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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로마사 1 - 1000년 제국 로마의 탄생 ㅣ 만화 로마사 1
이익선 지음,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책의 도착순서 때문에 이익선 작가가 쓰고 그린 <만화 로마사>는 2권부터 읽게 되었다. 책의 서문에는 감수를 임웅 선생이 맡았는데 왜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로마사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었다.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는데 현명해지기 위해 그리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감수자는 어느새 로마사하면 모두가 알게된 시오노 나나미의 영웅 엘리트주의에 대한 냉정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토당토않은 국정교과서의 등장으로 가짜 역사가 판을 치는 세상에, 우리는 고대인의 지혜를 빌릴 정도의 수준이 되었는가 싶어 기분이 찜찜해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로마를 건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전에 이미 아이네이아스라는 트로이전쟁의 망명자가 알바롱가에 원시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전승되어왔다. 로마 이전에도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서양 문화의 원류가 되는 그리스 미케네 문명을 필두로, 예의 미네케 문명을 초토화시키고 그리스에 암흑시대를 가져온 도리아인들의 내습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로 유명한 도시국가 시절도 빠지지 않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당시 지중해의 패권을 다툰 두 세력은 그리스와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 지금의 튀니지 부근에 세운 카르타고였다. 그에 비하면 라틴인들의 로마는 조그만 부락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전쟁에서 패한 망명자들이 세운 소국 로마가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 걸까. 로마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로마의 관용(클레멘티아)과 포용력을 그 첫 번째 이유로 꼽을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공동체의 배타성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혈연으로 구속된 관계만이 온통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기본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테베레 강변에 건국한 도시국가 로마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자원도, 고대 시대에 국가경영에 필수적인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때문에 한때 적이었던 상대까지도 생존을 위해 포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소국 로마의 약점이 대제국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큰 장점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초대왕이었던 로물루스는 생산인력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여인들을 이웃 사비니 부족에게서 약탈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훗날 로마의 특징을 이루게 되는 무력에 의한 제압이 하나의 국가적 방식으로 채택되는 순간이었을까. 사비니 여인의 납치 사건은 관용과 포용을 상징하는 로마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노라고 작가는 분석한다. 이 사건은 훗날 르네상스 시대 혹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한 가지 인기 주제가 되어 니콜라 푸생이나 자크 루이 다비드 같은 화가들에 의해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 로마 시대의 복원보다 당대의 상황에 맞는 복식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이 눈에 띄기도 한다.
건국 이래 250여 년 동안 로마는 왕정시대였다. 일종의 부족연합체였던 로마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인에, 그들이 주변에서 납치해온 사비니 계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로마 원주민들은 농업에 주로 종사했는데, 훗날 로마에 새로 합류하게 되는 에트루리아인들은 상공업에 능통한 상인과 기술자들이 많았다. 거의 전쟁을 날을 지새우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병장기를 만들 에트루리아인들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다수 공공건축물의 수요 역시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구성된 다민족 국가 초기 로마의 모습은 어느 사회나 그렇듯,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라틴인과 사비니인 그리고 에트루리아인 간의 갈등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물루스의 뒤를 이어 추대에 의해 두 번째 로마 왕이 된 철학자 같은 사비니계 누마 폼필리우스는 로마인들 간의 갈등을 잠재우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훗날 기독교를 국교로 삼기 전까지 로마 사회는 기본적으로 열린 다신주의 시스템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로마의 상징처럼 된 야누스 신전을 세우고, 왕이 스스로 대신관(폰티펙스 막시무스,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도 대신관을 역임했다)이 되어 국가 제의를 주관하면서 무례하고 난폭한 성정의 로마 시민 교화에 나섰다. 다시 라틴계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3대 왕위에 올라 라틴 원조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이웃 알바롱가를 복속시키고 로마인으로 받아 들여 본격적 세력 확장에 나선다.
4대 왕 앙쿠스 마르키우스는 테베레 강 어귀의 오스티아를 정복하면서 비로서 지중해로 나가는 관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그의 시대에 등장한 에트루리아인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이방인으로 선거를 통해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다른 사회에서라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이방인 출신 왕의 등장이 로마에서는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5대왕부터 마지막 왕까지 모두 에트루리아인들이 왕위를 독식하면서 나머지 라티인과 사비니인들의 불만도 비등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교적 선정을 펼치던 타르퀴니우스는 선왕 앙쿠스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하고, 노예 출신이라고 알려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타르퀴니우스 미망인의 기지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후 44년 동안, 6대 왕 세르비우스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성벽을 쌓아 로마의 안전을 도모했고, 인구조사를 통해 전쟁에 필수적인 병력 무장한 시민들의 숫자를 파악한 획기적인 군사개혁 등의 선정을 베풀어 로마 시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막장 드라마 주인공 같은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등장이었다. 연로한 장인 왕 세르비우스를 죽음에 몰아넣으며 왕위에 오르는 막장극을 연출한 희대의 악당은 공포 정치와 숙청 같은 정적 제거라는 방식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신전 건축 같은 대규모 공사로 시민들에게 노역을 부과하면서 원성을 쌓아갔다. 막장 드라마의 압권은 타르퀴니우스의 망나니 아들 섹스투스의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으로 결국 왕정의 몰락을 가져왔다. 저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예의 사건보다 경제침체기에 타르퀴니우스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로마 시민들의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 왕의 추방시킨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만화 로마사> 1권에서 다룬 내용들은 실제 역사라기 보다, 아무래도 후손들에 의해 미화된 전설 혹은 전승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거시적인 차원에서 로마 건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살펴봤고, 로마 왕정 초기 시대의 문제점들과 갈등을 신생국 로마가 어떤 방식으로 현명하게 풀어나갔는지 그런 흐름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로서 왕들에 대한 모습 그리고 왕정 폐지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된 공화정의 대두에 살펴 볼 수가 있었다. 로마사라는 대항해의 산뜻한 출발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