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 <그림 속의 음식음식 속의 역사>라는 제목과 책 소개만 보고 음식 그림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이 책은 23장의 그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혹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이 약 100년을 전후한 시기이른바 근대에 형성되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그나마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 만큼우리 스스로 전통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서양의 시선에서 본 이색적인 것을 전통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를 저자는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왔던 이정섭(李晶燮, 1895~?) <별건곤(別乾坤)> 12/13 (1928)이라는 잡지에 실은 글을 빌려 이야기 한다. “이정섭의 말처럼 김치, 갈비, 냉면은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음식이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인이 끼니로 식사를 할 때 김치나 갈비는 반찬에 지나지 않으며 냉면은 별식이다. 늘 밥을 먹을 때 식탁에서 쌀밥이 제일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쌀밥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우리 스스로 한국적인 것을 서양 사람들 시선에서 보기 때문이 아닐까?” [p. 91]


‘1장 그림으로 보는 서민의 음식 풍속’, ‘2장 그림으로 보는 궁중의 음식 풍속’, ‘3장 그림으로 보는 관리의 음식 풍속’에 실린 19장의 그림을 보면 우리에게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1814 무렵),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그림이 절반 정도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한 가지 찜찜한 것이 있다.

풍(風)은 지배자의 윤리적 덕목(德目)이며, 속(俗)은 피지배자의 실천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풍’으로 ‘속’을 교화해야 한다는 풍속교화(風俗敎化)가 지배자가 풍속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당연히 지배자에게는 풍속을 살피는 일이 무척 중요했다.” [p. 63]

조선 후기 풍속화가들의 등장과 이들의 그림 자체가 백성들의 처지를 살피고 그들을 교화하기 위한 기초 자료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풍속화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당대(當代서민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와 풍속화 등과는 달리 음식의 모습이 또렷하고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유숙(劉淑, 1827~1873) <대쾌도(大快圖)>를 보면서

술잔 옆에는 사각 함에 노란색의 음식이 놓였다. 딱히 그림만으로는 그 정체를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상상을 해보면 담긴 그릇으로 보아 떡 아니면 과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막걸리와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떡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p. 28]


김득신의 <강상회음(江上會飮)>에서는 숭어찜을 얘기하면서

사실 이 그림만으로 어떤 생선인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대강의 생김새로 짐작해보면, 숭어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 숭어는 바닷물고기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생선이 백과서전에 묘사된 숭어의 생김새와 유사하고,) 음력 4월쯤이 되면 산란을 위해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많이 등장하고 간혹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pp. 37~38] 숭어의 상태를 보면 이 그림 속의 물고기는 숭어라고 보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렇게 풍속화 속에 그려진 음식을 찾아 무엇인지 추정하고역으로 그 당시의 풍속과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다른 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지만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은 <전통의 창조>(1983)이라는 책에서 전통이란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 낸 창조물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민속학에서 말하는 국민 혹은 민족의 민속 역시 국민국가가 창조한 일종의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과정에서 피지배층의 민속은 언제나 존재해 왔던 실재(實在, reality)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국민 혹은 민족의 민속은 실재를 표상한 창조물이다. 즉 국민국가에 복무하는 민속학을 지향한 근대의 민속학자들이 실재하는 민속 중에서 특정한 현상들을 묶어서 표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pp. 254~255]

,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식된 것이 아니라 일본’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에 복무하는 학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나오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21세기 한국인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적 ‘전통’이 주로 18~19세기에 형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대를 연구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18~19세기의 생활사를 제대로 연구해 본 연구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가설은 절대적인 명제가 될 수 없다.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조선적'이라고 믿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명제들 중 일부분은 실제로 20세기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계몽적 근대성의 표상(表象)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pp. 249~250]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림 속의 음식음식 속의 역사>라는 제목처럼 조선 시대 풍속화를 통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의 표상과 실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라는 부제(副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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