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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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후 세계가 어떤지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드 루이스의 경우는 어떨까? 소설 <축복>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드 루이스는 폐암 말기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이제 여름인데 가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55년 동안 철물점 주인으로 모든 이들에게 완고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그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

 

미국 출신 켄트 하루프 작가는 생전에 모두 6편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축복>은 그 중에 다섯 번째 작품으로 콜로라도 주의 가상의 공간 홀트(Holt) 카운티를 배경으로 한 홀트 3부작 중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기존에 출간된 <플레인송>이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두 번째 작품인 <이븐타이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대드 루이스의 사랑하는 아내 메리는 대처에 나가 있는 큰딸 로레인을 소환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가족들이 준비를 시작한다. 다만, 동성애자로 보이는 아들 프랭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을 떠나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대드 루이스의 환상으로 간간히 아들과 대면할 따름이다. 77살의 생을 마감하면서 결국 아버지는 아들과 화해하지 못할 운명이다. 대드 루이스가 힘겹게 온몸에 퍼지고 있는 암세포와 싸우고 있었다면, 옆집 버타 메이의 손녀 앨리스는 이미 유방암으로 젊은 엄마를 잃고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다. 홀트 카운티의 과부 윌라 존슨과 에일린은 특히 그런 앨리스에게 관심을 가진다. 소녀를 데리고 외출해서 햄버거와 예쁜 옷을 사주고,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여자들끼리 발가벗고 가축수조에 들어가 한 여름을 즐기기도 한다. 버타 메이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그들이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설명한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루이스 가족사의 한 꺼풀을 들춰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다. 아들 프랭크와의 불화에 이은 방황, 씩씩한 큰딸 로레인은 외동딸 레이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대드 루이스는 오래전, 자신의 가게에서 횡령을 일삼던 클레이턴을 징벌했는데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의 아내 타니아를 몰래 돕기도 하는 인 정많은 사나이였다.

 

아마도 목사였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따온 듯한 롭 라일 목사의 일화는 또 어떤가. 덴버에서 동성애자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시골 마을로 쫓겨온 라일 목사의 주일 설교에서 한창 이라크, 아프간에서 전쟁을 치르던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설교를 하고 신도들은 박차서 교회 문을 나서기도 한다. 그의 아내는 가는 곳마다 분쟁을 조장하냐고 남편을 비난하고, 아들 존 웨슬리는 홀트 마을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자신에게 접근한 여자친구와 불장난을 하기도 하지만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불장난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라일 가족의 파국도 대드 루이스의 죽음 진행 과정만큼이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엔딩 부분에 등장한 존 웨슬리의 자살소동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지역 교사였던 에일린도 다른 학교 교장이자 유부남이었던 어떤 남자와 로맨스를 경험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엄마 윌라에게 남자를 소개했지만, 윌라 존슨은 면전에서 해서는 안될 말로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과연 그런 사랑이라면 하지 않는 게 나을지 아니면, 나중에 가서 후회를 하게 되더라도 사랑을 하는 게 나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오래 전에 잃은 엄마 윌라에게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 냈냐고 묻는 모녀간의 대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고 외롭지만 그것 역시 다 지나가고 받아 들이게 된다고 윌라는 조용하게 말했던가. 결말에서 대드 루이스가 마침내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때, 상심해서 슬퍼하는 메리 루이스를 유경험자로서 위로하는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용감한 존슨 모녀는 라일 목사가 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해임되고 마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과감하게 등장해서 변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항의가 라일 목사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용감하게 항의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도 그리고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말하면서. 언제나 예언자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성경이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에 입각한 설교를 했지만 그 설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겐 짜증나는 소리일 뿐이다. 심지어 라일 목사는 산책 중에 테러를 당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대드 루이스가 죽어가는 한가하고 조용한 한 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인간들의 갈등은 끝이 없었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은 처음인데, 그는 마치 이야기의 주술사처럼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탁월하게 엮어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영원한 소멸인 죽음을 반주로 해서, 엄마를 잃은 소녀에 대한 주변인들의 넘치는 사랑, 가족 간의 해결되지 않는 불화, 설교로 사람들에 대한 교화를 시도했다가 낭패를 당한 목사의 이야기 등등 잔잔하면서 마음을 끄는 이야기들이 <축복>에는 가득하다. 작년에 지인의 추천으로 읽은 탐 드루리의 <반달리즘의 종언>하고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시골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다양한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름지기 가장 기본에 충실할 때, 스토리텔링도 빛을 발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축복>을 읽고 나니 그의 다른 작품 <플레인송>도 읽고 싶어졌다. 지난달에 읽다만 존 버저의 소설 그리고 로맹 가리의 소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홀트 마을 포치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며, 해질 무렵 여름 저녁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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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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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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