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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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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내내 일종의 신세계를 보는 기분을 느꼈다. 여기서 ‘신세계’는 흔히 쓰이는 것처럼 보기 좋고, 맛 좋고, 눈이 즐거운 기분 좋은 경험의 의미가 아니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고 믿기 어려운, 책의 한 줄 한 줄을 읽는 행위조차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세계였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나는 취직 안 된다는 인문학을 전공했고, 그걸로 몇 년간 밥을 먹고 살았다. 밥벌이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계약직 신분이었고, 계약이 만료된 지금은 정규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참 어렵다. 나는 내가 실력이 없으니까, 못났으니까 비정규직·계약직으로 일한 거라고 규정했다. 물론 객관적인 스팩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되는 사태는 오로지 노동자 개인의 문제란 말인가. 우리 사회의 고용구조, 자본주의의 속성과는 진정 관련이 없다는 말인가?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나 아닌 다른 사람, 사회에 관심이 덜해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몇 달 동안 밀린 월급 때문에 울어본 일이 없다. 온갖 화학약품에 찌들면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수십 년을 월 100 만원 받으며 묵묵히 일했어도 퇴근길에 문자메시지로 비참하게 해고 통보를 날리는 매정한 곳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부당해고 철회, 복직을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하고 울부짖는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모두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본이 규정한 삶의 구조를 묵묵히 인정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징징대기만 한 꿈꾸지 않는 영혼이었지 뭐. 2012년 현재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중세 봉건시대 영지에서 살던 노예들보다 나을게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송경동 시인은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씨를 보면서 이제는 다른 수많은 노동자들을 떠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몇몇 국회의원과 유명인들이 한진중공업 문제해결의 주역이라고 회자되는 것이 웃기고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진숙이 절망의 크레인에서 내려오기까지 어떤 이들의 순박한 노고가 있었는지, 어떤 뜨거운 눈물의 바다가 있었는지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희망의 근거를 보았으며, 더 아름다운 만인의 연대와 희망버스 시즌 2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자본의 비인간성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식어버린 마음으로 서 있을 나를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시인의 글들을 읽고 또 읽어 꿈꾸지 않으려는 영혼을 붙잡아야한다. 시인이 두려워하는 이 시대의 ‘온건한 폭압’에 길들여지는 게 무섭고 슬프다.

 

  그런데 참 세상일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벗이었다던 고 노무현 대통령 임기시절에 왜 해고노동자 수가 가장 많았는지,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었을 사람들의 시위를 보고 그는 왜 “혁명하겠다는 거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가? 정치란 건 참 중요한 것이지만 정치판에 뛰어든 이후에는 더 이상 어제의 동지가 영원한 동지가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일지언정 진실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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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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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읽어본 것은 그 유명한 <노르웨이 숲> 하나이다. 정말 좋은 소설이라며, 질풍노도의 청춘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추천으로 읽어보았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어떤 부분에서 감동적이라는 건지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은 내게는 뭐랄까, 그의 작품을 칭찬하면서도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 그런 허망한 기분을 들게 하는 이름이었다. 정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거론하고 이해하는 척 했었던 것이다.

 

그 후 하루키의 에세이 <슬픈 외국어>를 접했다. 이 책은 일본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다양한 세계를 접하려고 노력했던 하루키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생활하면서 종종 느꼈던 이질감, 슬픔 등이 표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호기심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가 외국어를 배울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이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질수록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강도가 더 강해진다는 거다. 하루키가 <슬픈 외국어>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나는 소설 쓰는 하루키보다 에세이 쓰는 하루키가 더 좋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하루키의 미발표 에세이부터 미수록 단편소설 등이 실린 말 그대로 하루키의 다양한 글들이 모인 잡문집이다. 하루키는 잡문집을 내면서 서문에 ‘설날 복주머니’를 여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가득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을 것이라며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니까요”라고 말한다. 이 비유는 하루키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의 작품에 우월함을 가지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자세.

 

  하루키는 1990년에 자신의 소설 이 오랜 세월 동경해 마지않던 잡지 <뉴요커>에 실린 일을 두고 “그런 ’성역‘에 가까운 지면에 내 작품이 실리고 이름이 찍힌다는 것이 선뜻 믿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원고료까지 받았다. 그것은 내게 그 어떤 훌륭한 문학상을 받는 것보다도 기쁜 일이었다”(342쪽)라고 말한다. 이 하루키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외국 잡지에 팔린 글이라는 점에서 그가 느낀 소박한 감동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해외여행을 하다 서점에 들러 마주치게 되는 번역되어 출간된 자신의 작품을 볼 때도 “실로 감개무량한 광경이다”라고 말하는 하루키를 보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처음의 감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 팀 오브라이언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이 “소설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말한다. ’올바른 자세‘는 단지 소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도 소설 쓰는 사람, 번역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올바른 자세‘로 임하라고 조언하는 것 같다.

 

  <잡문집>은 하루키를 몰랐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루키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 그가 왜 사랑받는지 말해준다. 하루키가 준 복주머니에는 그가 말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여정을 계속 함께 하고 싶은 호기심이 들어 있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좋은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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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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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으나 우리들은 평소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이 A라면 그냥 A이겠거니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 식당은 사람들이 돈 내고 먹을거리를 사먹는 공간, 떡볶이는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여전히 맛 나는 음식 등 학교는 학교이고, 떡볶이는 떡볶이이다. 물론 떡볶이를 먹으며 나누었던 친구들과의 우정처럼 각자가 내포하는 의미가 또 있을테지만 말이다.

하나의 사물이 갖는 고유한 의미가 더 이상의 확장 없이 고정되었을 때, 그리고 그 고정성을 깨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귀찮아질 때 그때 내 상상력은 꽁꽁 굳어버리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실린 어떤 기사를 보니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할 때, 예를 들어 발라드만 듣던 사람이 헤비메탈 음악을 듣는 것처럼 낯선 일을 시도할 때 뇌(brain)가 건강해진다고 한다. 익숙해지면 지루해지고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인간의 본능은 그야말로 뇌 건강을 위한 본능에서 비롯된 걸까.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자 위대한 작가’라는 평을 듣는 미셸 트루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두 개의 개념을 짝을 지워 제시하고, 그 개념들로부터 기존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의미를 끌어낸다.

‘물과 불’이라는 챕터에서는 “물과 불이 싸우면, 언제나 불이 지게 되어 있다”라는 스페인 속담을 제시하며 ‘불은 젊은 정신과 대담한 열정, 물은 슬프고 실망스러운 현실에의 종속’이라고 말한다. 물과 불이라는 두 개체가 서로 만나 벌어지는 결과 - 불은 물에 의해 꺼지게 되는 -를 젊은 정신과 실망스러운 현실에의 종속 간의 부딪힘으로 표현한다. 이 둘이 부딪히면 당연히 불이 꺼지게 되므로 비관론을 언급하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념들 중 ‘역사와 지리’로부터 표현해낸 의미들이 무척 인상 깊다. 작가는 역사와 지리를 설명하면서 시간과 공간, 미술, 문학작품, 지리소설 등으로 연결시켜 간다. 그러다가 문학작품으로 넘어가 역사와 지리처럼 대조적인 관계라며,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토마스 만이 여러 장소에서 거주했던 것은 상황에 떠밀려 선택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반대로 ‘자기들에게 가장 잘 맞는 기후를 찾기 위해서 정신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보이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경우를 제시한다. 니체가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로 돌아다녔던 것은 ‘자신이 정착할 최상의 땅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던 헤르만 헤세의 경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이야기들은 여행에 대한 아름답고 새로운 정의를 내리기에 이른다.

 

“이들에게 여행이란, 결코 방랑자의 어떤 소명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들은 영원히 뿌리를 내리고 살 장소를 찾아다니는 정착민이었다. 그 장소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방랑은 일생 동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113쪽)

 

   작가가 프랑스인이어서 문화차이를 느끼게 되는 부분도 있다. ‘지하실과 다락방’의 내용이 낯설었는데 한국의 주거문화에서 지하실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집에 다락방이 있었는데 이 경험 때문에 확실히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문학,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감을 경험하게 되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소소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생경함이 종종 느껴지지만 기본적으로 낯선 것에 대한 만남, 그로 인해 뇌가 자극되는 이 여행이 주는 의미는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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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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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주 생각한다. 먹기 위해 사는건 아닐까 하고. 직장인들이 출근한 즉시 하는 생각이 '언제 퇴근하지?'라는 일명 직장인 뇌구조 그림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잠깐.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가해야 한다. 점심 먹고 들어와 업무를 시작할 때면 머리 속은 또 '저녁에는 뭐 먹지?'하는 고민으로 가득차기 시작한다는 것! 온갖 음식종류를 다 떠올리고 되새기느라 막상 저녁이 되면 식욕이 떨어지기도 하는 이 재미난 삶의 사이클이여... 과연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단 말인가. 아니 나는 무엇때문에 산단 말인가...

 

이 책은 국내 인기작가들이 인생에서 기쁨, 슬픔, 찬란함, 회한 등을 함께 공유했었던,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각자의 '소울푸드'들을 소개한다. 단순한 음식이야기가 아니어서 더 가치 있다. 

얼마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를 봤는데 가수들이 산울림의 곡들을 편곡해서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김창완 씨가 그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 하는데 참 정겹더라. 이 아저씨는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도 참 맛깔나게 잘하시지 않던가. 아저씨도 책의 한 꼭지를 담당해 자신의 소울푸드를 소개하신다. 수제비 가게에서 어울리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비틀즈 음악을 들으며 어릴적 개구리, 참새, 뱀, 메뚜기 잡아먹던 추억을 떠올리고 수제비에서 나는 들깨향기를 맡으니 병환으로 고생하셨던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 아파한다. 아저씨, 어쩜 이렇게 글도 잘 쓰십니까... 아, 인간의 다재다능함이여!!!      

 

혼자서 고독해하며 먹었던 음식들, 벗들과 함께여서 더 맛있었던 음식들... 지금까지 살면서 엄청나게 섭취했을 음식들 중에 아직 나의 소울푸드는 없는 것 같다. 소울메이트 찾는 것만 하늘에 별따기인줄 알았는데 소울푸드 찾는 일도 꽤나 힘겨운 일이 될것 같다. 이건 아직 내 인생의 결이 진하지도 굵지도 않다는 것이겠지. 아직도 나는 너무 두꺼운 벽에 쌓여 있구나 라는 자성을 하게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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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황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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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떠오르는 추억 하나하나가 음식이라는 건 그 맛의 정도를 떠나 그동안 배곯고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기쁨으로 다가올 것 같다. 이 책은 음식을 통해 떠오르는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펼치면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물론 작가처럼 해외를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그 곳의 음식들을 맛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곳도 역시 사람사는 곳이어서 인간사 보편적 감정들을 어렵지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갑자기 혼자가 될 때가 있다. 친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각자 재미있고 정다운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버리고 혼자서 정처 없이 거리를 걸어갈 때, 만날 사람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그런 저녁이 있지 않은가"(217쪽)

 

나도 괜히 쓸쓸한 마음에 정처없이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작가와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한 순간이 나에게는 '황홀'이었다. 단 나는 작가처럼 그럴 때 찾아갈 단골집이 없다는게 문제지만. 이렇게 타인의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다정하게 들리는지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그런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부제로 붙은 '성석제의 음식이야기'가 무색하게 작가의 음식이야기가 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독서의 순간에 배고픔 따위는 잊었던 걸까. 음식이 주는 황홀을 느끼지 못한게 안타깝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감정들을 확인하는 '황홀'을 맛보았으니 배가 부르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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