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클래식 클라우드 12
최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급의 벽에 부딪힌 사랑

 

공식적으로는 신분제가 사라졌지만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 ‘지식’, ‘사회적 위치’, 그리고 취향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층 혹은 계급의 벽이 존재한다. 1920년대 미국의 재즈 시대(Jazz Age)를 상징하는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 이하 피츠제럴드’)는 바로 이 계층/계급의 문제를 다룬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시카고 금융 부호의 딸인 지네브라 킹(Ginevra King, 1898~1980)과의 사랑이 이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되었다는 작가의 체험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1915년 그녀의 별장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녀의 아버지 찰스 킹이 그녀에게 큰 소리로 외친 가난뱅이는 부잣집 딸과 결혼할 꿈조차 꾸지 말아야 해. (Poor boys shouldn't think of marrying rich girls)” [p. 38]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뿐만 아니라 이후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 세이어(Zelda Sayre, 1900~1948, 이하 젤다’)와 약혼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파혼 당한다그리고 그의 첫 장편인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젤다와 결혼에 성공한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그는 스탕달(Stendhal, 1783~1842) <적과 흑>(1830)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처럼 로 상징되는 신분상승을 꾀했고자신이 쓴 <위대한 개츠비>(1925)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의 삶과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재즈시대의 아이콘

 

부잣집 막내로 자란 젤다와의 결혼은 어떻게 보면 계급의 사다리에서 한 칸 더 올라간신분 상승의 증명이기도 했다그래서 일까피츠제랄드는 상류층 사교계에 발들 디딘 후에는 한평생 부를 과시하는 생활을 했다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장기 투숙을 하고대저택에 거주하고상류층 파티에 고급 옷을 입고 참석해 주인공을 자처했다.” [p. 40]

이렇게 술과 파티재즈 시대의 소비와 향락을 대표하는 이 단어들이 피츠제럴드 부부의 삶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물론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 없이는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없지만, ‘()’만 가지고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츠제럴드는 끝까지 상류사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가 “저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처럼마치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미국의 성장과 향락을 상징(했을지도 모른다)그는 우리가 문학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화려함을 가장 일찍 획득하고 이를 온몸으로 즐기고그 때문에 불나방처럼 그 화려한 불 속에서 타버렸다 [p. 292]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작가

 

마치 화려하게 빛나던 재즈 시대가 1929년 대공황으로 한 순간에 스러진 것처럼 피츠제럴드도 아내 젤다의 조현병자신의 알코올중독막대한 빚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너무나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해외 출판도 거절되었다이후 9년 만에 내놓은그의 네 번째 장편 <밤은 부드러워>(1934)도 실패로 돌아갔다물론 핑계거리는 있다. “피츠제럴드가 소설을 쓰는 데 이토록 오래 걸린 이유가 있다그는 볼티모어에서 아내 젤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짧은 글들을 써야 했다이것이 생활의 주 수입원이었다소설가이지만 본업에 주력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동시에 스코티를 양육해야 했고무엇보다 스스로 알코올 중독과 싸워야 했다.” [p. 129]

여기에 1936년에 발표한 에세이 <무너져 내리다(The Crack-up)>은 그의 작가로서의 생명을 사실상 끊어 버렸다이제 피츠제럴드는 순문학 작가로서 찾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p. 103]

 

결국 피츠제럴드는 아예 할리우드로 건너가 유령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아내 젤다의 치료비딸 스코티의 교육비자신의 생활비를 위해.

 

당연히 할리우드에서의 삶은 그에게 고통이었다그는 편집자 맥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곳에서 계속 공장 노동자처럼 일하는 건 영혼을 파괴하는 짓입니다영화계 현실은 다음과 같은 역설을 보여줍니다. ‘당신의 개성을 보고 이곳에 데리고 왔지만당신은 이곳에 있는 이상 개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나아가 그는 각색 작업을 할 때에도오로지 원작에 있는 단어만 써야 한다고 분통을 터트린다수정해야 할 신(scene)이 있으면 마거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마치 성서라도 되는 양 휙휙 넘기며’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내야 했다” [pp. 26~28]고 하소연할 정도로.

 

말년의 피츠제럴드는 고충을 겪고 있었다책은 팔리지 않는 데다사는 이는 자신뿐이었고작업한 영화 크레디트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건강은 바닥을 쳤고지갑에는 푼돈도 없었다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그는 카페나 식당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집 근처의 약국에서 만났다게다가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술을 끊어야 했다. ” [pp. 57~58]

어쩌면 몰락한 것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잊혀졌으니까.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는 그가 자신의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나타나면서점 주인들이 놀라던 때였다모두 피츠제럴드가 이미 죽은 줄 알았으니까그만큼 그는 세상에서 잊혀 있었다그리고 어이없게도피츠제럴드는 화가처럼 사망한 후에 빛을 보기 시작한다그것도 그가 죽고 나서 10년이나 지난 후에 말이다.” [pp. 51~52]

 

1998년 초 뉴욕의 랜덤하우스 편집위원회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100대 영문소설 2위로 <위대한 개츠비>, 28위로 <밤은 부드러워>가 선정된 것은 피츠제럴드에게 주어진 수많은 사후(死後)의 영광 가운데 하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