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일사 - 부산 선비, 근대 일본을 목격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1
박상식 지음, 부산박물관 옮김 / 서해문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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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산 사람은 사행일기(使行日記)를 남기지 않는 것일까


<동도일사(東渡日史)>는 부산광역시의 모태인 동래부(東萊府) 사람이 쓴 유일한 사행일기(使行日記)라고 한다. 조선 후기부터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를 포함한 12차례의 통신사(通信使)와 개항 이후 4차례의 수신사(修信使)가 일본으로 파견되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의외의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부산 사람이 통신사나 수신사 일행에 참가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고구마 종자를 전파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조엄(趙曮, 1719~1777)을 정사(正使)로 하는, 1763년 통신사에는 적어도 두 명의 부산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계미수사록(癸未隨槎錄)>을 쓴 제2기선의 기선장(騎船將) 변탁(卞琢)과 <부산진 순절도(釜山鎭 殉節圖)> 등을 남긴 제3기선의 기선장 변박(卞璞)이 바로 그들이다. 비록 변탁이 <계미수사록>을 남겼지만, 이는 통신사 일행이 타고 갈 기선(騎船)과 복선(卜船)의 제조 과정과 운항 실태를 기록한 것이라서 일반적인 사행일기(使行日記)와는 거리가 있다. 이들이 남긴 글과 그림으로 볼 때, 사촌간인 이들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역관 집안인 밀양 변씨(密陽 卞氏)의 일원이지만, 사행일기를 남기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들 지방의 중인들은 나랏일은 나와 상관없다고 선을 긋고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사행일기를 쓰지 않았거나 썼더라도 전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도일사(東渡日史)]의 구성과 내용

그런 의미에서 중앙의 사대부 출신 관료가 아닌 지방의 중인 출신 향리가 남긴 <동도일사>는 독특하면서도 소중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박상식(朴祥植, 1845~1882)의 <동도일사>는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동도일사>는 크게 3부분, 즉 박상식 본인의 사행일기[1부], 1880년 7월 6일에서 8월 4일까지 정사(正使) 김홍집(金弘集, 1842~1896)과 일본 외무성 관료들이 주고 받은 문답[2부], 수신사 관련 공문[3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김홍집과 일본 외무성 관료간의 문답이 기록된 2부다. 왜 저자가 이것을 기록해서 자신의 사행일기에 남겼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향서기(鄕書記)라는 직책으로 수신사에 합류한 저자의 이 결정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당시 조선과 일본이 가진, 날것의 생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몇 가지 사례를 보면,

7월 6일 차관보에 해당하는 외무소보(外務小輔) 요시카와 아키마사[芳川 顯正, 1842~1920, 이하 ‘요시카와’]와의 대화가


요시카와: 귀국의 사신은 이번 행차에 며칠 머물 것인가?

나[김홍집]: 한 보름 계획하면 일을 마치고 도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요시카와: 병사(兵士)의 기숙사[寮舍]와 기국(機局)은 볼 것이 많은데 여행기간이 이처럼 촉박한가?

나: 종전 통신사의 행차는 이보다 더 되지 않았다. 또한 병학(兵學)과 기계(器械)는 이 사신이 어수룩해서 평소에 아는 바가 없어서 보더라도 도움될 것이 없다. [p. 87]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조선의 집권층은 두 번째로 수신사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일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자세가 안 보인다. 어쩌면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일본에 대한 시혜(施惠)라고 여기는 시각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는 수신사로 파견된 59명 중 실무를 담당한 것은 당상관 이종무(李宗懋), 군관 윤웅렬(尹雄烈, 1840~1911), 서기 이조연(李祖淵, 1843~1884)와 강위(姜瑋, 1820~1884), 반당(伴倘)1) 지석영(池錫永, 1855~1935) 등 19명이고 나머지 2/3가 사행 때 부절(符節)과 부월(斧鉞)을 받들고 가는 절월수(節鉞手), 나팔수(喇叭手), 가마꾼 등 의례를 위한 인원이었다는 점에서도 엿보인다.


또한 일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이에 따른 소요시간에 대한 예측도 없었던 것 같다. 요시카와와의 대담에서 보름이라고 언급한 일정이 두 배로 늘어 한 달이 된 것은 이를 반증(反證)한다.
7월 8일 차관급인 외무대보 우에노 가게노리[上野 景範, 1845~1888, 이하 ‘우에노’]와의 대화는


우에노: 우리 나라는 요즈음 부강해지는 기술을 모두 터득했다. 귀국도 부강해지기를 원하는 만큼 상무가 왕성하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요즈음 세계의 형세가 일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순치의 도움이 있어야 하니, 귀국과 함께 동심동력(同心同力)으로 군무(軍務)나 기계 등 어느 곳이나 서로 이끌어 구라파(歐羅巴)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나: 귀국의 왕성한 의욕이 이러하고 우리나라와 우리 정부에 일찍 알게 해 주어 감사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강토(疆土)가 한구석에 있고 서쪽에는 청국, 동쪽에는 귀국이 있는데 그 밖의 다른 나라는 처음부터 경계를 접하지 않고 왕래도 없으므로 조야(朝野)의 인심이 옛 규정만 지키니 오늘날의 사세가 실행하기 쉽지 않은 바가 있다. [p. 95]


라고 기록되었는데, 여기에는 시대의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옛 것만 묵수(墨守)하는 조선 지배층의 모습이 엿보인다.


하긴, 오죽 답답했으면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팔’이라는, 외무경(外務卿)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1836~1915]가 수신사 일행이 떠나기 직전인 8월 3일에 만났을 때 충고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노우에]: 각하가 돌아가 보고할 지라도 조정에서는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충고하지 않을 수 있나? 서양 각국은 먼저 수호하기만 바랄 뿐이지 서둘러서 반드시 통상을 하려 하지 않는다. 현재 귀국의 계획을 보건대 병사와 기계는 배울 필요가 없고 오직 빨리 몇 사람을 파견해 이곳에 와 머무는 동안 각국의 교제 사정을 상세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니 허술하게 듣지 마시기 바란다.

만약 위험에서 안전하게 회복하고 재해에서 유리해진 뒤에도 성의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다시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 조정에서 명령하는 뜻을 미리 알 수는 없을지라도 어찌 감히 하나하나 상세히 아뢰지 않겠는가?

그: 예조의 원서계(原書契)2) 외에 각국 사정을 하나로 마련해 별도로 함에 넣어 올린다. [pp. 105~106]


뿐만 아니라 김홍집은 일본을 경계한 것인지 오랑캐라고 멸시하는 화이관(華夷觀)이 발동한 것인지 몰라도 묘하게도 일본인과의 교류에 소극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인천항 개항과 관세문제에 대한 재논의를 목적으로 파견되었는데, 전권위임장과 초안을 아예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신사를 파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논의의 기회를 상실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김홍집만 일본인에 대해 이런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박상식도 7월 11일 사행일기에서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노출한다.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와 공사 하나부사가 와서 이야기를 했다. 모두 천하의 형편과 세계의 대세를 이야기했는데 과장된 저의가 아닌 것이 없었다.

~ 중략 ~

그 자랑하고 과장하는 버릇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pp. 57~58]


뿐만 아니라, 7월 17일 일기에서 서양 각국을 양이(洋夷)로만 여기는 시선을 드러낸다.

오후에 10리쯤 돌아가 도서관에 갔더니 바로 성묘(聖廟)3)였다. 밖에서 들어가니 문이 셋 있는데 첫 번째는 서적관(書籍館)이고 두 번째는 입덕문(入德門)이고 세 번째는 행단(杏壇)인데 정전(正殿)에 대성전(大成殿)이라는 액자(額子)가 걸려 있었다.

~ 중략 ~

메이지[明治] 이후 양서(洋書)를 조금 두었는데 그 수가 오히려 많으니 생도(生徒)가 모두 오랑캐로 변하고 유풍(儒風)은 거의 잠잠하다고 한다. [p. 64]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신사의 일원으로 방문한 기계공작소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서술했지만, 유곽(遊廓)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유곽이 있는 오시와라[吉原]를 묘사하는 7월 15일의 일기와 기계공작소를 설명하는 7월 16일의 일기는 그들이 얼마나 서양 문물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계공작소에 들르니 쇠를 다루고 나무를 다듬는 일을 오로지 기관차의 힘에 의존하고 있으니 참으로 천기(天機)를 쏟고 화공(化工)을 모으는 것이라 할 만하다. [p. 63]


멀리 높은 누각과 큼직한 집들을 바라보니 몇 리에 걸쳐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층마다 난간에 채색등이 상. 중. 하 세 줄로 걸려 있고, 창문에는 수를 놓았다. 반쯤 걷어 올린 주렴 속에는 아가씨들이 백옥(白玉)같은 용모로 너덧 혹은 예닐곱씩 짝을 지어 있었다. 모두 머리에 금화(金花)를 꽂고 몸에는 청라(靑羅)를 입고 손에는 단선(團扇)을 흔들면서 담소하며 찻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화려한 촛불이 안팎으로 환히 밝히고 있는 것이 흔히 말하는 <요지연도(瑤池宴圖)>와 흡사했다.

~ 중략 ~

조금씩 보고 지나면서 100여 집이 넘었으나 끝을 보지 못했다. 이윽고 계수나무 그림자가 서쪽으로 기울고 향기로운 먼지가 얼굴을 스치니 정신이 피로하고 눈이 어른거려 바로 관소로 돌아왔는데 그 형용을 생각해 보면 춘몽(春夢)에서 깨어난 것 같다. [pp. 61~62]


이것은 일본에서 독촉하니 방문은 하지만, 천(賤)한 기술은 관심도 없다는 마음자세가 반영된 기록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수신사에 참여한 이들이 개방이나 근대화에 찬성한 것은 신기하다. 비록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에 영향 받은 ‘동도서기(東道西器)’를 내세웠지만.


그래서 훗날 김홍집을 비롯해서 이조연(李祖淵), 종두법을 보급하고 독립협회에서 활약한 지석영(池錫永) 등을 동도서기(東道西器)에 기반을 둔 온건개화파로 분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살짝 결이 다른 이도 있다. 갑신정변 참여로 급진개화파로도 분류되는 윤웅렬(尹雄烈)은 적극적인 친일활동은 안 했다지만,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 받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바 있다.


어쨌든 수신사에 실무진으로 참여한 이들이 국제정세에 눈을 떴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동도서기’에서 출발했다는 태생적인 한계는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끝내 조선의 집권세력을 설득하지 못했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 조선을 제대로 바꾸지도 못했다. 결국 이 책에 암시된, 어설픈 충격이 가져다 준 근대화 욕구는 우리가 아는, 예정된 비극으로 치달았다. 읽으면서 왠지 입 안이 씁쓸해졌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반당(伴倘)은 조선시대 종친, 공신, 당상관들에게 그 특권을 보장하고 신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급한 일종의 호위병이다.
2) 서계(書契)는 조선시대 일본과 내왕한 공식 외교문서를 의미하고, 원서계(原書契)는 그 원본을 가리킨다.
3) 성묘(聖廟)는 공자(孔子)의 신위(神位)를 받드는 묘우(廟宇)로 공자묘(孔子廟) 혹은 문묘(文廟)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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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스페인사 - 현대 스페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윌리엄 D. 필립스 주니어 외 지음, 박혜경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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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하나의 국가인가
 
얼마 전에 읽었던 <중앙아시아, 막이 오른다>라는 책을 펼치면,

소비에트 이전까지 중앙아시아 대부분 나라는 단일한 민족국가라기보다는 씨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연방이 해체된 뒤 각각의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되자, 이제 하나의 민족국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을 결합시킬 구심점이 필요하게 되었다.1)


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단일민족 국가에 태어나고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국가가 나서서 이렇게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모습은 ‘근대적’ 국경(國境) 개념이 희박했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절대왕정(絶對王政)을 처음 꽃피웠다고 여기지는, 서유럽의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스페인 내전 이후 집권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이하 ‘프랑코’) 총통은 ‘스페인은 하나’임을 내세워, 우리에게 스페인어로 알려진 카스티아어를 제외한 각 지역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탄압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각 지방이 독자적인 언어와 역사, 전통을 가지고 있으니 이에 대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바스크 분리주의자’나 ‘카탈루냐 분리주의자’처럼 ‘분리 불가능한 국가로서의 스페인’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급증했다고 한다. 심지어 2017년 10월 27일 카탈루냐 의회는 ‘카탈루냐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카탈루냐 지역이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 680~741)에 의해 프랑크 왕국의 속국이 된, 아키텐 공국(602~1453)의 지배에 반항하기 위해 지역 유력자들이 바르셀로나와 손잡고 형성한 바르셀로나 백작령에서 기원했다는 점에서 이런 중앙집권에 대한 반항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기원(起源)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를 포르투갈과 공유하는 근대국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곳의 지리적 용어는 모두 복잡한 역사를 지닌다. 그리스인은 이 반도를 이베리아(Iberia)라고, 로마인은 히스파니아(Hispania)라고 불렀다. 로마제국 말기부터 8세기까지 사용된 스페인(Spain)이라는 용어는 정치적 현실보다 편의에 따른 용어였다. 이곳의 영토와 민족들을 묘사한 다른 용어들은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무슬림이 스페인을 장악했던 시기에 그들은 반도에서 손에 넣은 지역을 알안달루스(al-Andalus)라고 불렀고, 이 단어가 이르는 지리적 범위는 이슬람 세력의 통치하에 팽창하다가 종국에는 축소되었다. 중세 유대인들은 이곳을 세파라드(Sefarad)라고 불렀다. 중세 기독교 스페인에는 수많은 왕국과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중세 말에 이르러 반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다. 카스티야의 통치자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통치자 페르난도 2세의 결혼은 스페인이라는 근대적 국가 개념의 기원이 되었다. [p. 13]


즉, 스페인은 처음부터 지방자치적 성격이 강한, 연방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오랫동안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왔다. 예를 들면, 한때 스페인의 황제를 칭했던, 나바라 왕국(Reino de Navarra, 824~1841)의 산초 3세(Antso Ⅲ, 재위 1004~1035)는 그의 자식들에게 나바라, 레온(Leon)-카스티야(Castilie), 아라곤(Aragon)을 나눠주었고, 이들은 상당기간 서로 견제하면서 존속했다. 산초 3세의 차남이자 카스티야의 백작 겸 레온의 국왕인 페르난도 1세는 자신이 확장한 영토를 그의 자식들에게 나눠주었다. 페르난도 1세의 차남 알폰수 6세는 그의 아버지가 나눈 카스티야, 레온, 갈라시아(Galicia)와 포르투갈 백작령을 재통합했다. 이런 식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들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왔다.

오늘날 이베리아인과 전 세계 스페인어 화자들은 중세 카스티야에서 쓰이던 언어에서 유래된 카스티야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스페인인 외에는 대부분 이 언어를 스페인어라고 부른다.

~ 중략 ~

반도의 로망어들 가운데 포르투갈어는 포르투갈의 공용어이고, 가까운 사촌 격인 갈리시아어는 지역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출판계에서 사용되며 스페인 서북부에서 부활하고 있다. 카탈루냐어는 수많은 카탈루냐 주민의 모국어로 교육과 대중매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카탈루냐어는 프랑스 남부의 중세어인 오크어, 즉 프로방스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 중략 ~

가장 특이한 언어는 바스크어(에우스케라(Euskerra)어)다. 이 언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구어이며,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무렵 언어가 쇠퇴하자 바스크 지식인들은 바스크어를 다시 사용하고 이전에 미흡했던 문어체를 발전시켰다. 그 후 에우스케라어의 사용은 바스크 민족주의로, 스페인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기 위한 다양한 모색으로 연결되고 있다. [pp. 15~16]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오늘날 스페인은 스페인어로 알려진 카스티야어 외에 옛 왕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을 가지고 있는 17개의 광역자치주(Comunidad Autónoma)가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스페인은 연방의 성격이 강한 미국 못지 않은, ‘연방국가’의 성격을 띄고 있음이 드러난다.



스페인,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다

아마도 스페인이 국민 스스로가 ‘스페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되려면, 소수 언어와 문화 등에 대해 프랑코 총통 이상의 강력한 탄압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예컨대 베트남의 경우 불교를 믿는 비엣[越]족이 지속적인 남진(南進)을 통해 중부와 남부를 병합했다. 그런 후,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 문화, 민족들을 포용하는 대신 배제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던 말레이계 참족에 대한 민족말살정책이다. 그 결과, 한때 참파 왕국(192~1832)을 형성하고 베트남 중남부를 장악했던 참족은 베트남 내에서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프랑코 정권이 지속되었다면, 스페인에 있어서 베트남의 얘기는 남의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은 신앙,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적 계층, 직업, 가문의 내력 등을 근거로 또는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해 본인이 무엇에 진정으로 충성하는지를 규정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은 자기가 살고 있던 지역을 장악한 진영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한 진영에 서서 싸우려고 다른 진영의 통제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목숨을 걸었다. 다른 곳의 내전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내전은 가족과 공동체를 산산이 부숴놓았다. 강한 신념, 공포, 개인적 반감, 야심, 비겁함, 혹은 온갖 수많은 다른 동기로, 이웃들은 서로를 공격했다. 내전은 억압된 분노와 과거의 증오 곁에 참상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만들어냈다. [p 341]

 
이런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정권이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을까? 프랑코 총통의 후계자로 등장한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지방자치를 존중하는, 입헌군주정을 추구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스페인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있다. 바스크와 카탈루냐가 정서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리주의 운동을 이어나가는 등 프랑코 정권의 유산(遺産)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불행했던, 그리고 잊고 싶었던 과거를 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Cuéntame como pasó)>라는 제목의 주말 드라마는 가공의 알칸타라 가족 이야기를 몇 세대에 걸쳐 풀어놓는다. 이야기는 프랑코 정권 말기인 1968년부터 그들을 따라가면서 현재로 이어진다. 드라마 방영이 시작된 이후 매주 목요일, 스페인의 저녁 식사 시간인 밤 10시, 자신들의 삶과 조국의 최근 역사를 다룬 이야기가 펼쳐지면 수백만 명의 스페인 사람이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꼼짝 않고 앉는다. 노련한 작가, 프로듀서, 배우로 이루어진 팀이 얽히고설킨 역사를 인간애와 더불어 균형 있게 묘사하는 이 시리즈는 압도적인 성공작으로서 그 자체로 사회적·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p. 393]



 
1) 김주연, <중앙아시아, 막이 오른다>, (파롤앤, 2025),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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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
쑨이멍 지음, 박지민 옮김 / 빅허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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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스토리가 있는 장소, 백년 가게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그런 의미와 고유한 느낌이 있는 도시의 공간들을 ‘장소(lieu)’라고 정의했다. 장소라고 다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시간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비(非)장소(non-lieu)’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의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도시의 장소들은 감동, 기쁨, 안식, 평안을 제공한다. 장소에서는 공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비장소에서 공간은 그저 상투성과 단절감만 느끼게 한다. ‘장소’는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생긴 기능적 ‘비장소’들만 즐비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 속에는 ‘세렌디퍼티’1)와 ‘장소’의 화학적 결합이 쉽게 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시의 공적인 ‘장소’가 기억과 상상의 연금술을 통해 나만의 장소,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2)


이처럼 사회학자 정수복의 <파리의 장소들>은 오래된 기억과 스토리(story)가 있는 공간을 ‘장소(place)’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포(老鋪)라고 부르는 백 년 가게들도 누군가의 장소일 것이다.

그렇기에 파리고등응용예술대학 학생이었던 쑨이멍[孫藝萌]이 일러스트레이션 과제로 그렸던, 파리 백 년 가게들에 대한 책인 <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에 손이 갔다. 그녀는 가게들을 찾아 다니며 가게의 역사, 가게 사람들의 이야기, 상품에 대해 취재하고 이를 일러스트와 함께 짧은 글로 옮겼다. 다만 50곳이라는 많은 장소를 한정된 지면에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정보의 양이 아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백년 가게’라는 이름의, 추억과 이야기가 얽힌 장소들


노포(老鋪) 혹은 백년 가게라고 하면 흔히 대(代)를 이어 운영되는 오래된 식당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대장간처럼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사라진 수공업 가게들도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식당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 책에서 요식업이 아닌 다른 업종의 백년 가게들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 기껍다.
요식업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맛을 파는 가게’ 17곳을 제외하며 ‘특별한 기념품이 필요할 때 갈만한 가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파리 시민이 아닌 이상, 우리는 파리에 출장처럼 업무상으로 방문하거나 관광하기 위해 방문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기념품 혹은 선물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향초(트루등), 향수(불리오리자 엘 로그랑, 화장품(데따이유), 파이프(아 라 피프 뒤 노르), 자수(아니 부케) 등에 시선이 가게 된다.
기념품에 관심이 없는, 자타공인의 ‘책벌레’라면 ‘문화가 가득한 가게’에서 소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골 가게이자 문학에 대한 토론의 장이 펼쳐졌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17세기 이후 문헌자료의 벼룩시장이라는 라 갈캉트, 고전 만화책과 잡지가 가득한 뤼테스, 희귀 중고서적을 사고파는 리브레리 주솜 등에 군침이 흐를 것이다.

라 갈캉트(La Galcante)

출처: <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 pp. 76~77


혹시 현지인의 일상이 궁금한 이라면, ‘파리 시민의 일상이 있는 가게’에서 소개하는 꽃집(라숌), 약국(파르마시 생토노레오루즈), 주방용품 가게(E. 드일르랑), 공구점(게냐르 미용), 담배 가게(아 라 시베트) 등에 관심이 갈 수도 있다.

파르마시 생토노레(Pharmacie Saint-Honore)

출처: <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 pp. 106~107


어쩌면 이런 백년 가게들이야말로, 흔히 ‘파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예술과 문화의 1번지에 걸맞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과 스토리(story)가 있는, 진정한 파리의 장소들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해당 장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 이에게는 추억을 되새겨줄 좋은 매개체가 될 듯하다. 또 파리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도 파리만의 감성을 느
껴보고 싶은 이에게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다만, 2%부족한 정보 때문인지, 파리 관광을 위해서라면 이 책 이외에 여행가이드북과 같은 다른 책도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 세렌디퍼티(serendipity): 완전하게 우연히, 예상치 않게, 기분 좋은 발견을 하는 재능


2) 정수복, <파리의 장소들>, (문학과지성사, 2010) , pp.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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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리커버) 대산세계문학총서 1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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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이하 ‘보들레르’)!
그는 19세기의 위대한 미술비평가 중 하나이자 ‘현대시의 시조’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악마의 옹호를 자처한 반항적인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남긴 유일한 시집이 바로 이 책,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이다. 그의 이미지만으로는 악마주의적이거나 다소 외설적인 시(詩)들이 가득 찰 것 같지만, 실제 <악의 꽃>을 펼치면, 반항적인, 젊은 락스타의 노래 같은 느낌을 주는 시(詩)가 더 많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알바트로스(L’ALBATROS)>라는 시(詩)가 있다.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엽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 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 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 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p. 47]


우리가 신천옹(信天翁)이라고 부르는, 날개를 펼치면 가장 큰 새인 알바트로스를 제목으로 하는 이 시(詩)를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과 공존(共存)하려는 동양이라면 이렇게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그저 보고 즐겼을 텐데자연을 정복(征服)의 대상으로 여기는 서양이기에 선원들은 그 새를 잡아 갑판에 내려놓는다. 시(詩)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날개를 꺾거나 해서 알바트로스가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 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리라.
어쩌면 보들레르는 이 무기력해진 알바트로스에게 자신을 투영시켰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라고 한탄한 것이 아닐까? 혹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번뜩이는 재능을 가진 자신이 대중의, 문단의 평가에 의해 날개가 꺾일 미래를 어렴풋이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보들레르는 젊은 시절 사창가를 드나들다가 파리 법과대학에 입학하기 전 성병에 걸렸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방종한 품행 때문에 그의 작품에도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악의 꽃>에서 삭제된 시(詩)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 출간으로 공중도덕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과 함께 시(詩) 여섯 편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삭제된 시(詩) 중 하나인 “너무 쾌활한 여인에게(A CELLE QUI EST TROP GAIE)”를 보면, 굳이 삭제해야 할 만큼 음란하고 저속한 시(詩)로 보이지 않는다.

너무 쾌활한 여인에게


그대 머리, 그대 몸짓, 그리고 그대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처럼 아름답다;

청명한 하늘에 신선한 바람처럼

그대 얼굴엔 웃음이 노닌다.


그대 곁을 스쳐가는 침울한 행인도

그대의 팔과 어깨로부터

빛처럼 솟아나는

그 건강에 황홀해진다.


그대 옷차림에 뿌려놓은

요란스런 색깔은

시인의 마음에

꽃들의 발레 같은 환영을 던진다.


그 야단스런 옷들은

얼룩덜룩한 그대 마음의 표상인가;

나를 황홀하게 하는 쾌활한 여인이여,

나는 그대를 미워한다, 그대 사랑하는 만큼!


때로 아름다운 정원에서

무기력을 떨치지 못할 때면,

나는 태양이, 빈정거리듯,

내 가슴을 찢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봄과 신록이

내 마음에 그토록 창피를 주었기에,

나는 한 송이 꽃에

[자연]의 교만함을 벌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 날 밤

쾌락의 시간이 울릴 때,

보석 같은 그대 몸 곁으로

겁보처럼 살그머니 기어가,


쾌활한 그대 살을 벌주고파

내맡긴 그대 젖퉁이를 멍들게 하고파,

그대의 놀란 옆구리에

움푹한 커다란 상처를 내어주고파,


그리고 아 현기증 나는 쾌감이여!

더욱 눈부시고 더욱 아름다운

그 새 입술을 통해, 누이여,

그대에게 내 독을 부어 넣고 싶어라! [pp. 351~352]


아무리 읽어봐도 왜 삭제되는, 일종의 기록말살의 판결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여성의 동성애를 노래하는 “레스포스(LESBOS)”나 “천벌받은 여인들(FEMMES DAMNEES)”은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풍기문란죄의 적용을 납득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보들레르가 <악의 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詩)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악마의 연도(煉禱)(LES LITANIES DE SATAN)>에서 언급한 악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악마와 달리 하나님에 의해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 소위 ‘루시퍼(Lucifer)’의 이미지가 강하다. 어떻게 보면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 B.C. 247~B.C. 183)처럼 핍박 받는 영웅의 이미지도 살짝 곁들인.
어쩌면 악마를 그렇게 묘사했기에 악마를 옹호했다는 얘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분석하기에는 난해하지만, 가볍게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보들레르에 대한 선입견은 버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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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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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은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ee>, <으제니 그랑제(Eugenie Grandet), <고리오 영감(Le Pere Goriot)> 등으로 유명한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는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는 이 책,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1831)은 사실주의 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소유자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들어주지만, 그 때마다 소유자의 목숨도 조금씩 사라진다는 나귀 가죽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원제목을 고려하면, ‘나귀 가죽’이 아닌 다른 이름, 예컨대 ‘괴로움의 가죽’이 더 적절한 번역일지도 모른다. 불어사전을 펼쳐보면, ‘peau’은 ‘가죽, 피부’라는 뜻을, ‘chagrin’은 ‘괴로움, 슬픔, 신경질, 우울’이라는 뜻을 각각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제목이 프랑스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래서 번역자의 해설을 펼쳐보니


이 책의 제목에 들어 있는 ‘chagrin’은 가죽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로써

~ 중략 ~

(소설 속에서 가죽은 대개 la peau de chagrin이라고 불리지만 그냥 le chagrin혹은 le peau라고도 불린다), 엄밀히 말하면 동어 반복인 la peau de chagrin이라는 표현은 작가 발자크의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의도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가죽을 가리키는 chagrin이라는 단어에 그것과 철자가 같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으로 쓰이는 ‘슬픔, 번민’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또 다른 단어를 겹치려 한 데 있다. [pp. 444~445]


라고 되어 있다. 마치 다이허우잉[戴厚英, 1938~1996]의 <사람아 아, 사람아! [人啊, 人!]>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쨌든, 번역자가 원제목을 직역하지는 않았지만, ‘나귀 가죽’이라는 제목은 이 책에 정말 어울린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가난과 절망으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젊은 ‘라파엘’이 자살하려다 우연히 들어간 골동품 상점에서 늙은 주인으로부터 ‘나귀 가죽’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등가교환 혹은 행운 총량의 법칙

어디선가 사람은 각자 타고난 복(福) 혹은 운(運)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이를 초과해서 누릴 경우 죽는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주어온 옷을 입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하루 건너 끼니를 때우면서 60살까지 살 운을 타고난 아이가 만석지기 양반 가문의 장손(長孫)으로 태어나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먹고 사는 바람에 그 운을 다 써서 돌잔치에서 급사(急死)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나귀 가죽’은 이런 타고난 복(福) 혹은 운(運)을 나귀 가죽을 매개로 유형화했다고 느껴진다.

조금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강철의 연금술사>(2003)의 유명한 ‘등가교환의 법칙’을 떠올려도 된다.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알폰스 엘릭(Alphonse Elric)은


사람은 그 무언가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연금술에서 말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라고 말한다. ‘나귀 가죽’처럼 욕망의 실현을 대가로 목숨을 가져가는 것 또한 등가교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만약 당신에게 누군가 이 소설에 나오는 ‘나귀 가죽’을 소유할 기회를 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당신이 ‘나귀 가죽’에 새겨진 


만일 그대가 나를 소유하면 그대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그대의 목숨은 나에게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신이

그렇게 원하셨느니라. 원하라, 그러면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소망은

그대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대의 목숨이 여기 들어 있다. 매번

그대가 원할 때마다 나도 줄어들고

그대가 살날도 줄어들 것이다.

나를 가지길 원하는가?

가져라. 신이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아멘! [p.70]


라는 산스크리트어를 읽고,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알고 있는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귀 가죽’의 소유자가 될 기회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당장의 욕망에 눈이 뒤집혀서 그런 이도 있을 것이다. 사실 1/456의 확률로 456억 원을 받게 되는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보다 더 명확하게 원하는 것을 획득할 기회가 주어지는, ‘나귀 가죽’을 거절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욕망과 수명의 밸런스를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나귀 가죽’을 획득하는 것은 손쉽게 성공적인 삶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문제다. 거의 성인(聖人)급으로 절제해야만 욕망과 수명의 균형을 이루면서 ‘삶’이라는 담장 위를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
한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면 자신의 ‘나귀 가죽’이 어떤 모양으로 변해있을지 보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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