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의 대통령 길들이기 - 삼류정치에 우아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마이클 무어 지음, 최지향 옮김 / 걷는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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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오래 전 옛날, 미국이라는 나라에 마이클 무어라는 이름의 현자가 살았다. 그의 무기는 카메라와 선동질이었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천국에서 벌어지는 전혀 천국스럽지 않은 일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진실에 거침없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고, 그 결과물들을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가 알리는 진실이 불편한 이들은 그의 작품들을 진실을 취사선택한 선전선동물이라고 폄하하면서, 극장 앞에서 시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그런 시위에는 항상 국기가 등장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가 보다. 어젯밤 서가를 정리하고 이불 깔고 자려다 문득 3년 전에 샀지만 미처 다 읽지 못한 <마이클 무어의 대통령 길들이기>를 발견했고, 단숨에 읽어내렸다. 마침 이언 매큐언의 부커상 수상작 <암스테르담>을 읽기 시작했지만, 걸작보다도 더 재밌어서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나온 건 2008년, 그러니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자 정치인으로 손꼽히던 조지 W. 부시가 집권해 있던 시절인 모양이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누가 후보로 나와도,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을 압도하고 정권교체를 이루리라는 희망에 민주당 후보경선이 본선보다 빡센 그런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의 십년 전 상황과 아주 유사하지 않은가.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반복되는 모양이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차원으로. 오바마와 힐러리 모두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모으면서, 자본주의 천국답게 돈이 지배하는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사실이 나중에 마이클 무어가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상이다.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어지는 초반부에 볼링 한 게임 제대로 치는 못하는 오바마에게 국정운영을 맡겨도 되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우파인 공화당이 정책 대결보다는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우리나라에서는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번 대선에서 이 전략에 올인했다가 낭패한 후보를 생각해 보라)에 유능하고, 뻔뻔하며 거짓말에 능하다고 마이클 무어는 진단한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민주당의 듀카키스와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가 붙은 1988년 대선에서도 선거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듀카키스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선거 도중 듀카키스의 연이은 실책으로 수많은 유권자들이 마음을 돌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이나 동방예의지국에서나 안보장사는 수지맞는 장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유능한 진보보다, 이미지로 무능한 보수의 탈을 가린 공화당이 사람들에게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지적은 예사롭지 않다.

 

오바마의 첫 번째 상대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눈여겨 볼만하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하노이와 하이퐁에 대한 맹렬한 북폭에 참가했다가 대공포에 격추되어 5년간 공산 베트남의 포로가 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은 베테랑은 퇴역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돌아다녔다. 엄연히 전쟁 상황에서도, 폭격은 군사적 목표물에만 해당해야 하지만 그런 상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민간인들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고도 전혀 반성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다니. 동료 의원들조차 오만불손하고 안하무인, 고집불통인 매케인에 대해 비판했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대선을 앞두고 이미지 세탁을 하는 도중에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미디어가 너무 발달한 시대라 그전에 자기가 했던 말들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모름지기 미래에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라면 언행을 조심해야 할 지어다.

 

비주류 이단아(maverick)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특이한 10가지 대선 공약으로 독자들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무료교육, 무료의료 시스템 그리고 극장에서 제공하는 음료수와 팝콘 가격은 무조건 3달러 미만으로! 뭐 이 정도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지 않을까. 이상한 대통령에 이어 아주 정상적인 대통령이 집권했다가, 그 뒤에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할 희한한 대통령이 등장해서 백악관의 주인이 된 상태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사력을 다해 만든 전 국민 의료보험 시스템이 붕괴할 지경에 도달했다는 뉴스에 정말 경악할 지경이었다.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신약 개발에 엄청난 자금이 투여되지만, 막상 그 열매는 거대 제약회사들이 모조리 쓸어가고 있지 않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이익을 내는 다국적기업들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조세회피를 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도 내고 개인 의료보험에도 엄청난 비용을, 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전적으로 개인 부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 예로 마이클 무어는 미국과 프랑스를 비교하고 있는데 엇비슷한 세금을 내고 있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혜택을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 프랑스에 비해 미국 시민들은 그렇지 못하나는 사실을 아주 냉철하게 꼬집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모두 프랑스나 이웃 캐나다로 이민이라도 가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투표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세운 나라다 보니, 건국의 아버지들은 무지몽매한 시민들을 위해 간접선거제도라는 아주 기발한 제도를 만들어내셨다. 그게 건국 시기인 18세기 후반에는 유용한 제도였을 진 몰라도 이제 21세기 미국에서는 쓸모가 없는 시스템이라는 마이클 무어의 지적이다. 그 결과, 2004년 앨 고어와 2016년 힐러리는 시민들의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에 지는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투표일도 11월 첫째 주 화요일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게끔 일요일에 하자는 의견도 제안한다. 우리처럼 주민증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고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유권자 등록제도라는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점도 사람들의 투표의욕을 싹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란다. 미국 시민들 중에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그마치 1억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눈여거 보아야 할 것 같다. 누구에게 투표를 하든, 시민들로 하여금 투표장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물론 개표 관리도 철저하게 해서, 2004년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천공밥 개표논란 같은 것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갱생한 마약중독자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35가지 사유를 들면서 마이클 무어는 이 멋진 권력자 길들이기 에세이를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이미 지난 겨울을 거치면서 한 번 추체험한 사실이라 그런지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무작정 덮어둘 게 아니라, 잘못되었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쳐야 할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달님정부에서 착수한 사대강, 자원비리, 방산비리 등에 대한 의심도 말끔하게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이런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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