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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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지 3년 만에 <이것이 인간이다>를 읽었다. 왜 그런 책이 있지 않은가. 서가의 한 구석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번에 프리모 레비의 에세이집에 나왔다는 뉴스를 듣고는 <이것이 인간이다>를 단박에 읽어 내렸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후속편에 해당하는 <휴전>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드문 일인데 서점에 달려가서 <휴전>을 사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전작 <이것이 인간인가>가 생존과 그에 수반한 고뇌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휴전>에서는 귀환과 유랑이 키워드였다.

 

어렸을 적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소련침공에 총알받이로 동원된 이탈리아 전쟁포로들의 유쾌한 귀환 이야기를 다룬 글을 읽었던 기억이 불쑥 났다. 그들의 유랑에는 유머가 있었다면, 프리모 레비의 귀환은 살아남은 자의 비애가 담뿍 담겨있다. 레비가 생존에 성공했던 아우슈비츠 3수용소인 모노비츠에서의 생존만큼이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쉽지 않았다. 서쪽으로 진군하던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1945년 1월 이미 독일의 패망이 예견되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수용소에서 해방된 유대인 해프틀링들은 자유인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러시아군이 감시하는 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하는 역설에 직면해 있었다. 또 하나의 역설은 병동에 남아 있던 레비가 만약 건강했다면, 수용소 친구였던 알베르토처럼 마우트하우젠과 부헨발트 같은 독일 내 수용소로 퇴각 행군 중 SS(슈츠슈타펠:나치친위대)에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프리모 레비의 증언을 읽으면서 전율했던 또 하나의 부분은 간난신고 끝에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았지만, 폴란드 ‘민간인들’에게 환대를 받으리라는 그의 생각은 착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유대인 해프틀링들을 페스트에 걸린 환자라도 되는 듯 그렇게 대했다고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했던 걸까? 전쟁 중에 그들을 돕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일말의 양심과 죄의식이 발동해서 환대보다 무관심과 격리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폴란드 사람들을 몰고 간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레비는 전후의 혼돈이 매혹적이었노라고 증언하고 있지만, 그런 혼돈은 이탈리안스키들의 귀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우선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5월 8일 유럽승전이 확정되었음에도 한 때 적성국가였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귀환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레비와 일행은 스스로 먹을 것과 생활필수품들을 구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슈퍼 그리스인 모르도 나훔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노동 혹은 교환이라는 방식이 해결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도 있지만 테살로니키 출신 그리스인 답게 지나치게 극단적인 이윤 추구와 안 해본 장사가 없다고 외치는 슈퍼 그리스인의 당당함 앞에선 그저 어안이 벙벙해지는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인간미가 없다는 점이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그의 대척점에 서 있는 동료가 바로 체사레였다. 체사레는 모르도 나훔 못지않은 수완가였지만 동료를 챙길 줄 아는 인간미 넘치는 멋진 친구였다. 폴란드와 러시아의 급조된 시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터무니없는 거래를 성사시키고 이윤획득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슈퍼 그리스인 버금가는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오지에서 그나라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닭을 잡아먹겠다는 일념으로 마침내 동료들에게 닭을 선사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한편, 레비는 일견 어수선해 보이는 소련군(이반)이 엄정한 규율과 질서를 자랑하는 무적의 독일군에게 승리한 원인을 남다른 시선으로 냉철하게 분석해낸다. 무언가 무질서해 보이고, 상황에 맞게 대충대충 일처리를 하는 것 같지만 특유의 인내심과 임기응변이야말로 기나긴 독소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라는 점을 간파해냈다. 다시 말해 인간적이지 않고 기계적인 방식으로는 전투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전쟁에 이길 수 없었다는 분석일까? 러시아의 황량한 벌판을 지나며,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여름으로 향하는 계절과 러시아군의 규칙적이지 않지만 꾸준한 보급으로 추위와 기아에서는 해방이 되었지만, 무위도식하는 가운데 생겨난 향수를 달랠 방법이 없었노라고 레비는 <휴전>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이들에 대한 스케치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지막 수용소였던 스타리예 도로기에서 스탈린그라의 영웅 티모셴코 원수로부터 고대해 마지 않던 귀환을 약속받은 이탈리안스키들은 마침내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폴란드, 러시아, 몰다비아,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독일까지 아우르는 기나긴 여행 끝에 프리모 레비는 고향 토리노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제목 <휴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레비는 종전이 아니라, 왜 휴전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이 책이 쓰인 1960년 초반은 동서방의 냉전(Cold War)이 열전으로 진화해 가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레비는 파시즘에 대항해서 연합했던 서방과 소련이 또 다른 전쟁상태로 돌입할 거라는 사실을 예견했던 걸까. 그런 점에서 레비에게 모르도 나훔이 말한 전쟁은 늘 있다는 경고가 연상됐다. 확실히 <휴전>은 전작의 우울한 분위기에서 탈피한 삶에 대한 희구와 유머가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뭐랄까 마침내 살아남는데 성공해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끔찍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에 대한 기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삶이 죽음으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적 유랑일 수밖에 없다면, 절멸 수용소에서 그 근처까지 갔던 이들의 기록은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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