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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
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필수 교양과목으로 경제학원론을 수강해야 했다. 그 당시 경제학원론서 중 베스트셀러는 <맨큐의 경제학>이었다. 지금이야 그가 예측한 경제모델과 분석한 경제현상들이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신망이 많이 떨어졌으나 20여년 전만 해도 '경제학=맨큐' 일 정도로 대학에서 인기가 많았다. 어쩌면 맨큐에 대한 과한 선망도 이 책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에서 '웨딩드레스는 왜 흰색일까?'라는 의문을 밴드웨건 효과(유행에 따라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로 설명한 것 처럼, 경제학원론 도서에 대한 밴드웨건 효과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의 열풍은 대단했다. 문제는 책의 난이도. 경제학의 기본원리부터 시작해 미시경제학을 거쳐 거시경제학까지 꼼꼼하게 풀어낸 <맨큐의 경제학>은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그의 설명을 거친 다양한 경제학 이론들 - 수요공급곡선, 역선택이론, 국제무역, 외부효과, 공공재, 조세제도, 소득불평등이론, 가격탄력성 - 을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감겨왔고, 정반대로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시험걱정에 잠이 싹 달아났다. (물론 내 지능이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론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다양한 예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수요공급곡선을 분석하고 도표와 공식을 암기해도 제대로 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으니 지식이 체화(體化)되지 않았다. 텍스트로 외우고 이해하려 해봤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결론도 명확했다. '난 돌머리구나, 경제학은 나와 궁합이 전혀 맞지 않구나.' 맨큐의 책을 쉽게 설명해 줄 쪽집게 과외선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까지 했다.
만약일 수 밖에 없지만, 그 시절에 이 책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우와, 내가 원했던 과외선생님이 여기 있었구나 싶어 기쁨에 놀라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만 보던(그리고 거기서 대부분의 문제가 출제되었던) 해설집을 발견한 기분 아니었을까.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를 펼치기 전에는 요 몇 년 간 계속 출간되는 쉬운 경제학(을 가장한 쉬운 교양서) 수준의 책일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경제학콘서트>, <괴짜경제학> 부류의 책 말이다. 물론 비슷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보다 이론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책들과 다른 길을 간다. 그러면서도 아주 이해하기 쉽게 이론을 설명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나폴레옹 군대 의복 스타일로 '역선택 이론'을 설명하고, 빈티지 유행 문제로 'GDP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환타 얘기로 자연스럽게 '대체재'를 언급하고 병뚜껑 이야기로 '독점,독과점 문제'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준다. 이런 사례들이 책 속에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다. 흥미위주로 선택한 예시가 아니라 하나 같이 경제학 이론을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일부러 선택된 것들이다. 이 책을 가볍게 몇 번 읽은 뒤 경제학원론 책을 꺼내든다면 과거의 내가 겪었던 자괴감을 또 겪진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당연히) 비이성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감정적 경제행위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려 한 행동경제학이 주목받고 있지만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경제동물로 가정하고 논리를 풀어간다. 그렇기에 경제학은 차갑고 냉정한 학문이다. 색으로 치자면 서늘한 푸른색의 학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경제학은 세상사 전반을 다루는 학문이기도 하다. 알프레드 마셜(Alfred Mashall)이 경제학원론에서 언급했듯 경제학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 제목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는 알프레드 마셜의 말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인간의 의식주를 경제학이론으로 잘 꿰어놓았다. 경제학 이론이 인간사회 일상의 모든 행위와 연결되어 있는 만큼 경제학은 중요한 학문이다. 요즘 들어 회계학이 유행인지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기본적인 회계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대학 커리큘럼이 짜여지고, 직장에서도 (회계 관련) 자기계발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그러나 나는 경제학도 회계학 못지 않게 학생이나 직장인(그리고 일반대중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회계학보다 선행되어야 할 교육이 경제학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그 시작점으로 삼아도 나쁘지 않다. 교양서에 가까운 만큼 가벼운 기분으로 즐겁게 읽으면 된다. 그리고 궁금증이 커지고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면 이론서로 넘어가면 된다.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는 막연히 경제학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사람들을 우물에서 끌어내 줄 마중물 같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