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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ㅣ 이희재 삼국지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8월
평점 :
네이버 댓글 이벤트로 이희재 화백의 <이희재 삼국지>를 접하게 됐다. 역시 모본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로, 사실 3에 소설 7이라고 했던가. 후한말 황건적의 거병, 국정을 농락한 그 이름도 유명한 십상시가 등장하고, 무엇보다 유관장 삼총사가 등장하는 도원결의를 비롯해서 천하쟁탈에 나서게 되는 원소와 조조 그리고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손견까지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자웅을 겨루게 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사실 이런저런 다양한 판본의 삼국지들을 접하다 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고전의 제 맛이란 이렇게 다양한 해석에 있는 게 아닐까. 인덕이 후하기로 유명한 유비 현덕에 대해서도 촉한정통론을 내세우는 나관중식 사관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만, 완고한 수구주의자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보다는 훈구 세력의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 인물 유비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과 권력 그리고 영웅들과의 쟁투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이희재 화백이 그린 삼국지 1편에서 가장 불운한 사나이는 바로 대장군 하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정을 농단한 십상시 환관세력을 일소할 기회가 있었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의 목숨과 하황후 그리고 조카 홍농왕 소제 회의 목숨까지 달아나게 만들었다. 건석을 비롯한 환관들 역시 마찬가지 신세로, 황제 주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전횡하다가 결국 군벌 세력에게 초토화되는 운명이란. 그리고 보니 푸른 하늘(창천)은 죽었다며, 기의했던 농민반란 세력 황건적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태평도를 따르는 세력이 반군으로 기세를 올리긴 했지만, 정식 군대와 대결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실력을 몰랐던 걸까? 유관장 삼총사가 이끄는 의군에게 연전연패하는 모습을 보면 준비되지 않은 군세로 반란에 나선 것 자체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황건적의 모습에서 청나라 말기 홍수전을 중심으로 한 태평천국의 난이 연상되기도 했다. 역사란 그렇게 반복되는 모양이다.
만화 삼국지는 비교적 충실하게 나관중 원작의 궤적을 추적한다. 십상시들을 제압하기 위해, 조조의 간언대로 대장군 하진이 움직였다면 황건적 토벌에서는 무능했지만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앞세워 폭정을 일삼은 서주 자사 동탁의 발호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법이란 없지만, 황건적에 패해 도주 중이던 동탁을 장비가 단칼에 없애 버렸다면 후한말 군벌시대는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유비군단 역시 군벌이긴 마찬가지였으니.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분열과 통일로 움직여 가는 중국사의 거시적 차원을 엿보게 된다. 통일된 제국은 어떤 역사적 장면을 계기로 해서 분열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분열된 소왕국들은 다시 통일을 향해 가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물론 아직 삼국지연의에서는 분열의 초기라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해 사라지고, 남은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 전개가 되겠지만 말이다.
삼국지연의 초반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에서 인상적 장면 하나는 작은 마을에서 현령으로 복무 중인 유비를 감찰하러 나온 독우를 버드나무 회초리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장비의 모습이다. 그리고 보니 유관장 형제 중에 둘째에 해당하는 관우도 고향에서 썩은 관리를 살해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당한 권력행사에 저항하는 인물인 관우가 썩어 빠진 후한에 대항해서 거병한 황건적을 소탕하러 나선 모습은 역설적이지 않은가. 삼공의 후예이자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원소가 돗자리를 짜서 팔던 유비를 우습게 보고, 대장군 하진(백정 출신이라고 했던가)이 환관의 양자 출신이라며 조조를 경멸하는 장면도 당시의 시대상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가문이나 출신 따위를 논하던 시절이 오로지 무력이라는 실력이 말하는 실력 위주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던 동란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시대에 수구주의자 유비가 어떤 비전을 대중에게 보여 주었을까 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유비의 중원 제압 실패의 원인 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이런 수구적 발상 탓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희재 화백의 나머지 9권에 해당하는 삼국지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록으로 딸려온 <삼국지 고사성어>를 살펴 보니 거의 다 아는 내용이지만 또 고사성어로 만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월단평(月旦評)으로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들은 조조가 흐뭇해 하더라는 이야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나관중에 의해 의도적으로 폄하된 문제적 인간 조조는 평범한 시절이었다면, 보통 이하의 그런 관료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