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가지 이야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최승자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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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영어선생님과 함께 베니건스에서 술을 마시면서 페이퍼 수정을 하곤 하던 시절이 났다. 가장 인상 깊은 노래들 그리고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물론 그녀가 말하고 나는 주로 들었다, 그 때 선생님이 꼽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호밀 밭의 파수꾼>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책에 대해 읽어보지 못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흘러 그 책을 읽었는데 사실 명성 만큼이나 그렇게 대단한 감흥이 일지 않았다. 독서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도 좋으란 법은 없잖아? 그런 이유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사두기만 하고 언제 읽은진 나도 모르겠다. 고전은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읽게 되는 그런 책이 아닐까. 서설이 길었다, 이번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된 <아홉가지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다.

 

이달 독서 모임 책 발표가 나자마자 헌책방에 달려 가서 냉큼 사왔다. 헌책방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원하는 책이 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운이 좋은 편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보기도 하지만(경제적인 이유로) 개인적으로 책은 사서 보는 게 편하다. 헌책이라 가격도 저렴하니(거의 커피 한잔 값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왠지 밍밍한 느낌이다. 단박에 9개의 이야기 중에서 6개를 읽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단편을 남겨 두고 지지부진했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화장실에 앉아서 7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사실 앞의 6개 이야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순전히 리뷰와 독서모임을 위해 이미 읽은 이야기들을 뒤적여야했다. 흠,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구만. 오늘 바로 읽어서 그런진 몰라도 7번째 이야기 <예쁜 입과 초록빛 나의 눈동자>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예쁜 입과 초록빛 나의 눈동자>에서 묘령의 여인과 함께 있던 리는 아서의 전화를 받는다. 그 둘의 사이는 한밤중에 전화해도 부담 없는 그런 사이겠지 아마도. 파티에서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는 아서에게 리는 기다리면 곧 아서의 부인 조아니가 돌아올 거라며 술 한 잔을 권하지만 이미 아서는 만취한 상태다. 여기까지 읽던 나는 리와 함께 있는 여자가 조아니가 아닐까 하는 상상에 빠져든다. 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1950년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대한 저격이라고 해야 할까.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듯, 재판에 져서 낙담해 있던 변호사 아서는 아내가 막 돌아왔노라고 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고한다. 역시나 어리둥절한 결말의 이야기.

 

사실 이전의 이야기들은 좀 뜬금없다. 아무래도 내가 샐린저가 소설을 쓰던 시절의 배경을 몰라서 그랬을까. 처음에 만난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서는 2차 세계대전과 나치강제노동수용소를 목격하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을 무시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젊은 남자에 대한, 어쩌면 샐린저의 이야기였다는 건 위키피디아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소설에 나온 이야기만으로는 절대 부족했다. 코네티컷 중산층 부인네들의 수다가 등장하는 미국판 교외 신화에 대한 <코네티컷의 비칠비칠 아저씨>는 또 어떤가. 여대시절 친구였던 엘로이즈와 메리 제인이 줄담배를 피고 술을 질탕 퍼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기만 하다. 상상 속의 친구를 가진 엘로이즈의 딸 라모나 이야기는 훗날 무언가의 원형질 같은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작은 보트에서>는 부 부 탄넨바움에 고용된 산드라와 스넬 부인이 부 부의 아들 라이오넬에게 들려준 반유대주의(라이오넬의 아버지가 유대인이다) 생각들을 자신들의 고용인에게 알릴까봐 걱정하는 일상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저 도망가려는 꼬맹이 라이오넬에 대한 이야기다. 꼬마 라이오넬은 역시 절반은 유대인이었던 샐린저의 초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후 널리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 여론을 아주 살짝 엿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 중에서 그나마 지혜와 위안을 찾은 작품은 바로 <에스메를 위하며,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였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바다 속에서 “작은 걸작”이라는 평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글 중에서도 최고라고 했다지 아마. 때는 1950년, 6년 전 영국 데번에서 D-day 직전에 만난 신부로부터 청첩장이 도착했다. 화자는 조용하게 그 당시의 인연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독일군이 삼엄하게 방비하고 있던 노르망디 해변 상륙작전을 앞둔 화자는 어느 교회를 방문해서 어린이 성가대 연습을 듣게 된다. 그곳에서 화자는 세상 “살맛을 잃은 듯한 두 눈을 가진 열 세 살쯤 먹어 보이는” 소녀와 조우한다. 그리고 들른 민간 찻집에서 예의 꼬마 숙녀 에스메와 다시 만나게 된다. 화자를 지적이고 외롭다고 판단한 에스메와의 대화를 통해 에스메의 삶을 엿보게 된다. 어머니는 죽었고, 아버지는 북아프리카에서 잃은 에스메는 고상한 프랑스어도 할 줄 알고 미래에 재즈 가수가 되어 돈을 왕창 벌어 싶어하는 당돌하면서도 상냥하고 지적인 꼬마 숙녀였다. 화자의 결혼생활과 직업 등을 물은 에스메와의 대화는 이제 곧 작전에 투입될 병사와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간 소녀의 감정을 교차시키면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엮어낸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드디어 끝나고 X하사(화자)에게 에스메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에는 아버지가 유물로 물려준 알이 엄청 큰 크로노그래프처럼 생긴 손목시계와 직업적인 단편소설 작가의 재능을 가지고 무사히 귀국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겪은 이들이 가진 비참한 전쟁에 대한 생각들을 추체험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소설 <에스메>가 매스터피스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 두 이야기인 <드 도미에 스미스의 청색 시대>와 <테디>는 신비주의적 성향의 작품들이다. 전자에서 만화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오노레 도미에의 증손자이자 파블로 피카소와도 친분이 있다는 그럴싸한 말로 몬트리올 미술학교에서 일본인 요소토 교장의 미술교사 채용공고에 당당하게 응모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두 남자(자신과 자신의 의붓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멋지게 들렸다. 그리고 물설고 낯선 몬트리올에서 새출발을 시도해 보지만 나에게 모든 곳은 천국보다 낯설 뿐이다. 얼토당토않은 미술 선생직이 오래 갈 리가 없지. 슬렁슬렁 넘어가는 서사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테디>는 또 어떤가. 샐린저의 신비주의 정점을 찍을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야릇한 분위기의 단편소설은 아마도 천재소년으로 보이는 주인공 테디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저격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예견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떨까? 불운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유려한 단편은 끝을 맺는다. 예상한 대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설정, 대단하군.

 

샐린저의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최근에 읽기 시작한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이 생각났다. 엄청난 속도로 읽어 대기 시작했지만 샐린저의 단편처럼 어느 순간 멈춰서 버린. 일상의 균열과 붕괴를 잡아낸 대가의 솜씨는 어쩌면 샐린저가 먼저 발휘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하면 독서 모임 전에 <호밀 밭의 파수꾼>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많은 버전이 나왔지만 추천할 만한 번역이 부재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가능하면 김욱동 교수님의 버전으로 만나 보고 싶은데, 드물어서 과연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샐린저의 대표작은 걸작의 아우라를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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