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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치즘이 왜 발생했는가? 인류가 가장 이성을 신뢰하던 시기에 어떻게 양차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전후세대에게 있어서 반드시 대답하고 넘어가야할 시대적 문제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이라는 전쟁의 핵심인물을 보고서 형식으로 풀어내며 이 문제에 답하고 있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과 또한 ‘맹신자들’이라는 책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방식, 전혀 다른 답을 내리고 있는 듯 하다. 아렌트는 일종의 비판적 사고의 정지 상태에서 발생하는 명령에 대한 무의식적 복종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즉, 개인 각각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문제를 직시하고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일종의 사고 정지 상태를 택함으로써 발생하게 된 끔찍한 사태가 양차세계대전에서 나온 방식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에릭 호퍼가 내린 판단은 개개인이 아닌 다수의 집단이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개개인의 믿음은 실제로 사회운동과 종교운동에 있어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종의 성패는 그 집단의 힘에 의한 것이지 그 집단의 믿음이 옳고 그른 것과는 상관이 없다. 물론 그도 신념가라 하여 일종의 합리적 믿음으로 어떤 사상을 지지할 가능성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진 않는다. 그런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그 운동과 그 종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광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맹신하여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들이 그 집단에 얼마나 되는가라는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개개인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는 왠지 무의미해 보인다. 이 책은 단지 어떤 집단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사회과학적 접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사회 현상의 감추어진 부분을 통찰하여 그 전체를 파악한다는 의미, 곧 형이상학적 인식을 한다는 점에서 철학적 접근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가 채택하고 있는 이론은 흡사 마키아밸리즘적 유물론에 가까워 보인다. 유물론에 가장 반대되는 헤겔은 일종의 역사 의식, 세계정신이 세상에 그 의미를 드러낸다는 관점에서 역사 현상을 해석한 반면에, 에릭 호퍼는 어떤 역사 현상의 의미는 그 역사적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입장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사상사적 의의가 아닌 그것을 지지한 사람들의 수와 적극적 희생의지이다.
그의 책에서 나온 통찰은 매우 다각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인용한 사상가는 매우 풍부하며 심지어 60년대에는 중국에서조차 생소한 묵자라는 인물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갖추고 있다. 이력을 살피자면 그는 정규교육을 받은 직업 철학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이미 분석철학과 실용주의의 두 가지가 미국철학을 형성한 반면에 그가 인용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대부분 유럽의 철학자다. 그의 자서전의 타이틀이 ‘길 위의 철학’자라는 점에서도 그가 학계가 아닌 독학으로 철학을 했음이 드러난다. 또한 잠언의 형식은 엄밀한 논리 과정을 요구하는 학계와 달리 생각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형식이다. 거대 담론화 하려는 욕구가 있는데, 이 철학자의 사고는 사고를 크게 보되 문제에 대한 짧은 인식을 배열함으로써 실수를 줄이고 무언가 뜻을 한정짓기 보다는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에서 내용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종교와 사회운동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이다. 여기서 본질적으로 갔다고 함은 그것의 성공하고 실패하고가 그 내용에 있어서 위대함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의 충성이라는 것에 있다. 그는 맹신자들이 어떻게 단체에 충성하고 희생을 자처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른바 칼 포퍼가 말한 반증 불가능한 어떤 체계에 대해서 맹세하게 함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먼 미래에 당신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천년 역사를 이룩하자. 죽은 뒤의 영원한 행복 등은 반증이 불가능한 명제이다. 이러한 명제로 사람들을 유혹하면 자신의 단체에 대해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은 신도들은 의심이 아닌 오직 믿음을 위한 믿음으로 자기희생에 앞장 설 것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이 책은 맹신에 대해서 비이성적 사고방식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전쟁이 휩쓴 다음 많은 비판가들이 이성주의의 개념을 통한 분류적 사고방식이 전쟁을 만든 원인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비판을 비웃듯이 오직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원인으로 하여 전쟁과 사회운동을 분석하고 있다. 러셀은 그의 책에서 종종 전쟁은 비이성적 광신과 맹신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의 공동체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공언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이성은 사고에 이유와 사건에 원인을 요구한다. 맹신과 광신은 이러한 이성에서 가장 먼 사고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서 사회운동과 비극적 전쟁이 발생하는 까닭을 몇 명의 이성적 사람들, 책에서 신념가로 묘사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비이성적 사람들을 선동하는 선동가와 맹신자들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밝힘으로써, 개개인에게 판단과 의심을 할 것을 촉구하는 것 같다. 처음엔 집단적 접근을 했지만 결국에 아렌트가 주장한 것과 똑같이 개개인에게 사유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니체가 했던 한 구절 말이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인류애 덕분에 화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애가 약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은 화형을 시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