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 타이 생활기 - 쾌락의 도가니에서 살다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시공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한 때 빠져서 국내에 출간된 다카노 히데유키 작가의 모든 책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극락 타이 생활기>도 역시 그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거진 십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작가가 사회 초년병 시절인 26세 때, 치앙마이에 있는 대학으로 일본어 강사로 취직이 되어 인연을 맺게 된 타이라는 나라에 대한 개인적 보고서라고나 할까. 포스트 콜로니얼적인 시선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동남아는 일본의 경제적 무대가 되지 않았던가. 소니를 필두로 한 전자제품을 비롯해서 일제 자동차들이 동남아 시장을 석권한 것은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누가 봐도 분명 괴짜인 다카노 히데유키 같은 작가들이 문화 선봉대로 나서 현지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희색시킨 결과가 아닐까. 물론 필리핀 같은 나라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호되게 당해 여전히 반감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타이는 또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작가에 따르면 타이에서는 세 가지 터부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푸미폰 국왕(재작년에 사망했다), 둘째는 불교 그리고 나머지는 타이를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군부다. 진짜 타이 사람들이 경영하는 타이 레스토랑에 가보면 푸미폰 국왕은 물론이고, 왕족이 한 번이라도 방문했다면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자랑스럽게 전시한다. 일본 사람에게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타이 사람들 역시 자신의 본심을 외지인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주가 잦다 보니, 꾸준한 교우 관계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휴대전화 보급률도 상당히 높아서 우리처럼 같은 번호를 십수년씩 유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대신 수시로 바꾸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작가는 분석한다. 어쩌면 그런 점이 가벼운 인간관계의 본질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뒤에서 하는 격렬한 험담도 한몫할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술버릇도 나쁘다고 하니 거 참. 일본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비로소 본심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타이에서는 반대로 본심을 드러낼 정도가 되어야 술을 같이 마시게 된다고 했던가. 역시 나라마다, 민족마다 개성이 다른 모양이다.

 

어쩌면 타이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꼭 알아 두어야 하는 괜찮은 정도도 상당하다. 동남아 각국에서는 경제를 주무르는 중국계 화교에 대해 일종의 제약을 두고 있는 현실인데, 타이에서는 그런 것이 일절 없다고 한다. 다만, 언어에 대해서만큼은 무조건 타이말을 고집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언어로 민족간 동질성을 확보한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타이에서는 타이말을 할 줄 안다면 같은 사람들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에서 토지를 구입하려면 외국인 신분으로는 토지 구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자유롭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타이는 왕국답게 철저하게 신분제가 고착화된 계급사회라는 점도 놀랍다. 인근 미얀마만 하더라도, 사회주의 독재 덕분에 그런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웃 말레이시아 역시 무슬림 국가이다 보니 그런 철저한 신분제를 유지할 수 없을 텐데 또 타이는 상대적인 모양이다.

 

타이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게이다. 일본처럼 천황을 필두로 한 국가주의가 성행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철저한 개인주의가 중심에 서 있다.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성 정체성이나 성적 기호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침략전쟁을 일으켜거나 다른 민족의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탓이지 않을까. 아시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과 더불어 외국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라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섹스산업 역시 관광대국 타이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타이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 가슴을 갖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이에서부터 시작해서, ‘팟뽕쇼’라고 알려진 방콕의 환락가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런데 여전히 다카노 히데유키 작가가 전하는 모든 리포트의 본질은 바로 타이 사람들의 품성에 관한 이야기다. 무더운 열대의 기후 덕분인지, 서늘한 곳을 좋아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게으른 천성 그리고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부자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허세를 품고 있다고 해야 할까. 국민 대다수가 불교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이중적 모습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타이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타이하면 역시 식도락 이슈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일본 잡지에서는 한때 타이의 특이한 음식들에 대한 기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모양이다. 타이 동북부 이산 지방의 ‘올챙이 요리’를 먹어 보겠다고 먼 거리를 달려 갔지만, 이미 올챙이들은 다 자라 개구리가 되었고 대신 논바닥을 긁어 잡은 이상야릇한 식재료들에 작가와 작가의 지인 Y씨가 도전하는 장면은 <극락 타이 생활기>에서 최고로 손꼽고 싶다. 나라면 아무리 현지 음식에 도전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못할 듯 싶은데, 정말 눈 딱 감고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개구리를 씹어 먹는 장면에선 정말 폭소가 터져나왔다. 날로 먹는 것이 아닌데, 시장통에서 어떤 벌레를 무턱대고 씹은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편으로는 1세계에 사는 이들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체험에 대한 리포트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라면 그런 풍습이 없겠지만, 단백질 섭취가 원활하지 않은 타이의 오지에선 벌레를 먹는 것이 일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다름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과연 옳은 가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엄청나게 큰 메콩강의 자이언트 메기를 먹어 보겠다고 불원천리를 마다하고 달려 가는 작가의 노고도 칭찬할 만하다. 하긴 요즘 우리네 인스타그램에도 먹부림 사진이 난무하는 걸 보면, 굳이 다카노 히데유키 작가만 탓할 것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예전처럼 3미터나 되는 메기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사이즈의 녀석을 찾아 똠양꿍(토무야무쿤) 요리와 매운볶음 요리 맛을 봤다고 하는데, 결코 ‘혐오 식품’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진미도 아니었다는 보고다. 생선살보다는 육식성 메기의 특성상 육류에 가까운 맛이었다나.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 번 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긴 했다.

 

그리고 보니 다카노 히데유키의 이 재기발랄한 타이 리포트는 20년 전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기술하고 있듯이, 이 또한 농촌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던 시절의 타이 이야기일진대 지금은 또 타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또 한편으론 이런 괴짜 작가들의 진짜 타이 리포트의 도움을 받아, 동남아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본 국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우리네 정서상 일본 출신 돌아이 작가의 책이 우리나라에선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절판 품절이 되어 가고 있는데, 새로운 책은 나올 조짐도 안보이고. 한 시절 팬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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