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도시와 건축을 성찰하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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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도시와 나쁜 도시


오래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하여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과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간벽지의 암자나 수도원을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건축은 우리를 바꾼다. 즉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삶이 되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쁘게 된다는 것. 이게 맞는다면, 건축을 통해 인간을 조작하는 일도 가능할 게다. 그래서 옛날부터 절대권력을 가진 자가 건축을 통해 대중의 심리와 행동을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고대에는 신전과 피라미드 등을 지어 민심을 장악했고, 이후 궁전이나 기념탑 같은 건축물도 절대권력의 영광을 칭송하게 하는 도구로 지어졌다. [p. 121]

이런 말들을 보면, ‘건축 만능주의라는 평가해도 할 말이 없다. 만약 저자의 말이 맞는다면, 나쁜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이하 나쁜 도시’)에 사는 시민은 나쁜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도시가 나쁜 도시일까? 여기에는 가치판단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정을 지향한다면, 나쁜 도시가 어떤 형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나쁜 도시는 거주지를 계층별로 분류하고, 명령을 전하고 통제하기 쉬운 거리를 구성하고,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거대 건축과 상징물을 랜드마크로 삼은 도시가 아닐까?


반대로 좋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건축가들이지만 도시에서 정작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그곳의 생생한 삶이다. 그들은 현대의 첨단 건축이 즐비한 강남을 피해 강북의 골목길 풍경에 탐닉한다. 통행 기능만 있는 직선이 아니라 지형과 경사를 따라 불규칙하게 조직된 서울의 골목길에서 그들은 건축의 지혜와 영감을 얻는 것이다.

많은 길들이 지난날 재개발의 광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서울에는 여전히 많은 골목길이 있다. 미로의 도시라면 모로코의 페스가 단연 앞선다. 1,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를 안내자 없이 갔다가는 길을 잃기 마련인데, 길이 이 도시를 지탱하는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어떤 길은 몸을 비틀어야 지나갈 수 있는 60~7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폭이어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끼는 보행자는 그 길에서 그저 속히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의 골목길은 대략 2~3미터 폭 우리 신체 크기에 딱 적합하여 페스의 답답한 길보다 훨씬 편안하고 밝다. 더구나 경사지인 까닭에 공간 변화가 무쌍할 수밖에 없어,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pp. 44~45]

규격화된 공산품 같은 아파트나 화려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보다 오래된 건물, 낡은 창살, 정형화되지 않은 골목길,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빈터와 마당이 있는 강북이 더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그 도시의 상징적 시설물이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 괴리가 있다. 실제로 나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올라간 적이 없으며 서울숲에도 간 적 없고, 고궁을 찾는 일은 몇 년에 한 번쯤일 뿐이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그려져 있는 이런 풍경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말을 빌리면 허무한 환영일 뿐이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빈터나 길가에 도시의 본질이 있다는 것, 그는 이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고 했다. [pp. 54~55]



건축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


건축가는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고유 직능으로 한다. 그 직능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사색과 성찰을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p. 9~10]

다시 말해, 저자가 생각하는 건축가는 킹 비더(King Vidor, 1894~1982) 감독의 영화 <마천루(The Fountainhead)>(1949)에 나오는 신념에 찬 건축가 하워드 로크 같은 이다. 따라서 승효상에 있어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사회와 시민을 위해서도 일해야 바른 직능을 지닌 이다. 왜냐하면, 건축주가 자기 재산으로 개인의 집을 짓는다 해도 길 가는 행인이나 옆집 사람도 그 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집주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이익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건축주는 그 건축의 사용권만 가질 뿐, 소유권은 사회가 갖는 게 맞다. 건축이 목표하는 바는 단순한 부동산의 뛰어넘는 공공성의 가치라는 것인데, 이는 바로 건축이 지녀야 할 윤리를 뜻한다. [pp. 204~206]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건축에 시간의 때가 묻어 윤기가 날 때, 그때의 건축이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즐겨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남루했어도, 거주인의 삶을 덧대어 인문의 향기가 배어나는 건축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이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거주인이 시간과 더불어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물론, 건축이 거주인에 의해 완성된다고 해서 건축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는 모름지기 그 건축이 담아야 하는 시간을 재는 지혜를, 그 풍경의 변화를 짐작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건축가가 만드는 건축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기 마련이며, 그렇지 못하면 시간을 견디지 못해 소멸되거나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기 위한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그래서 애초에 건강한 건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p. 203]



공공성을 지닌 건축, 공유도시


만약 내가 사는 도시가 나쁜 도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또 다른 나쁜 도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는 나폴레옹 3세 당시 오스만 남작이 추진한 파리 개조 사업(1853~1870)처럼 마스터플랜에 의한 상의하달(上意下達) 방식의 개조밖에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든 파리 개조 사업도 시민들의 폭동과 시위의 장소를 제거하겠다는 목적에서 진행되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뻔하다.


심지어 마스터플랜에 의한 도시개조는 그 자체로 이미 시대에 뒤처졌다.

마스터플랜의 허망함을 아는 해외 선진도시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하고 기다리며 변화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이 지혜로운 방식을 침술적 방법이라고 이름했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진화한다는 이치를 터득한 이 도시침술은 예산도 많이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라는 지금 시대의 가치와 부합한다. [pp. 40~42]


재생은 건축가 김면이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를, 오래된 것을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휴(遊休) 공간’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쓰임새가 다한 건물이나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도록 고민해 온 문제이다.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생각을 나누며 그 결과물을 공유하려는 국민성이 있는 그들은, 쓰임이 다한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하면서 그 방안으로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전시를 계획하곤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파리의 낡은 옛 병원들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 도시 안에 남아 있는 커다란 창고 및 교역장, 다리의 하부 공간, 옛 주택과 궁전 등을 사들인 뒤 박물관으로 바꾸어, 교육의 장으로서 사회에 환원한다. 역사성이 있는 공간들을 없애지 않고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도시의 기억’을 이어 가는 것이다.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하나하나의 개인은 힘이 없으니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대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공유도시이며, 이러한 도시는 공공성을 지닌 건축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건축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적 시각으로 건축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인 셈이다.



1) 김면,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 (허밍버드, 2014),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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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심리학 - 매일 자책하는 당신을 위한 마음 수업
조장원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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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관두고 싶은 사람들

 

Part 1. ‘일에 치여 힘겨운 일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연습’에서는 첫 번째 파트에서는 회사 일과 업무에 치여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 세계(주로 주변 인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기인식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가 의욕을 잃어버려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지는 경우, 미래’만’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면 살아가는 경우, 유독 부지런한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슈드비 콤플렉스(should be complex)1)’에 시달리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언급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서 보듯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이들을 높이 친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미래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공을 위해 돌진해서 부, 사회적 지위, 권력 등은 얻었어도 정작 몸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 되고, 주변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눌 친구나 가족 하나 없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한 것일까? 자신이 얻은 것을 하나도 누릴 수 없는데……. 그래서 저자는 현재의 행복도 맛보라고 권유한다.

첫 번째로 (미래에 집착하도록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주문을 찾아내도록 한다. 나를 망치는 주문이다. 그 주문을 찾아서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주문을 외면서 자신을 쉬지 않고 몰아세우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 배우자나 자녀나 부모님이라면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에게는 모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한 법이다. 대개는 안쓰러워하면서 따뜻하고 정감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관점을 바꾸니 자신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얼마나 힘겨운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바로 그 같은 위로의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세요.”

두 번째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구체적 행동을 하게 한다. 현재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학원을 등록한다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거나 그런 미래 지향적인, 흔히 이야기하는 생산적이고 뭔가 남기기 위한 행동이 아닌,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p. 37]

 

 

나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

 

Part 2. 버거운 관계로부터 나를 지키는 연습에서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나르시시스트 상사를 만난 경우, 회사에서 쌓인 화를 가족에게 푸는 경우, 나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려는 상사를 만났을 경우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를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마음이 없는 나르시시스트 상사의 의도적인 침묵에 당했을 경우

의도적인 침묵에 속수무책 당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심리적 증상이 따라온다.

첫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심한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계속 찾으면서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억울 씨 같은 경우, 고 부장의 맺힌 감정을 풀어주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눈치를 살피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다행히 노력의 대가로 고 부장의 마음이 풀려 관계가 회복된다면 안도감을 느낀 후 다시는 이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더 애를 쓰면서 눈치를 보기에 이른다. 의도적인 침묵을 행사한 사람에게 당한 사람이 점점 예속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p. 82]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내가 잘못한 걸 찾아내려고 나의 내부요인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의 외부요인, 즉 상대방에게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둘째, 제삼자에게 평가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

셋째, 상사를 바꿀 수 없으니 그가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대할 수밖에 없다.

넷째,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물을 사준다거나 무턱대고 용서를 구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이럴 경우 두 사람의 수직관계는 더 강화된다.

다섯째, 내 감정을 살피고 어루만져야 한다. 상사의 감정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감정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처받은 건 그가 아니라 ‘나’다, [pp. 83~85]

 

 

나를 괴롭히는 감정의 변화

 

Part 3. 통제 불능의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연습에서는 감정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이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회의만 다가오면 숨이 막히고 떨리는 ‘회의 공포증’, ‘그날’만 되면 유독 예민해지는 ‘월경전불쾌장애(PreMenstrual Dysphonic Disorder)’, 뭘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당위적 사고’ 등 통제하기 힘든 감정의 변화로부터 나를 지키는 간단한 방법들을 알아본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과 고독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지만,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이 두 가지 감정은 다르다고 하다.

외로움(Loneliness)은 타인에게서 고립(isolation)되었을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세상에 나 홀로 떨어져 있다고 인식하는 정서다.

외로움은 심지어 타인과 함께 있을 때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타인에게서 감정적으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할 때, 타인과 감정이 공유되지 못한 채 혼자서만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역시 외로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반면 고독(Solitude)은 혼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다. 타인이 아닌 자기에게 집중함으로써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과정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고독을 느끼기보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본인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pp. 172~173]

 

 

가장 소중한 것은 ‘나’

 

Part 4. 스트레스와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연습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일, 사람[인간관계], 감정 외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을 자꾸 미루는 ‘습관성 게으름’,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수면 패턴이 일정치 않고 이유 없이 잠을 못 자는 ‘불면증’, 남들에게 지나치게 잘해줘서 자신은 손해만 보는 ‘구원 환상’ 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예들 들면, 불면증의 경우 어떻게 해야 수면 강도를 높여 수면 효율을 올릴 수 있을까?

수면 강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수면 제한을 실천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수면 제한을 위해서는 먼저 내 수면 패턴을 확인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매일 잠자리에 누워 있던 시간과 실제 수면 시간 등을 점검한 다음 실제 수면 시간의 평균값을 구해야 한다.

둘째, 기상 시간을 분명히 정해두는 게 좋다. 내가 꼭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기상 시간으로 정해 반드시 지킨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는 습관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셋째, 기상 시간에서 실제 수면 시간을 뺀 평균값을 구해 이를 취침 시간으로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일주일 동안 측정한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일 경우, 최소한 새벽 2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평균 수면 시간을 유지하며 취침할 수 있다. [pp. 223~224]

 

 

나’를 힘들게 하는 것

 

회귀해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실수도, 실패도 경험하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아간다.

 

그런데 한때 유행했던 ‘내 탓이요’를 나 자신에게 무조건 던져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비난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비난을 하지 말고 '내 마음부터 지키라고 한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비겁하게 변명하는 일도 아니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나를, 내 감정을,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품어줄 때, 어떤 상황이 와도 나 자신을 제대로 지키는 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바탕에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며,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p. 8]

 

직장인이라면 겪을 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저자는 실제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치료기법을 응용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지금 당장 문제가 없다고 외면하지 말고,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1) 슈드비 콤폴렉스(should be complex)는 항상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한시라도 허투루 보내지 못하며 바쁜 일상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회복지사나 교사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기대치가 높은 직업군에서도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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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 반복되는 일상에 떠밀리다 마침내 새로운 세계에 닿다
오건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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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삶,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무한경쟁 속에 부대끼다가 번아웃되거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게 된다.

물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말라며 일단 버텨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라면 그렇게 버티며 1년, 2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회사에서 더 이상 쓸모 없다고 쫓아낼 때까지?

직장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한번쯤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반복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회사를 떠나 새롭게 도전할 수 있다. 아니면,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가 부족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저자의 경우에는 이 답을 구하러 얽매임 없이 자유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예술가의 도시라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사람들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믿었던 안정된 직장 생활은 지난 10년 동안 그 어떤 무모함이나 용기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모터가 멈춰버린 배 위에서 그저 둥둥 떠다니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길바닥 한 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만큼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단단한 용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앞뒤를 따지지 않고 용기만으로 행동에 나서던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는 어떤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 좋아 보이는 일보다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길거리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나는 가끔 동료에게 현재의 일이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지 묻는다. 대부분은 ‘그냥 하는 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지나가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 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아 가면서 온전한 나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pp. 38~39]

 

사실 우리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가득 찬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삶에서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인생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었던 취업이 내어준 것은 성취감도, 안도감도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그것은 남들이 만든 환상을 여태 나의 꿈으로 착각하고 노력해왔다는 깨달음이었다.

중략 ~

취업의 기쁨은 잠시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이 쌓일수록 의욕보다 한숨만 늘어 갔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보람도, 이루고 싶은 꿈도 찾을 수 없다는 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p. 118]

 

저자도 10년간 버티다가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던지는 대신 여행을 떠났다. 그 기록이 이 책,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유럽 여행을 간다고 하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혹은 체코나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르투갈 한 나라만 선택해서 떠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는 시중에서 포르투갈 여행기를 찾기 어려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잘 그린 여행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외에 포르투갈 여행기가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

때문에 이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사진이 아닌 멋진 펜 드로잉이 곁들여 있으니…….

 

리스본의 첫 인상

출처: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 17

 

포르투의 동 루이스 다리(Ponte D. Luis)

출처: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p. 114~115

 

 

여행의 이유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일상을 되돌아 보는, 일종의 힐링 시간이다. 저자도 포르투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을 감상하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을 풀어간다. 이 책에 실린, 글과 펜화로 옮겨진 그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읽다 보면, 그 문제들이 매듭을 칼로 자르듯이 단번에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감정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민들의 흔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나는 수많은 프레임을 걸친 채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받아들였고, ‘누구만큼은’, ‘누구보다는’이란 생각으로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열심히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해왔다. 사람들의 삶은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있을 텐데, 나 자신의 것들을 외면했다.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자라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여행에서만큼은 온갖 관계와 프레임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로 지낼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고민뿐만 아니라 무슨 고민을 했는지 기억조차 잊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직접적인 해결책을 찾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흔들리던 마음을 똑바로 서게 해주었다. 뿌옇고 희미하던 마음 상태가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여행은 관계의 거미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독립적인 자아로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여행은 본연의 자신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의 본 모습을 더욱 알아가게 할 시간을 내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본질적인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믿어가는 과정을 통해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줄 무게를 키워 나가게 된다. 자신을 찾음으로써 자신다운 자신에 가까워지는 것,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pp. 100~101]

 

여행을 일상에서의 탈출로만 여기는 글은 많다. 하지만 그런 글은 사이다처럼 순간적인 상쾌함만 가져다 준다. 그렇기에 아무 대책 없이 일상에서의 탈출만 권유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목마르다고 오염되었거나 독이 든 물을 마시는 일이고, 불이 났다고 무작정 창문으로 사람을 미는 일이다.

그래서 그러한 권유 없이 잔잔히 자신의 일상을, 고민을 잔잔하게 읊조리는 이 책이 좋았다. 저자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공감하며 지그시 미소 짓게 만드니까. 누군가에 공감한다면, 누군가를 공감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말없는 위로이고, 위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공감들 속에서 상처를 위안받고 삶을 버텨나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로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가진 슬픔을 위로하려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슬픈 소식을 듣고 있으면 내 안의 슬픔들이 늘 떠오르는데, 그런 슬픔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로하려는 마음이 생기고는 했기 때문이다. 내가 위로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언제나 상대방에게 투영된 나의 슬픔이 있었다.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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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6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드로잉이 참 좋습니다.
포루투갈은 언젠가 다시 좀 오랜 시간을 두고 머물고 오고 싶은 나라에요. 사실 코로나가 터진 그해 봄 계획하고 있다가 정지 상태입니다.
드로잉 여행에세이 좋아해요. 책 담아갑니다.

KOEMMA 2021-12-06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의 격려에 감사합니다. 저도 드로잉 여행에세이를 좋아합니다.^^
 
런던 비즈니스 산책 - 나는 런던에서 29가지 인사이트를 훔쳤다!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
박지영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런던은 어떻게 금융 중심지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몰락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 비즈니스맨은 런던에 주목한다. 그것은 ‘시티 오브 런던’이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더불어 금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런던은 어떻게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을까?

첫 번째는 “런던이 가진 천 년 이상의 역사와 그 속에서 다져진 ‘시스템’이다.” [p. 7]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런던의 모든 일은 시스템 속에서 원활하게 움직인다시스템인 하드웨어가 굳건하면 이를 실행하는 소프트웨어가 그리 잘나지 않아도 된다. 영국인 학생들을 보면 저렇게 굼뜨고 악바리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수재들만 간다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에 가나 싶다. 변변한 교과서도 없이 빈 가방만 매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초등학생 아들을 보면 저렇게 대충 가르쳐서 어떡하나 싶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시스템 속에서 자란다. 초등학교 때 헐렁하게 배운 듯했던 수학이나 과학은 기초를 굳건히 다지는 단계였고, 중학교 이상 가면 그 난이도가 한국 학생이 따라가지 못할 수준에 이른다. 결국 시스템이 아이들을 경쟁력 있는 어른으로 키우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 따라 하루하루 성실하게 가르치면 된다.” [p. 7]

두 번째는 “런던이 뿜어내는 무한한 창조성” [p. 8]이다.

 

 

29개의 런던의 비즈니스 모델들

 

저자는 ‘나는 런던에서 29가지 인사이트를 훔쳤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29개의 사업과 사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일 먼저 소개된 필립 그린(Sir. Philip Green, 1952~ )은 ‘중고 옷 판매로 시작해 소매점의 황제로 등극’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대우그룹의 창시자인 김우중처럼 은행 대출을 통한 인수합병의 대가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간의 차이가 있다면, 필립 그린은 인수합병을 한 후 그 기업[백화점, 스포츠용품 전문 업체]들을 되팔아 거액의 종자돈을 만들어 생활용품 소매점 BHS[2016년 도산]과 패션 브랜드 Topshop를 인수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소개된 리처드 브랜슨(Sir. Richard Branson, 1950~ )도 취미로 시작한 중고 레코드 통신 판매에서 성공을 거두자 아예 음반산업에 뛰어들어 ‘버진레코드’를 설립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항공산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는데, 한국이었다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난 받을만한 행적을 보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재벌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소개된 제임스 다이슨(Sir. James Dyson, 1947~ )의 이야기는 짧지만, 앞에서 언급한 런던이 뿜어내는 무한한 창조성을 떠올리게 한다.

 

중고에 대해 우리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런던의 다양한 벼룩시장과 중고 품을 파는 자선단체 옥스팜(Oxfam)에 대한 소개는 ‘런던’이라는 타이틀을 걸맞은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중고에 대한 개념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는 중고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부자라서 새 것만 쓰고 가난하다고 중고품을 쓰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들 중고품에 열광한다. 런더너들은 모두 공짜나 싼 것을 좋아하는 대머리 기질을 가지고 있는 걸까? 물론 아니다. 이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다.

중략 ~

영국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가 빠진 접시들을 고이고이 모아 찬장에 진열해 놓았다가 손자며느리에게 물려주고, 100년도 더 된 집을 부수는 대신 곳곳을 손봐가며 살아간다. 한번 산 물건은 평생 애용하고 남이 쓴 물건이라도 필요하다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물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과거의 유물이 미래의 기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인들의 피에 흐르는 이 실용성과 검소함이 오늘날 중고품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을 낳았을 것이다.” [pp. 163~164]

 

이런 점에서 런던 사람들은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새롭게 추구하는 가치를 이루어나가는 방식을 터득한 자일지도 모른다. 흔히 일본의 교토[京都]를 소개하는 글에서 보이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도시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의 자세 말이다.

 

또한, 참고서의 요약정리처럼, [Business Insight]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이야기마다 해당 사업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자신의 방식으로 한번 더 짚어주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요약 정리가 아니기에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이처럼 이 책이 보여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29개의 사업과 사업가에 대해 장점 위주로 짧게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어서 보다 범위를 줄여 심층 취재를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거의 10년 전인 2013년에 출간된 만큼 현재 시점에서는 다소 시의성(時宜性)을 잃은 부분도 있다. 예컨대 스물 네 번째 이야기인 “욕쟁이 요리사를 필두로 한 음식 비즈니스”에서 욕쟁이 셰프 고든 램지와 거리의 청년에게 요리를 가르쳐 요리사로 성공시키는 제이미 올리버를 소개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인 [Business Insight]에서 한국에는 이렇다 할 TV요리프로그램도 없고, 스타 요리사가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리즈의 강레오, [골목식당]의 백종원, [냉장고를 부탁해]의 최현석, 이연복 등 요리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지고, CF에도 출연할 만큼 인지도를 높인 스타 셰프들이 나오면서 의미 없는 지적이 되었다.

 

어쨌든 런던 거리를 걸으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아이템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동진 등의 <퇴사준비생의 런던>과 비슷한 관점에서 런던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들을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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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은 부정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정적 원칙이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절한 이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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