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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개 - 18세기 계몽주의 살롱의 은밀한 스캔들
데이비드 에드먼즈 & 존 에이디노 지음, 임현경 옮김 / 난장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두 인물은 하나의 책에서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니 말이다. 이 책은 철학자의 사상에 관해서라기보다 그 인물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특히 역사적 자료로 그들의 주저들보다는 편지들을 엮었는데, 서간문이 가지는 미묘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론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두 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간다.’ 인간에 대해서 이 만큼 애정이 담기고 감정적인 표현이 있을까?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가면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자유를 갈망하는 나약한 존재를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까지 매일같이 해가 떠왔다는 사실이 내일 해가 뜰 것이라는 사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 이성에 대해 자만하던 근대의 시대, 확신의 시대에 이성을 사용해 이성을 해체한 철학자가 살았다. 동시대지만 너무 다르게 인간 이성에 대해서 비판을 했기 때문에 과연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도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후원자 관계에 놓여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루소는 감정적이고 천재적이며 편집증적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감정에 충실했으며 그의 천재성은 그의 글에서 하나하나의 낱말로 드러난다. 그는 시적이었으며, 인간존재에 대해서 신뢰했으며, 자유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방광의 질병때문이었을까? 그는 어린시절부터 항상 삶에 대해서 불안을 느꼈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병은 그를 실존적이게 하여 글에서 천재성이 드러나게 도와줬지만, 동시에 그의 편집증적 증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흄은 합리적이고 학자적이며 명예욕이 강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이성적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믿음을 갖는 것을 불쾌해했으며 그의 글은 하나하나 미신에 대한 경멸들로 가득찼다.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해서 직감했으며 그래서 신앙적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학자적 기질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사실 루소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 때부터 루소의 학자적인 면에 있어서 크게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명예욕이 진정한 감정적인 면을 부족하게하고 우정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못하게 한듯 하다.

 

 

 

  루소와 흄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었다고 할까... 흄은 루소를 이용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여겼고, 루소 또한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도구로써 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가식적으로 오고 간 서로의 칭찬이 담긴 편지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 같다. 루소가 마지막으로 흄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첫 만남부터의 불만으로 시작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구절 하나하나에 과민반응하는 흄 또한 우정이 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줬다.

 

 

 

  뛰어난 철학자의 비루한 이야기를 보며, 탁월함이 반드시 훌륭함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이 책은 권위에 대해서 해체하는 책일 것 같다. 과학자들은 뛰어나지만 괴팍하다는 인상을 얻지만, 철학이나 문학의 경우에 있어서 뛰어남이 곧 휼륭함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풍자적으로 묘사된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을 통해서 알 수 없는 부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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