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는 여전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감독 마틴 스코시즈의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로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장훈 감독의 광주 민주화 항쟁을 그린 <택시운전사>를 보고서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파일을 며칠 앞둔 37년 전, 5월 넷째주로 영화를 관객을 인도한다. 홀아비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오늘도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한 서울에서 주야로 돈벌이에 여념이 없다.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 사실이지만, 아내는 병으로 세상을 뜨고 열사의 땅 사우디에서 5년간 열심히 번 돈은 모두 아내의 병원비로 사용하고 그의 유일한 밥벌이 수단은 60만 킬로미터를 뛴 택시 한 대다. 친구 상구 아빠네 집에 거의 얹혀 살다시피 하며, 밀린 사글세 10만원 때문에 기사식당에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동료 택시기사의 10만원짜리 일감을 슈킹하기에 이른다.
만섭이 맡게 된 임무는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광주로 독일 ARD 방송 도쿄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을 데려가는 것이다. 사우디에서 배운 몇 마디 영어로 외신기자와 소통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만섭의 목적은 오로지 손님을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고 통금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시 서울 김포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장훈 감독은 엄혹한 시절을 분석하는 몇 가지 키워드들을 영화 곳곳에 포진시켰다. 군부독재 정권이 장악한 언론에서는 무장한 폭도들이 출몰하는 광주에 대한 흉흉한 가짜뉴스들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지금처럼 진실을 감출 수가 없었던 시절에 보안사로 대변되는 사찰기구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후반부에 다뤄지는 내용이지만, 양심 있는 전남매일의 기자들이 진실을 신문에 담으려고 신문을 인쇄하던 중에 사측에서 등장해서 회사문 닫을 일 있냐며 한창 돌아가는 윤전기를 멈추게 하기 위해 정전시키는 장면은 현재 자본의 논리과 이익에 충실하다 못해 권언유착을 넘어 자본에 부역하는 언론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피터 기자를 태운 만섭이 광주에 도달하자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외부인의 진입을 금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 그전에 친절한 피터 씨는 김포공항에서 입국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기자라고 밝히는 대신 선교사로 적는 기민함을 보였다. 어렵사리 진입한 광주에 도착한 만섭과 피터 씨는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엄혹했다. 공수부대로 구성된 계엄군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광주 시민들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하고 있었다. 트럭을 타고 시내를 질주 중이던 구재식(류준열 분) 일행과 조우하게 된 피터 씨는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좀 더 가까이에서 진실을 캐내기 위해 병원으로 향한다. 광주로 오는 도중에 피터 씨에게 일당의 절반에 해당하는 5만원을 받아 챙긴 만섭은 서울로 내빼려고 하지만, 재식의 친구 막둥이 홍용표의 어머니를 길에서 만나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피터와의 동행은 이어진다.
관객수 7백만을 넘어 가히 국민영화의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택시운전사>는 상업영화답게 다양한 볼거리들과 사회적 담론을 담고 있다. 우선 주연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첨언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다. 초록색 구형택시를 몰며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나, 운동화 하나 제대로 장만해 주지 못해 신발 꺾어 신는 딸래미에 대한 부정, 죽은 아내에 대한 사부곡, 원칙적인 보수주의자지만 광주에서 실상을 보고 도저히 양심을 거스를 수 없어 막 탈출한 광주로 손님 피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는 장면 등은 정말 압권이었다. 송강호 말고 대체 불가능한 그런 연기력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 역의 유해진 역시 조연으로 최고였다. 계엄군의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자신도 지켜야할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준사격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일단의 택시군단을 몰고 버스 바리케이드 앞으로 돌진하는 장면,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사복 체포조에 쫓기는 만섭과 피터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 등은 압권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하냐는 만섭의 지청구에 자신은 공부 하러 대학에 간 게 아니라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갔더라는 재식의 천연덕스러운 대꾸는 또 어찌할 것인가. 사복 체포조에게 잡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진실을 알리는 보다 중요한 임무를 부탁하는 신념에 찬 재식의 마지막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에 두 번이나 출연하는 기록을 세웠던 토마스 크레취만의 캐스팅은 정말 신의 한 수였던가. 워낙에 출중하면서도 뻔뻔한 연기의 달인 송강호의 초반 러시에 밀려 진가를 드러내지 못하던 피터는 광주 민주화 항쟁의 중심에서 직접 목격한 참상에 그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진다. 기자로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을 토마스 크레취만은 표정연기를 관객에게 훌륭하게 전달해준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보다 핵심적인 내용인 왜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마치 논픽션 다큐멘터리의 재현 같은 방식으로 계엄군이 무력진압에 나서기 직전 한마음이 되어 항쟁에 나서는 시민들의 모습을 영상화했다. 무료로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택시 운전사들에게 휘발유를 공짜로 넣어 주고, 누구든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내주며 신명나는 아리랑과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나는 춤사위를 선보이는 초로의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잠시나마 우리가 꿈꾸었던 대동세상은 그야말로 꿈결 같이 지나가는 시간들이었다. 바로 뒤에 이어진 폭력의 시간.
아마 이 세상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영화는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감동과 재미, 역사적 교훈이라는 요소들을 두루 갖춘 <택시운전사>는 최소한 37년 전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사유할 수 있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영화라고 부르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씨는 결국 자신과 함께 광주로 갔던 김사복 씨를 만나지 못하고 작년 1월에 영면하셨다고 한다. 참기자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든 역사의 현장에서 그가 남긴 영상기록이 없었다면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기억의 전쟁은 그리고 세계의 시선을 어떻게 되었을까. 문자게이트로 권언유착 아니 언론의 자본에 대한 부역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중심을 끌고 있는 마당에, 모든 국민은 몰라도 모든 기자들은 <택시운전사>의 위르겐 힌츠페터가 역사적 순간에서 보여준 기자정신을 곱씹으며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이 영화를 꼭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