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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곽 안내서 - 제137회 나오키 상 수상작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1월
평점 :
내가 이 책을 골라서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는 점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타모리 고를 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재밌더라는 입소문 때문에. 그런데 재밌긴 한데 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꾸역꾸역 읽어내긴 했지만 기대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에도시대 도쿄 요시와라 유곽에 있던 마이즈루야라는 기루에서 잘 나가던 ‘에이스’ 오이란(아마 게이샤하고는 좀 다른 것 같다) 가쓰라기가 연루된 실종사건을 파헤치는 미남자의 궤적을 쫓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일반적 기루와는 달리 기루에 등루하기 위해서 절차도 꽤나 복잡하다. 내레이터로 추정되는 미남자는 인물로 환영을 받으면서 등루에 앞서 히키테자야를 비롯해서 오이란의 시중을 드는 이들, 업자, 중개업자, 남자 게이샤 등 정말 다양한 인물들을 상대로 희대의 에이스 오이란 가쓰라기에 대한 면밀한 초상을 그린다.
그것은 마치 일본 문화를 규정해 버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몬>처럼 제각각 자기가 처해 입장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토해낸다. 어느 이야기에는 진실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의 말에는 거짓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가쓰라기 실종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미남자가 수집한 정보와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보를 취합하는지는 전적으로 작가가 조종하는 미남자의 판단에 달려 있지 않은가. 미지의 미남자는 어떨 때는 기루에 처음 출입하는 초짜처럼 행동하다가,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은근슬쩍 눙을 치기도 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고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가쓰라기 미스터리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도쿄 유곽에 대한 호기심과 좀 복잡하지만 인물관계도 그리고 그들이 소설 중에서 맡은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제대로 짚지 못하다 보니 조금씩 책 읽는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후반으로 가면서 독서의 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미남자가 조금씩 흘린 정보대로 가쓰라기가 무가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서 출발한 서사는 결국 복수극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울러 뛰어난 오이란이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손님과 밀당할 줄 아는 능력, 주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그런 면모 등도 갖추고 있어야 한단다. 그런데 특히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 같다.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가쓰라기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복수극을 완성하고 준비한 도피자금을 가지고, 낙적을 앞두고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서 유유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기루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자유의 몸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물은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유곽안내서>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