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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완벽한 1년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7년 1월
평점 :
샤를로테 루카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비프케 로렌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같은 이름의 작가라고 한다. 후자가 본명이고 전자는 비프케 로렌츠의 필명이다. 그전에 비프케 로렌츠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두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미처 몰랐다.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으로 대학에서 독일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작가가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소설 <당신의 완벽한 1년>의 공간적 배경 역시 함부르크다. 소설의 시작은 비교적 평범하다. 사랑하는 아내 티나를 친구에게 빼앗긴, 다시 말해 오쟁이진 남자 요나단 N. 그리프는 새해의 시작을 달리기로 시작하지만, 아내가 남긴 선물 때문에 온통 정신이 시끄럽다. 도대체 티나는 배불뚝이 그놈의 뭐가 좋다고 신나서 따라간 걸까? 훨씬 더 부유한 출판사 사장인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부유함을 거부하고, 재산분할 마저 마다하고 떠나간 아내에 대한 애증이 묻어난다. 그때 불쑥 등장한, 누군가 자신의 자전거에 두고 간 다이어리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원심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번갈아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나 마르크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르크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그녀는 보육원 교사로 이번에 박봉의 힘든 보육교사 대신 절친 리자를 꼬드겨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찰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여가를 책임지는 <꾸러기교실>, 그런 게 있다면 나라도 당장 아이를 맡기고 싶은 절절한 심정이 들 정도로 멋진 아이디이거 아닌가. 암튼 최근 신문사에서 해고당한 남친 지몬 클람 씨를 이용해서 성대한 오픈 파티를 구상하지만 꼭 필요할 때, 남친이 지독한 감기에 걸려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 위기의 연속이다.
다시 요나단의 이야기로 돌아가 신년부터 월급사장 마르쿠스 보데로부터 출판사 매출이 급전직하하고 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보데 역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 할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가족과 신년축하를 하는 대신 매출 부진의 이유를 찾는데 휴일을 보낸 걸 보면 말이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한 요나단에게 출판사 사장이란 직함은 어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던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찾아가 이런저런 고민을 상담해 보려고 하지만, 어린 나이의 자신을 버려두고 자신의 곁을 떠나 버린 이탈리아 출신 어머니 소피아에 대한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만 추가했을 뿐이다. 다이어리를 찾아 주기 위해 방문한 점술사 아니 인생상담사 사라스바티 슐츠로부터 들은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는 위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결정적인 한 방이란
혼란스러운 인생의 갈림길에 선 요나단의 고민은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 한나가 지몬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청혼할 거라고 예상한 자리에서 말이다. 왜 이 책의 띠지에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언급했는지 바로 알게 됐다. 그랬었군. 너무 장황하게 소설의 줄거리에 이야기할 순 없으니 이 정도에서 삼가는 게 맞을 듯 싶다. 소설 초반에 요나단과 한나가 시간과 공간을 교차하면서 등장하는 장면이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 지점을 기점으로 해서 소설은 또다른 도약을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과 우연히 습득한 다이어리에 맞춰 그동안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도전하는 출판사 사장님의 도전기가 흥미를 더해 간다.
샤를로테 루카스 작자를 처음 만나는 거라 그런지 그녀의 스타일이 어떤지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이 로맨스 소설의 짜임새는 상당하다. 웃픈 로맨스에 구성진 스토리텔링, 미스터리까지 가미한 소설의 재미는 새해 벽두에 읽기에 아주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주인공 요나단 N. 그리프(주인공의 이름이 Grief 라는 설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생은 그렇게 후회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가 지닌 인생의 트라우마의 비밀을 해결해 나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부주의하게 두었던 회사 재무 서류를 찾기 위해 재활용 쓰레기수거차를 뒤지던 중에 만난 노숙자 레오폴트는 요나단의 정신적 멘토가 거듭난다. 요즘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브로맨스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까? 순수문학만을 고집하는 그리프손&북스 출판사의 사장으로서 심각한 출판사의 매출부진 앞에 과연 대대로 이어져 온 가업을 고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오롯하게 요나단의 몫으로 떨어진다. 보데 사장이 제안한 자사의 브랜드가 싫다면, 새로운 임프린트로 대중서적을 출판하는 것도 어떠냐는 의견도 점점 순수문학 대신 대중문학을 선호하는 세태를 포착해낸 작가의 냉철한 현실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팝스타 저리가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낭독회에 참가한 장면도 재밌는 삽입이었다. 덕분에 새로운 스릴러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마워요 샤를로테.
요나단 개인적으로는 절친 토마스와 눈이 맞아 떠난 티나에 대한 감정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질투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나단은 예전에 사랑했다고 믿었던 티나에게 전화해서 진정을 담은 사과를 건넨다. 새로 만난 사랑의 와중에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은 덕분에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정말 자신이 해결해야 했던 과거 수십 년간 외면했던 엄마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보통 사람에겐 한 가지 정도일지도 모르는 인생에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결정적 한 방이 이 남자에겐 너무 과하게 많다는 느낌이다.
소설의 또다른 축을 차지하는 한나의 경우는 또 어떤가.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캐릭터의 주인공 한나.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냉소적 남자친구 지몬 클람의 불투명한 미래를 교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그녀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한나와 지몬의 관계를 통해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드라이브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최선이 타인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사라스바티 같은 인생상담사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삶이 모두 컨트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도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관객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이런 재밌는 요소들로 가득한 이야기를 영화업자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짧은 동영상으로 제작된 북트레일러를 보면서 우리는 참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면서 사는구나 싶어졌다.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지만 그 가운데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을까? 평소라면 내가 해보지 않을 일에 도전해서 행복을 찾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작가 샤를로테 두카스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다음의 문장으로 두서 없고 장황한 리뷰를 마친다. 당신은 어제 마지막으로 행복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