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언컨대 이번에 읽은 자크 파월의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는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진작에 이런 책이 출간되지 않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프레시안에 연재되던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역작일 줄은 미처 몰랐다. 전쟁국가 미국의 세기를 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실체를 수정주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파헤친 자크 파월 작가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아서 타임라이프에서 나온 방대한 분량의 <World War II> 시리즈를 헌책방에서 사 모으면서 전쟁의 세부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시적인 측면에서 독일 나치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해서 자유와 정의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미국의 참전이 사실은 미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배계급과 파워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독일 파시스트들과 전쟁에 돌입하기 전까지 미국 재계와 파워엘리트들은 동방의 대적 스탈린의 소비에트야말로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하는 숙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자유무역의 세계화라는 테제를 통해 ‘더러운 30년대’로부터 탈출을 도모했던 미국 파워엘리트들에게 서유럽에서 벌어진 전격전 그리고 소비에트를 상대로 한 나치 독일의 독소전은 전쟁물자 수요를 충족시켜줄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시즘에 경도되어 있던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엉뚱하게도 태평양에서 경쟁국이던 일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중국 철군과 전쟁수행에 꼭 필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금수 조치로 결국 진주만 기습을 실행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원하던 태평양에서의 패권수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유럽전쟁은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비에트가 서로 물고 뜯으면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전쟁물자들을 캐시앤캐리 그리고 렌드리스라 명명된 방식으로 소진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재계와 파워엘리트들이 원하는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자크 파월은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전쟁물자도 독일에 진출한 다양한 미국 기업들의 자회사들의 자발적 협력으로 양산하기에 이르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했던 석유 제품들로 구성된 연료를 공급했던 록펠러 그룹 스탠더드 오일의 활약이야말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스페인을 장악한 또다른 파시스트 프랑코와 프랑스 비시 정부를 통해 유입된 석유 연료와 석탄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합성연료 기술이야말로 나치 독일이 전격전으로 폴란드와 서유럽을 단기간에 석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스탈린의 소비에트는 1941년 6월 22일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앞세운 나치가 동방의 숙적을 상대로 전격전을 개시하면서 수도 모스크바 함락을 가시화되기도 했지만 결국 12월 5일 주코프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파죽지세의 독일군을 저지한 사건이야말로 세계대전의 극적인 반환점이었다고 자크 파월은 주장한다. 보통 1942년 여름의 청색작전이라 불린 독일군의 하계공세를 스탈린그라드에서 막아낸 것이 전세의 승부를 갈랐다고 하지만, 실제는 1941년 12월의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히틀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분쇄한 것이 전쟁의 흐름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이 조기에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히틀러 군대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아울러 스탈린은 300만에 달하는 독일 정예군을 상대하면서 미영 동맹군에게 조속한 시일 내에 서유럽에서 제2전선을 열어 달라는 SOS를 끊임없이 보냈지만, 영국의 노회한 제국주의자 윈스턴 처칠은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면서 전쟁의 대부분을 소비에트가 담당하게 내버려두었다. 마지못해 실행한 디에프 공략전의 실패는 서유럽 제2전선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선전에 매우 주요했다. 당시 전사자의 대부분이 나다군이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서방에서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개된 제2전선이 2차 세계대전 승리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선전해 왔지만 그 시기에 이미 독일의 패전은 기정사실이었고 소비에트는 서유럽에서 지분 경쟁을 위해 상륙한 미영연합군의 의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 다된 밥상에 숟가락을 얻겠다고 덤벼드는 서방 동맹군들의 모습을 경멸했을 지도 모르겠다. 미영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교두보를 장악하고 서진을 개시했지만, 노련한 독일군의 매복전술에 걸려 진격이 지지부진 하던 가운데,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동맹국 소비에트에 어쩔 수 없이 SOS를 날린다. 무시무시한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한 붉은 군대는 서방으로 단숨에 600KM 이상 진격을 감행하면서, 히틀러의 본진인 베를린 함락을 목전에 두게 된다. 아마 이 즈음해서 마켓가든 작전이라는 무모한 작전으로 단박에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고 라인강을 건너겠다는 서방 연합군의 시도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고, 1944년 겨울에 폰 룬트슈테트가 전개한 벌지전투로 독일 본토 진공은 더욱 요원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종전이 다가오면서 전후 세계질서 재편에 대한 경쟁이 대두되었다. 사실 스탈린의 소련이 유럽에서 전쟁의 대부분을 감당했기 때문에 뒤늦은 제2전선으로 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할 말이 없었다. 다양한 차원의 유화책으로 스탈린을 달래고, 심지어 나치 독일과 개별협상을 통해 반소비에트 십자군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엿보이면서 서유럽 각국의 전후체제에 대한 설계가 시도되고 있었다. 스탈린은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승전국으로서, 제정러시아 시대 폴란드에게 잃은 영토의 실지회복, 주변국가에 반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면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양보할 의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해방시킨 미국과 영국이 해방 과정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을 보인 빨치산과 좌파 계열 게릴라들의 새로운 정부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수구반동적인 바돌리오 원수 내각을 출범시키는 것을 보면서 스탈린은 자신들이 해방시킨 지역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 시스템을 이식한다는 전범을 따르게 된다. 그 결과 동유럽에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줄지어 탄생하고, 이른바 철의 장막 탄생의 원인이 되었다.

 

한편, 1945년 2월 드레스덴 대폭격은 무서운 속도로 베를린을 향해 돌진해 오던 붉은 군대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도저히 붉은 군대의 서진을 따라 잡을 수 없었던 미영 연합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았던 드레스덴을 표적으로 삼아 스탈린의 붉은 군대에게 신경질적인 경고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공군을 동원한 전략폭격이 과연 붉은 군대에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무고하게 죽은 20만 명에 달한다는 드레스덴의 시민들만 억울할 따름이다. 전략적 목표보다 정치적 의도에서 실시한 이 인간도살은 커트 보네거트의 그 유명한 소설 <제5도살장>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등장한 트루먼의 원자외교 역시 이런 정치적 목적에서 봐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스탈린이 유럽에서 제2전선을 요청했자면, 태평양전쟁을 거의 홀로 치른 미국 역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는 대로 극동아시아에서 스탈린이 일본을 상대로 제2전선을 열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1945년 여름 일본에서의 본토 결전을 앞두고 100만 명의 사상자가 예상된다는 전쟁성의 보고에 경악한 미국 전쟁지도부가 조속한 종전을 위해 원자폭탄의 사용을 결정했다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지만, 이 또한 스탈린에 대한 경고장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종전을 원했다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같은 이류도시보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표적으로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탈린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 싫었던 미국의 전쟁지도부들은 서둘러서 원폭에 나섰지만, 만주에서 붉은 군대가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던 존재인 관동군을 격파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스탈린의 군대가 미국이 고군분투한 태평양전쟁 말기에 생색만 내고, 제정러시아 시대 잃었던 영토인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강탈해 갔다는 미국의 주장은 서유럽의 전후처리 과정을 볼 때, 그 어떤 일관성이나 합리성도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기존 역사학의 전통적인 해석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 이 기념비적인 저작의 후반부는 독일 파시스트들과 결탁해서 거의 반역에 가까운 행위를 저지른 미국 기업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파워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지국가 대신 전쟁국가의 길을 선택한 역사적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마호그가 펀치카드 같은 신기술을 이용해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관리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포드의 자회사인 포드-베르케와 제네럴모터스의 자회사인 오펠이 미군과 싸울 나치 독일군을 실어 나를 수많은 수송용 트럭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기존 주류 역사가들을 지금까지 외면해 왔다는 자크 파월의 주장이 과연 “좋은 전쟁”이라고 포장된 2차 세계대전의 추악한 진실에 조금 다가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 미국 기업들에게 자국의 병사들에게 치명적인 해가 될 수도 있는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모럴 이슈(moral issue)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바로 이윤이었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데 사용한 치클론 B 독가스를 생산한 이게파르벤 관계자들에 대한 엄정한 대한 처벌이 이뤄졌는가? 치열하게 전쟁이 치러지는 와중에서도 독일내 미국 자회사들에 대한 피해는 경미했으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생산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현상유지를 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러운 30년대 과잉생산으로 몰락할 뻔 했던,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영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수요를 찾아 가까스로 체제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전쟁 시기에 동맹국이었던 소비에트의 전범을 찾아 미국 시민들이 공정한 부의 사회분배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파워엘리트의 근심 걱정은 폭발할 수준에 도달했다. 1917년 10월혁명 이래, 전세계에서 인민민주주의 볼셰비키 박멸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미국 주류계급에게 노동계급의 각성이야말로 가장 반갑지 않은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래서 독일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은 기존의 강력한 동맹국인 소련을 주적으로 삼아 열전(hot war) 대신 냉전(cold war)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좋은 전쟁’이 파워엘리트 계급과 노동자 시민계급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면, 냉전은 철저하게 파워엘리트 계급에게만 좋은 그런 전쟁이었다. 소비에트를 파멸에 몰아넣기 위해 평화, 복지국가 대신 군사적 케인스주의를 선택해서 미국은 전쟁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비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기에 이르렀고 기업들이 부담해야할 세금을 일반 시민들이 부담하게 되고,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지도자들의 복지시스템에 대한 사악한 공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절대 빈곤층이 자그마치 14%에 달하는 역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자크 파월은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후에도 사담 후세인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같은 꼬마 악당들을 양산해서 전쟁국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냉전시대 같은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어릿광대 같이 천방지축으로 좌충우돌하는 지금의 대통령을 보면서, 미국 시민들은 어쩌면 자신들을 지배하는 파워엘리트의 실체를 보고, 그 어느 때보다 자각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크 파월의 기념비적인 저작을 보면서 아무래도 랑케 실증사학으로 훈련된 덕분인지 저자가 인용한 상당 부분이 전언이나 혹은 가설이라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저자가 다루고 있는 상당 부분이 역사서에 남길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좋은 전쟁 기간 동안, 미국 다국적기업 산하 독일 자회사들이 나치 독일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전쟁물자를 생산해서 엄청난 수익을 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겠는가. 설사 그런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도, 파기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미국 대기업들이 전시에 ‘이전 가격 조작’으로 대표되는 회계 트릭을 이용해서 정당한 세금납부를 회피하는 교묘한 전략을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전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사업을 벌여 천문학적 수익을 내면서도 모국에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가 이미 좋은 전쟁 시절부터 있어왔다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자크 파월이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 다룬 좋은 전쟁이 누구에게 좋은 것이었나라는 대주제를 비롯해서, 전쟁을 통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 소비에트와의 무제한 군비경쟁, 반역행위에 가까운 협력을 저질렀던 미국대기업들의 독일내 자회사들에 대한 고발 그리고 복지국가가 아닌 전쟁국가의 길을 걷게 된 미국 파워엘리트 계급의 실체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 체계에 일대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역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

 

[뱀다리] 다 좋았는데 몇몇 지명에 대한 오기, 주요 인물의 잘못된 생몰연도 그리고 눈에 띄는 오탈자가 눈에 걸렸다. 요즘처럼 인터넷 백과사전이 발달한 시기에 영문 위키피디아 한 번만 돌려봐도 바로 알 수 있는데 아쉬웠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좋은 책의 완성도에 오탈자 때문에 흠이 가면 안 되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ybooks 2017-04-1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 님, 오월의봄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주시고 공들여 리뷰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명 표기 등 오류가 몇 군데 있나 보네요. ㅜㅜ 혹시 그 부분들을 보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maybook05@naver.com 선물도 드릴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레삭매냐 2017-04-19 09:10   좋아요 0 | URL
알려주신 이메일로 오탈자 제보 전송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