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바로 전에 읽은 <상류 아이>와 너무 다른 결의 작품이라 좀 충격을 받았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 즐거움을 추구하는 편인데, 우샤오러의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에서는 즐거움 대신 고통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내가 실종된 사건으로 소설은 출발한다. 타이베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판옌중의 아내 우신핑이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결혼 전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오빠와는 소원하다는 이야기들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판옌중이 사라진 아내의 뒤를 추격하다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성추문의 휩싸인 대학동창 국회의원 보좌간 친구인 추궈성의 아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어느 변호사가 그랬던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쉽다고. 문제는 그 돈이 없다는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신핑의 과거에 판옌중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원래 판옌중은 부잣집 출신 아내 옌아이써와 결혼해서 외동딸 쑹뤼를 낳았다. 하지만 옌아이써는 판옌중이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아내가 아니었다. 결국 그 둘의 결혼은 파국으로 끝났고, 가정폭력 이슈까지 겹치면서 판옌중의 명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런 판옌중이 다시 우신핑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학원강사 우신핑이 판옌중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우신핑은 판옌중에게 돈과 아이 그 무엇도 바라는 게 없었다.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했으며, 재산에도 관심이 딱히 없었다. 판옌중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는 그런 배필이었다.
그랬던 아내 우신핑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연히 판옌중은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죽었다고 알려진 아내의 어머니 황칭롄이 고향에 멀쩡히 살아 계시고 오빠 우치위안과도 소원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장모 황칭롄이 뻔뻔하게 사위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우신핑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오드리가 등장해서, 판옌중의 과거를 들먹거리면서 우신핑의 소재를 묻는다. 우샤오러 작가는 전지적 시점에서 개입해서 주인공들의 마음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문득 낯선 목소리가 등장할 때가 있는데, 나는 그 목소리가 우신핑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우신핑 과거의 추적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기다리고 있는 큰 비밀까지 도달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모두 비밀을 가지고 사는 법이다. 그 비밀들은 절대 누구에게도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비밀을 품은 이들은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비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본원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소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비극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신핑의 전 룸메이트들이었던 오드리와 즈싱 역시 불행한 과거의 희생자들이다.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우정은 공고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고나 할까. 문제는 완벽해 보이는 이 삼각편대의 균열이 생겼을 때다. 우신핑이 약혼자를 데려왔을 때,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고 판단한 즈싱이 자해극을 벌인다. 위로가 되는 울타리인 줄 알았던 관계가 알고 보니 굴레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관계의 붕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 희망은 절망의 친구라고, 희망이 없어진다면 절망 역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라고 작가는 책에서 말한다.
이 비극의 연대기에서 작가가 준비한 결말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분노가 춤추는 서사를 추동하는 힘은 언제나 그렇듯 복수심이었다. 그 복수의 방식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동의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냥 더 이상의 추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그런데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세상에 맨 마지막 장까지 우샤오러 작가가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 두었을 줄이야.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 비밀을 품고 있고, 그 비밀이 노출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실이 참 서글프게 다가왔다.
결국 구원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일까. 나의 선의가 온전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기가 난망하고 또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관계가 얼마나 허약한지 우신핑과 오드리 그리고 즈싱의 삼각편대가 보여주는 결말이 안타깝기도 했다. 우신핑이 판옌중에게 물었던 질문의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비밀은 내 입에서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비밀일 수 없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은 독서였다. 그래도 우샤오러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