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서울 강서구에 자리 잡은 공진초 자리에 장애학우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 건으로 자신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장애친구를 둔 어머니가 무릎을 꿇는 장면을 보고 울컥한 적이 있다. 자기 자식이 다니지도 못할 학교 설립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은 어머니의 위대한 모습에 그만 숙연해졌다. 그 반대편에서는 자기네들의 소중한 아파트값이 떨어질까봐 쇼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는 기가 막힌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 찰리 고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앨저넌에게 꽃을>이 출간된 지 자그마치 58년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네 인식은 그 시절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 놀랄 따름이다.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은 어릴 적에 페닐케톤뇨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아 지적장애를 안고 살게 된 도너 사장님의 빵집에서 일하는 방년 32세의 청년 찰리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1960년 휴고어워드에서 최고의 SF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인체에 대한 임상실험에 대한 엄격한 도덕윤리가 적용되지 않던 시절, 찰리처럼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뇌수술과 약물치료를 해서 지능을 높이겠다는 매우 위험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유년 시절부터 지적장애아라는 이유 때문에 주변 친구들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엄마 로즈와 여동생 노마에게까지 차별과 업신여김을 받은 찰리에게 비크맨 대학교의 정신과 및 뇌과 전문의 니머 박사와 심리학 권위자 스트라우스 박사의 뇌수술 제안은 그야말로 어둠 속의 한줄기 빛 같은 소식이었다.

 

3월 3일부터 시작된 찰리가 직접 쓴 경과보고서를 따라 가다 보면 여러 가지 단상들의 부침을 경험할 수가 있다. 우선 처음 60페이지까지는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찰리의 글쓰기에 눈이 다 피곤할 정도였다. 나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곤욕일지 모르겠지만 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워렌 주립보호소에서 찰리와 같은 친구들을 24시간 지켜봐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맴돈다.

 

현대 첨단뇌과학의 도움으로 찰리의 지능시주슨 68에서 185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특별한 교육 없이 자력으로 사어를 포함한 20개 언어를 독학으로 깨우치고,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과 토론을 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그런 실력을 갖추게 된 찰리는 차별과 놀림을 받는 지적장애인에서 천재가 되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을 마주하게 됐다. 그전에는 장애 때문에 외로웠다면, 이제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 때문에 역차별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남들보다 부족해도 차별을 하지만, 그 반대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도 아낌없이 차별을 하는구나 싶었다.

 

어릴 적 엄마 로즈에게 받은 성적 억압 때문에 여성들과의 정상적 교제를 경험해 보지 못한 찰리는 비크맨 대학교에서 처음에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 주던 앨리스 키니언 선생님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뛰어 넘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자신과 비슷한 뇌수술을 받은 생쥐 앨저넌에게도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일정 이상의 지능을 갖게 된 후의 피실험자에 대한 결과가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대로 화려했던 비상을 뒤로 하고, 퇴행이 시작된다. 미로찾기 테스트에서 생쥐조차 이길 수 없었던 우리의 주인공 찰리는 도너 빵집에서 마음씨 착한 도너 사장님 몰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동료에 대한 도덕적 갈등을 하게 되는 찰리.

 

 

찰리는 앨저넌처럼 자신도 같은 과정을 겪게 될 것라는 사실을 자신이 직접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앨저넌-고든 효과라는 걸출한 논문을 발표한다. 그야말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니얼 키스의 SF적 상상력은 지적 발달이 인격의 수양과 연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설을 통해 어쩌면 전세계 지적장애친구들에게 그들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하려고 했던 걸까. 마음씨 착한 주인공 찰리는 천재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보라고 놀림을 받던 시절 아무도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는 점에 절규한다. 그런 점에서 리뷰의 소제목으로 단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과연 어린 시절 구박덩어리였던 찰리 고든이 놀라운 변신을 한 후에 과연 고든 패밀리가 보이는 반응은 어떠할까였다. 대니얼 키스 작가는 브롱크스 이발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가고, 여전히 쇠락한 고향에서 사는 엄마 로즈와 여동생 노마를 찾아가 대면한다. 분노조절 장애를 경험한 것 같은 찰리는 자신의 새로운 창조주를 자임하는 니머 박사와 대등하게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천재가 된 찰리는 지식의 전문가들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냉소주의를 선보이기도 한다. 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작가가 되고싶었던 대니얼 키스는 자신을 약대에 보내려고 하는 아버지와 겪은 불화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1945년부터 구상한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은 장장 15년 동안 무르익은 다음, 1959년에 비로소 단편으로 빛을 보게 되었고 1966년에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 뇌수술로 지적장애를 치료하겠다는 당대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라는 인문학적 사고를 멋지게 결합한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이 주는 감동은 앞으로 다가올 가을날 마주하게 될 국화꽃 향기처럼 그윽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뱀다리] <앨저넌에게 꽃을>은 2004년에 동서문화사에서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는데, 역시 최신판이 훨씬 더 세련되게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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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작권 무시하기로 악명 높은 동서문화사가 자랑할만한 에이스 중 하나가《앨저넌에게 꽃을》입니다. 동서문화사를 까는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이 책을 좋게 봅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으니 인지도가 밀릴 수 있겠어요.

레삭매냐 2017-09-15 23:1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었군요...
아직도 그런 출판사가 있다니 놀랍네요.

이참에 새로 나왔으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보니 아까 예스24 중고서점에서
본 책도 동서문화사 책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