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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노벨문학상 수상자 16인의 인생,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와 사진이 담긴 책이다. 이들의 인터뷰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작가들의 말을 들으면서 공감하게 되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무지한 내가, 매정한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빌었다.
권력에 대한 저항
한창 공천이다 뭐다해서 정치판이 시끄럽다.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이렇게 웃긴 코미디가 있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정치, 정치인은 일종의 사회악 같은 존재가 아닐는지. 16인의 작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방식으로 권력에 맞서고 있었다. 이들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도리스 레싱은 정치에 대해 “좌파니 우파니, 이제 나한테 그런 것들은 별 의미가 없어요. 나는 정치를 위대한 드라마 혹은 호시절에 대한 반추 정도로 대해요. 마치 에스파냐의 국왕 후안 카를로스가 극우파의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요.(후략)” (120쪽)라고 말한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던 월레 소앙카는 “끝내 나는 거절했소. 무엇보다도 내 기질에 맞지 않아요. 자유와 권력은 대립적이잖소.” (139쪽)라고 답한다.
중국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기피인물)가 된 가오싱젠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사람의 관심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당의 관심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가 진실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권력이 있으면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은 다수에 의해 선택되지만, 그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웃기지도 않는 결과일 뿐이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매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166쪽)
수치스러운 과거를 인정하는 법
식민 지배를 경험한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식민지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대체 식민지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또한 식민 지배를 자행한 국가의 국민은 어떤 삶을 사는가? 여기 이 의문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양철북>(1959), <넙치>(1979) 등의 작품을 쓰고,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이다. 그는 2006년에 출간한 회고록 <양파껍질을 벗기며>에서 자신의 히틀러 청년대 군복무 경험을 언급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는 자신이 나치 친위대에 근무했다고 밝힌 것이 갑작스러운 ‘고백’이 아니며 그 사실을 항상 인정해왔다고 말한다. 그 과거가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권터 그라스가 나치 친위대 근무 경력을 밝히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잔혹한 시대에 자행된 폭력을 순응하고 회피해온 인간 본연의 죄의식에 대한 것이 아닐까.
“내가 진짜로 미안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소? 그건 내가 이미 털어놓았던, 40년 동안 숨기고 싶어 했던 그런 게 아니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한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던 그것은, 바로 내가 했던 모든 것과 그 시절에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오. 전쟁 초기에 그들은 내 사촌을 총살했고, 학교에 있는 내 급우와 교사를 데려갔소.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어떤 병사는 총살 집행인으로 뽑히는 것을 거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소. 나는 그들을 향해 왜 그러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그들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게 바로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자 내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고통이오.”(203쪽)
나는 “그 시절은 그냥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라는 명제로 친일파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친일파, 독립운동가라는 도식 바깥에 존재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일제의 지배를 새로운 지배계층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갔다는 이유로 그들을 매국노라고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 역사적 과오가 전혀 없었다고 평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매국노, 독립운동가라는 도식적 구조의 사고 대신 먼저 솔직한 자기고백, 자기반성이 등장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종교
인류는 종교 갈등이 초래한 엄청난 비극을 경험해왔다. 무릇 종교라면 모든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칠 터인데 왜 자신의 종교만 옳고 다른 이의 종교는 옳지 않다 하는가.
월레 소앙카 는 유일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여러 종교들의 넉넉함과 종교들 사이에 정립된 우호적 관계들이 마냥 좋았던 본인으로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학살, 성물 파괴 행위 등이 우울했다고 한다. 또한 “나는 독실한 신도도 아니고 숭배자도 아니오. 그렇게 된다는 게 좋은 일도 아니잖소.” (134쪽) 라며 종교에 대한 맹신을 거부한다. 그는 수많은 신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얼굴과 고난을 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진짜 얼굴이다.
내세에 대한 물음에 V.S 네이플 은 대답한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오. 내 삶은 글을 쓸 뿐, 그게 다요. 쓰는 게 내 종교요. 그게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요.” (245쪽)
어쩌면 신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내 옆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진정한 종교이고, 신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종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