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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오이
강병융 지음 / 뿌쉬낀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참으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책에 대해 알게 되는데 이번에는 인터넷 카드뉴스를 통해 아마 이 책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이 책과 고은규 작가의 <오빠 알레르기>(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탁명주 작가의 <도마뱀이 숨 쉬는 방>, 두 권은 빌렸고 한 권은 샀다. 제목부터 특이한 <알루미늄 오이>부터 먼저 읽었는데, 예상한 대로 그리고 제목처럼 흥미로운 책이었다.
미사일을 의미한다는 소설 <알루미늄 오이>는 구 소비에트 시절 소련의 전설적인 록스타였던 빅따르 쪼이(소설에선 빅또르 최라고 명명된다)의 삶과 그가 죽은 날 한국에서 태어난 찐따 소년 최승자(소멸과 생성의 방식으로 작가는 둘을 이어 붙인다)에 관한 소설이다. 소년 승자의 엄마는 영화 <무엇이 길버트 그레이트를 미치게 하는가>에 등장하는 고래 엄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끊임 없이 무엇을 먹어대는 욕구불만의 상징, 아버지는 작가로 그저 아들에게 세상에 적응해서 조용하게 살라는 무능력한 인텔리겐차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이름과는 전혀 상관 없이 학교에서 악마들에게 시달리던 아들이 벽돌을 들었을 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저 세상에 순응하려고 왜곡되고 굴절된 세상의 적응을 주문하는 그런 아빠다.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즈음해서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면, 대략 12년 정도 전에는 고려인 3세로 뻬쩨르부르그(구 레닌그라드) 출신 미술학도였던 빅따르 쪼이는 보일러공으로 일하면서 록그룹 끼노의 일원으로 록스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배우로 그리고 불세출의 전설적인 모스끄바 공연으로 전설의 탄생을 알렸던 뮤지션은 1990년 8월 15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말 그대로 전설이 되어 버렸다. 그의 열혈 팬 중에 정말 5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고 했던가. 둘의 접점을 이으려는 강병융 작가의 노력은 찐따 소년에게 구세주 사촌누나 승희를 붙여 주고, 느닷없이 악마들이 승자에게 외국 노래를 부르라는 정언명령을 내림으로 약간 판타지 스타일로 치닫기 시작한다. 어쩌다 빅따르 쪼이의 팬이 그의 무덤가에서 삼년상을 치른 러시아 출신 올가가 필승, 코리아가 난무하던 시절에 한국을 찾아 경복궁 근처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승자가 러시아말로 부른 빅따르 쪼이의 <혈액형>을 부른 장면은 이런 판타지의 정점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리얼 월드에서 출발한 스토리텔링은 판타지로 치닫는다. 빅따르 쪼이의 20주기 콘서트에 찐따 소년이 공항에서 그의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구름 같은 관중이 운집한 무대에 선다. 상상만으로도 이제 더 이상의 찐따세상에서 탈출해서 그야말로 전설이 된 기분이려나.
작가 개인에게는 의미 있는 소설일지 모르겠지만, 소비에트 출신 록스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로서는 출발점을 ‘코다’에 대입하려고 하니 과부하가 걸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읽다만 <스파링>에도 등장하는 찐다 소년이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일종의 이물감이 들었다.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이 그보다 더 강력한 폭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던가, 그도 아니면 그저 때리는 맞는 그런 상황이 현실세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현실에 문득 숨이 막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얼마 전에 영화 <로건>에서 또 역시 영화 <셰인>의 대사를 차용한 그대로 인간의 본성이란 바뀌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의 출발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였더라고 말하고 싶다. 재미는 있었지만, 승자가 판타스틱한 무대에 서는 결말은 받아 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내게 1990년 모스끄바 록페스티벌 주인공은 빅따르 쪼이가 아니라 머틀리 크루였다. 난 아마도 알아 듣지도 못할 빅따르 쪼이의 노래 <혈액형>을 유튜브에서 찾아듣는 수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