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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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위화 작가가 출연해서 대담을 나눈 방송을 들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 중에서 하나 추천한다면 어떤 작품을 추천하겠냐는 공장장의 말에 위화 작가는 바로 <형제>를 추천했다. 우리에게는 <허삼관 매혈기>나 <인생> 등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장장 50만자에 달하는 <형제>에 대해서는 또 금시초문이었다. 역시나 독서의 세계는 방대해서 일엽편주 배를 타고 독서의 바다를 항해하는 일개 독서인에게 읽을 책을 또 한 권 주시는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권과 2권 합해서 장장 900쪽에 육박하는 송강과 이광두 형제의 대서사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위화 작가가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희대의 촌극을 연출한 마오 주석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발칙한 꼬마 이광두가 화장실에서 뭍 여성들의 엉덩이를 훔쳐본다. 더 웃긴 설정은 이광두의 아버지 역시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다가 그만 변사(똥바다에 빠져 죽었다)했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소리는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 주었던가. 걸상에 대고 성욕을 느낀다면 발칙한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광두의 모습에 류진의 어른들은 혀를 찬다. 어쨌든 우직한 송강의 아버지 송범평은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씻기고 장례까지 치러주지 않았던가. 그렇게 연을 맺게 된 송범평과 이란의 결합으로 이광두와 수호전에 등장하는 급시우 송강의 이름과 같은 송강이 형제가 되었다.


형제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짧았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시절에 송범평은 지주 유산자계급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란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죽고, 고아가 된 두 소년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성인이 된다. 고향 류진 현에서 내로라하는 건달이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 이광두는 특유의 뻔뻔함으로 무장하고, 복지공장의 공장장으로 셀프 취임해서 훗날 명성을 떨치게 될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광두는 어릴 적에 엉덩이를 훔쳐 본 류진 최고의 미녀 임홍의 사랑을 얻기 위해 송강을 참모 삼아 14명의 복지공장 구애부대를 조직해서 줄기차게 미인에게 들이대지만, 임홍은 엉뚱하게도 송강을 사랑하게 된다.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 이광두가 사랑의 라이벌이 된 송강은 고뇌 끝에 새끼줄을 구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광두가 나타나서 구해주기도 한다. 삼장법사와 저팔계 커플이 벌이는 부단한 사건 사고들이 줄을 잇는다.


오락가락하던 사랑의 실랑이 끝에 임홍과 송강은 부부의 연을 맺고 유일한 사랑을 잃게 된 이광두는 그날로 가서 정관수술을 받는다. 자진 거세라고 류진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훗날 이 사건이 자신을 염문에서 구해줄 신의 한수였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이광두는 세상이 계속해서 그를 배신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들이댔다. 지긋지긋했던 문화대혁명과 마오 주석의 시대가 끝나고, 개혁개방의 시대를 맞아 드디어 이광두에게도 볕이 들기 시작한다. 현청 앞에서 시위하던 중에 우연히 얻어 걸린 고물장사와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양복 사업으로 대박이 난 이광두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빌린 창업자금을 모두 청산하고 일대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 때 그에게 반신반의하며 밑지는 셈 치고 투자한 여 뽑치와 왕 케키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해마다 받게 되지만, 그의 과거 전력 때문에 투자하지 않은 나머지 동 철장, 아들 관 가새 등은 땅을 치고 통곡하게 된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다시 떠올랐다.


위화 작가는 이광두라는 요란한 캐릭터에 세태에 편승할 줄 아는 기회주의적 자본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렇게 양심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행동하며, 성공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개혁개방의 기수야말로 현대 중국이 요구하는 인재상이었다는 등식이다. 공산주의 시스템에서 말도 안되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마오 주석의 계급투쟁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세계에서의 성공 여부로 모든 것이 판가름이 나는 염량세태에 대한 신랄한 풍자에 다름이 아니다. 연이은 사업 성공으로 류진 현에서 거물이 된 이광두를 대하는 현장 도청을 비롯한 당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산당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데올로기조차 금전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중국에서 판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해괴한 양태에 대한 작가의 매서운 비판이다.


반면, 가난하지만 양심적인 송강의 모습을 살펴보자.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친형제 이상의 우정을 나눈 이광두와 타의에 의해 결별한 송강의 삶은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의 연속이다. 미인 아내 임홍을 얻은 것 이외에 금속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성실한 사나이에게 눈이 다 휘둥그레질 정도로 모든 것이 변하는 개혁개방 시대의 적응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금속공장 노동자로서 철밥통이 부서지자, 날품팔이 노동자로 그리고 백옥란 같은 꽃파는 아저씨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뼛속까지 철저하게 자본주의자로 변신한 이광두와 벌어진 간극을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광두와 송강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재의 중국과 과거의 중국을 대변하는 두 선수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임홍이라는 존재는 어디에 등치를 시켜야 할까? 중국과 교역을 하고 싶어하는 서방세계 정도라고나 할까. 물질주의 천국 중국의 현실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 이상주의가 지배했던 과거 중국을 동경하는 서방 세계의 지식인들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해석이려나. 책을 읽는 도중, 문득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류진의 수석대리로 연명하던 송강은 돈을 벌어 아내 임홍을 호강시켜 주겠다는 신념으로 강호의 사기꾼 주유(삼국지에 등장했던 주유와 이름이 같다)를 따라 나섰다가 가슴확대 수술을 받고 여성들을 상대로 쭉빵 크림 판매에 나서지만 고지식한 위인이 사기에 걸맞지 않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했다. 그동안 고향 류진에서는 이광두와 임홍의 그야말로 해괴망측한 관계가 이어지고 멀리 해남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송강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오래전 실패한 자살을 감행한다. 가혹했던 어린 시절을 송강과 함께 헤쳐나온 이광두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형제 송강에게 걸맞는 마지막을 장식해주기 위해 우주로 나갈 결심을 한다.




우리도 1970년대 압축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양산되었다. 기존의 규범과 가치들은 금전만능주의 앞에 맥을 추지 못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것만이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이들의 유일한 목적처럼 인식되어 왔다. 지난 40년간 이웃 중국의 압축성장은 우리의 것을 가뿐하게 초월한다. 저자가 후기에서 쓴 것처럼 유럽에서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들이 중국에서는 그 1/10에 해당하는 초단기에 진행되었다. 그러니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오죽할까. 이광두가 고향 류진에서 처녀미인대회라는 해괴한 명칭의 시대를 거스르는 미인선발대회를 개최한 것도 어쩌면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마오 주석의 독재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그런 일들이 개혁개방 시대에는 인민들의 욕망을 채워 주겠다는 국가자본주의자들의 담합과 결탁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자본가 이광두에게 충성을 맹세한 류 작가의 놀라운 변신도 눈여겨 볼만하다. 돈의 위력 앞에 문인의 자존심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스스로 뼈다귀를 자처하며, 이광두가 매스미디어가 선호할 만한 가십성 먹잇감을 던져주고 금권으로 그들을 후원하고 조종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천하의 사기꾼 주유가 한국 드라마에 빠져 소매와 만두 장사도 제쳐두고 드라마 시청에 몰입하는 장면도 신선했다. 우리 드라마가 유력한 작가의 소설에 등장할 정도로 그렇게 대륙에서 인기였던가 싶다.


위화 작가가 구사하는 풍자와 해학은 연초에 열심히 읽었던 류전윈이나 옌롄커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좀 더 인민적이라고나 할까. 유식한 지식인 계급의 고담준론보다 고작 인구 3만 정도의 류진 마을 인민들 사이에서 나눠지는 통속적 대화를 통해 재구성된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위화 작가가 구사하는 송강과 이광두 형제의 장장 20년에 걸친 우정과 갈등 그리고 결핍, 도무지 채워질 수 없는 간극에 대한 서사를 웃고 감동하고 슬퍼하며 읽다보니 50만자 소설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이번 기회에 집에 수집해 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위화 작가의 <인생>과 <가랑비 속의 외침>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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