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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 아버지의 시대
리쿤우, 필리프 오티에 지음, 한선예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중국 윈난 출신 리쿤우 작가의 <중국인 이야기> 합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냉큼 도서관에 가서 첫 번째 권을 빌려 왔다. 아쉽게도 1권만 나오고 나머지 권이 나오지 않고 있다가 이참에 통으로 나온 모양이다. 지난 달부터 계속해서 중국 관계 서적들을 섭렵하고 있는 중인데 어쩌면 올봄 독서의 궤적이 중국을 향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역사를 전공해서 그런진 몰라도, 역사책 읽는 속도가 소설 보다 더 빠르다는 건 안 비밀. 특히나 중국사에 대해서는 더더욱.
월초에 술 먹고 나서 책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알라딘에 책 사러 가서 서서 읽은 <중쇄 미정>과 리쿤우 작가의 <중국인 이야기>로 완전히 독서 슬럼프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역시 책읽기 슬럼프 탈출의 가장 좋은 방법은 만화 읽기가 아닐까 싶다.
서두가 길었다. 리쿤우 작가는 3년 전에 <내 가족의 역사>라는 그래픽노블로 처음 만났었다. 이번 <중국인 이야기>에서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 세대인 작가 샤오리가 직접 겪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 남부 윈난성 쿤밍 출신으로, 아버지는 공산당 서기 출신 혁명가로 자본계급 부르주아를 경멸하는 골수 혁명당원이었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독재자 마오쩌둥을 비난하지 않고, 혁명 초기에 모든 인민이 우러러 보던 지도자의 영락성쇠를 있는 그대로 조명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 영국과 미국을 따라 잡기 위해 모든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쇠붙이를 공출하는 장면은 이미 지난달에 읽은 옌롄커 선생의 <사서>에서 이미 접해서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쥐를 박멸하고, 파리와 모기 그리고 벼룩, 이와 전쟁을 벌이는 장면은 우리나라 유신 시절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기도 했다. 인민을 동원하는 독재는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걸까. 모두가 알다시피 그냥 약진도 아닌 대약진을 표방한 운동은 파멸적 기근으로 농촌과 도시 모두에 파멸적 결과를 불러왔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장기간에 걸친 대기근으로 수를 파악할 수 없는 이들이 굶어 죽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귀중한 역사 유산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파괴되는 참상을 작가는 재현해냈다. 오랜 세월, 착취와 억압 그리고 수탈을 견딘 인민에게 자유와 평등을 약속했던 혁명의 결과가 고작 기아와 죽음 뿐이었다니 허탈할 따름이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조반유리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내세워 연이은 실정으로 권위가 약화되어 가고 있던 마오쩌둥은 십대 홍위병들을 동원한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전통 가치들은 모조리 파괴하기에 이른다. 극중에서 샤오리는 빼어난 그림 그리기 실력을 발휘해서 홍위병의 일원으로 인민의 적으로 규정된 이들은 공격하는데 앞장섰었던 참담한 사실을 고백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 교장으로 복무하던 이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자신을 비판하는 글판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사태가 마오쩌뚱이 죽은 1976년까지 진행되면서 중국의 역사발전의 추는 미래가 아닌 퇴행적으로 진화되었고, 거의 한 세대에 대한 교육이 후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편, 열혈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 라오리 집안이 지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밝혀지면서 아버지 역시 무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재교육 수용소에 갇히고, 가족들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재난의 시기를 피할 수가 있었다. 1972년 인민해방군에 선전화가로 지원한 샤오리는 4년 뒤, 마오쩌둥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리쿤우 작가의 멋진 그래픽노블을 통해 아직까지도 중국에서는 위대한 영도자로 추앙받는 마오쩌둥의 실체를 다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우선 리쿤우 작가의 그림 스타일은 유럽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시나이로 작업을 맡은 필리프 오티에 덕분일까? 왠지 서구인이 그린 중국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당대에 대한 좀 더 생생하고 디테일한 르포르타주를 원했지만, 모두의 뇌리에서 지우고 싶은 어두운 과거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민감한 주제라 그런지 그런 디테일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문화대혁명이라는 친위쿠데타를 통해 인민들 간에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고, 오직 모든 권력을 독재자에게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집권연장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이미 혁명공약은 폐기되었고 수년에 걸친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역전시키기에는 지도부의 능력과 대내외적 조건들은 역부족이었다.
1부 <아버지의 시대>에서 국공내전의 승리 이후 격동의 시절을 다뤘다면 나머지 2, 3부에서는 아마도 개혁개방를 시대를 그릴 것 같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숙청당한 덩샤오핑과 류사오치 그리고 천윈 그 중에서도 특히 작은 거인이라 불리며 오늘날의 신중국을 만든 덩샤오핑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