인생에 대한 약간의 허무함, 약간의 회한, 약간의 기대감 등이 글에서 엿보여서 더 현실적이랄까.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무척 공감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저자의 화려한 경력-프랑스 유학파,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책분과 의장 등-이 떠올라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래저래 흥미로운 책이다.

 

  뭐랄까... 산다는건 다 그런건가. 결국 내가 괴롭고 힘든 것은 나에게 없는 것만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고양이 키우는 맛에 산다고 했듯이 결국 우리들을 위로하는 것은 그런 소소한 일들이 아닐까.

그리고 중요한 키워드는 '책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그 분은 열정적인 독서가이기를 나도 작가와 함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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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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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턴은 <시턴 동물기>로 익숙한 이름이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본 적 없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이번에 만난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은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지침서이다. 시턴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 <시턴 동물기> 등 그가 쓴 동물문학을 접해본 사람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작품일 거라고 생각한다.

 

  시턴은 1907년 캐나다 북서쪽 끝에 자리한 야생의 삼림지대와 북극 지역의 대초원지대를 향해 카누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주목적은 순록을 관찰하고 그 개체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턴은 이 여행을 오로지 그저 좋아서 자비를 들여서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은 시턴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정부 ․ 박물관 등에서 비밀스런 목적으로 파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시턴이 가려는 곳은 척박한 자연일 뿐이고 자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야생의 모기떼에게 소중한 피를 헌납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시턴은 카누여행을 하면서 목격한 각종 동물 · 식물 등을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그가 설명해주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카누여행의 길 안내를 위해 고용된 북극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참 재밌다. 길 안내를 위해 고용된 자들은 인디언, 혼혈인 등 다양했는데 문제아들(?)도 있었지만 위소, 윰, 조지, 벨라리즈 등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1907년 10월 20일, 시턴과 동료들은 아타바스카 강 협곡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리게 되었다. 물살에 휘말리면서도 시턴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6개월의 여행을 기록한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이 든 가방이 급류에 휩쓸려 보이지 않자 시턴은 무척 낙담하면서 “좋다. 그런 기록을 잃어버린 것쯤이야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내 삶과 생각의 소중한 단편들을 영영 놓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하고 괴로워한다. 이때 검은 혼혈인 지아로비아가 시턴의 일기장이 든 캔버스 천 가방을 등에 매고 돌아온다. 시턴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붙잡고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네.”라고 외친다. 이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그의 글을 읽다보면 시턴이라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애로 충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인디언들에 대한 우월감, 편견 등도 보이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다. 시턴은 사실 지아로비아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기장이었건만, 그가 자신을 위해 20킬로미터를 넘고, 뛰고, 기어오르고, 구르고 넘어지고, 헤엄치는 고생을 하면서까지 일기장을 찾아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기뻐하며 그 일을 소개하고 있다. 이 목소리에는 진정한 감사, 안도, 기쁨 등의 감정이 느껴진다. 가감 없는 진짜 감정 말이다. 시턴은 인디언들이 대부분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백인들의 비인간적 행태를 고발하기도 한다.

 

회복할 기약이 없는 끔직하고 치명적인 질병들을 수도 없이 보았는데, 대부분이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중략) 한바탕 사람들이 들이닥쳤다가 간 후에 피에르 스쿼럴 추장이 던진 간단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지 아시겠지요? 얼마나 고통 받고, 아파하는지요. 조약을 맺을 때 선생님네 정부에서 이곳에 경찰과 의사를 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선교사들만 보내더군요.”(130쪽)

   

  시턴을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 - 동물학자, 에세이스트, 박물학자, 화가 - 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그가 이 여행의 끝자락에서 실망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만족해하고 기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반평생 꿈꿔온 여행을 마치고 4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다시 돌아가 그 모든 것을 보고 오라”라는 말만 따르겠다며 다시 떠날 것을 다짐한다.

시턴의 “나는 마음속에 동경을 품어왔고, 그 오랜 본능에 구체적인 형태를 불어넣었다”라는 말이 지금 나에게 너도 어서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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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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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브라이슨 이라는 이름을 가진 둥글둥글한 아저씨 얼굴은 익숙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아니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여행기의 본좌를 드디어 만났구나!!!’ 였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뛰어난 저널리스트인 저자이므로 멋진 작품을 써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하는 일반적인 여행준비 - 유명한 음식점 검색, 익숙한 유적지·박물관·미술관 등등 - 와는 다른 그의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가 멋지다. 그 역시 호주에서 꼭 봐야한다는 울루루 등을 찾아 먼 길을 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동물, 식물이 가득한 호주의 자연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여행의 특징이라면, 그가 일명 <호주 여행기> 등으로 불릴 수 있을 여행 서적이 아닌 역사책(History!!!)을 중심으로 호주의 얼굴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유럽인들이 호주에 정착하기 한참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아왔던 애버리저니들 에게까지 시선을 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퍼스에 위치한 ‘거인들의 계곡Vally of the Giants' 또는 ’트리 톱 워크Tree Top Walk'로도 불리는 곳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다. 작가가 그 곳에 찾아간 날도 역시 주차장은 차로 붐볐고,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는 그 곳의 경치에 흠뻑 빠지면서 이곳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만한 곳임을 확인한다. 그러던 중 ‘그다지 높거나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은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되자 그는 그곳을 ‘오랫동안 얌전히 둘러보았다.’ 이때 그는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는 그 숲이 진정 오스트레일리아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숲과 수목의 관계는 찰스 킹스포드 스미스와 비행, 혹은 애버리저니와 선사 시대의 관계와 같았다. 사람들이 까닭 없이 무시하는 것들 말이다’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제한된 구역에 오스트레일리아 바깥세상에서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거대한 나무들이 독특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는 사실이 경이로워 보였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적으로 가득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384-385쪽)

 

  이 매력적인 여행기의 또 하나의 장점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현실’을 우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하는 데 있다. 작가는 친구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약 10년마다 일어난다는 산불 재해의 규모를 듣고 놀라며 그 위험성에 대해 묻는다.

 

 “그럼 이곳에서 지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거지?”

 그는 달관한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신의 손에 달렸지. 다음 주가 될 수도 있고, 지금부터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영원히 없을 수도 있고.”

 그러더니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 나라에서 자네 운명은 전적으로 자연의 손에 달려 있다네, 친구.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지.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그게 뭔가?”

 “모든 게 연기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런 일들에 반드시 감사하게 될 걸세.” (218-219쪽)

 

  빌 브라이슨은 이 여행에서 여행기(旅行記)만이 아니라 숨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얼굴이 드러난 역사책 한 권을 남긴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목은 <햇볕에 타버린 나라에서 IN A SUNBURNED COUNTRY>이다. 작가는 1908년 도러시어 매켈러 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시인이 기고한 <나의 나라>라는 시가 십중팔구 오스트레일리아 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일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이 시의 두 번째 연의 네 행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햇볕에 타버린 나라를 사랑한다네,I Love a sunburnt country, 

드넓은 평원, A Land of sweeping plains,

험준한 산맥, of ragged mountain ranges,

가뭄과 억수 같은 비의 땅을. of droughts and flooding rains.

 

  작가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등 작가이름을 앞에 붙여서 ‘빌 브라이슨 시리즈’로 기획·출판되고 있다. 시리즈 형식의 제목도 좋지만 <햇볕에 타버린 나라에서>처럼 원제목에 충실한 제목은 어땠을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시의 '나는 햇볕에 타버린 나라를 사랑한다네'가 무척 오래동안 기억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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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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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 수상자 16인의 인생,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와 사진이 담긴 책이다. 이들의 인터뷰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작가들의 말을 들으면서 공감하게 되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무지한 내가, 매정한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빌었다. 

 

 

권력에 대한 저항

 

한창 공천이다 뭐다해서 정치판이 시끄럽다.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이렇게 웃긴 코미디가 있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정치, 정치인은 일종의 사회악 같은 존재가 아닐는지. 16인의 작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방식으로 권력에 맞서고 있었다. 이들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도리스 레싱은 정치에 대해 “좌파니 우파니, 이제 나한테 그런 것들은 별 의미가 없어요. 나는 정치를 위대한 드라마 혹은 호시절에 대한 반추 정도로 대해요. 마치 에스파냐의 국왕 후안 카를로스가 극우파의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요.(후략)” (120쪽)라고 말한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던 월레 소앙카끝내 나는 거절했소. 무엇보다도 내 기질에 맞지 않아요. 자유와 권력은 대립적이잖소. (139쪽)라고 답한다.

중국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기피인물)가 된 가오싱젠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우리는 사람의 관심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당의 관심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가 진실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권력이 있으면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은 다수에 의해 선택되지만, 그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웃기지도 않는 결과일 뿐이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매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166쪽)

 

 

수치스러운 과거를 인정하는 법

 

 식민 지배를 경험한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식민지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대체 식민지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또한 식민 지배를 자행한 국가의 국민은 어떤 삶을 사는가? 여기 이 의문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양철북>(1959), <넙치>(1979) 등의 작품을 쓰고,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이다. 그는 2006년에 출간한 회고록 <양파껍질을 벗기며>에서 자신의 히틀러 청년대 군복무 경험을 언급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는 자신이 나치 친위대에 근무했다고 밝힌 것이 갑작스러운 ‘고백’이 아니며 그 사실을 항상 인정해왔다고 말한다. 그 과거가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권터 그라스가 나치 친위대 근무 경력을 밝히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잔혹한 시대에 자행된 폭력을 순응하고 회피해온 인간 본연의 죄의식에 대한 것이 아닐까.

 

 “내가 진짜로 미안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소? 그건 내가 이미 털어놓았던, 40년 동안 숨기고 싶어 했던 그런 게 아니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한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던 그것은, 바로 내가 했던 모든 것과 그 시절에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오. 전쟁 초기에 그들은 내 사촌을 총살했고, 학교에 있는 내 급우와 교사를 데려갔소.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어떤 병사는 총살 집행인으로 뽑히는 것을 거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소. 나는 그들을 향해 왜 그러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그들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게 바로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자 내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고통이오.”(203쪽)

 

나는 “그 시절은 그냥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라는 명제로 친일파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친일파, 독립운동가라는 도식 바깥에 존재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일제의 지배를 새로운 지배계층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갔다는 이유로 그들을 매국노라고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 역사적 과오가 전혀 없었다고 평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매국노, 독립운동가라는 도식적 구조의 사고 대신 먼저 솔직한 자기고백, 자기반성이 등장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종교

 

 인류는 종교 갈등이 초래한 엄청난 비극을 경험해왔다. 무릇 종교라면 모든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칠 터인데 왜 자신의 종교만 옳고 다른 이의 종교는 옳지 않다 하는가.

월레 소앙카 유일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여러 종교들의 넉넉함과 종교들 사이에 정립된 우호적 관계들이 마냥 좋았던 본인으로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학살, 성물 파괴 행위 등이 우울했다고 한다. 또한 “나는 독실한 신도도 아니고 숭배자도 아니오. 그렇게 된다는 게 좋은 일도 아니잖소.” (134쪽) 라며 종교에 대한 맹신을 거부한다. 그는 수많은 신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얼굴과 고난을 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진짜 얼굴이다.

 내세에 대한 물음에 V.S 네이플 은 대답한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오. 내 삶은 글을 쓸 뿐, 그게 다요. 쓰는 게 내 종교요. 그게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요.” (245쪽)

어쩌면 신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내 옆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진정한 종교이고, 신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종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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